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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의 시제표현
손광성
우리나라 작가들이 시급히 고쳐야 할 문제가 몇 가지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시제(時制)에 대한 불감증이다. 이런 불감증은 수필가들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소설가들에게서 더 자주, 더 많이 발견되는 문제다. 일관성이 없는 시제표현이 독자들의 문장 이해에 혼란을 준다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글을 쓰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2000년대에 들어와서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현대어가 정착되었다고 보는 1930년대 작가들에게서도 지금과 같은 정도로 발견되는 혼란들이다. 따라서 시제에 대한 선배 작가들의 무관심이 오늘날까지 무비판적으로 답습된 데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게다가 현재도 어떤 문장독본에도 이에 대한 설명이 없다. 심하면 우리말에도 시제가 있느냐고 묻는 작가도 있을 정도다.
특히 현재와 과거의 구분이 그렇다. 몇 줄 현재형으로 나가다가 따분하다 싶으면 과거 시제로 바꾼다. 그렇게 또 몇 줄 나가다가 단조롭다 싶으면 다시 현재 시제로 바꾸는 식이다. 서구어와 달리 우리말의 과거 표현이 ‘~았~/~었~’이라는 단 두 가지 선어말 어미만을 가지고 일률적으로 실현되기 때문에 문장이 단조롭게 느껴진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법은 어디까지나 법이다. 규칙을 어긴 말은 질서를 잃게 되고, 질서를 잃은 말은 우리의 사고를 혼란스럽게 한다. 시급히 바로잡아야 할 문제다. 그렇지 않으면 습작기에 있는 사람들마저 계속 답습해서 시제 혼란의 악순환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시제에 대한 기본 규칙을 공부하고 다음에 실제 문장에서 그런 규칙들이 어떻게 실현되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공부하기로 한다. 우리말의 시간 표현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과거․현재․미래와 동작상(動作相)으로 구분된다. 말하는 시점(時點), 즉 발화시(發話時)를 기준으로, 그보다 사건이 먼저 일어난 경우를 과거라 하고, 발화시와 사건이 일어난 시점이 같은 경우를 현재라 하며, 발화시보다 사건이 뒤에 일어난 경우를 미래라 한다. 동작상에는 완료와 진행 두 가지가 있다.
1. 과거 시제
과거 시제는 선어말 어미 ‘~았~/~었~’으로 실현된다. 관형절로 안길 때에는 관형사형 어미로 표현되는데, 동사일 때는 ‘~은’이, 형용사나 ‘~이다’일 때는 ‘~던’을 쓴다. 과거 시제는 ‘어제․작년․지난’ 등과 함께 쓰일 때 분명해진다. (A) 나는 어제 단성사에서 <시인과 우체부>라는 영화를 보았다. 제주도 서귀포에서 보낸 작년 여름 휴가는 정말 즐거웠다. 지난해 손녀는 두 그루의 감나무를 심어놓고 미국으로 갔다. (B) 붉은 장미 꽃다발을 안은 소녀의 두 볼도 장밋빛으로 상기되어 있었다. 사소하던 기억들조차 지금은 모두 별이 되어 그녀의 내면을 비추고 있다. 이곳에 왔을 때 어린 묘목이던 소나무가 그새 내 키만큼 자랐다. (A)는 과거 서술형의 예고. (B)는 과거 관형사형의 예다. 과거의 경험을 돌이켜 생각하는 것을 회상 시제라고 하는데, 이 경우는 선어말 어미 ‘~더~’로 실현된다. 지난번 토요일 그 소녀가 꽃가게에서 꽃을 사더군. 그 청년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미남이더라. 말하는 시점보다 훨씬 오래 전에 일어나 현재와 더 강하게 단절된 사건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았었~’ 또는 ‘~었었~’과 같은 겹친 형태의 과거 시제 선어말 어미를 쓰기도 한다. 이영규 선생은 고등학교 때 장거리 선수였었다. 자네가 떠난 뒤 어떤 스님이 자넬 찾아왔었다네.
