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는 학담 평석본이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팔리어와 산스크리트어, 유럽어 문헌까지 읽고 동서양 철학을 두루 섭렵한 뒤 선과
교뿐만 아니라 실천까지 아우르면서 오늘날의 새로운 눈으로 아함을 재해석하고, 우리의 아름다운 시적 언어로 표현한 것”이라며,
“원효 스님의 얘기도 많이 나온다. 한국불교의 전통까지 녹여냈다”고 덧붙였다.
<아함경> 북전은 원전인 산스크리트어 경이 없어지고 그 한문 번역본만 남아 있다. 학담 스님은 중국에서 아함경이 한역된 시기와
스리랑카에서 팔리어로 니카야가 정비된 시기가 거의 같은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지금은 사라진 북전의 산스크리트어 원전 정비가 팔리어
경전 정비보다 더 앞설 수 있다는 점을 들어 “팔리어 불전만이 붓다의 육성 법문”이라는 설을 물리치면서 “대승이 오히려
아함적”이라며 양쪽을 상호보완적·종합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학담 스님의 아함경 대장정" 기사 내용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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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기사를 보면서 아쉬움이 생기는 것은 왜일까?..
저 책들이 21세기 초가 아닌 20세기 말에만 나왔어도 하는 아쉬움이다.
니까야를 접하기 전에 아함경 맛을 보았다면.. 우리 불교의 질적 성장은 굉장할 것인데 하는 아쉬움이다.
니까야는 논리로 시작해 논리에 머물고 있다. 수행도 논리적으로 기술하고 있어 서양인들이 좋아한다.
아함경은 논리에 함축이 포함되어 있다. 논리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을 표현하고 있다는 뜻이다.
저 내용 가운데 아함경 한문 번역 시기가.. 범어 아함경 수집기록이 아니다.
팔리 니까야로 수집정비가 된 시기가 비슷하다는 게 밝혀졌다면..
아함경을 남방에 전하는 팔리 니까야를 범어로 번역했다는 무지스런 말은 고만 주장했으면 한다..^^
그러니까 니까야에 전하지 않는 경들은 무조건 후세에 삽입했다는 무식이 그것이다.
아함경과 니까야는 상호 보완이 되는데.. 먼저 아함경을 공부하고 나서 니까야를 공부하는 게 순서로 보인다.
아함경은 오픈되어 있다면 니까야는 상대적으로 닫혀 있기에.
첫댓글 좋은글 감사합니다._()_
남방불교를 전하는 초불 카페 토론방에서는 주제를 니까야로 한정하고 있지요.
토론방을 어지럽게 만드는 일은 스스로 자제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 역시 불교를 공부하는 이유가 됩니다.
그러나 아함경전이 분명하게 있음을 알면서도 니까야만으로 한정하는 짓이 정상적인 판단인지.. 헤아려 보아야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