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최초의 수덕자(修德者)’ 농은(隴隱) 홍유한(洪儒漢, 1726~1785) 선생의 묘소가 있는 안동교구 봉화 우곡성지. 교구는 최근 이곳에 ‘칠극의 길’을 조성했다. 1874년 한국천주교가 창립되기 이전부터 ‘칠극’(七克)에 따라 수계생활을 했던 홍유한 선생의 삶을 묵상하며 오늘날 우리의 삶과 신앙을 되돌아볼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신앙선조의 삶과 신앙을 묵상하며 우곡성지 ‘칠극의 길’을 따라 걸어가 보자.
경북 봉화군 문수산 중턱 골짜기에 자리한 우곡성지. 유난히 맑은 하늘이 눈부실 만큼 푸른 빛을 뿜어낸다.
성지에 들어서니 야외 십자가와 함께 「칠극」을 들고 곧은 자세로 서 있는 모습의 홍유한 선생 동상이 가장 먼저 순례객을 맞이하고 있다.
동상 앞에는 칠극에 대한 설명이 새겨져 있다. 「칠극」은 스페인 출신 예수회 회원 판토하(Didace de Pantoja, 1571~1618) 신부가 쓴 교리서로, 일곱 가지 죄의 뿌리인 ‘칠죄종’을 이겨내고 하느님 나라로 향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책이다. 홍유한 선생은 세례를 받진 못했지만 선종할 때까지 이 책을 기준 삼아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데 힘썼다고 한다.
성지 담당 신대원 신부는 “홍유한 선생이 실천했던 칠극의 정신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덕목”이라며 “이곳을 찾는 이들이 칠극의 길을 통해 신앙선조들의 삶을 보고 배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길을 따라 좀 더 올라가니 ‘칠극의 길’ 표지석이 눈에 들어온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작은 철제 다리를 건너면 곧 칠극의 길을 만날 수 있다. 1극부터 7극까지 간단한 설명과 함께 묵상 후 각각 주모경과 영광송을 바치며 순례하도록 이끈다.
제1극 복오(伏傲): 교만을 억누르다
교만은 분수에 넘치는 영화를 바라는 것이다.… 이것을 이겨내려면 곧 자신을 비우고 낮추는 ‘겸손한 태도’가 요구된다.
제2극 평투(平妬): 질투를 가라앉히다
질투는 남이 잘되는 것을 미워하고 남이 잘못되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다. 이것을 이겨내려면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는 ‘용서’가 필요하다.
제3극 해탐(解貪): 탐욕을 풀다
탐욕은 욕심이 많고 인색하며 끝없이 재물을 탐하는 것이다. 이러한 탐욕을 이겨내려면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어주고 베풀어야 한다.
제4극 식분(熄忿): 분노를 없애다
분노는 앙갚음하려는 마음이다. 이것을 이겨내려면 분노를 억누르고 ‘참을 줄 아는 법’을 길러야 한다.
제5극 색도(塞饕): 탐을 내어 먹고 마시는 것을 막아내다
탐을 내어 먹고 마시는 것은 우리의 몸과 마음에 가장 가까이 있는 적이다. 이것을 이겨내려면 ‘절도(절제)하는 법’을 길러야 한다.
제6극 방음(防淫): 음란함을 막아내다
음란함이란? 더러운 재미를 즐기면서 스스로 그것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을 이겨내려면 마음을 올곧게 하고 바르게 하여 하느님의 뜻을 먼저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제7극 책태(策怠): 게으름을 채찍질하다
게으름이란? 덕행과 선행을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것인데,… 이것을 이겨내려면 부지런히 일하면서 자신의 몸과 마음에 끊임없이 채찍질을 해 주어야 한다.
칠극의 길을 다 돌고 다시 계곡을 건너오면 ‘칠극성당’을 마주할 수 있다. 농은 홍유한 선생의 수덕생활을 기억하고 본받기 위해 ‘칠극성당’이라 이름 붙였다 한다. 홍유한 묘소로 오르는 길에는 홍유한 후손 순교자 13위의 가묘 및 현양비, 십자가의 길이 조성돼 있다.
성지를 나오며 다시 마주친 홍유한 동상. 칠극을 몸소 실천하며 신앙인으로 살기를 열망했던 그의 삶이 더 깊이 와 닿는 듯하다.
안동교구는 오는 9월 20일 성지에서 열리는 순교자 현양대회 중 교구장 권혁주 주교 주례로 ‘칠극의 길’ 축복식을 거행하고, 신자들이 칠극의 길을 통해 신앙생활의 쇄신을 꾀하도록 적극 장려할 계획이다.
※문의 054-673-4152 우곡성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