1. 개요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표충로 1338 (구천리) 재약산(載藥山) 기슭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 통도사의 말사이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유정대사의 충훈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표충사당(表忠祠堂)이 있는 사찰이다.
표충사 일원은 1974년 경상남도의 기념물 제17호로 지정됐다.
2. 역사
신라 무열왕 원년(654년)에 삼국 통일을 기원하고자 원효스님이 터를 잡아 창건한 죽림정사(竹林精寺)를 신라 흥덕왕 4년때 인도 스님인 황면(黃面)선사가 현재의 자리에 재건하고 삼층석탑을 세워 석가여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영정사(靈井寺)로 개칭하였다. 당시 흥덕왕의 셋째 왕자가 나병에 걸려 명의와 명약을 찾던 중, 이곳 죽림사의 약수를 마시고 병을 치유했다고 한다. 이에 왕이 크게 기뻐하여 산초와 유수가 모두 약초요, 약수라 하여 가람을 크게 부흥시키고, 사찰명을 영정사라 명명하였다.
고려시대에 들어 표충사는 보우, 해린, 일연, 천희 등 사대 국사가 주석하며 선풍을 크게 일으켜 국내 제일의 선찰로 번창했고, 고려 충렬왕이 이곳을 찾아 찬탄하고 일국지명산, 동방제일 선찰이라 명명하기도 하였다. 일연 국사가 삼국유사를 이곳에서 완성했다고 전한다.
원래의 표충사(表忠祠)는 밀양시 영축산에 있던 백하암(白霞庵) 자리에 있었으며, 사명대사의 제사를 모시기 위하여 나라에서 사원(祠院)을 세우고 봄·가을로 제사를 지냈다. 표충사라는 이름은 사명대사를 제향하는 사당을 당시 서원(書院)의 격(格)으로 표충서원(表忠書院)이라 편액하고 일반적으로 표충사로 불렀는데, 이 사당을 사찰(영정사)에서 수호(守護)하여 왔으므로 사(祠)가 사(寺)로 바꾸어진 것이다. 1838년(헌종 4) 사명대사의 8세손인 천유(天有)가 예조에 보고하여 부사 심의복(沈宜復)의 도움으로 1839년에 이미 폐사가 된 영정사 자리(현위치)로 옮기게 되었다.
10.27 법난의 피해 사찰 중 하나이며 이러한 사실을 알리는 표지가 절에 세워져있다. 현대에 들어 표충사는 조계종 초대 종정을 역임한 효봉 대선사가 주석하다가 1966년에 열반한 곳이기도 하다.
조선의열단 단장이자 조선의용대의 대장을 지냈던 항일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과도 인연이 있는 사찰로도 알려져 있다. 그가 다니던 동화중학교가 폐교된 뒤에 이곳에 와서 1년 정도 머물렀으며, 손자병법, 오자병법 등의 고전 병서를 읽으면서 자주 시간을 보냈다고. 해방 이후 귀국해 전국을 돌며 순회연설을 하는 중에 밀양을 찾았을 때도 표충사를 방문했었다. 아들과 표충사에서 찍은 사진이 남아 있기도 하다.
3. 문화재
국보 제75호 청동함은향완
만일루
보물 제467호 표충사 삼층석탑
유형문화재 제14호 표충사 석등
국보 제75호인 청동 은입사 향완(香垸)은 1177년(명종 7)에 제작된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고려시대 향로이다.
3.1. 도난문화재
영산회상도 - 1785년 만들어진 불화이다.
신중탱화 - 1861년 만들어진 불화이다.
칠성탱화 - 1861년 만들어진 불화이다.
세 문화재 모두 1991년 6월 29일 도난되었다.
밀양시는 기차가 발달한 도시이다. 기차를 타고 밀양역에 도착한 후 시내버스를 타고 버스터미널로 가서 밀성여객에서 운행하는 매시간 있는 표충사 가는 버스를 타면 갈 수있다.
다만 표충사 입구까지 운행하지 않고 입구에서 약간 떨어진 공영주차장까지 운행하기 때문에 아래에서 한참 동안 걸어가야 한다. 또한 표충사 출발 배차 시간이 있기 때문에도 돌아가는 길에도 표충사에서 출발하는 시간표를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자동차로 갈 시에는 입구에 있는 정산소에서 주차요금 및 입장료를 내고 근처의 주차장에 주차하고나서 들어갈 수 있다. 표충사 가는 길 쪽에 놀이터를 설치하여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