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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 하듯하라.
( 골 3 장 )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으로 세상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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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 하듯 이라는 말을 지키기란
엄청난 노력과 대가가 필요합니다. 주께 하듯 하려면
거짓이 없어야 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쏟아야 합니다.
교회 봉사가 되었든
나의 직업이 되었든
주께 하듯 하는 사람이라면 최고의 것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 주께 하듯 하여
교회에서나 사회에서나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움직일 수 없는
생활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위엣것을 찾는
생활입니다.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위엣 것이란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찾고 그리스도를 생각하는 일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언제나 그리스도를 찾아가는 생활을
해야 하며 그리스도만을 생각하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에게만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생활이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 그 놀라운 영광을 바라보며
그 상급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생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세상 소망은 그리스도와 함께
무덤에 장사지낸바 되었기 때문에 죽은 소망이 된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인에게는
새로운 소망이 생긴 것입니다. 그것은 하늘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그리스도의 영광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1. 위엣 것을 찾는 생활.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느니라 위엣것을 생각하고 땅엣것을 생각지 말라"
(골로새서 3 :1-2)
우리의 주된 관심과 삶의
목표를 위엣 것에 두고 땅엣 것에 두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요 하나님의 뜻입니다.
‘위엣 것’이란 하나님,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일을 가리킵니다. 주께서는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위엣 것을 찾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순종하는 데 두고 천국에 두고 믿음의 일, 구원의 일,
전도하는 일, 거룩한 삶을 사는데 두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반면에, ‘땅엣 것’이란 세상 일, 육신의 일,
의식주에 관한 일, 직장 일, 세상 나라의 일 세상의
정치, 경제, 문화, 예술의 일, 돈, 건강, 쾌락, 명예, 권세 등입니다.
땅엣 것을 찾거나
생각하지 말라는 것은
이런 것들이 우리의 삶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일시적이며
지나가는 것이고 불경건과 부도덕으로 더럽혀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들에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두거나 그것들을 우리의 삶의 주된
목표로 삼으면 결국은 그것들과 함께 허무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땅엣 것을 찾거나
생각하지 말고 위엣 것을 찾고
생각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지금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산 자들이며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올라가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중생(重生)한 우리는 이제
우리의 관심을 땅의 것들에게 두지 말고 하늘의 것들에 두어야 합니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
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골로새서 3 :3-4)
우리가 위엣 것을 찾고
위엣 것을 생각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의 죽음이며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이며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새 생명을 얻은 자들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지금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어 있고
장차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날 것입니다.
2. 벗어 버려야 할 옛 사람.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골로새서 3 :5-6)
‘땅에 있는 지체’는 우리 몸의 죄성을 가리킵니다.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 등입니다. 단순히 몸의
학대인 금욕(禁慾)과 고행(苦行)은 성화를 위한 바른 방법이 아닙니다..
‘음란’은 정당하지 않은 모든 성행위를 가리킵니다.
성(性)은 정상적 부부 관계에서만 사용되어야 합니다.
'부정’(不淨)은 생각과 말과 행실에 있어서 더러운 것을 가리킵니다.
‘사욕’(邪慾)과
‘악한 정욕’도 정당치 않은 감정과
욕망을 가리킵니다. 이 네 가지는 주로 성적인 죄악에 관계된 것입니다.
'탐심'은 이미 가진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원하는
마음으로. 탐심은 하나님 대신 물질을 최고 가치로 두는 우상숭배입니다.
우리는
탐심을 죽이고,
하나님께서 주신 현재의 환경여건에 감사하고 자족하며 살아야 합니다.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골로새서 3 :7-8)
우리도 과거에는 음란과 탐심 가운데 살았었지만
이제는 예수님 믿고 죄씻음을 얻은 자가 되었으므로
육신의 옛 죄악성들을 다 죽이고 그 행위들을 다 벗어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버려야 할
죄악들은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가리키는
악의(惡意)와 남을 비방하는 훼방과. 더러운 욕설과 거짓말입니다.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
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골로새서 3 :9-10)
거짓말은 마귀가
에덴 동산에서 하와를
속일 때 사용한 것입니다. 마귀의 근본적 특징은 거짓과 속임수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특징은 진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거짓말이
버릇이 되지 않도록 사소한 일에서부터 진실 훈련을 해야 합니다.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골로새서 3 :11)
거기’는 ‘새사람의 세계’를 가리킵니다.
