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퇴고에 대하여
이정림 | 李正林
문장에서는 결코 일필휘지(一筆揮之)란 없다. 문장은 다듬으면 다듬을수록 좋아지고 완벽해진다. 그런데 퇴고(推敲)가 어려운 것은 자기 글을 객관적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퇴고라는 말은 이런 유래에서 비롯되었다. 당나라 때의 시인 가도(賈島)가 과거를 보기 위해 상경한 어느 날 나귀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새는 연못가 나무에서 잠들고, 스님은 달빛 아래서 문을 민다(鳥宿池邊樹 僧推月下門)”라는 시구가 떠올랐다. 그런데 밀 퇴(推) 자가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생각해 낸 것이 두드릴 고(敲) 자였다. 고 자로 바꾸고 나니, 이번에는 또 퇴 자가 나아 보이지 않는가.
이렇게 퇴와 고, 두 글자를 두고 정신이 팔려 있다가 그만 당대의 유명한 문인이자 경조윤(京兆尹: 首都의 市長)인 한유(韓愈)의 행차와 부딪히는 무례를 저지르고 말았다. 한유에게로 끌려간 가도가 사정을 솔직히 말했더니, 한유는 힐책 대신 도리어 가도의 창작 태도를 칭찬하면서 잠시 생각하더니 “퇴(推) 자보다 고(敲) 자가 나을 것 같소.”라고 말했다. 그래서 가도는 고(敲) 자를 선택하게 되었는데, 이로부터 글을 다듬는 것을 ‘퇴고’라고 했다는 고사가 있다.
문장을 다듬을 때는 이렇게 한 글자를 가지고도 몇 날 며칠을 고심하게 된다. 눈물 없이 빵을 먹어 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논할 자격이 없다고 하는 것처럼, 한 글자를 가지고 이토록 고심해 보지 않은 사람은 진정한 글쟁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장을 다듬는다는 것은 아름답게 꾸민다는 말이 아니다. 아름답게 꾸민 말도 그 꾸밈을 벗겨 내는 것이고, 적당히 갖다 쓴 말이 아닌 유일어(唯一語)를 찾아내는 일이다.
퇴고에서 꼼꼼히 살펴보아야 할 것들을 짚어 본다.
1. 형용사나 부사를 많이 써서 글이 미문이 되지 않았는가.
→ 미문은 유치한 미감을 만족시키는 문장일 뿐이다.
2. 이 단어는 적확한 말인가.
→ 꼭 알맞은 하나의 명사, 동사, 형용사를 찾아 써야 한다.
3. 문장은 문법에 맞게 씌어졌는가.
→ 훌륭한 글이란 문법에 맞게 쓴 문장을 말한다.
4. 이 말은 표준어인가.
→ 방언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말이 아니므로 지문에는 표준어를 써야 한다.
5. 이 말은 비속어가 아닌가.
→ 비속어를 사용하면 문장의 격은 물론 글쓴이의 품격도 떨어진다.
6. 이 말은 꼭 들어가야 하는가.
→ 군말은 주제를 흐리게 하므로 과감히 빼 버려야 한다.
7. 이 말은 외국말 식 표현이 아닌가.
→ 우리글에 외국말 식 표현이 끼어들지 않도록 조심한다. 작가는 모국어를 지 키려는 애정과 사명을 함께 지녀 야 한다.
8. 이 말은 자신이 만들어 낸 조어(造語)가 아닌가.
→ 사전에 없는 조어는 독자의 이해를 얻지 못한다.
9. 좀 더 쉽게 표현하는 방법이 없는가.
→ 말하듯이 쉽게 표현하는 글이 좋은 글이다. 어떤 표현이 안 되어 고심할 때는 그것을 말로 해 보면 쉽게 해결이 된다.
10. 한자 용어를 많이 쓰지는 않았는가.
→ 한자 용어는 열 마디 말을 함축시킬 때는 적절하지만, 현학적인 의미로 쓰는 것이라면 삼가야 한다. 글이 고루해 보이기 때문이다.
11. 외국어를 그대로 쓰지 않았는가.
→ 우리말로 굳혀진 외래어가 아니라 우리말로 바꿀 수 있는 외국어를 그냥 쓰지 않았는가를 본다..
12. 더 줄이면 이해가 안 되는가.
→ 줄여도 뜻이 통하면 줄이는 것이 언어의 경제성이다. 문장의 절제는 탄력성을 준다.
13. 문단은 제대로 구성이 되었는가.
→ 한 문장을 한 문단으로 처리한 곳이 없는가. 새로 문단을 구성해야 할 곳을 끊지 못한 문단이 없는가. 이어야 할 문단을 끊어 놓아 이해를 방해하지 않았는가를 본다.
