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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데기
이 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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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쉽게 죽나 봐라.
죽을 때까지 버티고 살 거다.
*
번데기를 보고 떠올린 말이었다.
엊그제 저녁에는 선배와 남경수산에서 가을에 제맛이라는 전어를 먹고 왔는데 밑반찬으로 번데기 조림이 나왔다. 선배는 뻔데기라고 했고 내가 번데기라고 발음을 고쳐주었다. 번데기로 쓰면 맞는 말이지만 발음은 뻔데기로 해야지 번데기의 고소한 맛이 떠오른다. 번과 뻔의 차이인데 어감은 상당히 다르다. 자장면과 짜장면의 맛이 다른 이유와 같다.
지금은 누에를 치지 않기에 번데기가 우리나라에서는 생산되지 않는 것으로 안다. 중국에서 수입된 것일 것이다. 선배는 안주로 전어회보다 번데기가 맛있다며 금세 접시를 비웠다.
번데기를 씹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한마디 했다.
우리도 뻔데기가 되어가는군!
서글퍼하지 마세요. 번데기도 그대로 두면 나방이 되어 날 수가 있는 것이랍니다.
날개가 생긴다? 영혼이 날아간다는 말인가.
선배는 여운이 남는 말을 씁쓰레하게 뱉고 술잔을 들이켰다.
씁쓸하지만, 예순 중반의 어중간한 나이에 맞는 상상이고, 술자리에서 적절한 대화였다.
내가 어릴 적에는 고향에서 누에를 많이 쳤다. 낙동강 강가의 모래로 된 밭에는 뽕나무가 잘 자랐고, 누에가 농가 수입원으로는 으뜸이라 양잠을 전공으로 하는, 농잠 고등학교가 존재하던 시절이었다.
누에가 알에서 깨어나서 애벌레가 되고 뽕잎을 먹고 자라서 고치를 짓는다. 고치를 짓기 전에 보면 다섯 잠이나 잔다. 잠자는 기간에는 뽕을 먹지 않는다. 잠을 잔다는 것은, 허물을 벗는 기간이다. 더 커지기 위해 허물을 벗는 기간인데 뽕을 먹지 않고 한 이틀을 견딘다. 다섯 잠을 자고 나면 누에가 누렇게 변한다. 실을 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느 구석에 실을 뱉어 고치를 짓는다. 완전하게 집을 짓고 나면 그때 양잠을 하는 농가는 고치를 공판장에 가지고 가서 돈을 만든다. 그 안에 번데기가 된 누에가 들어있다. 가끔 고치가 작아서 수매하지 않고 그대로 둔 것은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번데기가 나방으로 변해서 고치를 뚫고 나와 날아간다. 날아가서 어디에 알을 낳고 죽는다. 그게 알에서 깨어난 누에의 일생인데 고치를 실로 만들면서 인간은 부산물인 번데기를 먹는다. 누에고치에서 어떻게 실을 뽑아낼 생각을 했을까?
어릴 적 나는 누에의 진화과정을 보면서 궁금했다.
어떻게 벌레에 날개가 생길 수 있을까? 누에를 보면서 날개가 생긴다고는 상상을 하지 못한다. 누에는 일 년에 두 번을 먹인다. 봄 뽕은 가지를 잘라서 잎을 따서 먹이고 가을 뽕은 가지를 자르지 않고 잎이 돋으면 따서 먹이는데, 뽕밭을 가진 농촌의 수입원으로는 짭짤한 편이다.
어릴 적 고향 동네 부근 강가에는 온통 뽕밭이었다.
뽕밭이라고 하니 선정적인 단어가 떠오른다. 뽕밭은 에로물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장소였다. 그 많던 뽕밭이 사과나무 과수원으로 변했다. 한두 집에서 누에보다 수입이 좋다는 사과나무를 심자 과수원에서 치는 농약이 날아와서 뽕은 더 이상 냄새에 예민하고 민감한 누에가 먹지 않았다. 그렇게 피해를 보자 너도나도 뽕밭을 없애고 수입이 더 좋다는 사과나무를 심었다. 내가 기억하기로 뽕이라는 영화는 그 이후에 나왔다. 뽕밭을 본 사람은 그 영화의 나타난 옥에 묻은 티를 안다. 뽕밭에 가는 사람이 그렇게 곱고 하얀 한복을 입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레방앗간은 그 이전의 일이고 농촌에서 연애하는 장소로는 뽕밭이 적합할지 모르겠으나 영화에 나오는 그런 장면과 비슷한 일을 목격한 기억은 없다. 내 어릴 적 일이니 그런 장면을 목격한 일은 없지만, 마을 청년들 사이에서는 실제 일어난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지금 와서 되짚어보니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같은 마을에서 결혼한 선배들이 더러 있으니 그런 뽕밭이 유용하게 연애 장소로 이용되었을 수도 있겠다.
