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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라도...
렘5:1~9
예배일자 :
자비하신 하나님! 예배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한숨 쉬고 탄식하며 눈물 감춘 일도 많았지만 오늘을 살게 하셨음에 소망을 갖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찬양드립니다.
이 예배의 자리에 세상 삶에 지친 괴로움을 안고 나온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저런 근심과 걱정으로 평안함을 잃고, 두려워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죄의 유혹에 흔들렸던 수치와 부끄러움을 안고 나온 이들도 있습니다.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구합니다.
객지, 외국, 군대, 병상에 있는 성도들 …
진성교회와 연관된 사람들 위해서 기도하는 이들 저들을 붙들어 주옵소서.
하늘 평안과 감사가 넘치는 소식들을 주고 받게 하시기를 구합니다.
저들과도 함께 하시고 은혜 충만한 시간 되게 하여 주옵소서.
말씀 전하고 듣습니다. 부족한 종을 붙들어 주시고 악한 마귀 틈타지 않도록 지켜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이스라엘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가 전성기였습니다. 부강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 남 유다와 북이스라엘로 쪼개졌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은 세겜을 수도로 삼고, 종교적으로 예루살렘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두고 숭배하게 했습니다. (왕상 12:25-33)
북이스라엘은 건국 초기부터 하나님을 배반했고, 앗수르에 의해 패망(B.C. 722년)하기까지
여호와 신앙에서 떠나 타락한 백성으로 살았습니다. <라이프성경사전 참조>
그렇다면 남 유다는 하나님 앞에 죄짓지 않고 살았느냐 하면 그렇지 않았습니다.
남 유다도 북이스라엘과 비슷했습니다.
남 유다에 선한 왕들이 있긴 했지만, 남 유다도 북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본문의 예레미야 선지자는 남 유다의 16대 왕‘요시야’13년 때부터 활동했습니다.(렘1`:2)
그때가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지 100년 정도 흐른 뒤였기에
남 유다는 북이스라엘의 실패와 멸망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했습니다.
반면교사(反面敎師)는 '본이 되지 않는 남의 말이나 행동이 도리어
자신의 인격을 수양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경우를 이르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도 하나님을 배반했고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 심판을 경고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남 유다의 허물과 반역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먼저 4절에, 일반 백성들의 타락이 나옵니다.
“내가 말하기를 이 무리는 비천하고 어리석은 것뿐이라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니”(렘 5:4)
그들은 택함받은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럼에도“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여 어리석게 행동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지도자들이라도 백성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했어야 했는데 …
그들도 타락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5절에
“내가 지도자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리라 그들은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안다 하였더니
그들도 일제히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은지라”(렘 5:5)
지도자들은 여호와의 길, 하나님의 법을 알았음에도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을 거추장스럽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면 해야 할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들을 다 귀찮게 여기고 불편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 걸 보면 무엇을 머리로 안다고 해서 아는 대로 사는 것은 아닙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가 엄청 멀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머리에 아는 것이 있다고 해서 가슴에 감동이 오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머리에 든 지식이 있더라도 그것이 가슴을 때려야 움직일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머리에 지식이 생기고, 그 지식이 가슴을 때렸으면
손과 발을 움직여 행동해야 하는데 가슴에 감동이 생겼어도 손과 발을 움직이지 않아
아무 일도 못하는(안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옛날 노래 중에 ‘갑돌이와 갑순이’가 한 마을에 살며
콩닥콩닥 가슴 떨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으면 무엇합니까?
발을 움직여 찾아가야죠. 손 내밀어 잡아야죠. 입술을 움직여 고백해야죠. “마음 뿐이래요”는 꽝입니다.
마음 뿐인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머리로 안다고 해서 모두 순종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하나님을 알고 가슴에 뭉클함이 느껴지고 깨달았다고 해서 실천하지 않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남은 건 껍데기 신앙뿐이었습니다.
예레미야 5장 2절에
“그들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할지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렘 5:2) 했습니다.
그들은 입술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믿음 없는 거짓 고백 / 거짓 맹세일 뿐이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7절에도
“… 네 자녀가 나를 버리고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하였으며 …”(렘 5:7) 했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 5장 7~8절을 <새번역, 쉬운성경>으로 보면
‘그들은 창녀의 집으로 몰려갔고, 정력이 왕성한 숫말과 같이 이웃의 아내를 탐냈습니다.’