2. 현재 시제
평서형의 현재 시제는 서술어가 동사인 경우에는 선어말 어미 ‘~는~/~S~'에 의해서 실현된다. 형용사나 ’이다‘인 경우에는 선어말 어미가 결합되지 않은 채 실현된다. 관형절로 안길 때에는 관형사형 어미로 표현되는데, 동사에는 ’~는‘이, 형용사나 ’이다‘에는 ’~은/ ~ㄴ'이 쓰인다. 준우가 벌써 동화책을 읽는다.(동사) 예린이는 요즈음 몹시 바쁘다.(형용사) 환이는 매우 성실한 학생이다.(이다) 준우가 읽는 책은 도서관에서 빌린 것이다.(동사) 요즈음 예린이가 바쁜 것은 시험 때문이다.(이다) 모범생인 환이는 부모님의 말씀도 잘 듣는다.(이다) 현재 시제는 ‘지금․요즈음․현재․오늘’ 등과 같은 시간 부사와 함께 쓰이면 더욱 분명해진다. 경우에 따라서 현재 시제를 나타내는 형태로 확실성 잇는 미래, 보편적 진리를 나타내기도 한다. 또는 습관이나 성격도 현재형으로 나타낸다. 우리는 내일 동부 유럽으로 간다.(확실성 있는 미래) 물은 아래로 흐른다.(보편적 진리) 짐승들이 자주 마을로 내려와서 운다(습관) 그는 누구에게나 따뜻하게 대한다.(성격)
3. 미래 시제
장차 일어날 일을 표현하거나 추측이나 의지를 나타내기도 한다. 미래 시제는 선어말 어미 ‘~겠~’으로 실현된다. ‘내일․다음에․앞으로’와 같은 말과 함께 쓰이면 추측의 뜻이, ‘꼭․반드시’ 등과 함께 쓰이면 의지의 뜻이 분명해진다. ‘~겠~’은 현재나 과거의 추측도 나타낸다. 내일은 눈이 오겠다.(미래) 나도 그 정도는 그리겠다.(추측 또는 가능) 제가 꼭 가겠습니다.(의지) 관형절로 안길 때에는 미래 시제는 관형사형 어미 ‘~(으)ㄹ'로 실현된다.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찾아갈 이도 찾아올 이도 없는 무인도로 갈거나. 미래 시제는 달리 ‘~(으)ㄹ~'로 실현되기도 하고, 관형사형 어미와 의존명사가 합친 형태인 ’~(으)ㄹ 것이~‘로 실현되기도 한다. 내일쯤이면 살구꽃이 피리라. 내일쯤에는 살구꽃이 필 것이다.
4. 동작상
동작상은 발화시를 기준으로 동작이 계속 이어지는 모습과 동작이 막 끝난 모습으로 나뉜다. 이를 각각 진행, 완료라 한다. (A) 환이가 학교에서 집으로 오고 있다.(진행상) 고기들이 연못 속에서 놀고 있다.(진행상) (B) 예린이가 창가에 앉아 있다.(완료상) 국기가 게양대에 걸려 있다.(완료상)
위의 예문 (A)처럼 진행상은 ‘~고 있다’로, 완료상은 (B)처럼 ‘~아 있다’로 표현된다. 지금까지 시제에 대하여 공부를 했다. 이것을 기초로 하여 실제 문학작품에 나타난 잘못된 시제에 대하여 알아보자.
나는 그 짧은 기사를 읽었다고 할 수 (a)없다. 거의 번개같은 속도로 나의 눈이 그 위를 훑었고 읽기도 전에 그 내용을 파악했다는 편이 (b)옳다. 커다랗게 확대되어 나의 이름이 들어왔고 그러자마자 나의 심장이 미친 듯 (c)뛰었다. 그 뛰는 심장으로 한참을 망연히 앉아 있다가 나는 또 놀란 듯이 주변을 (d)훑어보았다. 자료실 안의 이 쪽 칸은 늘 그렇듯이 거의 비어 (e)있다. -최윤, <회색 눈사람>
이 글의 시제는 (a)현재, (b)현재. (c)과거, (d)과거, (e)현재로 되어 있다. 의식의 흐름을 따라서 서술된 자동기술법(自動記述法)이 아니다. 객관적 사실을 서술하고 있는데 시제가 멋대로 바뀌고 있다. 필연성도 일관성도 없다. 따라서 정황의 전달도 혼란스럽다. 이 글의 시제는 모두 과거 시제로 통일시켜야 한다. 화자가 과거에 겪은 사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글을 보자.
