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보랏빛 코스모스가 고개를 들었다. 가을햇살이 상큼한 오후, 길섶에 핀 야생화가 나들이객을 반긴다. 대여섯 살 꼬맹이가 꽃들을 부여잡고 장난을 쳤다. 중앙고속국도 다부IC를 빠져나와 군위 방향으로 1㎞쯤 달린 가산면 금화리. 동쪽 산속 길로 접어들자 물 깊은 ‘금화저수지’가 눈에 들어온다. 둑 입구는 쇠사슬로 단단히 묶였지만, 어느새 강태공들이 하나 둘 둥지를 틀고 있었다. 팔공산 계곡을 따라 내려온 물이 고여 만든 짙푸른 저수지다. 햇살을 받아 눈이 부셨다. 물은 깊고 맑았다. 저수지 건너 계곡과 산 숲이 한폭의 산수화였다.
이곳은 예부터 사금과 중석이 많이 나 ‘금화(金華)’로 불렸단다. 면적 약 12만㎡의 저수지를 에둘러 산 속으로 들어서자 관광농원과 식당이 대여섯 개 눈에 들어왔다. 계곡물 위 평상에 앉아 정담을 나누는 연인이 평화로워 보였다. 한적한 산 속으로 계곡 물소리만 한가로이 흘렀다. 신라시대 전통사찰인 금곡사와 대둔사가 금화계곡을 둘러싼 산 속을 지키고 있었다. 금화저수지와 계곡을 오르는 길은 가을풍경을 맛볼 수 있는 산책로로 제격이었다.
김천 남면 부상리와 경계를 이룬 칠곡 북삼읍 숭오리의 ‘금오동천’. 계곡 아래 어지러이 들어선 식당과 군데군데 쌓인 쓰레기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하지만, 계곡을 들어서자 맑디맑은 물이 씁쓰레한 마음을 씻어내렸다. 자갈과 흙, 돌이 물 밖으로 튀어나올 듯했다.
계곡 양 옆으로 깎아지른 절벽이 우뚝 솟아 물길을 내려다보았다. 바위 틈새로 흘러내리는 가파른 물살은 4폭포(벅시소), 3폭포(용시소), 2폭포(구유소), 1폭포(선녀탕)로 거슬러 올랐다. 비록 4폭포에는 물이 말랐으나, 선녀탕을 비롯한 나머지 폭포는 제법 물길이 셌다. 계곡을 둘러싼 울창한 솔숲은 맑은 물에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산으로 오르는 길은 사면이 가파르고 산세가 빼어났다. 산 정상에서 서쪽 800m 아래 성안분지를 중심으로 밑자락까지 이어지는 계곡이다. 금오산이 빚어놓은 절경이었다.
돌 틈 사이로 풀과 나무가 삐죽이 고개를 내밀었다. 문루는 남쪽을 내려다보며 장엄한 위용을 드러냈다. 성벽은 300년이 지난 세월을 견뎌내고도 빈틈없이 견고했다. 주변에는 가을 야생화만이 피고지며 시간의 흐름을 얘기했다.
가산면 가산리 가산산성 진남문(영남제일문). ‘가산산성’을 둘러싼 가장 남쪽 문이다. 동명면 ‘송림사’에서 팔공산 한티재를 향해 오르다 중간쯤 자리 잡은 이 산성은 거대한 돌성이었다. 팔공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약 10㎞ 떨어진 가산(901m)을 에워싸고 있다. 칠곡(漆谷)이란 지명도 7개의 봉이 7개 골짜기를 이룬 가산을 칠곡(七谷)이라 한 데서 유래한 만큼 가산은 칠곡의 진산이다.
진남문을 지나 가산을 오르는 휴일 등산객들이 붐볐다. 울창한 숲들이 산 오르는 이들의 땀을 식혔다. 진남문에서 1시간 20분쯤 오르자 동문, 다시 30분을 더 오르자 서문을 앞두고 약 240㎡의 넓은 바윗덩어리가 나타났다. 신라시대 고승이 산천을 떠돌다 이곳에 쇠로 만든 소와 말의 형상을 땅에 묻어 지기를 다스렸다고 전해지는 ‘가산바위’다.
맑은 날이면 저 멀리 가야산, 금오산, 황학산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내성과 중성, 외성을 갖춘 가산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뒤인 조선 인조 17년(1639년)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한 이명웅이 성을 쌓기 시작해 숙종, 영조 17년(1741년)까지 무려 100년에 걸쳐 완성한 총면적 19만 4천436㎡의 거대 규모이다. 신선이 놀았다는 유선대, 용의 모습을 닮은 용바위 등이 가산 정상에서 등산객들에게 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칠곡·김성우기자 swkim@msnet.co.kr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송림사 동명면 동명사거리에서 한티재 방향으로 승용차로 5분쯤 달리면 동명저수지 지나 왼편(동명면 구덕리)에 자리 잡고 있다. 신라 진흥왕 5년(544년) 중국 진나라에서 귀국한 명관이 가져온 불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창건한 사찰. 고려 고종, 조선 선조 때 몽골군과 왜병에 의해 불에 탔다 조선 숙종 12년(1686년) 기성대사에 의해 대웅전과 명부전이 중창됐다. 기성대사를 기리는 높이 2m의 비석과 부도 4기가 있다. 현재 3천 불상을 모시는 삼천불전이 조성 중이다. 특히 보물 제189호인 흙벽돌로 쌓은 5층 전탑이 눈길을 모은다. 현재 국내 전탑은 신라와 고려 초기 등 모두 5기에 불과하고, 상륜부를 포함해 온전한 모양을 갖춘 것은 송림사 탑이 유일하다.
◆한티 순교성지 팔공산 한티재 인근 동명면 득명동 산 속에 자리하고 있다. 조선시대 가톨릭 신자들이 끊임없는 탄압을 피해 화전을 일구고 옹기와 숯을 구우며 한데 모여 살면서 정착한 곳이다. 특히 이곳에 정착한 뒤에도 수차례 관의 습격을 받고 많은 신도들이 순교했는데, 이 때문에 ‘한티 성지’로 일컬어졌다. 높이 14m의 대형 ‘십자고각’ 뒤편으로 을해박해(1815년), 정해박해(1827년) 동안 순교한 33기의 순교자 묘, 피정의 집, 숯굴 등을 갖추고 있다. 이곳은 신나무골과 더불어 순교자의 정신을 되살리고 피정을 위한 순례지로 유명하다.
◆다부동전적기념관 중앙고속국도 다부 IC 인근에 있다. 6·25 전쟁 당시 다부동 전투의 승리와 희생을 기리기 위해 1981년 세운 전승기념관. 높이 25m의 기념비와 탱크 모양의 전적기념관, 전쟁 당시 사용했던 장갑차, 중화기, 소총 등을 전시하고 있다.
◆가산산성 야영장 한티 순교성지 바로 아래 해발 600m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산 속에 레크리에이션장 등 수련시설과 산책로, 취사장, 체력단련장, 피크닉장, 캠프파이어장 등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인근에 송림사, 가산산성, 제2석굴암 등 명승고적지가 산재해 있어 탐방을 겸할 수 있다. 김성우·김병구기자
*이번 주 여행코스:송림사-가산산성-가산산성 야영장-한티 순교성지-도개온천-다부동전적기념관-금화저수지(금화계곡)-금오동천 *'어서 오이소' 다음주(20, 21일) 코스는 '사과 따기 체험과 울긋불긋 죽령옛길 걸어보기-영주·예천' 편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