한마디로 남 유다는 총체적 난국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불법을 싫어하십니다.
히브리서 1장 9절에 “주께서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으니 …”(히 1:9) 라고 했고,
시편 5편에도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 …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시 5:4~5) 했습니다.
그러니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남은 것은 심판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수풀에서 나오는 사자가 그들을 죽이며
사막의 이리가 그들을 멸하며 표범이 성읍들을 엿본즉 그리로 나오는 자마다 찢기리니
이는 그들의 허물이 많고 반역이 심함이니이다 내가 어찌 너를 용서하겠느냐 …”(렘 5:6~7)
여기에 세 종류의 맹수인 ‘사자, 이리, 표범’이 나오는데 이는 당시 강대국이었던 바벨론을 뜻합니다.
북이스라엘이 죄 때문에 앗수르에게 멸망했듯이
남 유다 또한 같은 이유로 멸망하게 될 때 하나님은 바벨론을 쓰시겠다는 뜻입니다.
또한 9절에도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이 일들에 대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복하지 않겠느냐” (렘 5:9) 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당장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경고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심판을 선포하며 경고하는 이유는
그들이 죄에서 떠나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렘 5:1) 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한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만약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사람 한 명이라도 찾는다면 심판을 멈추겠다고 하셨습니다.
“홍수에 마실 물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온 지역에 물난리가 났을 만큼 물이 넘쳐 나지만 정작 사람에게 꼭 필요한 마실 물은 찾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이런 말 하신 적 있으시지요?
“사람(후보)은 많은데 뽑을 만한 인물이 없다.”
왜 그런지 아시나요? 저마다 나라를 위해 이렇게 하겠다,
국민을 위해 이런 정책을 펴겠다며 나서는 사람은 많지만
정작 그들의 말과 행실을 보면 일 시킬 만한 인물이 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도 같은 마음이셨습니다.
‘남 유다의 백성들아! 나를 섬기기보다 우상을 숭배하는구나. 너희에게는 내가 싫어하는 죄로 가득하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사람을 한 명이라도 찾으면 … 내가 너희를 용서하겠다.’
설마 그 많은 사람 중에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 1명이 없었을까요?
거룩하게 신앙을 지키는 하나님의 말씀 따라 사는 … 1명이 없었을까요?
그런데 남 유다는 그 한 사람을 찾지 못해 망했습니다.
1명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한 사람의 믿음이 나라를 구할 수도 있습니다.
한 사람이 교회를 지킬 수 있고 한 사람이 가정을 지키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영향을 끼치고 사시는지요?
최근 ‘인플루언서(Influencer)’라는 말이 자주 쓰입니다.
‘영향을 끼치다’는 뜻을 가진 영단어 ‘influence’에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er’을 붙인 신조어입니다.
‘영향을 끼치는 사람,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어느 드라마에서 여자 주인공이 머리띠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많은 여자들이 머리띠를 하고 다녔을 정도로 아주 인기였습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연예인들은 상당한‘인플루언서’입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유튜버, 인터넷 방송인, SNS 스타들도
‘인플루언서’로 인정받고 돈을 벌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은 좋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선한 영향력도 있지만 악한 영향력도 있기 때문입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리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쁜 분위기를 좋게 바꾸는 것도 한 사람이면 족합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는 언제 어디서나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도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 한 사람이 똑바로 신앙 지키면 온 가족이 구원받는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 한 사람이 참고 견디면 가정에 평화가 오고 화목을 이룰 수 있습니다.
- 한 사람이 거짓과 술수가 아닌 진실로 살아간다면 일터가 복을 받습니다.
- 한 사람이 희생하고 헌신하며 십자가를 지면 교회는 은혜가 넘치고 평안해집니다.
여러분의 속회/선교회/부서/팀을 생각해 보세요.
한 사람의 영향력은 대단합니다.
다 힘들다고 투정 부리고, 불평하고, 원망해도 누구 한 사람이 ‘그만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
기도하자’라고 꿋꿋하게 헌신하면 … 분위기가 변합니다.
