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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순교>
언젠가 그리스도교가 우리나라 땅에 도입되는 과정을 같이 공부하던 형제들에게 설명했었는데, 다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깜짝 놀랐습니다. 가만히 따져보니 정말 그랬습니다. 유래가 드물게 우리 한국 교회는 스스로 신앙을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자발적으로 연구하면서 꽃을 피워나갔습니다.
물론 그리스도교가 우리나라에 정착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수차례에 걸친 대대적 박해가 있었고, 그 박해를 꿋꿋이 이겨낸 순교자들의 용기 있는 증거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순교라는 말을 떼어놓고 우리 한국 교회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잘 실감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모두는 자랑스러운 순교자들의 후손입니다. 우리의 피 안에는 순교자들의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 안에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순교 영성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토록 큰 은총이요 영예인 이 순교영성을 어떻게 우리 일상 안에서 실현시켜나가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실 주변을 둘러보면 그 옛날 신유박해나 기해박해 때처럼 순교할 기회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그 어떤 제약도 없이 너무나 자유롭고 떳떳하게 신앙생활을 해나갈 수 있다는 것 참으로 큰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피와 땀을 흘리고 목숨을 바쳐 신앙의 토양을 일궈낸 우리 신앙의 선조들 덕분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지금 우리 시대는 그 옛날 우리 순교자들이 지니셨던 바로 그 순교 영성을 간절히 요구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물질만능주의와 영성의 결핍의 결과인 다양한 형태의 소외와 불평등, 불의와 차별이 만연하는 이 시대는 우리 교회가 희생과 헌신을 통한 순교의 영성을 온 몸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대 꽃다운 나이의 사제, 거의 새 사제나 다를 바 없는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의 순교를 생각합니다. 때로 너무 아깝다는 생각도 많이 듭니다. 어찌 그리 시대를 잘못 타고 나셨을까, 하는 측은한 마음도 앞섭니다. 한국인 첫 사제로서 좀 더 연명하면서 한국교회의 기틀을 다지셨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가져봅니다.
그러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순교의 기회가 왔을 때 결코 단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당당하게 용감하게 자신에게 닥쳐온 영광스런 기회를 뒤로 연기하지 않고 즉석에서 수용했습니다.
이런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죽음이 무의미한 죽음이었을까요? 우리 모두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장 고결한 죽음, 가장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죽음으로 다들 평가하며 칭송합니다.
철학자 하이데거의 말처럼 인간은 제한된 시간 안에 서 있으면서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입니다. 이 땅에 태어난 인류 모두는 단 한명의 예외도 없이 죽음 앞에 섰고 죽음을 넘어갔습니다. 따지고 보니 죽음이 있다는 것, 여간 큰 은총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죽음 앞에서 겸손해집니다. 겸손 앞에서 본래의 자신을, 진정한 ‘나’를 찾습니다. 결국 죽음은 무의미한 인간의 삶을 의미 있는 삶으로 바꿉니다. 결국 인간은 죽음 앞에서 비본질적인 요소들을 떨치며 하느님께로 회심합니다.
따지고 보니 이렇게 중요하고 의미로 충만한 죽음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는 정말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냥 애완용 동물처럼 죽을 것인가? 화초가 시들어 말라죽듯이 죽을 것인가? 아니면 정말 의미 있고 보람되게 죽을 것인가? 그렇다면 의미 있는 죽음이란 과연 어떤 죽음일까?
가장 의미 있는 죽음은 아무래도 하느님을 위한 죽음이 아닐까요?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죽음처럼 말입니다.
오늘 내 삶의 자리에서 순교영성을 실천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생각해봅니다. 대단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특별한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매일 우리가 겪는 작은 불편들을 관대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기쁘게, 기꺼이 수용하는 일이 아닐까요? 견디기 힘든 고통이나 십가가가 다가올 때 순교하는 마음으로 견뎌내는 일이 아닐까요?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부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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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순교자(1821-1846) 대축일
역대기 하24,18-22 로마5,1-5 마태10,17-22
성인(聖人)의 삶
-여러분이 바로 성인입니다-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이시며 천주의 성 요한 의료봉사 수도회
한국 대건 관구의 주보성인이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이런 성인이 교회의 보물이자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우리 삶의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 역할에 성인보다 더 좋은 분은 없습니다.
저는 성인들의 축일미사 강론을 준비할 때 우선 확인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즉 생몰(生沒) 연대입니다.
어느 성인이든 돌아가지 않은 분이 한 분도 없다는,
모든 성인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너무나 자명한 진리가 새삼 위안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죽음보다 확실하고 공평한 것은 없습니다.
언젠가 우리도 죽는다는 사실은 너무나 분명한데 보통은 까맣게 잊고 지냅니다.
또 하나는 성인들이 산 햇수의 계산입니다.
