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진학지도 대혼란’ ‘내 석차도 모르다니’ ‘어느 대학 갈지 막막’. 수능성적이 발표되자 신문과 방송 등 언론매체들이 뽑아낸 제목들이다. 개인별 수능시험 총점과 석차가 발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오래 전부터 교육학자들이 연구하고 1998년에 결정해 예고했다는 데 무엇이 문제인가.
▼국내대학 ‘우물안 개구리’▼
우리나라의 가장 낙후된 분야가 교육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교육 중에서도 첫째로 타파해야 할 것이 몰개성적인 주입식 교육이다. 많은 이유 중 대학입시에서 수능성적이 과다하게 반영된다는 점이 크다. 그러니 모든 힘을 다해 선다형 시험인 수능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더욱이 총점 기준으로 하니 모든 과목을 준비해야 하고 적성에 상관없이 암기하는 과목도 생긴다.
둘째로 타파해야 할 것이 대학의 후진성이다. 전에 비해서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대학에 가면 놀고 먹는다’는 말이 있다. 외국에 내놓으면 형편없지만 그래도 국내에는 명문대학들이 건재하고 있다. 이들 ‘우물 안 대학’들의 생존비결은 무엇인가. 그 비결은 바로 대학입시에 있다.
소위 명문대학에는 사설학원에서 제공하는 ‘입시 배치기준표’에 의해 학생들이 시루떡처럼 들어왔다가 졸업해 나간다. 배치기준표라는 것이 총점 석차를 기준으로 만들어짐은 물론이다. 배치기준표에 의해 정해진 학교 간의 서열은 바뀌지 않는다. 좋은 대학은 경쟁자가 올라 올 수 없으니 고생해서 잘 가르칠 필요를 별로 느끼지 않는다. 나쁜 대학은 아무리 해도 학교가 좋아지지 않으니 좌절하고 손을 놓는다. 교육이란 사람의 능력과 개성을 개발해 우수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인데 그와는 먼 이야기다.
나는 이번 수능시험을 어렵게 한 것은 크게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우선 난이도에 관해서는 작년 수준이 옳았다. 작년에 너무 쉬워 변별력이 없었다고 하지만 만점자는 불과 66명이었다. 중간점수대에는 수천 명의 동점자가 있었는데 유독 상위 10%만 가지고 법석을 떨었다. 수능시험의 원조인 미국의 SAT는 만점자가 수백 명씩 나온다. 이번 난이도 조절 실패는 여론을 너무 의식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총점 성적의 석차를 비공개로 하고 등급만 알려준 것에는 동의한다. 미국은 등급도 알려주지 않는다. 미국은 학생의 특성과 과목별 성적으로 선발하니 입시에서 정해지는 대학 서열이 없다. 학생은 적성에 맞는 과목만 열심히 공부해도 된다. 대학은 그렇게 뽑은 학생을 특성에 맞게 잘 가르쳐 좋은 학교가 되려고 노력한다. 그러니 학교 간에 정해진 서열이 없고 경쟁이 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일, 하버드, 프린스턴, MIT, 스탠퍼드 등의 명문들이 비슷비슷하게 서로 우열을 다투고 있다. 그러니 대학이 살아있고 국가가 발전한다.
한편 필자는 소위 말하는 명문대학을 졸업했다. 요즘 학과 동창회에 갈 때마다 놀란다. 37명 졸업생 중 현재 교수로 있는 사람이 60%에 해당하는 21명이다. 대학교수도 무척 중요한 직업이다. 그러나 이처럼 교수직이 많아서는 해당 대학이나 국가를 위해서도 문제가 있다. 학업성적만을 가지고 학생을 뽑으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도기적 고통 감수를▼
나는 이번에 시작한 ‘석차 비공개’가 우리 교육의 고질병을 치료하는 데 일조할 것으로 생각한다. 대학 간의 고정된 서열을 없애고 경쟁을 유도하여 기득권에 안주해 있는 대학들에 긴장감을 불어넣을 것이다. 학생들은 수능 총점에만 매달리지 않고 각기 적성에 맞는 과목에 집중해 대학을 선택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전과목을 공부하지 않아도 되니 부담도 줄어든다. 벌써 이번 입시에 자신 있는 과목만 고려하는 학과에 응시한다는 학생들이 나오고 있다. 결국 골라잡기 시험의 의존도를 줄여 창의성 교육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운명’처럼 주어지던 ‘석차 배치기준표’가 무력해지고 각자 알아서 하라니 당황할 만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소망하는 교육 정상화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의 과도기적 고통은 감수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모처럼 내디딘 전향적인 발걸음을 거두어들이지 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