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생을 상속받은 자녀의 품격. 永遠の命を相続された子の品格。( 2024년 10월 13일 주일예배)
본문 갈 4:1~7
갈 4:1 내가 또 말합니다. 유업을 이을 사람은 모든 것의 주인이지만, 어릴 때에는 종과 다름이 없고, 2 아버지가 정해 놓은 그 때까지는 보호자와 관리인의 지배 아래에 있습니다. 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릴 때에는, 세상의 유치한 교훈 아래에서 종노릇을 하였습니다. 4 그러나 기한이 찼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또한 율법 아래에 놓이게 하셨습니다. 5 그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자녀의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6 그런데 여러분은 자녀이므로,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영을 우리의 마음에 보내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을"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하셨습니다. 7 그러므로 여러분 각 사람은 이제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자녀이면,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1. つまり、こういうことです。相続人は、未成年である間は、全財産の所有者であっても僕と何ら変わるところがなく、2. 父親が定めた期日までは後見人や管理人の監督の下にいます。3. 同様にわたしたちも、未成年であったときは、世を支配する諸霊に奴隷として仕えていました。4. しかし、時が満ちると、神は、その御子を女から、しかも律法の下に生まれた者としてお遣わしになりました。5. それは、律法の支配下にある者を贖い出して、わたしたちを神の子となさるためでした。6. あなたがたが子であることは、神が、「アッバ、父よ」と叫ぶ御子の霊を、わたしたちの心に送ってくださった事実から分かります。7. ですから、あなたはもはや奴隷ではなく、子です。子であれば、神によって立てられた相続人でもあるのです。
지난 주일에는 율법의 역할이 오답노트와 같고, 우리의 죄와 허물, 그리고 멸망으로부터 구원 받기 위해 회개해야 할 존재, 죄사함을 받아 영생을 살아야 할 존재임을 명확하게 보여 주는 안내자의 역할을 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율법을 유용하게 활용하되 율법에 휘말리지 않는 삶을 기대합니다. 오히려 그 어떤 억눌림도 없는 자유의 삶을 위해 잠시 율법을 허락하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며 일상을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의 본문도 다시금 율법의 역할을 언급하며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꼭 잊지 말고 마음에 품고 살아야 할 정체성에 관해 가르쳐 주고 계시는데요. 바로 영생이라는 상속재산을 받은 자녀로서의 정체성입니다. 성경은 예수 이름을 믿고 회개하여 죄사함을 얻어 거듭나 구원의 삶인 영생을 얻은 이들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요한 사도는 증언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또한 사도 바울은 로마의 이방인 성도들에게도 이렇게 말합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롬 8:16)
그러므로 우리의 영적인 소속(혹은 숙명)은 하나님의 자녀에 포함되어 있거나 그렇지 않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 증거는 오직 나의 노력이나, 혹은 공로, 성과나 실력에 있지 않고 성령님의 내주하심에 있습니다. 내가 믿음으로 고백하면 내 안에 임재하시고 살아계신 성령님께서 끝까지 기억하시고 책임져 주시는 것이지요. 성경은 약속으로 이스라엘이 된 우리에게 증언합니다.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하고 (신 31:6)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어떤 현상이나 결과, 혹은 눈에 보이는 성과나 선행에 의해서 증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말씀의 약속이 우리의 자녀됨과 영생을 증언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형편이나 사람만을 보면서 신앙생활을 하면 반드시 실족하거나, 실망하여 낙심하게 되는 것이지요. 물론 함께 공동체를 이루는 지체들의 역할이 너무도 중요합니다. 다만 사람과 형편과 상황에 휘말리거나, 붙들리지 않아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의 약속을 붙들면 아무리 어려운 시련이 닥쳐도, 그리고 한심하고 사악하고 무능한 사람과 엮이게 되더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를, 혹은 사명을 포기하지 않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믿는 복음은 그런 인생사의 가시적인 성과로서 증명해 내야만 겨우 가치를 갖게 되는 세속의 가르침이 아니라는 것을 믿습니다. 이런 세속적인 가르침과 가치관, 그리고 처세술과 삶의 요령들은 율법처럼 우리 인생의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내 줄 뿐입니다. 오늘 본문의 3절에 세상의 유치한 교훈이라는 구절에 붙어 있는 각주를 보시면...