무슨 생각을 하다가 그런 에로물 영화가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그렇지, 번데기를 생각하고 들먹이다가 뽕밭에 관한 이야기까지 나왔지. 번데기를 생각하니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나이를 먹으면 키가 줄고 번데기처럼 주름이 생긴다.
선배와 내가 자주 가는 시장통 순댓집의 할머니를 보면 영판 번데기다. 나지막한 키에 주름이 잡힌 몸집이 번데기를 연상하게 한다. 우리는 번데기 할머니라 부르면 서로 누구를 지칭하는지 통하게 마련이다. 우리는 그 할머니 집에 가지 않는다. 바로 옆의 김가네 족발집에 가는데 그 집에는 식구들끼리 운영을 하고 있다. 번데기 할머니가 주인은 아니다. 본래는 시장순대라는 간판을 걸고 장사를 했으나 바로 옆의 넓은 가게가 비자 바로 사서 김가네 족발집을 만들었고 장사가 덜 되는 시장순대는 일하던 번데기 할머니를 그대로 고용해서 장사하게 했다. 순댓집도 기업형으로 자리매김하는 이치였다. 시장순대는 가게 앞 좌판에 포장한 족발을 팔고 있으면서 손님이 와서 음식을 시키면 번데기 할머니는 바로 옆의 김가네 족발집에서 가져간다. 우리가 가끔 김가네 족발집에서 편육을 먹고 있으면 번데기 할머니가 음식을 가지러 들어온다. 번데기 할머니는 단골이라는 걸 알기에 반갑게 인사를 한다. 우리도 처음에는 자리가 덜 복잡한 시장순대를 이용하다가 그 사실을 알고 번데기 할머니를 심부름시키는 것 같아 김가네 족발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가에 족발집은 온 식구가 모두 동원되어서 한다. 그래도 손이 모자라는 모양이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 며느리, 딸이 붙어서 하는데도 바쁘다, 주방에서 밑반찬을 준비하는 찬모는 따로 두었는데 수시로 바뀌는 걸 봐서 고용한 사람인 모양이다. 아버지가 하는 일은 시장순대 가게 뒤 안마당에서 고무통에 담긴 그 많은 족발을 손질하고 삶는 일이다. 시장순대 안마당에는 커다란 솥이 여러 개가 걸려 있는 좁은 마당이 있다. 거기에서 족발을 삶고 손질한다. 그게 아버지의 몫이다. 어머니는 총괄 본부장인 셈이다. 그 족발을 양념하고 썰기도 하고 두 가게를 오가며 일을 한다. 며느리는 좌판대 앞에서 족발을 썰어서 도시락으로 포장을 하면서 주문을 받고 서방도 간간이 곁들인다. 아들은 젊은 나이에 가업을 이어받아 불족발을 굽고 서빙도 하고 계산도 한다. 딸이 하나 있는데 손님이 먹다 남은 탁자를 정리하며 음식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는데 정신적으로 살짝 모자란다. 정신이 멀쩡하다면 그 나이에 순댓집에서 일을 거들지 않겠지만 슬리퍼를 끌고 다니며 여기저기에 참견한다. 그런데 이 모자라는 딸이 번데기 할머니에게 갑질을 하는 것을 가끔 본다. 그게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번데기 할머니는 하도 들어서 딸의 갑질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김가네 족발집은 텔레비전 맛집에 몇 번 소개 되었다.
가게 안에는 온통 텔레비전에 나온 사진을 커다랗게 확대해서 벽면을 장식했다. 맛은 괜찮은데 주인아주머니 지 여사는 내가 가면 굉장히 반갑게 맞이한다. 단골을 알아본다는 얘기다. 그래서 족발을 시키면 시키지도 않은, 삶은 간을 덤으로 주곤 하는데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다. 존재감을 인정해주는데 기분이 나쁠 리가 없다. 그래서 단골이 되었다.