14. 글의 분위기가 갑자기 달라지지는 않았는가.
→ 부드러운 문장(軟文章)으로 일관하다가 갑자기 딱딱한 문장(硬文章)으로 변하지 않았는가를 본다.
15. 구성과 시제에 혼란은 없는가.
→ 말의 두서가 없거나 시제가 과거와 현재를 혼동케 하는 문장은 없는가.
16. 문맥의 흐름이 갑자기 끊어지지 않았는가.
→ 위의 문장을 이어 받지 못하고 갑자기 다른 이야기로 건너뛰지는 않았는가.
17. 어느 한 문장이 만연체처럼 길어지지는 않았는가.
→ 할 말이 많으면 만연체가 되기 쉬운데, 호흡을 쉬면서 문장을 끊어야 한다.
18. 복합문이 계속되어 문장의 호흡이 길어지지는 않았는가.
→ 현대 문장의 요체는 단문이다.
19. 단문이 계속되어 문장의 호흡이 끊어지지는 않았는가.
→ 동물의 호흡은 일정하나 문장의 호흡은 일정하지 않다. 따라서 단문과 장문이 섞여 있어야 자연스럽게 읽혀진다.
20. 그리고․그런데․그러나․그래서․또는․하지만․만약과 같은 접속사를 남용하지는 않았는가.
→ 접속사를 쓰지 않고 위 문장과 아래 문장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것이 좋다.
21. ‘있다.’ ‘있었다.’ ‘것이다.’ ‘것이었다.’와 같은 서술어가 중복되지는 않았는가.
→ 습관적으로 쓰는 서술어가 없나 찾아본다.
22. 외국 문장처럼 ‘나는’이라는 주어가 너무 많이 들어가지는 않았는가.
→ 우리말에는 원래 주어가 없는데, 외국 번역 문장에 익숙해져 ‘나는’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 버릇이 있다. 위 문장의 주어와 아래 문장의 주어가 같을 때는 아래 문장의 주어는 생략한다.
23. 문장 부호와 띄어쓰기는 제대로 되었는가.
→ 문장 부호와 띄어쓰기도 문법이다.
24. 지문에 맞춤법이 틀린 말은 없는가.
→ 대화문에서는 맞춤법이 틀려도 괜찮으나 지문에서는 틀려서는 안 된다.
25. 한 문장에서 같은 토씨가 중복되지는 않았는가.
→ ‘도’와 ‘는’ ‘의’와 같은 토씨를 습관적으로 쓰지 않았는가 본다.
26. 전편에서 같은 표현이 거듭 나오지는 않았는가.
→ 한 문장에서도 같은 표현이 거듭 나오지 않아야 함은 물론이지만, 전편에서도 같은 표현이 중복되어 나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27. 주어와 술어가 맞지 않아 비문(非文)이 되지는 않았는가.
→주어부가 길어지면 술어가 맞지 않게 된다.
28. 문장을 완결하지 못하고 미완으로 끝낸 문장이 많지 않은가.
→ 한 개 정도는 괜찮으나, 말줄임표를 사용하여 미완으로 끝낸 문장이 많은가를 본다.
29. 설의법을 많이 사용하지 않았는가.
→ 설의법은 자기의 생각을 강조할 때나 동의를 구할 때 쓰지만, 많이 쓰면 읽는 데 걸림돌이 된다.
30. 이미 많이 쓴 진부한 표현, 즉 상투어를 쉽게 빌려 쓰지 않았는가.
→ 나만의 표현이 아닌 말은 상투어이다. 상투어를 사용하면 글의 신선감이 떨어진다.
31. 자료와 인용을 많이 동원하지 않았는가.
→ 논문에서는 자료의 제시나 인용이 필수적이나, 수필에서는 남의 지식을 빌려 쓰기보다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펼쳐 보여야 한다. 인용은 자칫 현학적으로 비칠 수가 있으니 삼가야 한다. 연암 박지원도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한 것을 쓰라고 했다.
32. 결미를 설교나 주장, 교훈으로 끝내지 않았는가.
→ 수필은 문제의 해답과 방안을 제시하는 글이 아니며, 독자를 가르치려 해서는 안 된다. 수필가는 독자로 하여금 주제에 공감할 수 있도록 유도하면 된다. 그러면서 생각의 여운을 남기면 족하다.
33. 시쳇말을 그냥 쓰지 않았는가.
→ 현재 유행하는 말은 훗날에는 이해하지 못하게 되므로 될 수 있으면 쓰지 않는 게 좋고, 부득이 쓰게 될 경우에는 지문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 뜻을 설명한다. 각주는 문예적인 글에서는 피해야 한다.
