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정치 10년을 돌아 본다【2】
함석헌
닥아오는 회리바람
너는 눈이 있냐, 없냐? 인간 양심이 네게 남아 있냐, 다 없어져 버렸냐? 남아있을 줄 안다. 내게 있으니 네게 없겠냐? 보자, 똑 바로 보자! 무엇이 뵈느냐? 공장이 된다. 고층 건물이 된다. 고속도로가 된다. 그 공장 굴뚝에서 나는 연기는 뭣 타는 연기냐? 그 하늘 솟는 높은 집이 무엇을 디디고 올라가느냐? 그 구불 구불 구렁이처럼 기어가는 길이 어딜 파먹고 있느냐? 한마디로 네 소위 말하는 서민 아니냐? 씨알 태운 것이 그 연기, 씨알의 매골 쌓은 것이 그 집. 씨알의 간 잎을 파먹고 골수를 빨아먹잔 것이 그 길 아니냐? 그래 근대화라고 목청을 돋혀서 선전했지. 무엇이 근대화냐? 까내놓고 말하자. 너희 생각은 좋은 뜻으로 해석 한다 해도, 이것 밖에 되는 것 없지 않느냐? 곧, 떨어진 사회를 발전시키려면 어느 정도의 무리나 희생은 부득이 한 일이다. 우선 공업 발전 아니 하고는 앞서가는 나라들을 따를 수 없으니 농촌을 좀 희생을 시켜가면서라도 공업부터 일으키어야 한다 하는 말이지. 그점이 너희 생각이 잘 못된 데다. 우리 나라는 이날까지 농업국이다. 그러면 설혹 앞을 보아 공 업화한다 해도 이 파리한 농민을 키워 그들을 살찌워 그들이 자기 손으로 모은 자본으로 공업을 이르키도록하는 것이 원리 원칙이다. 그런 것을 그 결과에 급급한 마음에 갑자기 많은 빚을 밖에서 얻어 드려서 했으니 그 바람에 농촌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대 다수의 국민을 다 파산을 시켜 놓고는 새로 일어난 몇 사람의 군인 재벌로 공업을 일으켜도 밑터를 좁히 하고 높이만 쌓은 탑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모양으로 그 경제가 튼튼할 리가 없다. 그런데 모든 전문 학자의 외국 차관으로는 경제부흥이 아니 된다는 경고를 들으면서도 네 손에 쥔 칼 하나만을 믿고 내몰면 아니되는 일이 없다면서 고집을 부렸다. 왜 그랬는가? 우리가 뚫어본다. 네 생각에 첨부터 나라는 들어있지 않고 어떻게 하다 넘어가지 않는 권 력 구조를 만들까 그 생각뿐이었다. 그러려면 돈 있어야 한다. 네 판단은 그랬지 돈이 어디서 나느냐? 사업을 시키고 거기서 뜯어내야지 이것이 너의 지혜였다. 그래서 소질이야 있고 없고 돈을 바칠만한 사람에게 업체를 주지 않았나? 빚을 모아 짜고 들어서 한 지배계급이 되어 민중을 영원히 착취해 먹자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결과가 어찌 됐나? 긴 것은 기다릴 것도 없이 미국의 섬유 문제 하나로 벌써 두 번 5개년 계획이라고 내두르며 큰 소리 하던 것이 이제 밑둥에서 무너지게 되지 않았느냐? 그것은 미국의 그 문제 아니고라도 어느 때 어느 문제에 가서 부딪쳐서라도 망할 수 밖에 없는 경제 구조다. 지금이 어느 시대라고 씨알을 무시하고 경제를 계획하느냐? 그러므로 우리 판단으로는 너희는 당초부터 나라가 문제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뽑아 먹을 수 있는 데까지 뽑아 먹자는 것뿐이다. 그 다음에야 내가 알 것 있느냐 하는 뱃속이다. 그렇지 않고야 어떻게 이 10년 동안 비겁하나마 아니 할 수 없이 하는 신문인의 그 입쓴 소리, 멍청하는 씨알의 가슴 속에 어느 날은 터질 운명을 가지고 쌓이는 그 불평, 물러설 줄 모르고 끈질게 계속되는 학생들의 반항을 그렇게까지 철면피로, 잔혹하게 악랄하게 눌러가면서까지 그 악한 정책을 계속하느냐? 세계에 이런 긴 역사를 가지는 문화 민족으로서 이런 더러운 정치 경제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또 어디 있느냐?