모두가 이러쿵 저러쿵 말하고,‘아니다, 틀렸다, 안된다’해도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 가진 사람이
‘네가 하나님이냐? 조용히 하라’고 말하며 묵묵하게 기도하고, 헌금하며,‘주께 하듯’봉사하는
한 사람만 있으면 … 잠잠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평안해집니다. 부흥하고 성장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유유상종입니다.
비슷한 사람끼리 친하고,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어쩌구 저쩌구 그랬대.’하면 ‘어쩐지 그럴 줄 알았어.’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쑥덕댑니다.
그럴 때 ‘조용히 해. 알지도 못하면서 떠드냐. 기도하자’ 라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조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많으면 좋지만, 많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닙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한 사람’을 찾으시고, 한 사람을 쓰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한 사람을 찾으시고
그 한 사람을 쓰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나 제가 그런 한 사람이 될 수는 없을까요?
모두 헛소리할 때 바른말 하는 한 사람 … 모두 곁길로 갈 때 바른길 택하는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창세기 18장에 보면 하나님은 소돔에 가득한 죄악을 보시며
그들을 심판하실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소돔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창 18:23~24)
그러자 하나님은 “… 만일 소돔 성읍 가운데에서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창 18:26) 하셨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의인의 숫자를 조금씩 내렸습니다.
“5명이 부족하여 의인이 45명 밖에 없으면 어떡합니까?”
“또 5명이 부족하여 의인 40명 뿐이어도 멸하시겠습니까?”
“30명, 20명 … 마지막 10명이 있다면 그래도 심판하시렵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제안을 다 받아들이셨고,
“의인 10명을 봐서라도, 내가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 하셨습니다.
하지만 결국 소돔성은 어떻게 되었나요?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창 19:24~25)
그런데 남 유다는 더 심했습니다.
의인 한 사람이 없어서 멸망할 위기에 놓였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어둠으로 가득한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정의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하나님의 사람,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 한 사람이 우리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1858년 미국 보스톤의 어느 교회, 교회 학교 교사가 구둣방에서 일하고 있던 자기반 아이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시간이 흘러 그 아이가 자라 교회 학교 교사가 되었는데
그 아이는 19세기 말 미국과 유럽의 영혼을 뒤흔드는 세계적인 복음 전도자, ‘D.L 무디’였습니다.
21년이 지난 뒤에 무디가 영국 런던에서 집회를 했는데,
그때 무디의 설교에 감동을 받고 회심한 사람이 ‘F.B. 마이어’였습니다.
마이어는 목사가 되어 영국의 3대 설교자로 인정받으며 영국의 영적 부흥 운동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후에‘마이어’목사님의 설교를 들었던 사람이 회심했는데,
그가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윌버 채프먼’이었습니다.
채프먼은 야구선수로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하던 한 선수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때 채프먼이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이 20세기 초, 미국 대부흥의 주역인‘빌리 선데이’였습니다.
‘빌리 선데이’는 ‘힘’이라는 강사를 초빙해서 3주 동안 부흥회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3주 동안 열린 집회에서 회심하여 주께로 돌아온 사람은
12살 먹은 사내아이 한 명밖에 없었습니다.
그 12살 소년이 자라서 전 세계 수백만 명에게 복음을 전하고
우리나라 여의도 광장에서 수십 만명에게 복음을 전했던 ‘빌리 그래함’목사님이었습니다.
<2020.05.21. 목장드림뉴스 기사 참조>
한 사람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한 한 명의 교사를 통해 엄청난 일을 이루셨습니다.
한 사람의 힘은 보잘 것 없는 것 같지만 거기에 하나님이 일하시고,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나타나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물론 한 사람이 마귀에 쓰임 받으면 가정을 깨고, 모임을 깨고, 교회를 깨고 세상을 뒤흔들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그 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 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내 가정에, 우리 집에 한 사람이 되겠다. 나는 모임에, 선교회, 속회, 교회에 한 사람이 되겠다.
나는 이 나라에 그런 한 사람이 되겠다.>고 결단해야 합니다.
본문 1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렘 5:1)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 하나님이 쓰시기 원하는 한 사람,
그 원하심의 주인공으로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하나님이 찾으실만한‘한 사람’으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여기 모인 성도들, 성도들의 자녀 손자 손녀가 그런 한 사람으로 우뚝 서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에서 땀 흘려 일하여 얻은 소득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려고 합니다.
성도들의 정성을 받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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