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0302주일 [그리스도에게 하듯 남편에게 복종하라]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엡5:22-24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찌니라
하나님은 가정에서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의 아내들에게 남편에게 복종할 것을 명하신다.
그리고, 이렇게 복종할 때는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처럼 신령한 자세로 할 것을 요구하신다.
본문의 말씀은 성령충만한 자에게 오는 결실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성령충만한 성도의 삶속에서 능력을 부여하셔서 이루시는 일들인데, 대인관계에서 일단 현저한 변화가 나타난다.
이런 변화는 복종, 겸손한 마음으로 하는 상호복종의 성격이 두드러진다.
이것은 가정에서, 부부간에서 먼저 나타날 것이 기대된다.
지난주부터는 바로 아내들에게 주시는 말씀들이다.
이후는 남편들에게 주시는 말씀인데, 오늘은 아내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 같은 자세로 하라.
남편에 대한 복종은 이런 이해를 갖고, 행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복종에 대한 예로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한 복종을 제시했다.
교회가 주께 하듯 하라.
[창조 질서에 근거한 복종]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되는 것은 아내보다 남편이 우월해서가 아니라, 그냥 창조의 원리다.
고전11: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남녀의 우열을 가리는 문제가 아니다.
여기서 요구하는 복종은 권세자에게 주는 일방적인 것도 아니고, 맹목적으로 누구를 섬기는 문제도 아니다.
아내가 남편의 권위에 순복하는 것은 창조의 질서에 속한 것이고, 정상적이다.
이것은 가정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성취를 위해, 필요한 조건이다.
그런데, 어떤 자세로 해야할까 하는 것이 오늘 말씀의 핵심이다.
아내는 겉뿐 아니라, 속에서도 자기가 하고 있는 복종의 합당성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이런 이해가 있는 가운데, 그 행실을 가져야 한다.
[그리스도에 대한 복종의 일부로 여기라]
이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복종의 일부로 여겨야 한다.
주님께 대한 태도로서 남편에게 복종한다.
이것은 남편을 주님처럼 높여 섬긴다는 것이 아니다.
이점을 주의해야 한다.
우리가 주님께 복종하는 것은 우리가 기뻐서 한다. 주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께 복종은 우리가 자발적으로 열심히 한다.
그런데, 만약 주님이 아내로 하여금 남편에게 복종할 것을 원하시면, 남편에게 복종하면, 주님의 뜻에도 복종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나의 남편에 대한 복종은 주님에 대한 복종이다. 결국 같은 것이다.
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므로, 주님에 대한 복종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에게 복종을 기쁘게 할 것이다. 결국 그 행위가 주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남편에 대한 복종은 주님을 향한 복종과 다르지 않다.
주님에 대한 복종의 일부에 해당한다.
남편을 높여서 섬긴다는 근거는 여기 있지 않다.
어떤 사람은 남이 자신에게 복종할 때, 이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어떤 경우 존중해서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자기가 진짜 높다고 생각하며, 남에게 복종받는 것을 마땅히 여기는 것을 습관처럼 여긴다.
이것은 복종하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것이다.
성령충만한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설령 남편이 그런 속사정을 모르고 있어도, 해야 한다.
자발적 복종은 성령충만한 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편이 잘 알아채리지 못해도 한다.
그 가정은 남편에게 아내가 복종하기 때문에, 그 아내는 주님께 복종하는 자로 간주된다.
반대로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는 아내는 주님께 복종하지 않는 자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할 때, 그 동기는 주님을 향하고 있다.
그것이 아내에게 주어진 기능적인 역할이어서 해야 하지만, 오늘 말씀에 따르면, 남편에 대한 복종이 결국 주님을 섬기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어떤 분은 한부분만 따서, 몰입하기도 한다.
남편이 아내를 너무 힘들게 하는데, 목숨걸고 참을 필요는 없다.
결혼 관계는 긍휼이 기반이 된 인간관계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이혼을 이용하는 관습을 비판하시면서, 제대로 가르쳐주셨다.
인생이 다 망쳐져도, 말씀을 지키겠다고 해야하는 문제가 있고, 그렇지 않은 문제가 있다.
내 인생이 다 빼앗기면서도, 무조건 이런 원칙을 지킬 필요는 없다.
어떤 한계와 제한이 있다.
문맥에서 보면,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남편을 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원형을 가져와서 적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정에서는 남편이 기능적으로 그리스도의 역할을 하는 것이고, 아내는 교회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창조의 질서이기도 하지만, 주님께 대한 복종의 일부다.
[복종해야 할 이유]
본문 23절은 복종해야 할 이유를 말한다.
교회가 주님을 섬기는 것과 똑같지는 않지만, 방식을 차용해서 가져온 것이다.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피조물에 대한 창조주의 우월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서로를 향한 마음을 말한다.
[리더의 개념으로서 머리]
엡1:22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원래 주님은 우주의 머리셨다.
