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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다가..
문득..한추연 회원들도 읽어보면 좋겠다 싶어 퍼왔어요..
(음악을 먼저 플레이하고 읽어보세요..)
송지나가 [여명의 눈동자]를 끝내고 썼던 집필 후기입니다. 1992년경에 쓴 글이죠.
"나아가서 이런 생각도 했다. 참으로 능력있는 작가가 써야 하는 것을 덜컥 내가 맡는 바람에 망치고 있구나. 방송이 나가면 사람들은 다 눈치를 챌 것이다. 작가때문에 좋은 작품을 망쳤구나. 그런데 나는 계속해서 썼다. 여전히 역사 공부를 하느라 진땀을 흘리며, 그래서 여전히 대본이 늦어지며, 늦어진 대본을 또다시 대여섯 번씩 수정해 가며, 그리고 내가 만든 인물 생각에 휘말리면서, 그래도 끝까지 썼다."
책을 보면 그 저자가 쓴 서문이니 작가 후기니 하는 것이 있다. 평소에 작가는 작품으로 얘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나는 굳이 작가가 작품에 더하여 딴말을 붙인다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나는 그렇게 후기를 남겼던 저자들의 마음을 헤아릴 듯 하다.
[여명의 눈동자]라는 드라마를 쓰면서 쌓인 감정의 찌꺼기가 참 많았다. [여명의 눈동자]를 쓰던 지난 2년은 바로 그 지저분한 나의 감정들과의 전투기간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여명의 눈동자]의 각색을 하기가 싫었다. 원작을 보기 전부터 그랬다. 다시 말해서 각색이란 것을 하기 싫었다. 몇해 전에 [인간시장]을 미니시리즈로 각색했을 적에 이제 다시는 각색 따위는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다.
우선 창작보다는 각색이 훨씬 어렵다. 아무리 각색을 통해서 재창조를 해야 한다지만 이미 원작에서 만들어 놓은 틀을 한계로 가지고 있는 다음에야 움추리고 뛸 공간이 좁아지는 것이다. 게다가 원작보다 좋아야 한다는 부담을 안지 않을 수 없다. 대개 원작을 읽은 사람은 이미 원작에서 받은 인상이 굳어져 있다. 그 이미지를 뛰어넘어 원작보다 낫다란 말을 듣기란 쉽지 않다.
[인간시장]에서 나는 원작에서는 주인공 이름만 빌려왔다. 주인공의 성격도 직업도 일련의 사건들도 전혀 새롭게 만들어 냈다. 사실 드라마 [인간시장]의 진짜 원작은 신문과 잡지의 기사, 그리고 지난날에 [추적60분]을 하면서 모아 놓았던 사건 자료들이다.
작품이 좋았는지 나빴는지는 제쳐두고 드라마 [인간시장]은 우선 화제거리가 되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신문이나 잡지들은 대개 원작자 김 홍신 씨와 인터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참 속이 쓰렸다. 나의 아들을 뺏긴 기분이었다. 친자 소송이라도 걸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할까. 드라마 [인간시장]은 어디까지나 내꺼였다. 누구와도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드글거리는 내 마음을 발견하고 난 참 놀랐다. 내가 그렇게 치졸한 사람인 줄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좀 더 의연한 줄 알았다.
그래도 그때는 재빨리 그 마음을 극복해낸 셈이다. 녹화해 놓은 드라마를 다시 보면 하도 창피한 대사들이 많아서 남들이 내가 쓴 걸 몰라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기 때문이다. 명예욕이 설칠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각색이란 것이 다시는 할 게 못 된다는 것만은 충분히 체득했다.
그래서 김 종학 감독이 (김 종학 감독은 [인간시장]을 비롯해서 내가 줄곧 함께 일해왔던, 남들이 말하는 '콤비'다.) [여명의 눈동자] 각색을 얘기했을 때 나는 무조건 거부반응을 보였다. 솔직히 겁이 났다. 다시 마음의 평정을 잃을 것이 두려웠다.
얼마 전에 방송개발원 주최로 [여명의 눈동자]에 대해 세미나가 있다고 해서 발제용 글을 써주게 되었다.그 글에서 나는 처음에 원작을 받았을 때의 망설임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색을 하게 된 동기를 이렇게 적었다.
"우선 개인적으로 우리 역사의 가장 암울한 시기를 되새기고 싶지 않았다. 기존의 드라마를 보면서도 일제 때 형사가 나오고 '아노 조센징...' 하는 판에 박은 대사가 나오면 채널을 돌리곤 했다. 새삼스레 반일이나 극일을 위해 애쓰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둘째로 해방 직후 이데올로기의 현대사를 관통해 볼 자신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이데올로기에 대한 관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것을 사천만 시청자 앞에서 설파할 용기는 없었다는 얘기다. 게다가 아직은 이데올로기에 대해 민감한 사회에 살고 있으며, 어떤 식으로 이데올로기를 풀어내도 최선의 경우 양쪽으로부터 욕을 먹게 되리라는 계산이 앞섰다."
