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터 에그* 외 1편
김광명
은밀한 것은 속도가 빨라요 게임처럼 즐기면 돼요
어쩌면 이 방은 심심한 조물주가 장난으로 숨겨둔 규칙인지도 몰라
우린 수많은 사이트를 뒤져 회원제로 입장 가능한 바나나몰에 간다 우리의 부활은 깨진 달걀, 우리는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
두 손 모으로 기도하는 실리콘 줄기 없이 피어나는 구름, 날개 없는 백합, 모래 속을 헤엄치는 돌고래는 우리의 진동일 뿐
신기하게 가림막 하나 쳤는데 세상이 사라졌어요
우린 우리끼리가 좋아서 새방에 모인다 새방에 우리와 우리의 관음증을 담는다 새방에 갇힌다
새로운 방이 늘어날수록 비둘기 오리 까치 독수리 갈매기 매추라기…… 컴컴한 서로의 몸을 더듬거리기 시작하면 새새비둘기 새새어치 새새새비둘기 새새새어치 숨기면 숨길수록 우리는 잘 보인다
새만 없는 새방이 푸드득, 우리는 아직도 새들을 믿는 걸까
모른다면 설명서를 잘 읽어보세요
텔레비젼에서 자연인만 재방송되고
왜 자연인은 빈 곳에만 복사될까 외로워서 자꾸만 이름을 바꾸는 새들처럼, 날개를 화면에 구겨 넣고 문을 닫는 독재자처럼
성인이라면 누구나
빈 곳을 채우라고 빈 곳이 생겨난다
어쩌면 우리는 아프리카에서 인기라는 브래지어 끈처럼 태그가 보여야 잘 사용하는지도 모른다
날것인 헛기침, 날것인 호기심은 조립식일까
따뜻할 때 가져오세요 관심은 금방 식거든요
애인과 헤어진 지 두달이 지났다면, 상상을 훔칠 때마다 매번 같은 철자가 펄떡거린다면
바나나몰을 찾는 게 좋다 그곳엔 우리를 기다리는 휘발성 숨소리가 있다
갓 구운 튤립 하나 배꼽 아래 심은 느낌으로
'부탁이야' 방에 입장한다
또 오세요 오실 때마다 얼굴을 뜯어먹어서 누군지 못 알아봤어요
우린 성인인 걸까 성인은 나쁜 걸까
19번재 동그라미에 물개박수를 친다
성인이라는 단어를 빨아들인다
호기심은 새이름, 용가슴으로 부풀어 오르고
'정그렇게나온다면' 방까지 도착한다
우린 얼마나 많은 방들을 즐겨찾기 하며 사는 걸까
날것일수록 즐겁다니까요 60번 이후 방은 거저에요
바나나몰에는 나눔을 실천하는 방이 참 많다
망사달걀과 투시안경을 방마다 새겨두고
웃기지 못하는 몸개그처럼
프로그램이 서툰 조물주의 서프라이즈
또는 악몽처럼
*부활절 달걀에 날달걀을 넣는 장난에서 유래. 작품 속에서 재미로 숨겨둔 메시지나 기능을 의미
제브리나, 재즈, 가이드북,
그늘 굽는 냄새입니다 생각이 없어도 자라는 것이죠 식민지 줄무늬 비음이라고 부를 수 있으며 삐딱하면 번역기에 돌린 말투, 손목을 그을 때 아메바를 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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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어두워집니다 그때 후회해도 괜찮습니다
―《포지션》 (2023 / 봄호)
김광명
경남 거창 출생. 2022년 《시와사상》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