골1: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그런데, 이후에는 교회의 머리로 자신을 축소시켜서 내놓으셨다.
오늘날 그는 교회의 머리되신다.
골2:10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
머리는 원래 우주를 주관하는 자의 지위를 표현한 것인데, 지금은 교회를 위해 섬기는 그의 지위를 나타낸다.
그가 교회의 머리가 되심은 대단히 획기적인 것으로, 이 땅의 인간에게는 대단히 충격적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창조주가 되신 분이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
그 누구도 해할 수 없고, 파괴할 수 없고, 모욕할 수 없는 교회의 머리는 그분이시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가정에서 남편이 기능적으로 머리이기 때문이다.
여기는 많은 공통된 원칙들이 작용한다.
몸은 머리의 지시를 받아야 한다.
만약 몸이 머리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만약 주께 하듯, 아내가 남편의 리더쉽에 잘 반응하면, 그 아내는 주님을 영화롭게 한다.
자기는 남편에게 복종한 것인데, 결국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고, 자기가 남편에게 복종하므로, 남편에게 명예를 주고, 자기 자신에게 명예를 주고, 가정에게 명예를 주고, 더 나아가 가정이 하나님을 모시는 현장이 된다.
그래서,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의 진실을 나타내는 것과 같다.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신앙고백과 같다.
여기서 머리는 성경적으로 창조주에 대한 개념이 있다.
단지 지도자, 통치자 일 뿐 아니라, 더 큰 개념이 남아있다.
에베소서에서는 그런 관계를 빼고, 실질적인 것만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리더다. 남편이 리더인 것은 그리스도가 리더인 것과 같다.
그리스도가 자기 신부된 교회를 위해 헌신하기 때문에, 남편도 아내를 위해 헌신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교회와 그리스도 사이에 발생하는 성질이 부부간에 요구되는 복종의 원형이다.
결국 오늘 말씀은 아내에게 하는 명령이지만, 남편에게 더 강력히 들릴 것이다.
남편의 머리됨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신 사랑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남편의 권위는 오직 희생의 사랑안에서 표현되어야 한다.
[몸의 구주 : 행복을 위해 헌신하는 보호자]
머리라는 개념이 있고, 갑자기 구주라는 개념이 또 나타난다.
구주는 구원자를 말한다.
위대하신 창조자를 말하기 보다, 보호하는 자, 희생적으로 돌보는 자라는 이미지다.
구주는 성경이 쓰여질 당시의 헬라 사고방식에서는 자기에게 속한 자를 위해 헌신적으로 애써서 돕는 자다.
그래서, 황제를 높이기 위해, 자주 썼다.
사람들은 그 의미를 백성의 행복을 위해 책임을 진 자로 인식한다.
에베소서에서 머리와 구주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구주라는 말을 굳이 추가로 넣은 것은 머리의 성격을 더욱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교회에게 어떤 관계인지 더욱 분명하게 한다.
또한 남편이 아내에게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더욱 부각시킨다.
구주라는 단어는 그리스도의 지위를 분명히 나타냈고, 남편도 그렇게 해야하는 것을 말한다.
자기 지위에 얹혀진 책임이 분명히 드러난다.
그러므로, 구주라는 단어는 중요하다. 머리는 애매하지만, 구주가 더해지므로, 의미가 분명해진다.
구주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원자의 의미다.
우리는 진짜 절망속에서 영원한 고통안에 들어갔어야 했다. 구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엡2:1,3-5
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우리는 본질성 진노의 자녀였는데, 긍휼하신 분이 사랑으로 예수 안에서 살려주셨다.
우리는 잘난 점도 없는데, 일방적으로 살려주셨다.
여기는 자신이 희생하셔야 하는 값비싼 댓가가 들어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우리에게 항상 구주셨다.
그리스도는 머리이실 뿐 아니라, 또한 몸의 구주시다.
단지 권위만 가진 머리는 아닌 것이다.
그는 진정 희생하는 분이시다.
우리는 이전에는 범죄하고, 죽어야 할 자였다.
스스로 죄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다. 죄를 범하는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예수로 인해서, 원수를 거절하고, 죄를 거절하는 자가 되었다.
우리의 비참하고 슬픈 운명에서 주님이 구해주셨다.
그렇게 하실 때, 그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셔야 했다.
엄청난 값을 치른 것이다. 자기를 포기하고, 우리를 살리셨다.
그는 우주의 머리이시지만, 우리를 위한 교회의 머리시다.
그는 우리의 복종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머리라도 똑같은 머리가 아니다.
[그리스도는 남편들의 모델]
남편이 머리라고 해서, 으시대며 복종받기만 기다리면, 그리스도의 모델과는 너무 먼 것이다.
그분 자체가 복종하는 분이시다. 그분은 교회의 행복을 위해 복종하는 분이다.
상호복종의 원칙을 피할래야 피할 수 없다.
그리스도는 복종받아야 할 분이라기 보다, 오히려 자신을 다 내어주시므로, 최상의 복종을 하셨다.
