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지성이라 불렸던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별세했다. 이 전 장관은 암을 선고받은 사실을 공개했지만,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집필을 이어나갔다. 복막에서 시작된 암세포가 맹장과 대장, 간으로 전이되면서 두 번의 수술을 받았던 그는 이후 치료 중단을 선언했다. 그에게 죽음은 성큼 다가온 운명이었고 더 깊이 사유할 수 있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쉽지 않다.
어린 나이 때부터 죽음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연구해왔던 그는 저서를 통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을 남겼다.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다. 코로나19로 인해서 죽음이 필연적 운명이라는 것을 마주한 인류가 앞으로 인간의 오만을 경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일은 쉽지 않다.죽음을 터부시했고 매우 조심스러운 일로 여겼다.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대해 쉽게 정의 내리기도 어렵다.우리 시대 최고의 지성이라고 불리는 이 전 장관이 죽음에 대한 탐구를 해왔지만, 신의 영역으로 남겨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죽음을 대하는 솔직한 고백
누구에게나 죽음은 잘 알 수 없기에 두려운 대상이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라고 말했다. 인간은 죽음을 사유하며 삶을 더 농밀하게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해왔다. “탄생 속에 죽음이 있고, 가장 찬란한 대낮 속에 죽음의 어둠이 있다”라는 말도 남겼다.
하지만 그런 그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실제 죽음이 가까워진 순간 죽음학자인 퀴블러 로스의 말을 인용했다. 철창을 나온 호랑이처럼 죽음은 그렇게 자신에게 덤벼든다는 것이었다. 이 전 장관은 “전두엽으로 생각하는 죽음과 척추 신경으로 느끼는 죽음은 이토록 거리가 멀다”라고 했다. 죽음을 대하는 솔직한 고백이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두렵다. 죽음 너머의 삶이 있는지, 그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기에 더욱 두렵다.이 전 장관은 암을 선고받은 뒤 죽음과 삶의 의미는 달라졌다고 회고했다. 평소 무심코 들이마시는 공기의 맛이 달라지고, 세상의 빛이 달리 보인다는 것이다. 하찮은 것들이라고 해도 쉽게 다시 보고 느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하루가 다르게 흘러간다는 설명이다.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되새긴 삶의 가치
코로나19 상황은 삶의 가치를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죽음에 대해 덤덤하게 생각을 전하던 그였지만 그래도 삶에 대해선 간절했다. 그는 “(죽음 너머) 무언가 있다고 생각하면 삶이 이렇게 절실할까. 끝이라고 생각하니 절실한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코로나19로 질병이 전 세계에 번지고 병들고 아픈 이들을 더 가혹하게 공격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삶의 가치를 되새기게 됐다. 이 전 장관은 “바이러스와 질병을 통해 죽음이 개개인의 마음속에 들어와 경험하게 되고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자기 일로 비치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황폐해진 개인을 죽음을 통해 비로소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우리 시대 ‘스승’이었던 그가 부고로 자신의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죽음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에 관한 질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질문은 동시에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맞닿아있다. 건강하게 사는 삶, 일상에 대한 감사로 시작하는 하루에 그 해법을 풀 수 있는 열쇠가 있지 않을까.
*참고 : 이어령 전 장관 저서 인용
경향신문 기자 박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