"세번째는 나 자신이 원작에 공감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훌륭한 원작이라도 그 주인공의 성격이나 사건을 풀어가는 방식에 공감을 할 수가 없다면 그 원작을 토대로 각색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얘기다."
"작가는 나름대로 자신이 원하는 인간상이 있으며 지향하는 세계가 다른 법이다. 그 기본이 공유되지 못 할 때 한 작품을 소설과 드라마로 공유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색을 수락하게 된 것은 오랫동안 함께 일해왔던 감독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있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역사적인 사건들에 대한 대한 호기심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더 정직하게 얘기하자면 그 일에 숨겨져 있는 내 정신질환 때문에 나는 각색을 수락했다.
나는 내 정신질환을 잘 알고 있다. 어떤 일이 내 앞에 닥쳤을 때 나도 남들처럼 손익계산서를 작성해본다. 그러나 그 계산이 다 끝나기도 전에 마음 속으로 이미 해보자는 결정을 내린다.
"해보자,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라면 잘 할 것이다, 내가 해야 제일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에 아무리 적자투성이의 계산 결과가 나와도 어쩔 수 없다.
정신질환이라고 밖에는 이름지을 수 없는 이런 착각 증세는 내 힘의 유일한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남보다 뛰어난 감수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처럼 섬세하고 순발력있는 글발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닌 나는 이런 착각에라도 의존해야만 글을 쓸 수가 있다.
사실 나의 작업방식은 아주 미련스럽다. 원고지 삼사백장을 써서 겨우 백장을 남기는 식이다. 몇날 밤을 지새워 써놓은 신을 통째로 들어내고 대사의 십분의 구 쯤을 지워내느라고 다시 몇날 밤을 지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이 끝나고 내 착각의 실상을 깨닫고 나면 아주 참담해지는데 그래서 나는 또 다른 일 하나를 걸머쥐고 "나밖에 이거 할 사람 없어. 내가 하면 아주 잘 할 수 있을 거야" 하고 자기 최면을 거는 모양이다.
[여명의 눈동자]도 마찬가지였다. 원작을 읽으며 나는 또 내 최면에 걸렸다. 원작에서 다루고 있는 숱한 역사 사건들을 내가 각색을 해야만 제대로 엮어낼 수 있을 듯 했다. 다른 사람들이 망쳐놓느니 차라리 내가 하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해보죠. 여긴 이렇게 하고 저긴 저렇게 하고. 그럼 이런 드라마가 되지 않겠어요?"
내 말값을 치르느라고 나는 지난 두해 동안 몸무게가 바닥까지 내려갔고 흰머리가 생겼다.
원작보다 훌륭한 드라마를 쓰자면 가장 먼저 해야 될 일은 원작을 철저히 부정하는 일이다. 솔직히 말해서 처음에 한 번 읽은 것을 빼고는 다시 원작을 읽어 보지 않았다. 자료 조사를 해주던 후배가 군대 가기 전에 원작을 읽고 주인공들의 행로를 도표로 그려주었는데 중간 중간 그 도표만을 참고로 했다.
한두 군데 일부러 찾아서 읽은 부분이 있는데 워낙 대본이 늦어져서 촬영팀이 조바심을 내는 바람에 달리 생각할 여유가 없어 원작을 참조로 한 부분들이다. 대치가 상해에서 보석상을 터는 대목과 하림이 경성에서 부민관을 폭파하는 대목이 그것이다.
그 다음에 한 일은 주인공의 성격을 재창조하는 일이었다. 작가마다 자신이 매력있어 하는 인물은 다른 법이다.
나는 대치가 난폭한 인물인 것이 싫었다. 원작에서 대치는 후반부로 가면서 강간도 서슴치 않는 잔인한 인물이 되어 간다. 유신 정권 아래에서 쓰여진 원작은 공산주의자인 대치를 인간적으로 그리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대치가 좀더 따뜻한 인물이기를 바랬다. 고백하자면 대치의 모델이 된 것은 우리 남편이다. 과묵하고 직선적이며 미안하면 화를 내는 남편이라면 이럴 때는 이렇게 반응할 것이라고 추측해 가며 대치라는 인물을 만들어냈다.