문제는 약간 모자라는 딸이다.
딸이 번데기 할머니에게 너무 갑질을 하는 것이다. 가끔은 마주치면 밀치기도 하고 어깻죽지를 툭 치기도 한다. 제 엄마가 나무라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게 눈에 엄청나게 거슬린다. 그 모자라는 딸이 만만한 건 번데기 할머니뿐인 모양이다.
저렇게 늙지는 말아야지.
선배는 가끔 막걸리를 마시다가 번데기 할머니를 보고 혼잣말을 뱉는다. 그 말을 들으면 입은 다물고 있지만, 생각은 거기에 동조한다.
사람이 늙으면 키가 준다.
번데기가 되어 가는 과정이다. 관절 마디마디의 연골이 줄기 때문이란다. 환갑이 지나니 내 키도 군에 있을 적보다 조금 줄었다. 번데기가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번데기 할머니는 키가 줄어도 너무 줄었다. 본래 큰 키는 아니었겠지만 작달막한 키에 실을 머금은 누에처럼 누렇게 변했다. 상자에 가두어 두면 금세 입에서 실을 내뿜고 커다란 누에고치를 지을 것 같은 착각이 인다. 어쩌다가 김가네 족발집에 자리가 없어 시장순대에 가면 번데기 할머니도 단골을 알아보고 서비스로 삶은 간이나 순대를 작은 접시로 한 접시 썰어서 탁자에 올려준다. 한산 그 집에 가면 어느 가게에 들어가든지 특별대접을 받는 셈이다.
선배와 내가 가는 집은 한정이 되어 있다.
오랜 경험으로 선정한 집이다.
싸고 맛있는 집을 몇 군데 정해서 돌아가면서 찾는다. 맛을 보고 가격을 보고 맛에 비해서 비싸다 싶으면 절대로 다시 가지 않는다. 지산 삼거리의 송어횟집에 가끔 가는데 화요일에 문을 닫는다. 남경수산도 가끔 가는데 손님이 너무 북적이는 게 흠이다. 역 뒤의 옛날 통닭집은 일요일에 문을 닫는다. 거기에 가면 닭똥집 튀김을 먹는다. 시장통 번데기 할머니가 있는 김가네 족발집은 가끔 입맛이 없을 적에 간다. 이 열거한 모두의 공통점은 싸고 맛이 있다는 것과 선배의 집과 우리 집의 중간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시간이 넉넉한 사람은 걸어도 되는 위치다. 섬배와 둘이 만날 적에는 항상 이 집들이다.
번데기 할머니가 덤으로 주는 순대를 보면 선배는 세상이 순대 속 같다는 말을 자주 한다. 온갖 잡탕이 섞여 어우러진 순대. 그렇게 얽히고, 설킨 게 순대고 세상 또한 마찬가지란다. 그 말을 듣다가 보면 세상이 순대 속 같다는 대중가요가 생각난다. 정말이지 세상은 순대 속이다. 선배와 둘이 만나면 어느 가게에 가든 텔레비전을 등지고 앉는다. 뉴스를 보기 싫고 순대 속 같은 정치판 이야기를 하기 싫어서다. 선배와 만나면 여행 이야기를 자주 한다.
선배는 여행 마니아다.
둘이서 다닌 곳은 많지 않다. 미얀마에 집 장사를 한다고 벌려 놓으니 선배가 왔다. 중국 연태와 곤명을 거쳐서 직항보다 싼 가격으로 혼자서 날아왔다. 여행을 많이 한 선배는 잠자리만 제공하니 여행안내 책자를 보고 혼자서 다녔다. 한국어를 하는 가이드를 붙여 준다고 했더니 싫단다. 혼자서 다니면서 이국의 신기한 음식을 잘 먹고 또 현지인을 잘 사귀는 편이다.
라오스를 혼자서 처음 가서 두 달이나 돌아다니다가 온 경험이 있는 선배다. 그 정도로 현지인과 친화력을 지닌 선배다.
