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5일 대림 제3주간 목요일
(루카 7,24-30)
♡무엇을 보러 광야에 나갔더냐?♡
예수님은 요한의 제자들을 떠나보내신 다음에 요한을 칭찬하신다. 사람들은 요한을 보고 그의 말을 들으려 광야로 몰려갔다. 예수님은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24절) 물으신다. 그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보려고 광야에 나간 것은 아니었다. 주님은 세상을 불모지 광야로 비유하신 것 같습니다.
그들이 보러 간 사람은 바로 심지가 굳은 요한 세례자였다. 이 요한을 예수께서는 칭찬하신다. “예언자보다도 더 중요한 인물”(26절),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28절) 하신다. 어떻게 요한은 모든 예언자보다 큰 인물일 수 있을까? 예수님도 예언자이심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주님은 모세가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 동족 가운데에서 나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켜 주실 것”(신명 18, 15.18)이라 말하고 “누구든지 그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는 자는 백성에게서 잘려 나갈 것”(사도 3,23)이라고 한 그 예언자보다 위대하신 분이시다.
여기서 주님은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셨고 요한은 여자에게서 태어나신 분이시다. 요한은 사람들 가운데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하여간 그들이 보러 나간 것은 예언자이며 성인이다. 예언자보다 더 위대한 분이다. 그는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시다.”(요한 1,29)라고 한 분이다. 그분은 그리스도를 준비하기 위해 그분에 앞서 올 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로, 주님의 앞길을 잘 닦아 놓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광야로 나가 사람들이 회개의 세례를 받게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종교 지도자인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는 세례자 요한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세례받지 않았습니다. 세례자 요한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물리쳤기 때문입니다.
바리사이, 율법학자는 부정적 생각으로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의 활동도 부정적으로 생각해서, 사회에서 혼란을 일으키는 미치광이처럼 판단합니다. 전혀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하느님의 뜻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세례를 받은 백성은 세리들까지 포함해서 모두 하느님께서 의로우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하느님의 활동을 긍정적으로 특히 사랑의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더 가까이에 계심을 발견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