34. 필요 없는 대화체를 많이 쓰지 않았는가.
→ 소설이 대화문으로 이어진다면, 수필은 지문(地文)으로 이어진다. 수필에서는 대화문을 절제해야 하고 함의(含意)가 없는 대화문은 지문화시켜야 한다.
원고지에 글을 쓰던 시절에는 일여덟 번 초고를 훑어보고 나서 서너 번 정서를 했다. 그런데 요즘은 컴퓨터로 글을 쓰니 수정이나 첨삭을 하는 데 매우 편리해졌다. 그러나 알아두어야 할 것은 모니터에서는 문장의 오류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원고지에 정서를 하듯 서너 번 인쇄로 뽑아 책상 앞에서 꼼꼼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모니터에서는 보이지 않던 잘못 쓴 말이나 표현, 불필요한 문장들이 눈에 띄게 된다.
자기가 쓴 글을 소리 내어 읽어 보는 것도 퇴고의 한 방법이다. 처음에는 녹음기에 녹음을 하면서 문맥이 매끄럽지 못한 대목을 수정하곤 했다. 그러다 보면 문장의 흐름이 유연해진다.
퇴고는 매우 중요한 마무리 과정인데, 두 가지 이유에서 퇴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 첫째는 자기 글이 잘 되었는지 못 되었는지 모르는 경우이고, 두 번째는 자기 글에 대한 자신감이다. 후자에 속한 이들은 대개 수필 한 편을 단숨에 썼다는 것을 자랑한다. 단숨에 쓴 글에서 잘못된 곳을 전혀 찾을 수 없다면 그는 문장의 귀재(鬼才)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 단숨에 쓴 글에는 고쳐야 할 곳이 너무도 많다.
이 퇴고 과정은 길고도 지루한 작업이다. 그러나 해도해도 또한 미흡한 작업이기도 하다. 소동파(蘇東坡) · 구양수(歐陽脩) · 백낙천과 같은 동양의 문장가나, 플로베르 · 모파상 · 체호프 · 고리키· 발자크와 같은 서양의 문인들도 퇴고를 엄격히 했다고 한다. 좋은 문장을 얻기 위해 문인들은 글을 다듬고 또 다듬지만 마음에 흡족한 문장을 얻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다 써 놓은 글에서 문장을 잘라 낸다는 것은 힘들고 아까운 일이다. 만약 길이의 제한을 주는 청탁을 받았다면 처음부터 그 길이를 염두에 두면서 써야 한다. 그래야만 나중에 잘라 내는 어려움을 면할 수가 있다.
자기 글을 냉정하게 보면 잘라 내야 할 부분이 많다. 그것을 아깝게 생각하여 잘라 내지 못하기 때문에 주제를 흐리게 하는 군말이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김소운(金素雲)은 “실력 있는 유능한 정원사는 아낌없이 가지를 잘라 버린다. 무작정 자르는 것이 아니라 살려야 할 가지를 옳게 살리기 위해서 불필요한 가지를 쳐버리는 것이다.”라고 했다. 또한 앨런 포우는 “쓰고 싶은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쓰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쓰지 말아야 하는 이야기를 얼마나 쓰지 않느냐 하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하였다.
자기 글에서 버려야 할 군더더기가 보인다면 그는 이미 문리(文理)가 트인 사람일 것이다.
이렇게 엄격한 퇴고를 했다 해도 활자화되어 나오면 또 잘못된 곳이 눈에 띄게 마련이다. 그만큼 문장의 완벽성을 기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완벽성은 퇴고에 의해 이루어질 수가 있다.
단숨에 쓴 것을 자랑하는 사람에게는 헤밍웨이의 일화를 들려주고 싶다. 헤밍웨이도 ≪노인과 바다≫를 200번이나 고쳐 썼다는 것을.
(2007년 초고, 2017년 개고)
(눈의 피로를 덜어드리기 위해 문단의 행간을 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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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림_ <수필문예>로 등단(1974). 한국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1976). *수필집 ≪당신의 의자≫ 외 3권, *평론집 ≪한국수필평론≫ 외 1권. *이론서 ≪인생 의 재발견-수필쓰기≫, *수필선집 ≪사직동 그 집≫ 외 2권.
첫댓글 우리가 수업중에 배운 내용인데 이렇게 다시 보니 머리에 쏙 들어오네요
가끔, 때때, 자주
익혀야 할 내용이 다 있네요.
잘 읽었습니다
구구절절 맞는 이야기네요 배우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