여행 이야기는 아무리 들어도 지겹지 않다. 가끔은 라오스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를 들려주기도 하고 때로는 중국에서 만나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선배는 지금도 여행을 하다가 만난 중국인과 채팅하면서 모르는 중국어를 찾아 나에게 보여주고 나름대로 해설하기도 한다. 닭똥집을 먹으면서 사진을 찍어 중국으로 날리고 닭똥집을 중국어로 어떻게 쓰느냐 궁리를 하고 번역 프로그램을 찾아보는데 어찌 보면 참 부지런하다. 미얀마에 처음 날아오면서 곤명에서 같은 비행기를 탄 여경의 도움으로 공항에서 마중 나간 나에게 전화를 해서 복잡한 공항에서 쉽게 만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일은 그렇게 잠시 우연히 만났지만, 지금까지 그 여자 경찰과 연락한다는 점이다. 잠시 만났지만 깊게 사귄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코로나 사태가 풀리면 같이 우즈베키스탄 여행을 가자고 약속을 했는데 코로나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늘씬하고 이목구비가 선명한 그쪽 여자가 마음에 든다고 했고, 선배는 그쪽 날씨와 산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선배는 매일 우즈베키스탄 여행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모양이다. 독거노인이 할 일이라고는 그따위뿐인 모양이다. 선배는 면밀하게 따지면 독거노인이다. 스스로가 그렇게 칭한다. 형수가 있긴 하지만 안동에 있다. 안동에서 화장품 대리점을 한다. 안동에도 집이 있다. 선배는 안동이 싫어서 구미에서 생활한다. 가끔 형수님이 와서 밑반찬을 해주지만 혼자 산다. 하나 있는 아들 녀석은 직장을 잡아서 서울에 있다. 한 가족이 고작 세 명인데 세 집에 나뉘어 각자 살림을 하는 셈이다. 일흔 밑자리 깔아 놓은 노인이 혼자 사니 독거노인이라는 것인데 너무 건강하고 젊게 산다. 스마트폰으로 모든 일을 다 한다. 중국이나 미국에서 약이나 물건을 직접 구매하기도 하고, 인터넷 쇼핑도 할 줄 모르는 나와는 삶의 방식이 다르다. 그런데 스스로가 독거노인이란다. 선배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재작년인가 내가 오토바이 사고가 나서 입원을 했다.
오토바이 마니아인 내가 지닌 오토바이는 중국집 배달용 오토바이가 아니다. 미국에서 물 건너온 할리데이비슨이다. 대형 오토바이인데 달리는 게 아니다. 천천히 소리를 들으며 라운딩을 하는 오토바이다.
재작년 봄이었다. 오토바이 타기에 날씨가 그만이었다. 지산동 삼거리에서 신호를 받고 천천히 출발했는데 갑자기 신호를 무시하고 유턴을 하는 젊은 새댁의 소형차에 받혔다. 피할 수도 없이 브레이크도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그대로 받힌 것이다. 워낙 천천히 달렸기에 부러진 곳은 없고 골반의 인대가 늘어나서 걸음을 걷기가 불편했다. 그래서 며칠간 입원을 해서 물리치료를 받았는데 거기서 피 검사를 했는데 늦은 시간에 간호사가 들어오더니 내 팔에 꽂힌 영양제를 급하게 빼는 것이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내일 의사 선생님께서 얘기해줄 거라고만 했다. 거기서 하고 생각지도 않은 병을 발견했다. 알콜성 간질환으로 그대로 두면 간경화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간은 침묵의 장기다. 선배는 대수롭잖은 사고로 입원했다가 큰 병을 찾아냈으니 사고가 잘 났다고 했다. 사고가 잘났다고 사고를 당한 사람 앞에서 당당히 말하는 사람은 처음이다.
아무 증상이 없는데 그게 큰 병인가?
의아해했지만 선배의 부친이 그런 유형의 병으로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다면서 상당히 무서운 병이라고 겁을 주면서 미국에서 약을 구해서 주었다. 약이 떨어질 만하면 한 병씩 직접 구매해서 건네준다. 병원에서 주는 간질환 약을 먹고 선배가 직접 구해서 주는 약을 먹으니 혈액검사를 하더라도 알콜 수치가 상당히 낮아졌다. 생각하니 당시에는 굉장히 피곤했는데 그런 게 사라졌다. 간이 호전을 보이는 모양이다. 지금도 선배가 구해준 약을 먹는다. 한국에서는 살 수 없는 약이라고 했다. 영어를 어떻게 알고 구하는지 모르겠다. 같이 술을 마시면서 약을 줄 적에는 항상 말한다.
