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영원이 된 순간
생텍쥐페리 , 갈리마르 출판사 저자(글) · 이세진 번역
위즈덤하우스 · 2023년 04월 06일
“나는 나의 어린 시절에서 왔다.”
평생 어린 시인으로 남은 생텍쥐페리의 특별한 동화
《어린 왕자》의 미국판과 프랑스판 교정쇄에서는 헌사를 찾아볼 수 없다. 생텍쥐페리는 마지막까지 책의 첫머리에 담길 헌사를 고민했고, 결국 편집 막바지에 “어린 소년이었을 때의” 친구 레옹 베르트에게 바친다는 헌사를 썼다. 이는 어린이들을 위한 책을 어른에게 헌정한다는 것에 대한 난처함을 모면하기 위한 표현처럼 보이지만, 모든 것은 생텍쥐페리가 놓은 문학적 장치임을 잊어선 안 된다. 그는 《어린 왕자》를 어린이를 위해 썼다고 했지만, 처음부터 어린이와 어른 모두를 대상으로 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생텍쥐페리는 어린 시절이 마치 어떤 장소인 것처럼, 자신은 ‘어린 시절에서 왔다’라는 표현을 곧잘 썼다. ‘출신지’는 우리의 깊숙한 정체성을 규정하는 곳이고, 미래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생텍쥐페리에게 있어 ‘어린 시절’은 평생 떼어놓을 수 없는 영원한 그의 출신지이고, 그는 이를 잊지 않은 것이다. 예술가 어머니로부터 영향을 받은 생텍쥐페리는 어릴 때부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어린 왕자, 영원이 된 순간》에는 그가 어머니에게 보낸 몇 통의 편지가 수록되어 있다. 카사블랑카 복무 후 쓴 1921년 편지에는 소행성 B612의 작은 의자를 연상시키듯 “작은 초록색 의자를 끌고 다니던 보잘것없는 아이였을 때와 똑같이”라는 문구를 썼다. 또 1930년 편지에는 “어릴 적 지어낸 말과 놀이의 세상, 아이들의 추억으로 가득한 세상이 다른 세상보다 한없이 진실해 보였다”는 말로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늘 ‘어린이였음을 잊지 않은 어른’은 자연스럽게 《어린 왕자》에 행복한 어린 시절에 대한 암시를 가득 채우며 어른에게 말을 건다.
사람들은 어릴 때 읽었던 《어린 왕자》를 어른이 되어 다시 읽으니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고 말한다. 읽을 때마다, 그리고 나이, 시기, 때로는 장소에 따라 다른 울림을 준다고도 한다. 이는 애초 생텍쥐페리가 어린이와 어른 모두를 위해 《어린 왕자》를 썼기 때문이다. 이는 작가가 자신의 출발점을 망각한 어른에게 보내는 특별한 메시지다.
“나는 그림을 그릴 줄 모른다.”
최초 공개 자료와 미수록 삽화, 편지의 숨은 의미
《어린 왕자, 영원이 된 순간》를 위해 대중에게 공개된 적 없는 뉴욕 모건도서관ㆍ박물관의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예외적인 수채화들이 발견됐다. 하나는 망치를 든 인간의 손을 어린 왕자가 바라보고 있는 모습으로, 조종사가 어린 왕자를 처음 만난 장면이거나, 이후 조종사가 꽃의 존재를 알게 되는 장면으로 유추된다. 《어린 왕자》에서 조종사는 어른으로서의 의식을 대변한다. 결국 최종본에는 삽입되지 않은 이 삽화를 통해 생텍쥐페리가 초반에는 좀더 적극적으로 ‘어른’을 드러내려고 했음을 알 수 있다. 또 어린 왕자가 인간과 함께 있는 수채화도 볼 수 있다. 어린 왕자를 반기는 기색이 전혀 없는 부부의 모습은 낯선 것을 대하는 어른의 태도와 다름 없다. 그러나 책에는 수록되지 않은 것에서, 이런 직접적인 방식은 이야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텍쥐페리의 판단을 읽을 수 있다.