하림의 성격을 만드는 일은 아주 어려웠다. 휴매니티를 기초로 하는 인간은 잘못하면 나약해지기 쉽상이고 현실적이지 못한 선인이 되기도 쉽다. 더구나 하림은 한 여자를 끝내 사랑하는 순정파여야 하고, 그러면서도 역사를 관조할 수 있는 지식인이 되어야 하며 또 미군정의 졸개가 되는 모순의 인물이다. 탤런트 박 상원 씨도 참으로 그려내기가 난해했을 것이다
여옥도 좀더 강한 여자가 되어주길 바랬다. 여옥은 기본적으로 정신대를 거친 여자다. 소설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는 청초한 처녀성이 빛나고 있었다"라고 쓰면 그만이지만 드라마에서는 시청자가 여옥을 보면서 "야, 청초하다"고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세 주인공의 여정을 그려가면서 참 많이 좌절했다. 내가 기본적으로 사람을 잘 모르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극한 상황에서 사람은 어떻게 반응하나? 극도로 굶주렸을 적에 대치와 같은 인물이 과연 구보다를 구하러 되돌아 올 수 있을까? 한 여자를 사랑하다가 그런 배신을 당했을 적에 남자는 무엇을 느낄까? 조국이 이와 같을 때 하림과 같은 청년은 과연 무엇을 생각할까?
다음으로 나를 괴롭힌 것은 나의 무식함이었다.
[여명의 눈동자]를 쓰면서 아마도 대학 사년동안 읽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책을 읽었던 듯 하다. 그러면서 학교 다닐 적에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을 엄청나게 후회했다. 촬영 일정은 바쁘고 모두가 목을 빼어 다음 대본을 기다리는데 정작 작가는 역사책을 읽고 있다니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소설의 독자와 드라마의 시청자는 다르다. 소설은 원하는 사람만이 보는 것이지만 드라마는 시청자가 원하거나 원하지 않거나 본다고 상정해야 한다. 따라서 소설은 소설이니까 황당할 수 있지만 드라마는 그럴 수가 없다. 어쨌거나 사천만을 대상으로 해서 전파를 타고 나가는 방송은 그만한 책임감을 안고 출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용산 철도 파업에서 대치와 하림이 만나는 장면을 쓰기 위해선 우선 그때의 용산 철도 파업에 대한 역사적인 배경과 상세한 내용을 알아야 한다. 하림은 미군정 밑에서 일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천구백사십육 년 그때에 미군속으로 일한 한국 사람은 계급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어떤 계급을 주어야 하는 건지를 알아야 한다. 또 용산 철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떤 조건에서 일했으며 파업은 과연 공산주의자들의 선동으로 일어났나. 파업의 기폭제가 된 것은 어떤 사건이었나. 그때 노동자들은 주로 무슨 일을 했나. 화물차에서 곡식을 날랐다면 그건 어떤 곡식이었나. 쌀배급을 받았다는데 그럼 하루에 얼마를 받았나.... 이런 걸 일일이 찾아내 보고 알아야 겨우 한 장면을 쓸 수 있으니 작업 속도는 자꾸 느려질 수 밖에 없었다.
내 대본이 늦으면 그만큼 연출부에서는 곤욕을 치르게 된다. 소품은 소품대로 준비할 시간이 없다고 아우성일 테고 섭외는 초조해서 내 욕을 하고 있을 테고 연기자들은 한 번 나가서 찍으면 될 것을 오로지 대본이 늦는 바람에 두세번씩 야외 촬영을 나가야 한다. 그러면서 모두는 오랫만에 나온 대본을 보고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아니 이따위 대본을 쓰느라고 우릴 이렇게 괴롭힌 거야?"
대본을 쓰다가 중간에 잠적을 했었다. 연출부에서는 작가를 찾느라고 난리가 났다고 한다. 연락이 끊긴 지 한 달이 되자 새 작가를 구해야 되지 않느냐는 말들이 오갔다는 것이다. 김 감독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여명의 눈동자] 후반부는 다른 작가의 손으로 쓰여졌을 지도 모른다. 오래 나와 함께 일해온 김 감독은 나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부분들이 있었다. 김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송 지나는 절대로 포기하지 못 한다. 제 자식을 절대로 남에게 입양시키지 못 할 게다."
한 달만에 조연출에게 잡혀서 돌아왔을 때 감독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음 줄거리를 물었다. 그리고 나도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구상했던 다음 줄거리를 얘기해 주었다.
사실 나는 누군가 "[여명의 눈동자]를 이젠 그만 써도 됩니다. 다른 작가를 구했어요"라고 말해주길 바랬다. 그러면서 한 달 동안 틀어박혀서 무협지를 몇십권 보았었다. 남이 쓴 무협지를 보며서 나는 몇백번 계산을 하고 다시 또 했다. '과연 내게 남는 게 뭐냐' 나아가서 이런 생각도 했다. 참으로 능력있는 작가가 써야 하는 것을 덜컥 내가 맡는 바람에 망치고 있구나. 방송이 나가면 사람들은 다 눈치를 챌 것이다. 작가때문에 좋은 작품을 망쳤구나.
그런데 나는 계속해서 썼다. 그래서 여전히 대본이 늦어지며, 늦어진 대본을 또다시 대여섯번씩 수정해가며, 그리고 내가 만든 인물 생각에 휘말리면서, 그래도 끝까지 썼다.