병 주고 약 준다고.
맞는 말이다.
술을 마시면 항상 선배와 같이 마신다. 아무런 부담이 없어서다. 이해관계가 걸린 일이 없으니 접대성도 아니라 즐기면서 마시니 마음이 편하다. 선배와 마시면 음주를 즐기는 것이니 과음을 하지 않는다. 선배에게 술자리에서 약을 받을 때 가끔 얘기한다.
아무래도 나는 오래 살지 못할 거 같다고,
선배는 놀란다.
왜?
약을 이렇게 많이 먹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죽을 때까지 밖에는 살지 못할 거 같다고.
그러면 선배는 말한다.
나는 쉽게 죽나 봐라. 죽을 때까지 버티고 살 거다.
술자리에서 그런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가끔 한다. 사람은 자주 만나야지만 할 말이 있다. 농담도 마찬가지다. 너무 오랜만에 만나면 인사나 안부를 물으면 할 말이 없다. 공동 관심사가 없어서 그렇다. 선배와 마주 앉으면 어느 게 농담이고 어느 게 진담인지 단박에 감이 잡힌다. 선배와의 공동 관심사는 미지의 세계다. 여행이 오로지 술안주로 등장한다. 선배는 갖가지 정보를 찾아보는 모양이다.
하루를 걸러, 오늘 저녁에도 선배와 술을 마셨다.
중앙시장의 김가네 족발집이었다. 한창 우즈베키스탄에 관해서 얘기하고 있는데 순식간에 사고가 일어났다. 번데기 할머니가 그대로 식당 바닥에 넘어진 것이다. 아마도 시장 순대에 손님이 와서 시킨 음식을 가져가는 모양이었다. 큰 쟁반에 담긴 돼지국밥과 반찬을 들고 나가는데 식당으로 들어오던 정신이 약간 모자라는 딸이 할머니를 밀어버린 것이다. 뭐가 못마땅했는지, 뭐에 부아가 돋았는지. 양팔로 어깨를 밀었는데 번데기 할머니가 미처 피하지 못하고 뒤로 나자빠지면서 뜨거운 국물을 뒤집어쓰고는 식당 안이 근세 난장판이 되었다. 살짝 모자라는 년의 오빠가 그걸 보았던 모양이다. 동생의 등짝을 후려치고 할머니를 부축해서 일으켜서 가슴팍에 뒤집어쓴 뜨거운 국물을 털었다. 다행히 앞치마를 입고 있어서 데이지는 앉은 모양이다. 나는 출입문을 등지고 돌아앉아 있어서 사건의 발단을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마주 앉은 선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어? 뻔데기 할머니!
선배의 입에서 급하게 나온 말이었다.
할머니면 할머니지 거기다가 번데기를 왜 붙여?
저년이 기어이 일을 내네!
가게 주인에 해당하는 살짝 모자라는 년의 엄마가 번데기 할머니를 자리에 앉히고 행주로 닦아주면서 다친 곳이 없느냐고 물었다. 어디로 도망을 갔는지 살짝 모자라는 년은 보이지 않고 가게 밖 좌판에서 족발을 썰던 며느리가 난장판이 된 식당 바닥을 훔쳤다. 번데기 할머니는 자리에 앉아서 허리를 주무르며 저쪽 가게에 손님이 돼지국밥을 시켰다고 빨리 준비하라고 말했다. 투철한 직업 정신을 지닌 번데기 할머니였다.
다행히 식당 안에는 손님이 많지 않아서 그 꼴을 보고 숟가락을 던지고 일어선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선배가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아주머니! 딸년 가게에 나오지 말라고 하세요. 계속 갑질하는 게 눈에 거슬려요.
주인아주머니는 뜨악한 표정으로 보았고 선배의 말에 손을 내저은 이는 번데기 할머니였다.
아이구! 쟤가 가게 아니면 갈 데가 어디 있겠어요. 거슬리더라도 좀 참고 이쁘게 봐주세요.
단골에게만 통하는 말인데 번데기 할머니는 살짝 모자라는 년을 두둔하고 있었다. 어디를 갔는지 살짝 모자라는 년은 보이지 않았고 주인아주머니는 허리를 주무르는 번데기 할머니에게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라고 했다. 번데기 할머니는 일어서서 앞치마를 벗고 가게를 나갔다. 나가는 모습을 보니 괜찮은 것 같기도 했는데 옆구리에 손을 대고 주무르며 나갔다.