현재 내 나이보다 더 많이 사셨는가,
혹은 적게 사셨는가의 확인하며 제 삶을 추스릅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순교성인께서 사신 햇수는 1846년-1821년=25년,
만 25세이니 저는 현재 성인보다 거의 40년을 더 산 셈입니다.
하느님은 ‘얼마나’가 아닌 ‘어떻게’ 살았는지, 삶의 양이 아닌 삶의 질을 보십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의 유언입니다.
“저의 어머니 우르술라를 주교님께 부탁드립니다.
어머니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들을 보지 못하다가
며칠 동안 한 차례 아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곧 다시 아들과 헤어져 살아야 했습니다.
슬퍼하실 어머니를 부디 위로하여 주십시오.
주교님의 발아래 엎드려 마지막 인사를 드립니다.”
“나는 이제 마지막 시간을 맞았으니 여러분은 내 말을 똑똑히 들으십시오.
내가 외국인들과 교섭한 것은 내 종교와 내 하느님을 위해서였습니다.
나는 천주를 위해 죽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내게 시작되려고 합니다.”
전반부는 주교님께,
후반부는 순교직전에 남긴 25세 청년 성 김대건 안드레아의 유언입니다.
우리 역시 모두 성인의 삶으로 불림 받고 있습니다.
바로 오늘 미사복음과 독서가 성인의 삶을 가르쳐줍니다.
첫째, 끊임없는 회개의 삶입니다.
평범하면서도 가장 확실한 성인의 삶은
하느님께 돌아와 늘 새롭게 시작하는 회개의 삶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의 삶은 죽을 때까지 ‘회개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1독서의 즈카르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영에 사로잡혀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지만 순교의 죽음을 당했고
회개하지 않았던 백성들은 하느님께 버림 받았습니다.
세상 온갖 우상들을 떨쳐 버리고 하느님께 돌아와
순수한 마음을 회복하여 새롭게 시작하는 게 바로 회개이며 성인의 삶입니다.
비상한 회개가 아니라 매일 이렇게 주님의 성전에 나와 미사에 참여함으로
회개의 일상화가 실현됩니다.
둘째, 끊임없는 믿음, 희망, 사랑의 삶입니다.
삶은 영적전쟁입니다.
장렬한 순교도 있지만 평생 영적전쟁의 순교적 삶도 있습니다.
예외 없이 수도자들은 물론 믿는 이들이 순교적 삶으로 불림 받고 있습니다.
바로 믿음의 전사, 희망의 전사, 사랑의 전사되어 살 때
비로소 순교적 성인의 삶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2독서인 로마서에서
믿음, 희망, 사랑의 관계를 잘 밝혀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물론 우리 모두의 고백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이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새삼 믿음, 희망, 사랑 역시 우리에게 부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매일 미사를 통해 주님은
우리에게 믿음, 희망, 사랑을 부어주시어 우리 모두 성인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여러분이 바로 성인입니다.
셋째, 끝까지 견뎌내는 인내의 삶입니다.
끝까지 견뎌내는 삶이 성인의 삶입니다.
끝까지 견뎌내는 자가 영적전쟁에 승리합니다.
삶은 단판 승부가 아니라 평생 승부요,
삶은 100m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평생 장거리 도보 경기입니다.
우보천리(牛步千里:소걸음으로 천리를 간다는, 결국 우직함이 승리한다는 뜻)
입니다.
하느님 앞에 등수는 없고 각자 나름대로의 페이스대로 완주하여
하느님 목적지에 도착하면 모두가 1등입니다.
그러니 누구와 비교하여 열등감을 또 우월감을 가질 것도 없습니다.
복음의 마지막 주님 말씀이 참 고맙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분도 규칙에도 이와 흡사한 구절이 나옵니다.
‘(형제들의)육체나 품행상의 약점들을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디며’라는
구절입니다.
바로 공동생활의 원리인 인내의 사랑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결론으로 사도 바오로의 유언 같은 말씀을 인용합니다.
하루의 영적전쟁이 끝나고 잠자리에 들기 전,
또 죽음을 앞두고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다면
성공적 성인의 삶을 살았음이 분명합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2티모4,7-8ㄱㄴ).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주님은 이렇게 살 수 있는 은총과 힘을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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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2역대 24,18-22
제2독서 로마 5,1-5
복음 마태 10,17-22
어제 아침, 새벽 묵상 글을 올리고서 아침 운동을 위해 복장을 갈아입었습니다. 자전거를 끌고 밖으로 나가는데 하늘이 너무 흐리더군요. 비가 오지 않을까 싶어서 얼른 휴대전화로 날씨를 검색했습니다. 오전 중에는 흐림으로만 되어 있고, 오후가 되어야 비 올 확률이 60%로 늘어나더군요. 그래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잠시 뒤에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갈등이 생겼습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원래 생각했던 목적지까지 갈 것인가? 더군다나 분명히 하늘은 곧바로 비가 쏟아질 기세였거든요.