나는 그 짧은 기사를 읽었다고 할 수 (a)없었다. 거의 번개같은 속도로 나의 눈이 그 위를 훑었고, 읽기도 전에 그 내용을 파악했다는 편이 (b)옳았다. 커다랗게 확대되어 나의 이름이 들어왔고, 그러자마자 나의 심장이 미친 듯 (c)뛰었다. 그 뛰는 심장으로 한참을 망연히 앉아 있다가 나는 또 놀란 듯이 주변을 (d)훑어보았다. 자료실 안의 이 쪽 칸은 늘 그렇듯이 거의 비어 (e)있었다.
이렇게 고쳤을 때 원문보다 정황 판단이 훨씬 쉽게 파악된다는 사실을 실감하였으리라 믿는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오늘의 작가들에게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문장강화>의 저자로 1930년대에 가장 정확한 문장을 썼던 이태준(李泰俊)의 수필에도 시제의 혼란이 나타난다. 다음 예를 보자.
<어제 경성역으로부터 신촌 오는 (a)기동차에서다.> 책보를 메기도 하고, 끼기도 한 소녀들이 참새떼가 되어 재갈거리는 틈에서 한 아이는 얼굴을 무릎에 파묻고 흑흑 느껴 울고 (b)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우는 동무에게 잠깐씩 눈은 던지면서도 달래려 하지 않고, 무슨 시험이 언제니, 아니니, 내기를 하자느니 하고 저희들끼리만 (c)재깔인다. 우는 아이는 기워 입은 적삼 등허리가 그저 (d)들먹거린다. 왜 우느냐고 묻고 싶은데 마침 그 애들 뒤에 앉았던 큰 여학생 하나가 나보다 더 궁금하였는지 먼저 (e)물었다. 재잘거리던 참새 떼는 딱 그치더니 하나가 대답하기를, “개 재봉한 걸 잃어버렸어요.”
(f)한다. “학교에 바칠 걸 잃었니?” “아니야요. 바쳐서 잘했다구 선생님이 칭찬해 주신 걸 잃어버렸어요. 그래서 울어요.” 큰 여학생은 이내 우는 아이의 등을 흔들며 (g)달랜다. “얘, 울문 뭘 허니? 운다구 찾아지니? 울어두 안 될 걸 우는 건 바보야.” 이 달래는 소리는 기동차 달아나는 소리에도 퍽 맑게 들리어, 나는 그 맑은 소리의 주인공을 다시 한 번 돌려 (h)보았다. -이태준, <작품애>
이 글에서 대화 부분의 시제는 문법에 맞게 일치되어 있다. 그런데 지문에 나타난 시제는 (a)현재, (b)과거, (c)현재, (d)현재, (e)과거, (f)현재, (g)현재, (h)과거로 이유 없이 바뀌고 있다. 이 글에 나타난 사건은 발화시 이전에 일어난 일들이다. 따라서 지문의 전체 시제는 과거로 통일되어야 마땅하다. 게다가 첫째 문장 < >안에는 어제라는 과거를 나타내는 시간 부사가 있는데, 서술어의 시제는 (a)'기동차에서이다.‘와 같이 현재로 되어 있다. 이것은 잘못이다. 이제 지문의 시제를 모두 바로잡아 보기로 한다.