생각해 보라, 사회가 이러고서 어떻게 서 가겠나? 사회 구조가 피라밋처럼 밑바닥이 넓어야 하지 않느냐? 이러설 때 너희 말대로 백척간두에 재주를 부리려느냐? 너는 잔나비의 재주를 부리다가 망해도 좋을지 모르지만 나라야 어찌 그럴 수 있느냐? 국가를 태반(泰磐)위에 놓는단 말 듣지도 못했느냐? 나라는 절대로 칼 끝에 세우지 못한다. 칼 끝에 쌓아 올리는 그 탑, 그 부조리, 비인도, 반역사의 교만한 그 탑은 반드시 무너지고야 만다. 그리고 그 무너지는 날 그 씨알의 돌 들은 네게 복수할 것이다. 아니다. 부서지는 법 없는 그 不死體는 그 자체가 불사기에 누구를 죽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교만했던 칼날 네가 스스로 제 자리인 밑바닥을 찾아 돌아가는 씨알의 돌 세례에 맞아 가루가 되고 말 것이다.
깊이 생각해야 한다. 사람은 절대로 먹는 것으로만은 살지 못한다. 또 먹는다 해도 혼자나 몇이 먹는 것이 먹는 것 아니다. 골고루 먹는 것이 참 먹음이요, 참으로 밥을 바로 먹었을 때 밥은 결코 육신의 양식만이 아니다. 정신도 함께 자란다. 그러므로 군인정치 10년의 죄는 씨알의 정신을 타락시켰다는 데서 그 극점에 이른다 밥은 굶으면 한 때 약해지지만 정신 은 타락하면 몇 대를 가도 바로잡기가 어렵다. 이제 민족을 이렇게 만들었으니 어찌하려느냐?
이렇게 불쌍한 민족이 어디 있느냐. 사람은 그렇게 착하고 재주 있으면서 정치한다는 놈 잘못 만나서 신라 이래 오늘까지 이꼴이다. 사람으로 보아서 무엇이 남만 못하단 말이냐? 이 나라의 지배자들이 그 어디 보아도 악독했던 것뿐이다. 그래서 제대로 기운을 펴고 자라지 못했다. 이 도둑놈들아, 이순신 팔아 먹지 말고 이순신이 또 나게 하려므나! 그것이 정말 이 순신 존경 아니냐? 이순신이 하나만이냐? 이 나라의 어느 여자의 탯집도 다 이순신을 낳을 수 있다. 다만 너희 정치한다는 놈들이 호랑이 아니 나와야 여우같은 놈들이 뽑낼 수 있을 것이므로 호랑이를 못나오도록 한 것 아니냐? 그것이 적어도 이조 5백 년 역사 아니냐? 그래서 남들이 다 튼튼한 민족국가 세우는 때에 우리만이 실패한 원인 아니냐? 이놈들아, 큰 숲이 없는데 어디서 큰 재목이 나느냐? 씨알이 죽었는데 어디가 인물을 구한단 말이냐? 인물이 얼마나 없으면 20세기 지성의 시대에 군인정치 10년을 당하고 있단 말이냐? 그래서 우리에게 시급한 것이 있다면, 새 역사를 위해 어서 해야할 것이 있다면, 민족의 성격을 바로잡고 씩씩한 정신을 길러주는 것에서 더한 것이 없는데 너희가 혁명이란 이름 아래 반공이란 이름 아래, 정치 안정이란 이름 아래, 이 씨알을 그전보다도 더 묶었으니 어찌하잔 말이냐? 일본 때도 이렇게 비겁은 아니했고 이렇게 자포자기는 아니했다. 너희도 양심 있을 것 아니냐? 이렇게 썩은 때가 어디 있느냐 이것이 뉘 잘못 때문이냐? 불쌍한 민중, 5백년을 기운을 못 펴고 살았는데, 이제 하나님의 뜻이 있어 해방이 되고 자유 하라는데, 네가 누구이기에.
글쎄 네가 누구이기에 이것을 막는단 말이냐?
물러가라! 깨끗이 물러간다던 말 잊었느냐?
씨알아, 일어서자! 밤낮 짐승노릇만 하겠느냐?
한 번 사람답게 죽어보자!
東亞의 저기압의 중심이 이 나라에 생기고 있다. 단번에 뛰어들만 하지 않느냐? 너 아느냐 회리바람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놓여 있다. 죽음으로 거기 들어가면 영원한 삶이 있으되, 네가 그 회리바람 변자리에서 비겁하게 서성이다가는 그 폭풍에 휘말려 들어가 낙엽처럼 춤을 추다가 어느 하늘가에 떨어져 영원한 매장을 당할지 모른다.
아마 그 중심에 뛰어들라고 이 칼이지 !
씨알의소리 1971. 10월 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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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20; 17- 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