그는 그의 몸된 교회의 구주시다. 그는 교회를 위해 죽으시므로, 마땅히 교회를 소유하기에 마땅한 분이시다.
그는 지금도 제공하시고, 보호하시고, 책임지신다.
이런 면에서 그리스도는 남편들의 롤모델이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돌보시듯, 남편들도 아내를 위해 희생하고, 사랑하고, 돌보고, 보호해야 한다.
남편에게 그런 희생의 사랑을 받기 때문에, 아내들은 같은 맥락에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따르는 것은 가정이 잘되는 길이다.
남편은 높이고, 여자는 억누르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 교제하며 하나님 안에 어우러져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할 것이다.
이것은 아무나 되지 않는다. 성령충만한 자만 할 수 있다.
[복종하되 자발절이어야]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
하면 좋지만, 어렵다.
그러나, 성령충만한 자에게는 당연한 일이므로, 마땅히 해야할 의무로 나타난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할 이유를 알고 있으니, 자발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다.
구주를 미치도록 사랑하고, 존중해서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남편에게도 주님에게 하는 분량만큼 복종할 수는 없지만, 자기 의지로 해야 한다.
교회는 어마어마하게 크신 분을 머리로 두고 있다.
중대성에 있어서는 대우주적인 사건이다.
가정은 비록 두사람이지만, 남편과 아내 사이의 복종은 사적인 문제가 아니다.
모든 축복을 보장받는 환경안 최소의 단위에서 그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라는 것이다.
가정의 신앙고백이 여기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남편이 부족해도, 주님을 향한 복종의 일부가 된다. 그러므로, 이 복종은 자발적으로 하라.
너무나 합당해서 하는 것이 자발적인 것이다.
그 복종이 마땅한 이유는 주님을 섬기는 행위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또, 남편은 현장에서 가정을 위해 헌신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자기 행복보다 아내와 가정의 행복을 위해 애쓴다.
그래서 복종하라는 것이다. 아내의 복종은 남편에게 그런 면이 있으리라고 보는 것이다.
또,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주님을 가정의 머리로 계속 연결시키는 것이다.
그분은 절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될 분이시다. 그는 우리를 항상 돌보고 계시다.
엡1:22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그는 하나님이 보내주신 선물이다.
원래 만물의 머리이셨는데, 교회의 머리로 선물로 내어주셨다.
그리스도는 모든 우주의 운명을 유지하는 분이었는데, 교회의 유익을 위한 책임을 맡으셨다.
엡2:20-21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주님은 교회의 모퉁이 돌이 되고, 서로 연결하시는 분이시다.
교회를 세우시는 분이고, 교회를 성장시키는 분이시다.
엡3:17,19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9.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분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계신다.
그는 무관심하게 언제든 떠나시는 분이 아니라, 가까이 마음속에 계신다.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보호하고 계시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부분적으로만 알 뿐이다.
처음에 예수님의 큰 사랑을 잘 모른다. 점점 더 알아진다.
엡4:7,11,12
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교회는 각 사람이 하나님께 은사를 받았다.
그분의 계획 안에서 우리를 설계하여 배치하시고, 운영하신다.
그는 성도들 임의로 하게 하지 않으시고, 목회자를 선물로 주신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이 주신 목자를 두고 있다.
이 목자는 그리스도를 그대로 가르친다.
엡4:16,20-21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찐대
그는 성장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하신다.
엡5: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그는 우리를 위해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드리셨다.
그는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다.
그러므로, 교회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
엡5:10,17,19,21
10.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9.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주님의 뜻이 있으면, 거기에 내 의견을 맞추는 것이다.
이것이 성령충만이다.
그래서, 교회는 항상 찬양하고, 감사한다.
교회를 위해 자기를 버려 희생하신 구주.
정말 영광받기에 합당한 머리시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는 아내의 복종이 가지는 영적인 중대성을 새롭게 보는 시각을 열어준다.
방대한 나라를 진입해 축복을 받을 여지가 있는 것이다.
[범사에 복종]
범사에 남편에게 복종하라.
복종이 자기에게 유익이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인해 많은 유익을 봤고, 그리스도 없이는 한시도 못산다.
남편도 아내의 행복을 위하고 있다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하고, 그래서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
남편들도 그리스도 같은 사랑을 해야 한다.
여기는 이기심이 있을 자리가 없다.
아내든 남편이든 온전한 복종을 하자.
중요한 것은 했냐, 안했냐가 아니라, 내 가정이 하나님의 관심을 받는 것이다.
거기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머물러야 한다.
주님의 희생의 은혜, 주님의 능력, 주님의 영원한 행복이 가정으로 들어오게 하기 바란다.
부부관계에 불과하지만, 주님의 축복이 들어오는 문이 되기 바란다.
남편들은 이전처럼 하지 말고, 구주이신 예수처럼 하라.
아내를 위해 많은 사랑을 베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