방송이 나가자 숱한 비평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맨 처음에 나온 비평은 선정적이며 폭력적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나 분개해서 그 기사를 쓴 기자에게 전화했다.
"방송을 보긴 했어요?" 하고 물었다.그때는 너무 화가 나 있어서 무슨 말을 했는 지도 잊어 버렸다. 나는 자존심도 체면도 없이 몹시 화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나는 깨달았다. 그렇다면 지난 2년 동안 피를 말리는 작업의 과정에 몇백번도 더 "이놈의 염병의 눈깔"이라고 저주를 퍼부었으면서 어느새 [여명의 눈동자]에 그렇게나 빠져있었다는 말일까.
[여명의 눈동자]를 끝낸 요즘에 나는 다시 다큐멘타리를 시작했다. 예전에 [추적60분]이며 [인간시대]를 썼던 열정을 되살리며 즐거워 하고 있다. 그러면서 나는 사람 공부를 제대로 해보고 싶다. 다시는 드라마를 쓰면서 사람을 몰라 좌절하고 싶지 않다.
그러면 나는 다시 드라마를 쓸 생각이란 말인가?
그런가 하면 또 나는 역사 공부를 시작했다. 고선지의 얘기를 비롯한 고구려 역사가 아주 흥미있다. 현대사의 이데올로기를 풀어내면서 양쪽으로부터 욕을 들으며 혼자 비참했던 일들을 까맣게 잊은 듯 하다. (사실 신문평에서 칭찬을 한 것은 죄다 연출력이며 연기력, 음악 들이었고 욕을 먹은 부분은 대부분 작가인 내가 감당해야 할 분야의 것들이었다.)
[여명의 눈동자]를 쓰면서 난 우리 역사가 아주 재미있어졌다. 사건으로 보는 역사가 아니라 사람을 통해 보는 역사관이 생겨나지 않았나 해서 혼자 흐믓해 하고 있다.
요즘 [여명의 눈동자] 원작에 대한 광고가 신문마다 현란하다. 광고 문귀에는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서 맛볼 수 없었던 감동이 원작에 있습니다"라는 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나로 말하자면 사람들이 좀더 많이 원작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사람들이 소설 [여명의 눈동자]와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가 다르다는 점을 알아 주었으면 한다.
이제 새삼스레 [여명의 눈동자]를 각색하고 난 손익계산서를 뽑아보자면 이렇다.
돈으로 치자면 엄청난 손해를 보았다. 그 시간에 다른 연속극을 썼다면 그렇게 궁핍한 2년을 보내진 않았을 것이다. 남들이 매주일 원고료를 받는 동안에 나는 2년에 고작 서른여섯 편에 대한 원고료를 받았다. 그러나 이제 비로소 드라마가 뭔지 알 듯 하다.
드라마는 작가의 것이 아니다. 앞서도 말했다시피 [여명의 눈동자]를 쓰면서 내가 가장 무서워 했던 사람은 우리 스텝들이었다. 거기에 참가했던 제작진들은 그야말로 현대의 장인들이었다. 지금과 같은 조건에서 그런 작품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 장인 정신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래서 당분간 드라마를 쓰지 못 할 듯 하다. 장인 정신을 가진 동료들과 어떤 한 작품을 만들고 난 이제, 그 짜릿한 맛을 알아버린 이제 함부로 아무 작품에나 오로지 "잘 할 수 있다"는 착각만으로 덤벼들기에는 조금은 철이 들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손익계산서의 결론은 적자일까, 흑자일까?
아마도 다음에 뭔가 작품을 다시 하게 되면, 그래서 그 작품의 결론을 얻게 되면 그때 겨우 답이 나올 듯 하다.*
첫댓글 넘 재밌네요. 송 작가님 출세작인데, 그래서 더욱 재밌는 듯. 이후 히트작도 구성 만큼은 거의 똑 같더라고요. 그게 뭐더라... 박상원이 검사로, 최민수가 조폭으로, 나중에 사형수로 나오는 드라마... 고현정 출세작...? 술을 마셨더니...
나 떨고있니? ㅋㅋ... (모래시계)....^^
"사실 나의 작업방식은 아주 미련스럽다. 원고지 삼사백 장을 써서 겨우 백 장을 남기는 식이다. 몇날 밤을 지새워 써놓은 신을 통째로 들어내고 대사의 십분의 구쯤을 지워내느라고 다시 ." ...이 부분은 저랑 비슷하군요. 송지나 작가 좋아하는데, 요즘은 좀 뜸한 게 아쉬워요. 글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읽어도 좋을 것 같아요..
여명의 눈동자...
제목만 접해도 맘 설레임 느껴집니다
참 열심히 읽었던 세월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