잠시 동안 망설이다가 저는 원래의 목적지까지 다녀오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일기예보가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요. 그러나 설마 잠시 뒤의 예보도 맞지 않을까 싶었고, 저는 잠시 뒤의 일기예보를 믿었습니다. 결과는 약간의 빗방울을 맞았을 뿐, 별 무리 없이 즐겁고 기분 좋게 아침 운동을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만 있으면 매순간 즐겁고 기분 좋은 시간들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문제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불평불만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일기예보도 잠시 뒤의 예보는 정확하다는 믿음이 필요하듯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늘 좋은 것을 주신다는 굳은 믿음만 있다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좌절과 절망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어제 낮 2시에 미사가 있었습니다. 저는 점심식사 후에 미사 전까지 책을 볼 생각으로 방에 갔지요. 책을 보다가 깜빡 졸았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시끄럽게 울리는 전화벨에 깜짝 놀라서 얼른 전화를 받았지요. 보험 가입하라는 스팸 전화였습니다. 신경질이 나더군요. 그런데 시계를 보는 순간 정말로 깜짝 놀랐습니다. 글쎄 오후 1시 50분인 것입니다. 미사 시간까지 10분밖에 남지 않은 것이지요. 만약 이 스팸 전화가 없었다면 어떠했을까요? 짜증나는 전화가 아주 감사한 전화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며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에게 좋은 것만을 주시는 하느님이라는 믿음을 간직하고 있다면 말이지요.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방인 사제였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우리 후손들에게 굳건한 믿음을 보여주셨지요. 그래서 사제서품을 받은 지 1년도 되지 않아 체포되었지만 믿음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서품을 받은 뒤에 하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사제서품을 받기가 쉽지 않다는 것, 또 한국교회에 사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였기에 잡혔을 때 많은 갈등이 있었을 것입니다. 잠시 배교한 뒤에 더 큰 일을 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셨겠지요. 그러나 주님을 증거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했기에, 그러한 욕심을 뒤로 하고 굳건한 믿음을 세상에 보여줍니다.
우리의 믿음은 어떠한가요?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을 배신하지 않을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 보여주신 믿음을 주님께 청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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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2013. 7. 7.)(마태 10,17-22)
<삶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마태 10,17)."
이 말씀은, '사람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하더라도
믿음을 잃지 않도록 조심하여라.'입니다.
다시 말해서 '박해를 받더라도 믿음을 잘 지켜라.'입니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마태 10,18)."
이 말씀은, '박해가 오히려 복음을 증언(선포)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입니다.
또는 '박해를 받더라도 복음을 증언(선포)해야 한다.'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마태 10,19-20)."
이 말씀은, '복음을 증언(선포)할 때, 인간적인 말재주로 하려고 하지 말고,
성령의 도움에 의지하여라.'입니다.
복음을 증언(선포)하는 일은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아니라
자기의 믿음을 증언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일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 예수님의 일이고, 성령의 일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먼저 성령의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1-22ㄱ)."
이 말씀은, '많은 사람이 박해자가 될 것이고,
가족들마저도 박해자가 될 수 있다.'입니다.
'모든 사람'이라고 표현되어 있지만,
글자 그대로 모든 사람은 아니고, '많은 사람'입니다.
아마도 가족의 박해가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ㄴ)."
이 말씀은, '박해를 받아도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는 사람은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라는 약속입니다.
이 말씀에서 '끝까지'는 '죽을 때까지'입니다.
그런데 '견딘다.' 라는 말에
박해와 고난을 받아들여서 기꺼이 겪는다는 뜻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마태 10,23ㄱ)."
박해를 피할 수 있다면 피해야 합니다.
신앙을 지키면서 살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일부러 죽을 이유는 없습니다.
조선시대 박해 때에 많은 신자들이 순교했지만,
더 많은 신자들이 깊은 산속으로 피해서 교우촌을 만들었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회를 지켰습니다.
순교자들도 위대하지만, 그렇게 살아남아서 교회를 지킨 분들도 위대합니다.
"박해를 피해서 다른 고을로 가는 것과
순교하기 싫어서 비겁하게 도망가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그 두 가지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박해를 피해서 다른 고을로 가는 것은
'박해가 없는 곳으로 가서 신앙생활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순교하기 싫어서 비겁하게 도망가는 것은
'자기가 신자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서
신앙을 버리고(배교하고) 비신자로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리하면 그 두 가지를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들과 관련해서 예수님께서는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마태 10,16)." 라고 하셨습니다.