거기는 이방인이나 유대인, 할례받은 자나 할례받지 않은 자,
야만인이나 문명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의(義)가 충족하며 그 외에 무엇이 필요치 않다는 뜻입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만유 안에 계시다’는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구원받은 모든 사람 안에 계시다는 뜻입니다.
3. 그리스도인이 입어야 할 옷.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
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골로새서 3 :12)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삶은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구원에 근거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기
때문에,우리는 하나님의 원하시는 의롭고 선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의와 거룩을 단번에 입혀주신 후에
우리로 하여금 그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권면하시고 격려하십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을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라고 했습니다. 천하 만민 가운데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들은 그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그 죄로부터 건져내시고
그 죄들을 씻어 깨끗케 하시기 위하여 그들을 선택하셨습니다.
성도(聖徒)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룩하여진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죄와 불신앙 가운데 사는 것은
버려두신 증거이며,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룩하고 선한 삶을 살려고 애쓰는 것은 선택받은 증거입니다.
교만은 사람이 흙으로 지음받은
피조물인 것을 알지 못하는 데서 생긴
어리석은 죄악입니다. 사람은 자신을 바로 알 때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겸손과 온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모든 성도와 교회 일꾼들에게 요구되는 가장 큰 덕입니다.
오래 참음은 조급함과 반대된다.
조급한 자는 자기 마음과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지만
오래 참는 자는 모든 일을 깊이 생각하고 신중하게 처리할 것입니다.
그는 비록 자기에게
잘못을 행한 자들에 대해서도 그들이
바른 생각과 깨달음을 가질 때까지 기다려 주는 여유를 가집니다.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상대방의 잘못은 아마
과거의 나의 잘못이었고 또 미래의 나의 잘못일 수도 있습니다.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골로새서 3 :13)
서로 용납하고 피차 용서하는 것은 긍휼과 자비와 오래
참음에서만 나올 수 있으며 우리가 긍휼과 오래 참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잘못을 뉘우치는 자를 용납하고 용서할 수 있습니다.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우리는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그는 우리의 많은 죄,
많은 부족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용납하셨고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우리의 죄가 지옥 형벌을 받아야 마땅했을 때
그는 우리의 큰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해
를 끼친 이웃의 작은 죄에 대해 우리는 더 잘 용서해야 마땅합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골로새서 3 :14)
사랑의 중요성과 완전성은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의 생활 규칙인 십계명을 사랑이라는 말로 요약하셨습니다.
첫째는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요약하셨습니다. 또 그는 제자들의 상호간의
삶의 지침을 한마디로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사랑이 완전함의 띠라는 말은,
사랑 자체가 완전한 덕이라는 것을 뜻할 뿐만 아니라,
또한 사랑을 통해 완전한 일치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 것입니다.
4. 그리스도인의 평강과 감사.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로새서 3 :15)
우리 개인의 마음의 평안은
서로간의 화평으로 이어집니다.
그것이“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개인이 마음으로
평안을 누릴 뿐만 아니라, 또 모든 성도가
한 몸이 되고 모든 교회가 사랑의 한 공동체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이미
한 몸이며 또 사랑과 화평 안에서 그 한 몸 됨을 드러내어야 합니다.
또 우리는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간에 원망과 불평을 가지는
대신에 하나님을 향해 또 서로를 향해 감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바른 생각과
지식과 믿음을 가지고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또 서로를 향해 감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5.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안에 풍성히 거하게 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
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골로새서 3 :16-17)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은
네 권의 복음서들과 요한계시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의 말씀이십니다.
또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은 사도들의 서신서들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
우리는 성경의 모든 말씀을 배우기를
힘쓰고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과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하게 거하도록 해야 합니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골로새서 3 :18-20)
아내의 의무는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입니다.
