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박물관
화성박물관은 동˙서양 성곽의 장점과 조선의 창의성을 바탕으로 건설한 화성의 아름다움과 우수성, 그리고 이곳에서 자신의 꿈과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던 정조의 개혁정신을 알리기 위해 만든 전문 박물관이다.
정조의 국화그림
국화 그림은 위로 뻗거나 아래로 늘어진 국화의 자연스럽고 청초한 구성이 돋보이는 수작
이라고 한다.
정조대왕필 파초그림
파초그림은 굽은 괴석 끝에 파초 줄기와 넓은 잎을 적절히 배치하여 간결하고, 잎새의
빛에 따른 변화를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정조의 친필 글씨와 정조가 직접 저술한 문집인 "홍재전서" 완질본.
1795년(정조 19년) 모친인 혜경궁홍씨의 회갑연을 위한 수원행차 때 강력한 왕권을 상징하는 황금갑옷을 입고 화성에 입성하는 정조의 모습입니다.
동궁보묵
사도세자가 8세 때 쓴 글싸를 모아 엮은 필첩이다.
김후 초상
1796년 화성성역이 끝난 후 그린 김후 40대 중반에 모습을 그린 초상화다.
본관은 해풍(海豊)이고 자는 광중(光仲)이며 증호조참판 김상걸(1727~1798)의 아들이다.
화성성역의 궤
화성 축성에 관한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기록한 "화성성역의궤". 총 10권9책으로, 정조의 명에 의해 시작되어 1801년(순조 원년)에 편찬되었으며,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되었다.
화성행궁
조돈영서
사도세자가 대리청정시 조돈에게 내린 명령서다.
시전
봉수당 진찬연
정조대왕이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를 위해 준비했던 회갑연이다.
채제공초상
1792년 이명기가 그린 채제공 73세 초상화로 채제공은 조선 후기의 문신, 정치인이다.
영조 후반과 정조대의 남인의 영수로 정조의 최측근 인사 중의 한사람이며, 정약용, 이가환
등의 정치적 후견자였다.
의례용 복식
왕권강화를 위해 창설된 정조의 친위대 장용영 대장의 의례용 복식. 원색의 화려한 복색이
정조시대 아시아 강국으로서의 탄탄한 국력을 상징하는 듯하다.
서북공심돈에서의 가상전투 장면을 재현한 모형.
화성성묘전배도
정조가 화성행궁에 도착한 이튿날(11일) 화성 향교에서 공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에 나가 참배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낙남헌방방도
화성에서 문무 양과에 걸친 과거시험을 본 뒤 낙남헌에서 그 합격자를 발표하고 시상하는 장면이다. 이날 문과의 책문은 혜경궁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내용의 '근상천천세수부(謹上千千歲壽賦)'였고, 무과의 시험과목은 활쏘기였다고 한다.
봉수당진찬도
‘봉수당진찬’이란 1795년의 현륭원 원행 가운데 가장 중요한 행사였던 혜경궁 홍씨의 탄신 일주갑을 기념하여 베풀어진 진찬 장면을 그린 것이다.
낙남헌 양로연도
윤2월 14일 오전, 정조가 낙남헌에서 영의정 홍낙성(洪樂性) 등 능행에 수행한 노대신(老大臣) 15명과 수원부의 노인 총 384명에게 양로연을 베푸는 장면이다.
서장대야조도
1795년(정조 19) 윤2월 12일 밤 정조가 화성의 서장대에 갑옷을 입고 행차하여 군사 조련을 실시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득중정어사도
윤2월 14일 오후 정조가 화성행궁 안의 득중정(得中亭)에서 신하들과 함께 활쏘기를 한 다음 저녁에 혜경궁을
모시고 불꽃놀이를 구경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시흥 환어행렬도
윤2월 15일, 화성행궁을 출발하여 서울로 올라오면서 이제 막 시흥행궁 앞에 다다른 장대한 행렬을 묘사하였다.
처음으로 혜경궁을 모시고 함께 능행하여 무려 6,000여 명의 인원과 1,400여 필의 말이 동원된 가장 성대했던 행렬을 그린 그림이다.
한강주교환어도
수원능행도(水原陵行圖), 화성능행도(華城陵行圖)라고도 부른다.
정조가 돌아가신 부친인 사도세자의 회갑 잔치를 위하여 1795년(정조 19년) 윤 2월 9일부터 동월 17일까지 총 8일간 모친인 혜경궁홍씨와 함께 수원화성의 현륭원(顯隆園)을 참배하며 그 과정에 있었던 주요 행사들을원행을 묘정리의궤와 그림을 통해 남기게 한 것이다.
수원능행도 출처 :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