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불가능한 불평등
뤼카 샹셀 저자(글) · 이세진 번역 · 김병권 해제
니케북스 · 2023년 04월 01일
불평등은 숙명인가?
역사적 통계로 살펴보는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 양상
20세기 초부터 축적된 소득 및 자산 데이터를 바탕으로 불평등의 연대기적 양상을 추적해보면, 전쟁이나 대공황, 인플레이션 같은 예외적 상황이 아닌 한, 신흥국과 선진국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국가에서 1980년대 이후 줄곧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으로 관찰된다. 한 국가의 소득불평등이 경제 개발 초기 단계에 계속 증가하다가 산업화가 진행될수록 완화된다고 여겼던 ‘쿠즈네츠 곡선’은 이로써 반박된다. 쿠즈네츠가 관찰한 불평등 감소는 메커니즘에 따른 것이 아니라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자본가가 소유한 생산설비가 파괴되고, 대공황으로 부유층의 자본이 소실되고, 인플레이션으로 세습자산의 가치가 떨어진 데서 비롯된 결과였다. 게다가 전쟁 직후는 사회적 결속과 연대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소득구간별 세율이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이었기에 불평등이 줄어들거나 정체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경제적 불평등은 사회에 곳곳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정치 자금에 민간 후원 비중이 높아져 소득 상위층의 의견이 과대 대표되고, 소득이 정체되거나 가처분소득이 낮은 집단에서 극우 정당을 지지하면서 정치적 우경화가 가속화된다. 소득수준이 낮은 집단은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해 건강하지 못하며, 학업 성과나 최종 학력이 낮은 경향이 있고 나아가 미래의 연봉도 그 영향을 받는다. 또한 소득불평등 자체가 노동자의 의욕을 떨어뜨려 노동생산성을 낮추기도 한다. 이는 저소득층을 사회적으로 더욱 취약하게 만드는 악순환을 유발한다.
샹셀은 불평등을 조장하는 요인을 분석하면서 실업, 질병, 빈곤 같은 사회적 리스크를 함께 감당하는 조직으로서의 사회국가가 약화되고 있다는 사실, 상위소득의 폭발적 증가와 세습자산의 증식을 조장하는 무역 및 금융의 집중적 세계화를 꼽는다. 그리고 이는 결국 정치적 선택에서 비롯되었음을 지적한다. 누진세를 낮추고, 노동자에 대한 보호와 교육을 등한시하고, 금융 규제를 풀어준 결과인 셈이다. 그 선택은 대개 자본을 가진 자들이 공공정책에 점점 더 정치력을 행사하게 된 결과지만, 역으로 다른 정책으로 그에 맞설 수도 있다.
부자들이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
경제적 불평등이 환경불평등을 유발하는 메커니즘
환경 이슈는 으레 기후변화라는 주제와 묶여 현재 세대가 미래 세대에 미치는 피해로만 생각되지만, 실은 한 세대 안에서도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한다. 환경과 관련된 불평등은 여러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우선 에너지와 식수, 식량에 대한 접근에서 불평등이 존재한다. 이는 흔히 지역적 특성으로 여겨지지만, 사실은 기본적인 취사와 난방을 위한 에너지, 안전한 식수, 양질의 먹을거리를 구매할 수 있는가와 관련된 문제다. 환경 위험에 대한 노출도 평등하지 않다. 산업시설로 인한 대기오염이나 태풍이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에 노출되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건강 악화나 생활 터전의 파괴는 가장 가난한 이들을 더욱 열악한 조건으로 내모는 반면, 부유한 계층은 상대적으로 위험에 덜 노출될 뿐 아니라 더 잘 대비하며 환경 파동으로 인한 충격에서도 쉽게 회복한다. 이 악순환에 환경 파괴에 대한 책임의 부당함까지 가세한다. 샹셀은 소득 자료와 온실가스 배출량 자료를 결합해 국가 내에서든 세계 차원에서든 소득상위 집단의 공해 배출량이 많으며 최상위 집단은 압도적으로 그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체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환경 발자국을 가장 많이 남기는데, 정작 그들은 자신이 일으킨 피해에 가장 영향을 덜 받는 것이다. 게다가 환경보호 정책에서 비롯되는 ‘정책 결과의 불평등’과 생태문제 해결을 위한 ‘의사결정 참여의 불평등’도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지속 가능하며 평등한 사회를 위한 해법
지역사회와 정책, 국제단체의 역할
이 책에서 다루는 다양한 연구는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지 않는 한 지속 가능한 개발, 가령 건강한 민주사회, 경제의 효율적 작동, 환경 보호 등도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불평등 감소와 환경 보호라는 두 가지 목표가 상호작용하며 얽혀 있다는 것은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환경의 제약을 고려하면서도 경제적 불평등은 얼마든지 완화할 수 있다. 특히 공공정책과 관련해 샹셀은 세 방향에서 접근한다. 첫째, 에너지, 수도, 대중교통 같은 공공서비스의 친환경적 전환에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둘째, 환경을 고려하는 조세 제도를 고안해 도입해야 한다. 셋째, 환경불평등을 공적 토론의 중심에 두려면 일단 공개적이고 투명한 불평등 측정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각각의 주장에 충분한 사례가 제시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1970년대부터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도시 난방 네트워크를 대대적으로 개발한 스웨덴, 독일 재생에너지 설비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에너지협동조합 관리 모델, 미국에서 시도된 상하수도 민영화의 폐해와 공공화로의 복귀 등은 사회적 형평을 추구하는 친환경적인 방법을 가늠해보게 한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에서 탄소세 인상을 둘러싸고 세제 불평등에 대한 인식이 고조되면서 노란 조끼 시위가 벌어지게 된 상황은 보상 기제에 신경 쓰지 않는 조세 정책의 한계를 보여준다. 가까운 미래에 투명한 불평등 측정 플랫폼이 개발된다면 공해 유발자들의 책임 수준에 맞게 세율을 조정하거나 적극적으로 누진세를 부과할 수 있어 가장 효과적일 테지만, 그러한 측정 시스템이 미비한 현재로서는 높은 생활 수준과 온실가스 배출을 동시에 의미하는 소비재에 세금을 적용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프랑스를 비롯한 10여 개 국가에서 항공권에 부과하고 있는 환경분담금이 좋은 예다.
이러한 정책 변화에서 더 나아가 국제적 차원의 연대까지 모색할 수 있다. 탄소배출을 일삼는 다국적기업이 조세피난처를 이용하지 못하게 막을 대책이나 기후 목표를 준수하지 않는 국가에 제재를 가하는 방법 등은 국제단체의 협의를 통해서만 실현할 수 있다. 이처럼 지역 시민사회나 국가, 글로벌 차원에서 모두 대대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면 우리는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의 조건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