나가는 모습을 보니 영락없이 번데기였다.
아! 사람도 늙으면 저렇게 번데기가 되는구나. 새삼 생의 비애를 느끼며 번데기 할머니가 이제는 장사를 그만두고 쉬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며느리가 들어와서 다시 끓인 돼지국밥을 쟁반에 담아서 시장순대로 가고 번데기 할머니가 나가고 선배가 주인아주머니에게 오라고 손짓을 했다. 주인아주머니는 우리가 있는 자리로 와서 섰다. 선배가 뭐라고 할 것이며 아주머니는 무슨 변명을 할까? 선배는 빈자리의 의자를 빼주면 앉으라고 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할머니 연세가 있으니 이제는 그만 쉬시라고 하면 어때요? 할머니가 벌어야 할 만큼 살림이 어려우신가요?
그 말을 들은 주인아주머니는 화들짝 놀라며 손을 내저었다.
그만두고 쉬라고 해도 쉬면 몸이 아프다면서 꾸역꾸역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 정도로 살림이 어려우신가요? 살림이 어렵다면 제가 돕겠습니다.
선배가 또 제안했다. 홧김에 하는 말이 아니다. 선배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고 그 정도의 경제적 여유는 있다.
그런데 그 말을 하고 한 방 맞은 사람은 제안했던 선배였다.
아들이 검사고 며느리가 판사인데 뭐가 어렵겠어요?
주인아주머니가 그 얘기를 하자 선배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 말은 함부로 하면 번데기 할머니가 아시면 난리가 난다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할머니의 아들과 며느리가 판검사란 말이에요?
잘못 들었나 싶어서 내가 또 물었다.
사실이란다. 주인아주머니는 막걸리를 한잔 달라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주인아주머니가 손님 자리에 앉는 것은 처음 본다. 선배가 빈 잔을 당겨 막걸리를 조금 부어주었다. 주인아주머니는 막걸리로 입을 축이고는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검사인 아들은 청주에서 근무하고 판사인 며느리는 서울에서 근무한다고 했다. 번데기 할머니는 시장통에서 근 오십 년을 굴러먹었다는 것이다. 홀몸으로 순대를 팔아서 아들 공부 시켰는데 집에서 쉬면 몸이 아프다면서 지금도 나온다는 것이다.
아들과 며느리가 싫어하지 않나요?
이야기 중간에 내가 물었다.
주인아주머니는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싫어하기는? 가끔 둘이서 순댓집에 와서 제 어머니가 끓여주는 돼지국밥을 맛있게 먹고 가는데?
그 아들은 제 어머니의 직업을 천직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번데기 할머니도 옛날에는 혼자서 장사를 했는데 지금은 혼자서 하기에 힘에 부쳐서 가게를 접고 시장순대에 일을 돕고 있는데 아들은 내려오면 주인아주머니를 만나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잘 부탁한다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럼 할머니는 일이 좋아서 나오는 것이네요?
아들이 말했어요. 집에 있으면 지겹고 몸이 아프고 늙으면 무조건 일이 있어야 한다면서 시장에서 사람들 만나고 시간이 잘 가고 얼마나 좋으냐고 일이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생각이 반듯한 사람이에요.
아주머니를 만나는 날이면 잘 부탁한다고 누누이 강조하는 아들이라고 했다. 검사인 아들이 교육을 어떻게 했는지 판사인 며느리도 주인아주머니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간다는 것이다.
선배가 그 말에 토를 달았다. 어떻게 들으면 빈정거림이었다.
판검사들이 머리를 조아릴 정도라면 아주머니는 대단한 분이시네요?
대단하기는? 저 모자라는 딸년 때문에 골머리가 아파요. 내가 살아 있으니 저렇게라도 붙어 있지만 내가 죽으면 저년을 어찌할꼬? 내가 눈을 감고 죽겠어요?
주인아주머니는 자신의 신세 한탄을 했다.
오빠가 있으니 오빠가 챙기겠지요. 그런 걱정하지 마세요.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답니다.
그것도 위로라고 내가 말을 해놓고 생각해도 진부한 언어였다.
그때 가게에 다른 손님이 둘이 들어섰다. 차림을 보니 부근 공사장 인부인 모양이다. 주인아주머니가 맛있게 드시라고 하고는 급하게 일어섰다.