어제 경성역으로부터 신촌 오는 (a)기동차에서였다. 책보를 메기도 하고, 끼기도 한 소녀들이 참새 떼가 되어 재깔거리는 틈에서 한 아이는 얼굴을 무릎에 파묻고 흑흑 느껴 울고 (b)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우는 동무에게 잠깐씩 눈을 던지면서도 달래려 하지 않고, 무슨 시험이 언제니, 아니니, 내기를 하자느니 하고 저희끼리만 (c)재깔이었다. 우는 아이는 기워 입은 적삼 등허리가 그저 (d)들먹거리었다. 왜 우느냐고 묻고 싶은데 마침 그 애들 뒤에 앉았던 큰 여학생 하나가 나보다 더 궁금하였든지 먼저 (e)물었다. 재잘거리던 참새 떼는 딱 그치더니 하나가 대답하기를, “걔 재봉한 걸 잃어버렸어요.”
(f)했다. “학교에 바칠 걸 잃었니?” “아니야요. 바쳐서 잘했다구 선생님이 칭찬해 주신 걸 잃어버렸어요. 그래서 울어요.” 큰 여학생은 이내 우는 아이의 등을 흔들며 (g)달랬다. “얘, 울문 뭘 허니? 운다고 찾아지니? 울어두 안 될 걸 우는 건 바보야.” 이 달래는 소리는 기동차 달아나는 소리에도 퍽 맑게 들리어, 나는 그 맑은 소리의 주인공을 다시 한 번 돌려 (h)보았다.
전보다 훨씬 일관성이 있는 글이 되었다. 시제일치는 각 문장 속에서 결정되데 마련이지만, 장르에 따라 기본 시제가 있다. 시와 희곡은 현재가 기본 시제이고, 소설은 과거가 기본 시제이다. 수필은 그 자체의 다양성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현재를, 또 어떤 경우에는 과거를 기본 시제로 한다. 다시 말해서 서정적 수필일 경우는 현재형을, 서사적 수필인 경우엔 과거형을 기본 시제로 한다. 예를 들어 이양하의 <나무>나 김진섭의 <백설부> 같은 것은 현재가 기본 시제이다. 시와 같이 어떤 대상을 노래하는 형식을 취할 때 시제도 시처럼 현재를 쓴다. 그런가 하면 피천득의 <인연>이나 김소운의 <도마 소리> 같은 서사수필은 과거 시제를 쓴다. 그러나 실리주의 소설과 같이 심리적 갈등을 자동기술법으로 쓸 때에는 매 순간마다 의식의 변화를 따라 과거․현재․미래가 수시로 바뀔 수 있다.
(a)동무는 아직도 계급의식이 그대로 남아 있소. 출신 계급을 탓하지는 않겠소. 오해하지 마시오. 그 근성이 나쁘다는 것뿐이오. 다시 한 번 생각할 여유를 주겠소. 한 시간 후, 동무의 대답이 모든 것을 결정지을 거요. (b)몽롱한 의식 속에서 갓 지나간 대화가 오고 간다. (c)한 시간 후면 모든 것은 끝나는 것이다. (d)사박사박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 밑에서 부서지던 눈, 그리고 따발총구를 등뒤에 느끼며 앞장서 가는 인민군 병사를 따라 무너진 초가지붕뒷담을 끼고 이 움막 속 감방으로 오던 자신이 마음속에 삼삼히 어른거린다. (e)한 시간 후면 나는 그들에게 끌려 예정대로의 둑길을 걸어가고 있을 것이다. 몇 마디 주고받은 다음 대장은 말할 테지. 좋소. 뒤를 돌아보지 말고 똑바로 걸어가시오. 발자국마다 바삭바삭 부서지는 소리가 날 것이다. -오상원, <유예>
현재를 기준으로 볼 때, 이 글은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 (a)과거, (b)현재, (c)미래, (d)현재, (e)미래로 서술되어 있다. 적군에게 잡혀서 언제 총살당할지 모르는 한 포로의 불안한 심리상태가 잘 드러나 있다. 