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0-19호, 2020년 5월 10일 주일 낮 설교
요한계시록 3:2 끊임없는 각성을 요구하신다.
교회의 부흥 시기들이 있었다. 1900년 한국교회의 대부흥이 있었던 배경에는 강원도 지방에서 하디 의료선교사로부터 시작되었다. 하디는 미국출신으로서 무디의 신앙 영향으로 선교사로서 한국땅에서 사역하게 된 사람이다. 그는 강원도 북부지방을 중심해서 사역할 때 “지경터 교회(철원 갈말읍)”를 세우는 일을 하였다.
당시 하디 선교사의 선교 보고서 내용에 보면 “나는 3년 동안 강원도에서 교회에 처음 세워진 지경터에서 어떤 다른 지역보다 애써 일하였으나 그곳에서 선교사역 실패는 나에게 말할 수 없는 타격을 안겨 주었고 사역을 더 할 수 없는 정도로 절망감을 가져다주었다.” 했다. 하디 선교사는 자신의 부족을 지경터 교우들에게 토하면서, 자기 죄를 자복하면서 자신이 의사라는 교만, 동양인에 대한 닫힌 마음, 바쁘다는 이유로 기도에 소홀한 영적 폐허를 고백하였다.
이 일 후에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고 마음에 놀라운 평화와 기쁨을 얻게 되었다(1903년)”고 한다. 이 체험과 기쁨을 다른 선교사들과 함께 나누면서 기도회를 갖고, 회개운동과 함께 성령의 능력을 구할 때, 성령의 불길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불길이 김정은의 고향이라는 원산에 신앙부흥운동이 일어나게 되었고, 이 불씨가 평양까지 영향을 끼쳤고, 그리고 조선땅에 불붙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은 이러한 대각성이 필요한 때이다.
1. 사데교회는 대각성이 필요한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께서는 사데 교회의 잘못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1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2절 “너는 일깨어”라 하였다. 이 말은 “각성하게 되라”는 말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데 교회를 향해 각성(覺醒 ① 눈을 떠서 정신을 차림 ② 깨달아 정신을 바로 차림 ③ 자기의 잘못을 깨달음)을 요구하셨다. 사데교회의 영적 처지가 완전 그로기(groggy-비틀거림, 휘청거림)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왜 주님의 교회인 사데 교회가 대각성이 필요했는가?
⑴ 사데 교회가 생명이신 예수님을 멀리하였고, 또한 떠난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이니(요 14:6)”라 하였다. 요 6:35 “... 나는 생명의 떡이니” 48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시면서 요 11:2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하셨다. 생명이신 예수님께서는 포도나무 비유에서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 93장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생명되시니 구주 예수 떠나 살면 죄중에 빠지리...”
사데 교회는 생명이신 예수님을 ① 생각하지 않고, 의지하지 않는 일이 나타난 것이다.
② 믿음생활과 교회생활의 문제점 - 예배와 기도생활에서 나타난 것이다.
③ 믿음생활은 잘 하는 것 같은데, 실제 삶에서의 거룩과 경건의 능력 빠진 것이다.
딤후 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다.” ※↣ 바리새인들을 닮아간 것이다.
⑵ 성령으로의 삶을 무시하고, 육체적인 관점에서 사는 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야곱의 12 아들중에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처럼 믿음의 사람이다. 그런데 그들 속에 ① 시기심이 있었다. ② 미워함이 있었다. ③ 요셉을 노예상인들에게 돈을 받고 팔아넘겼다. - 양심마비 ④ 아버지를 속이는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리고 끝까지 그 거짓말을 숨기려 하였다.
⑶ 외적인 평안과 교회가 사이즈가 대형인 것을 자랑하면서 스스로 자만하기 시작한 것이다.
① 신앙인은 성경 위주로 순종하며 사는 것이 기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온 생각과 마음을 쏟아야 한다. 이것이 해이(解弛)해 진 것이다. ② 믿음의 주이신 그리스도(Christ)를 끊임없이 본받아 살려해야 한다.
※↣ 베드로는 벧전 2:21 “...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 C체널에서 성지가 좋다 프로에서 보니까, 소아시아 지방에 있는 교회가 다 폐허가 되었다. 그 나라 터키는 지금 이슬람 종교가 국가 종교가 되고, 정신과 마음까지 다 지배하는 나라가 된 것이다. 지난날에 찬란한 기독교문화는 완전히 파괴되고 남아 있는 교회의 유산(전통)들은 박물관이 되었다.
2. 교회의 주인이시고, 머리되신 예수님은 교회의 대각성을 요구하신 까닭이 무엇일까?
1) 더 타락하여 망하고 죽는데까지 이르기 않기 위함인 것이다.
-2절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하셨다. 이 말씀을 깊이 생각하면 사데교회의 상태가 숨이 완전히 끊어진 상태는 아니다. 살 희망이 있고, 손을 쓰면 소생할 수 있는 길이 있고, 회복해야 할 당위성이 있는 교회라는 것이다.
⑴ 주님께서 왜 손을 쓰고 계신가? 교회는 주님의 것이고, 주님의 이름을 둔 교회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주님의 명예와 영광이 임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이를 들어내어야 한다(빛처럼, 향기처럼....). 그러므로 교회의 주인이신 주님이 교회가 잘 되기를 원하신다.
⑵ 교회가 살아야 세상에 생명이 넘치는 역사를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은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교회가 영적 사망상태에 빠지면 무엇을 하실 수 있는 일이 있겠는가? ※↣ 신앙생활, 교회생활 전부가 활기를 있고, 썩은 냄새를 낸다.
⑶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을 헤아리면서 사는 깨어있는 교회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조차도 죽은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겔 18:23 “...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32절 “... 죽을 자가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하였다.
※↣ 여기서 우리는 “하물며(앞의 사실이 그러하다면 뒤의 사실은 말할 것도 없다)”라는 단어를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죽어가는 교회가 살아서 생명력 넘치기를 간절히 원하신다.
2)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께서는 교회 각성을 날마다 원하신다는 사실이다.
순간 반짝 빛나고 마는 일회성 각성을 경계하셨다. 여기 “일깨어(기누 그레고론)”라는 말은 계속적인 동작의 진행을 의미하는 현재형이다. 다시 말하면 한순간의 일깨움이 아니라 계속적인 일깨우는 삶 곧 각성하는 삶을 요구하는 말씀이다.
⑴ 꺼져가는 불씨를 되살려 계속적으로 활활 타오르게 하는 것과 같은 행위를 가리킨다.
바울은 목회자 사역자로 일하는 디모데에게 딤전 1:6 “...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나게 하노니”
⑵ 영적인 항상 각성을 말한다. 거의 죽어가는 상태는 살리는 삶을 살 것을 말한다.
죽은 행실을 다시 살리되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해서 행하라는 말씀이다.
◐結論◑ 영적 대각성 운동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행 3:19 “...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른다고 하였다. 땅에 사는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의 부흥과 확장을 위해 살아야 한다. ① 우리 자신들을 돌아보고 회개하는 삶이 필요하다. ② 그리고 아버지께서 약속한 성령을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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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5.11(월) 밤중
교회에서
** 장연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