형님! 할머니면 할머니지 아무리 급해도 듣는 앞에서 뻔데기 할머니라고 하면 어떻게 해요?
퉁을 먹이며 웃으면서 농을 했다. 할머니의 내막을 듣고 나니 기분이 유쾌해졌다.
내가 뻔데기 할머니라고 했나?
아무리 급해도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요?
선배의 잔에 막걸리를 부어주면서 퉁을 먹였다. 선배와 둘이 만나면 먹는 게 항상 막걸리로 네 병이다. 그 이상은 과음이다. 내가 간이 안 좋다고 술을 끊어야 한다고 했을 적에 암묵으로 정해진 규칙이다. 선배는 그게 육군 정량이라고 한다. 그 네 병 중에서 한 병은 내 몫이고 세 병은 선배의 몫이다. 안주가 소주 안주라서 막걸리가 없는 횟집에서는 소주를 마시는데 소주를 마시면 세 병이다. 한 병은 나에게 굳어지고 두 병은 선배에게 할당된다.
딱 취하지 않을 만큼 마시는데, 간이 안 좋다는 핑계로 선배가 나에게 할당된 몫을 한두 잔 빌려 가는 날도 있다. 그런 경우는 있지만, 더 술을 시키는 일은 없다. 선배와 그렇게 먹는 날이면 나에게는 그게 저녁이다.
번데기 할머니가 옷을 바꿔 입으러 들어가고 늙는다는 것과 일을 가진다는 것의 연관성과 상대성을 이야기하면서 막걸리를 육군 정량인 네 병을 다 비웠다. 결론은 번데기 할머니의 검사인 아들의 생각이 옳다면서 늙어도 일을 할 수 있으면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론만 밝으면 뭐 해요. 형님은 백수에 독거노인이지 않아요?
그런가? 여태 사돈이 남 말하고 있었네!
내일부터 일을 찾든지 아니면 폐지라도 주우러 다니든지 하라고 농을 했다. 술판이 어지간히 끝나갈 무렵에 옷을 갈아입은 번데기 할머니가 들어온 모양이다. 나는 출입구에 돌아앉아 있어서 보지 못했는데 선배가 먼저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번데기 할머니 괜찮으세요?
돌아보니 번데기 할머니는 더 번데기같이 보였다.
그 말을 들은 할머니는 손을 내저으며 우리가 있는 자리로 왔다.
아무리 번데기같이 쪼글쪼글해도 듣는 앞에서 번데기라고 하면 결례가 되는 걸 젊은 사람들이 왜 몰라?
할머니는 선배에게 퉁을 먹이면서 냉장고에서 막걸리 한 통 꺼냈다.
이건 내가 사는 거야. 먹고 내 말을 듣고 가.
그런 선심을 보이며 번데기 할머니가 내 옆자리 의자에 걸터앉았다.
선배는 육군 정량에 초과한다고 하면서도 잔을 내밀었다. 내 잔에는 막걸리가 반 잔 정도 남아 있었다. 선배의 잔에 할머니는 손수 막걸리를 부어주고 말을 꺼냈다.
단골이니 하는 이야기인데, 아까 그 애한테 트집을 잡지 말어.
생로병사에 관해서 얘기할 것이라는 내 기대는 보기 좋게 허물어졌다.
제 엄마가 가장 아파하는 곳이 그것이여. 제 엄마도 불쌍하고 딸도 불쌍한 거지. 그 애가 가게에 나오지 않으면 갈 곳이 없어.
그 말에 선배가 토를 달았다.
갑질은 하지 말아야지요.
갑질? 갑질을 나에게 밖에는 할 곳이 없어. 괜찮아. 나는 그걸 즐기고 있어.
살짝 모자라는 딸년에 대해서 두둔하고는 저쪽 가게가 바쁘겠다면서 천천히 마시고 가라고 하고는 번데기 할머니가 일어섰다.
선배는 남은 술을 급하게 들이켰다. 할머니가 가게 밖으로 나가 족발을 썰고 있는 며느리에게 뭐라고 했는데 아마도 막걸리 한 병값은 받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았다. 작은 키에 아장아장 걸어가는 모습이 천상 번데기였다. 나는 앞으로 번데기를 먹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울컥 일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더라도 번데기를 보면 할머니가 생각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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