그러나 사실의 세계에서는 과거와 현재의 구분이 분명해야 하며,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과거의 행위도 실감을 주기 위해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과 같이 현재형을 슬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조심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이윽고 스크린이 있는 무대 족에서 둥둥 북소리가 (a)울려 나왔다. 붉은 악마 리더가 구호를 선창하자 자리를 함께 한1만여 관중이 질서정연하게 합창을 (b)한다. 한 손을 앞으로 절도 있게 내뻗으며, ‘대~한민국, 짜잔짝 짝짝!’ 하는 엇박자의 구호와 박수 소리가 (c)소용돌이친다. 연습과정을 톡톡히 거친 프로 응원단 (d)같다. 어린 중학생들까지 거침이 (e)없다. 컴퓨터와 매스컴 덕분인 듯 (f)보인다. -박영수, <붉은 악마>
(a)에서 과거이던 시제가 (b),(c)에 오면 현재로 바뀐다. 일관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b), (c)도 과거여야 하지만 이 글에서는 군중들의 흥분과 필자의 흥분된 감정을 현실감 있게 표현하기 위한 의도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극적 효과를 위한 의도적인 시제 불일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d), (e), (f0에 오면 필자는 어느 정도 객관적 시각을 되찾고 있다. 다라서 (d), (e), (f)는 과거로 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다. 현장감을 주기 위한 현재형의 사용은 잘못하면 혼란에 빠지기 쉽다. 깊이 연구한 후에 응용할 일이다. 그것이 잘 이해되지 않을 때는 모두 과거형을 쓰는 것이 무난하다. 이 글을 모두 과거 시제로 고쳐본다.
이윽고 스크린이 있는 무대 쪽에서 둥둥 북소리가 (a)울려 왔다. 붉은 악마 리더가 구호를 선창하자 자리를 함께 한 1만여 관중이 질서정연하게 합창을 (b)했다. 한 손을 앞으로 절도 있게 내뻗으며, ‘대~한민국, 짜잔짝 짝짝!’하는 엇박자의 구호와 박수 소리가 (c)소용돌이쳤다. 연습 과정을 톡톡히 거친 프로 응원단 (d)같았다. 어린 중학생들까지 거침이 (e)없었다. 컴퓨터와 매스컴 덕분인 듯 (f)보였다. 대등절로 연결된 다음과 같은 겹문장에서는 두 개의 서술어 중 마지막 서술어에만 시제를 나타내면 된다.
그녀는 꽃을 사 가지고 병원으로 갔다.
그녀가 들어가자 그는 감았던 눈을 떴다.
비가 오고 때때로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이 전후 두 개의 절이 역접일 경우는 두 절의 서술어 시제가 일치되거나, 아니면 선행절이 과거라도 후행절의 행위가 현재 상태를 나타날 때는 현재 시제가 올 수 있다.
날씨는 따뜻했지만, 아직 꽃은 피지 않았다.
날씨는 따뜻했지만, 아직 꽃은 피지 않는다.
어떻게 아들은 돌아왔지만, 아버지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어떻게 아들은 돌아왔지만, 아버지는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바람이 불고 비가 왔으나, 기온은 별로 떨어지지 않았다.
바람이 불고 비가 왔으나, 기온은 별로 떨어지지 않는다.
잘 타일렀지만, 그는 내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잘 타일렀지만, 그는 내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다음 글에서 잘못된 시제를 바로잡아 보기로 하자.