남편의 위치는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위치에 비유되었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하듯이,
아내들도 자기 남편들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교훈했습니다. 성경이 이렇게 아내와 남편의
위치의 차등을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근거한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남녀평등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시대적
풍조에 근거하여 성경의 교훈에 도전하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칭의(稱義)의 복을 누림에 있어서는
남녀나 사회 신분이나 민족의 차별이 있을 수 없지만, 가정과 교회
안에서의 남녀의 역할과 직분의 구별은 성경에 명백히 증거된 바입니다.
남편의 의무는 아내를 사랑하고 그를 괴롭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남편은 자기 아내를 사랑하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 달려 죽으신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가지셨던
사랑은 무조건적이며 희생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를
통해 남편이 자기 아내를 그런 사랑으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자녀의 의무는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계명에 어긋나는 일, 즉 죄 되는 일 외의
모든 일을 가리킵니다.자녀들은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잠언 30 :17)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골로새서 3 :21)
부모는 자녀를 교육시키려고 할 때 그를 격노케
해서는 안 됩니다. 격노케 한다는 것은 성질을 나게
한다는 뜻인데, 그것은 보통 부당한 명령이나 처분에서 일어납니다.
부모라고 해서 자녀에게 부당한 명령을 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무리하게 또 감정적으로 대하면
자녀의 마음이 상하며 그것은 자녀 교육에 유익보다 해가 됩니다.
자녀들은 마음이 상하면
낙심하고 의욕을 잃고 열등 의식을 가지고
포기하기 쉽고 반항적이게 되고 심지어 자살 충동도 가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감정을 상하게 하는 교육은 유익보다는
해가되므로. 자녀 교육은 사리에 맞게 이루어져야 하며
자녀를 격노케 하고 낙심케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골로새서 3 :22).
인류 역사상 노예제도에 많은
폐해가 있었고. 특히, 종들에 대한
비인격적인 학대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노예제도는 달랐습니다.
성경에는 종들에 대한 많은 배려가
있었습니다. 물론 종은 종이므로 주인에게
순종해야 할 위치에 있고 자유와 권리의 많은 제한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종들을
위해 안식년이라는 법을 주셔서
히브리 종은 6년간 일한 후에 제7년에는 자유의 몸이 되게 하셨습니다.
또 여종을 취한 주인은 평생 그에게
의복과 음식과 동침하는 것을 끊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또 종의 눈을 쳐서 상하게 하면 그 눈 대신에 그를 놓아주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옛날 같은 노예제도는
없지만, 새로운 형태의 주종(主從) 관계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고용주와 피고용인 간의 계약관계입니다.
직장에서 고용주와 피고용인들
간에는 약속된 복종 관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강제적 노예제도는 아니지만, 새로운 형태의 주종 관계입니다.
사람 보는데서 일 잘하는 것처럼
보이지 말고, 사람이 보든지 안 보든지
내게 맡겨진 임무를 다하기 위해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 보고 계시고 하나님께서 선악간에 판단하시고
그의 잘못을 징벌하실 것이기 때문에 그를 두려워하라는 말씀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심이 없느니라"
(골로새서 3 :23-25)
종들은 큰 일이나 작은 일이나, 쉬운 일이나 어려운 일이나,
합리적인 일이나 무리한 일이나, 죄짓는 일만 빼놓고는 무슨 일이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해야 하고 사람에게 하듯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장차 영광스런 천국을 기업으로
얻을 때 그곳에서 우리가 땅 위에서 우리의
처한 현실에서 의롭고 선하게 일한 대로 하나님께 상을 얻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심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그의 삶의 현실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심정으로 의롭게, 선하게, 진실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늘-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잊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하게
거하시도록 날마다 말씀을 가까이 하며 배우고 깨달아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는 우리 모두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구원 받고도 크고 작은 많은 실수와 잘못을 범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여전히 용서해주셨음을
생각할 때에 우리는 우리 이웃의 사소한 잘못을 감싸고
용서하지 못하고 정죄하고 비방하며 헐 뜯었던 허물을
하나님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새 계명을 받들어 서로 칭찬하고 격려하며 용서하는 삶으로
하나님께 칭찬받는 우리의 남은 생애가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1. 2. 20. -샬롬- 예수님 사랑합니다.
카나다 캘거리에서-
바른신학 바른신앙 cafe.daum.net/correcttheology
첫댓글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늘-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잊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맞아요. 코람데오 신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