“세상의 원소들, 세상의 세력들, 세상의 자연력, 우주의 원소들의 힘, 기초적인 원리들, 자연숭배, 원시종교 등등으로도 번역할 수있”다고 적혀 있지요. 원어에는 이 표현을 “스토이케이온”, 즉 세상의 우주관, 원리, 운명론, 천체, 원소를 뜻하는 말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표현으로 말하면 과학적 세계관, 세속적 처세술, 그리고 심리적인 행동법칙과 성격유형(MBTI나 혈액형) 등등 실생활에서 우리의 태도와 자세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식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우리의 연약함과 사악함, 그리고 구원에 대한 필요와 갈망을 반증할 재료일 뿐 우리를 구원하거나, 궁극적인 해법을 가르쳐줄 수는 없습니다. 다만 문제의식을 더욱 명확하게 드러낼 뿐이지요.
바울은 본문의 1, 2절에서 현실의 비유를 활용하여 우리의 영적인 신분과 정체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요. 상속권은 소유하였으나, 실제의 권한으로 행사하기 전에 있는 상태가 임시적으로 율법이나 이런 세속적인 지식의 지도를 받아야 하는 상태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기한이 찼을 때, 즉 때가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으로 자녀가 가진 상속자로서의 권한을 온전히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 상속권이란 바로 복음을 믿고 누리는 영생을 뜻합니다. 바울은 본문의 7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곧 상속자라고 말합니다. 상속자가 받을 영광은 영생입니다. 부활의 삶이지요. 그런데 그 상속자의 영광을 소유한 자는 아들이신 예수님과 같은 고난도 소유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부채(빚)도 상속이 됩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롬 8:17)
그러면서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고난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는 미미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치 상속받는 재산과 빚을 비교하면 1억의 빚이 있지만, 수천억의 재산을 상속받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지요.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롬 8:18)
다시 말하면 우리의 인생이 경험하는 모든 허무함과 비열함, 그리고 고난과 염려와 근심과 난제들은 결코 복음이 약속하시는 구원과 영생에 흠집을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8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당차게 외치는 것이지요.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8:38-39)
결코 하나님의 사랑에서... 그 영광에서.. 그 부활과 영생에서 우리를 끊어 낼 수 없는 이유는 말씀이 약속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과 저의 믿음이 대단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착해서... 혹은 봉사를 열심히 해서... 개신교인이 0.4%밖에 되지 않는 영적 광야와 같은 악조건에서 주일예배를 애써서 최선의 힘을 다해 지키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는 영광을 수상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런 공로도 없고, 때로 아니 자주 주님을 배신하고 무시하며, 심지어 모욕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도 영생을 사는 것이지요. 여러분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며, 위대함입니다. 이 복음은 이미 태초부터 지금까지 만천하에 공개되어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거부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삶의 의미는 이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녀답게, 그 품격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약속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모두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받는 인생이 되었다고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녀는 곧 상속자입니다. 상속자는 상속자의 품격과 품위를 갖추도록 배워야 할 기간이 있습니다. 그 품격을 배우기 위해서 구약의 율법을 주셨던 것입니다. 십계명을 시작으로 하여 출애굽기와 신명기의 율법을 주셨고, 예수님의 산상수훈과 신약성경의 가르침들을 주셨던 것이지요. 자녀다운 삶, 영생에 어울리는 품격과 품위를 가르쳐 주시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구별하시고 탐욕과 사악함의 세속도시 애굽의 고난에서 건지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율법을 가르쳐 주시며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레11:45)
그렇습니다.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영생의 품격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으로 부담스럽게... 또한 어렵게도 느껴지고, 여러 가지 방해가 있고, 나에게 한계와 좌절을 발견하는 것은 당연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결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영생의 품격을 가진 존재임을 잊지 말고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를 이렇게 격려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 6:9)
우리에게 낙심하지 말 것을 권면하면서 동시에 잘못과 허물에 대해 징계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히 12:5)
그 이유에 대해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참된 자녀이기에 죄와 허물에 대한 징계를 받는다고 하시지요. 우리가 영생의 자녀에 합당한 품위와 품격을 지키지 못해서 받게 되는 징계와 책망은 오히려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받는 자라는 반증이 된다는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계 3:19)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 아들이 아니니라...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히 12:8, 10b)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죄를 회개하였습니다. 죄사함을 받았고, 그래서 거듭났습니다. 이제 인생을 살지만 영생의 주인공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종종 실패하고... 범죄하고... 주님을 모욕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주님은 결코 우리의 손을 놓지 않고 계십니다. 그 증거로서 우리를 징계하시고, 책망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형편이 어려워지고, 괴로운 문제가 생기고, 도무지 피할 수 없는 장벽이나 낭떠러지가 나타나더라도 주님을 바라보는 태도를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맡기신 거룩한 삶의 품격을 지켜야 하는 것이지요.