눈이 펑펑 내리는 (a)날이었다. 역두(역두)에는 유치진 내외분-그리고 몇몇 친구가 전송을 (b)나왔다. 영하 사십 도의 북만으로 간다는 청마가, 외투 한 벌 없는 ‘세비로’ (c)바람이다. 당자야 태연자약일지 모르나 곁에서 보는 내 심정이 편하지 (d)못하다. 더구나 전송 나온 이 중에는 기름이 흐르는 낙타 오버를 입은 이가 (e)있었다. 내 외투를 벗어주면 (f)그만이다. 내 잠재의식 속은 몇 번이고 네 외투를 내가 벗기는 (g)기분이다. 그런데 정작 미안한 노릇이 나도 외투란 것을 입고 있지(h)않았다. 발차 시간이 (i)가까웠다. 내 전신을 둘러보아야 청마에게 줄 아무것도 내게는 없고, 포켓에 곶힌 만년필 한 자루가 손에 만져질 (j)뿐이다. 내 스승에게서 물려받은 프랑스제 ‘콩크링’-요즈음 ‘파카’니 ‘오터맨’ 따위는 명함도 못 내놓을 최고급 (k)만년필이다. 일본 안에도 열 자루가 없다고 (l)했다. “만년필 가졌나?”-불쑥 묻는 내 말에,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청마는 제 주머니에서 흰 촉이 달린 싸구려 만년필을 끄집어내어 나를 (m) 준다. 그것을 받아서 내 주머니에 꽂고 ‘콩크링’을 청마 손에 쥐어 (n)주었다. 만년필은 외투도 방한구도 아니련만, 그때 내 심정으로는, 내가 입은 외투 한 벌을 청마에게 입혀 보낸다는 그런 (o)기분이었다. -김소운, <외투>
(c), (d), (g), (j), (k), (m)은 모두 과거로 고쳐야 한다. 다만 (f)만은 사실이 아니라 상상이라는 것을 구분하기 위하여 현재로 두는 것이 효과적이다. 거의 이해가 되었으리라 믿지만 조금 미진한 감이 없지 않아서 한 가지만 더 예를 들고자 한다. 다음 글의 시제를 바로잡아 보자.
집에 와서 방망이를 내놨더니 아내는 예쁘게 깎았다고 (a)야단이다. 집에 있는 것보다 참 좋다는 (b)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c)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보면, 배가 너무 부르면 힘들어 다듬다가 옷감을 치기를 잘하고, 같은 무게라도 힘이 들며, 배가 너무 안 부르면 다듬잇살이 펴지지 않고 손에 헤먹기가 (d)쉽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 만나기 (e)어렵다는 (f)것이다. 비로소 마음이 확 (g)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h)뉘우쳤다. 참으로 (i)미안했다. -윤오영, <방망이 깎던 노인>
이 글의 시제도 일관성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a), (b)현재, (c)고거, (d), (e), (f)현재, (g), (h), (i)는 과거이다. 이것을 바로잡으면 (a), (b), (f)는 모두 과거로 고쳐야 한다. (d), (e)는 간접 인용문 속에 든 서술어로 아내의 말할 당시의 시제인 동시에 사물의 이치를 말한 것이기 때문에 현재로 두는 것이 옳다. 다음과 같이 고친다.
집에 와서 방망이를 내놨더니 아내는 예쁘게 깎았다고 (a)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c)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보면, 배가 너무 힘들어 옷감을 치기를 잘하고, 같은 무게라도 힘이 들며, 배가 너무 안 부르면 다듬잇살이 펴지지 않고 손에 헤먹기가 (d)쉽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 만나기 (e)어렵다는 (f)것이었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g)풀렸다. 그리고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h)뉘우쳤다. 참으로 (i)미안했다.
이상에서 우리말의 시제에 대해서 간략하게 연구해 보았다. 영어나 독일어처럼 시제가 복잡하지는 않지만 우리말에도 시제가 엄연히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규칙을 잘 지키는 것이 우리말을 위한 봉사라고 생각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시제 문제는 이 정도로 다 이해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스스로 계속 고심하고 노력하는 동안에 해결될 일이라 여겨진다.
첫댓글 우리 글은 영어와 달리 시제 표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손광성 수필가의 이 글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있고요
하지만 시제에 대해 한번 쯤은 고민해 볼 수 있는 글이라 여겨 올려 봅니다
게시자가 이재기님 임을 보고 반가웠습니다. 잘 읽었고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검토후 문장에서 a ~ c 사이에 일부 누락된 부분이 있으니 바로잡으시기 바랍니다.
이재기 선생님,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글을 쓰는데 있어 시제 문제는 늘 어렵게 여겨지는 부분입니다. 이재기 선생님,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재기샘, 감사합니다. 사실 글을 쓸 때, 시제가 어렵더라구요. 참고 할께요.
ㅎㅎ 재기샘, 감사합니다. 사실 글을 쓸 때, 시제가 어렵더라구요. 참고 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