어린 왕자와 장미의 관계는 생텍쥐페리와 부인 콘수엘로의 원만하지 않았던 실제 삶에서 비롯된 것임을 그들이 주고받은 편지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어린 왕자》를 구상하기 훨씬 전인 1930년, 생텍쥐페리는 부인 콘수엘로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을 ‘보물을 품지 못하는 우울한 아이’로 묘사한다. 부부는 약 7년을 살다가 헤어졌고, 생텍쥐페리가 미국에 온 후 재결합했지만,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혼란스러웠던 부부의 삶은 일찍이 작가에게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품게 했을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어린 왕자》는 보아뱀이 맹수를 집어삼키는 그림과 함께, 조종사가 여섯 살 때 읽은 책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초기 원고는 완전히 달랐다. “나는 그림을 그릴 줄 모른다”라는 조종사의 고백이 첫 문장이었다. 그리고 조종사가 그린 배, 보아뱀, 비행기를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후 자신의 그림을 알아봐주는 어린 왕자를 만난 조종사의 기분을 짐작할 수 있을 테지만, 생텍쥐페리는 1장을 완전히 수정했다. 이 외에도 《어린 왕자, 영원이 된 순간》에만 실린 방대한 자료는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을 좀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가능한 한 많은 초상화를 그려볼 것이다.”
오랜 시간 고치고, 연습하고, 고민하는 천재의 결과물
사람들이 알고 있는 많은 어린 왕자의 그림 중 ‘어린 왕자의 초상화’라고 해도 좋을 만큼 유명한 그림이 있다. 어린 왕자가 옥색과 붉은 색으로 된 망토를 입은 모습으로, 미국 초판 인쇄 이후 자료 보관처에만 있어서 단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다가, 드디어 색상이 복원되어 《어린 왕자, 영원이 된 순간》에 수록되었다. 이외에도 초판의 표지, 자기 행성의 석양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등 책에서는 우리가 아는 다양한 어린 왕자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눈길이 가는 것은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의 모습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는 준비 노트와 많은 양의 소묘 및 습작이다. 어린이의 얼굴을 다채로운 형태로 연습하기도 하고, 날개 달린 어린 왕자를 그려보기도 한다. 여우의 자세를 잡기 위한 것인지 개의 동작들을 그리기도 하고, 양, 우물, 꽃 등 어린 왕자와의 만남에서 중요한 단어들을 휘갈겨 써놓기도 했다. 생텍쥐페리가 출판사에게 보낸 편지를 바탕으로 우리는 1942년 10월 말에는 그가 출판사에 원고와 삽화를 보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런데 준비 노트와 습작 들은 1942년까지 계속된다. 즉, 마지막까지 마음에 드는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계속 쓰고, 그리고, 보완해간 것이다. 《어린 왕자》에서 조종사는 사하라 사막에서 사고를 당해 홀로 6년 동안 지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뉴욕 모건도서관·박물관의 원고에는 4년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최종 편집 시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생텍쥐페리는 이 작품에 자신을 전적으로 담아야 했고, 그는 《어린 왕자》의 시간적 배경으로부터 6년 전에 리비아 사막에서 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생텍쥐페리는 자신의 그림에 대해 “잘 될지는 정말 자신이 없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도 그려보고 저렇게도 그려보면서 모색한다”라고 했다. 우리는 그를 ‘천재’라고 여기곤 한다. 천재니까 이런 시공간을 초월한 작품을 만들어냈다고 말이다. 그러나 《어린 왕자, 영원이 된 순간》 속 자료와 그의 인생을 되짚어보면,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몰두하고 치열하게 고뇌하면서, 더 나은 작품을 쓴 노력가다. 《어린 왕자》가 80년을 한결같이, 전 세계의 어린이와 어른에게 사랑받는 작품이 된 이유를 우리는 드디어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