물론 우리의 직접적인 잘잘못과 상관없이 겪어야 하는 사회의 부조리와 인간관계의 사악함과 비열함이 실재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앞서 말한 율법이나 종교적인 교리, 그리고 세속적인 지식과 학문을 이용해서 어떻게든 이해하고 해결해 보려고 하지요. 하지만, 황당하게 벌어지는 모든 사악한 것들을 납득하지 못하고, 해결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다만 세속의 지식과 같은 초등학문만으로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섭리하심으로 주님께서 우리와 동행하고 계심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각자의 삶 속에서 가져야 할 분명한 태도는 지금 나와 함께 임재하시고, 언제까지나 동행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지켜 주시는 시선에 감사함으로 반응하기를 선택하는 것이지요. 늘 기도함으로 거룩한 품격을 지키기 위한 방향으로 선택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해하지 못하고,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영생하는 자로서의 품격을 지키는 자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어느 인적이 없는 깊은 숲속에서 일하던 나무꾼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나무꾼은 매 주 주말에 이상한 행동을 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는 주말 저녁이 되면 자기의 조촐한 메뉴를 고급스러운 테이블보 위에 차려 놓습니다. 그리고 정장을 차려입고, 오두막을 나섭니다. 그리고 그의 오두막 마당을 한 바퀴 돌고 난 뒤에 다시 오두막집 문 앞에 섭니다. 다시금 옷깃을 정돈하고 정중하게 노크를 한 뒤에 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그럼 자신 앞에 차려진 근사한 식사를 보며 크게 기뻐 웃으며 자리에 앉아 흐뭇한 마음으로 식사를 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말합니다. 그 외로운 숲속에서 매일 먼지 나는 작업복을 입고 험한 일을 하는 처지에 있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인간의 존엄과 품위를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영생을 상속받은 자의 품격을 지키기 위해 사는 것은 어쩌면 이 외로운 나무꾼의 모습처럼 남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태도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고, 저 문을 나서 매일의 일상에서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과 동행하는 생활은 영생의 상속자가 가진 품격과 존엄을 지키는 삶인 것은 분명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가 가진 영생의 품격에 어울리는 일상을 위해 늘 주님의 손을 붙들고 살 수 있기를 갈망하며 또한 열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자는 누구나 자녀입니다. 그리고 영생의 삶을 상속받은 상속자입니다. 그러니 그 어떤 영적인 공격도 고통과 염려도 다 주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끝까지 책임져 주시고, 포기하지 않고 떠나지 않으신다는 주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 할 일은 오직 그 자녀의 품격과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나의 노력이나 실력으로 할 수 없습니다. 오직 기도와 말씀과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주님을 바라볼 때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시선을 기억할 때 말씀을 믿을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일상 가운데 늘 주님을 바라보며 영생의 상속자가 가진 품위와 품격의 풍성함 안에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