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여기 '양산 5일장 날'이었다. (1. 6일)
여기 아파트 생활은, 지난 5월의 '삼척'보다는 좋은 여건(냉장고, 세탁기, TV, 에어컨까지 구비된)으로,
올 때부터도(차를 타고 와서) 약간의 반찬도 준비해온 데다, 그 친구(까미노에서 만났던)의 식탐으로 그가 여기 머무는 사이에 이것저것 부식을 많이 준비해두었기 때문에,
그가 돌아간 뒤에도 나는 분에 넘치는 식생활(서울에서의 평소보다 더 육식 위주)을 해온 것도 사실인데,
이제 그것도 떨어져가는지라,
어제는 여기 장날에 한 번 나가 보았다.
그러니까 나 혼자 외출을 했던 건 처음이기도 했다.
위) 양산 도심을 가로지르는 한 지천
아래) 장 모습
여전히 다리를 절둑거리며(신경통 때문) 천천히 장을 한 바퀴 돌아,
내가 샀다는 것이 다 과일이거나 채소였다.
그런데 여기서 난 어쩌면 바보짓을 하기도 했다.
장의 한 쪽 구석에, 다른 사람들은 없는데 한 80은 됐을 것 같은 노파가 물건을 펼치고 있었는데,
할머니 고추 매워요? 하고 물으니,
어떤 건 맵고 어떤 건 하나도 안 매워예... 하시기에,
그 중 하나를 골랐고,
오이 못생긴 것 한 바구니를 가리키며,
저건 얼만데요? 하고 묻자,
심기는 많이 심었는데, 안 열린다예. 그래, 다 딴 게 저게 다라예... 하시며 웃으시는데, 3천원이라고 했다.
그래서 5천원을 드렸더니, 지폐를 세시더니,
천 원이 더 왔네? 하시기에,
제가 일부러 더 드렸어요. 할머니 농사지으시느라 수고하셨다고요... 하자,
환하게 웃으시며,
아, 고마워예... 이걸로 커피 사 묵으믄 되긌다! 하시기에,
그러시든지요... 하고 사왔는데,
(집에 돌아와서 확인해 보니, 고추는 하나도 맵지 않았고, 그 오이 역시 아무래도 별로 먹지도 못하게 생겼기에, 돈을 좀 더 드린 건 문제 없지만 어쩌면 오이를 반절은 먹고 반절은 버려야 할 것 같아, 그저 허탈하게 웃었을 뿐이다.)
돌아오는 길은, 짐도 있는데다 짐을 짊어지고 걸어가기가 겁이 나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버스로 세 정거장이었다.)
그런데 내가 버스 정류소로 가는데 바로 그 옆에서 커다란 확성기 음으로, 뭔가 정치색이 농후한 방송 같은 게 있어서,
이건 뭐지? 하고 바라 보니(바로 버스 정류소 옆),
한 40대 젊은이가 마이크를 잡고,
아무 죄도 없는 박 근혜를 탄핵시키고... 지금 문재인 정권은 북한하고 손을 잡고, 이 나라를 공산화하고 있는 '빨갱이' 운운... 하고 있었다. 그러니,
참, 딱하기도 하다. 저렇게 젊은 사람의 생각이 저렇다니...... 하며 나는 짜증이 났는데, 길가는 행인들에게 '소음공해'도 보통 공해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뿐만 아니라, '박 근혜 석방 서명운동'도 하고 있어서, 거길 지나가는 몇몇 여인들(주로 60대 노파?)이 서명하는 모습도 보이기에,
확실히 여긴 경상도라 저런 일도 서슴없이들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아니 들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내가 기다리는 버스는 쉬 오지 않고(버스 노선을 잘 모르니 그냥 지나쳐보낸 버스도 몇 대 있을 것 같은데), 그 소음이 너무 가까운데서 나는지라, 나는 속으로만,
아이, 시끄러워 죽겠네! 아무리 자유민주주의라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줘가면서 저렇게 해야만 하나? 했을 뿐, 여전히 버스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 얼마 뒤, 한 노인이 그곳을 지나오다 그 젊은이와 언쟁이 붙었다.
그런 말 하지 마라! 하는 노인의 소리가 들리니,
어르신이 속으신 거라예... 하면,
내가 왜 속나? 박 근혜 얘긴 꺼내지도 마라! 하고 옥신각신 하니,
문재인을 빨갱이래! 하며 또 다른 노인이 거들고 나섰다.
그라믄, 어르신들은 그렇게들 사시소. 하자,
왜 길바닥서 시끄럽게 떠들어? 하고 뒤늦게 나선 노인은, 그 억양으로 보니 '전북'이거나 '충남' 정도의(내 억양과 엇비슷한) 사람이 분명했는데,
그 상황에서의 나는,
저 노인은 용감하네? 나는 아뭇소리도 못하고 속으로만 짜증을 내고 있었는데, 여기 경상도 한 복판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저렇게 과감하게 내다니! 하는 한 편으론 감탄을 하기도 했던 것이다.
아무튼 그들의 언쟁은 계속되었고, (그들의 언쟁에 등장했던 수많은 말을 어찌 다 여기에 소개할 수 있을까......)
나는 곧 버스에 올라 그 자리를 떠나오게 되었는데,
아파트에 돌아와서도 좀 바빴다.
그저 생각만으로 샀던 '돌미나리'가, 아무래도 여름철이라선지 봄처럼 연하지가 않아서,
날 것으로 먹기가 꺼려져 데쳐야 했고, '부추'도 그냥 먹기엔 좀 지저분해서 어느 정도 다듬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느라 오전 시간을 다 보내고, 점심을 해서 먹고......
저녁이 되는데,
뭘 먹지? 하다간,
지난번 그 친구가 있을 때 사다놓았단 남은 와인 한 병이(스페인 산) 냉장고 안에 있어서,
한 잔 할까? 하면서, 바로 그 준비에 들어갔다.
오늘 장에서 토마토도 사왔으니, 샐러드를 해서 곁들여 먹으면 될 터라.
그렇게 꼼지락꼼지락 준비를 했다.
돼지고기 조금 남은 것도 후라이팬에 구워......
그런데 새벽까지는 추웠는데(요즘 내내 그랬다.), 어느새 기온이 올라 후텁지근해서,
웃통도 벗은 채로 한 잔을 하게 되었다.
노트북의 음악을 틀어놓고, 혼자 그렇게 저녁 겸 와인 한 잔을 했다.
내 앞으로 보이는 풍경(안과 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