'뱀처럼 슬기롭고' 라는 말은 '지혜롭게' 행동하라는 뜻입니다.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라는 말은
'평화롭고 온순하게 행동하여라.'입니다.
신앙생활의 마지막 목적은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순교는 그 목적지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순교가 목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도 지혜가 필요합니다.
박해가 없는 곳으로 피해 가서
신앙생활을 계속하고 교회를 지키는 것은 지혜입니다.
그러나 군대를 조직해서 박해자에게 힘으로 맞서는 것은 지혜가 아닙니다.
그것은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라는 가르침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신앙은 칼로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마태 26,52).
신앙은 믿음과 사랑과 희망으로 지켜야 합니다.
지금은 옛날의 종교박해와 같은 그런 박해는 없지만,
그래도 세상 속에서 살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유혹도 많고, 여러 가지 갈등도 많고, 고난과 시련도 많습니다.
넓은 뜻으로 그 모든 고통들을 다 박해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인생 자체가 고통이고, 박해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라는 예수님의 약속을 믿고,
그 약속대로 되기를 희망하면서 견디어 내야 합니다.
삶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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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을 수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
어떤 자매님이 거의 20년 전에 저에게 하신 질문이 계속 머릿속에 남습니다.
“저는 가족도 다 성당 열심히 다니고 돈도 부족하지 않고 어려운 일도 없는데 왠지 새벽에 일어나 혼자 우는 때가 있어요.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데 공허하고 행복한 것 같지 않아요.”
그 땐 저도 어찌 답을 드려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오늘 김대건 신부님의 열정과 순교를 생각하면서 이젠 대답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바시 37회 때 오지레이서 유지성씨가 나와 자신의 도전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처음엔 낙타를 타고 사막을 여행하고 싶다는 꿈으로 시작했는데, 이젠 250km, 어떤 때는 560km까지 자급자족하며 마라톤으로 완주하는 ‘사서 고생하는 일’을 전문으로 삼는 사람입니다.
처음엔 평범한 직장인이었지만 여행을 좋아해서 사막을 뛰어서 횡단해보겠다는 호기심에 시작한 것이 직장도 접고 이제는 다른 사람들을 이 레이싱에 연계해주는 일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가 모래와 더위만 있는 사막을 횡단하거나 영하 30도 이하의 남극을 목숨을 걸고 횡단하던 이야기를 할 때, 그러니까 뱀과 추위와 죽음의 위협이 있는 ‘오지’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눈이 빛나고 목소리가 힘이 있었지만, 오히려 직장생활 할 때의 우리나라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경쟁과 시기, 질투 등의 부정적인 면 때문에 말하는 것이 힘들어보였습니다. 사실 그에게 참으로 행복한 천국은 우리가 볼 때 매우 힘들어 보이는 ‘오지’이고, 실제로 한국이 그에게는 불편한 ‘오지’인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기꺼이 죽을 수 있는 곳이 가장 행복한 곳’이라고 말하고, 이 경쟁사회 속 보다는 그 자연 안에서 죽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처음엔 자신의 행복을 위해 달렸지만, 지금은 다른 이들에게도 행복을 찾아주는 기쁨으로 달린다고 말합니다. 자신을 위해서 죽는 것은 행복이 아닙니다. 데레사 효과(마더 데레사가 봉사하는 장면만 보여주어도 타액에 면역성분이 증가한다는 실험)에서도 나타나듯이 참 행복은 남을 위해서 죽어 줄 수 있을 때 찾아옵니다.
만약 이런 사람이 90kg이 넘는 몸무게를 지니고(이 일을 하기 전에 나갔던 몸무게) 직장에서 평범하게 일하며 세상에 휩쓸려 살았다면 지금의 살아있음을 느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세상을 거스르는 열정, 이것이 자신을 태워 고통스럽게도 하지만 그에게 삶의 쾌감을 안겨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삶의 의욕과 활기가 있을 때 행복합니까, 아니면 무기력하게 아무 것도 하기 싫을 때 행복합니까? 혹은 밖에 나가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이 행복합니까, 아니면 남이 던져주는 것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행복합니까?
정말 아이러니 한 것은 ‘내가 가장 살아있고 행복하다고 느꼈을 때는 누군가를 위해 죽어줄 수 있을 때’였다는 것입니다. 처음 제가 좋아했던 여자에게 사랑 고백을 받았을 때 저절로 입에서 나왔던 말이, “이젠 사는 것 같다!”였습니다. 지금까지 죽어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무언가를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찾지 못했다가 삶의 의미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는 것 같이 느낄 때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죽을 수 있을 때 가장 살아있음을 느끼고 행복한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서도 죽을 수 없는 때가 진정 죽은 때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죽은 이들의 장례는 죽은 이들에게 맡기고 나를 따라라”, 혹은 “가서 복음을 전하여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혹은 이웃을 위해서 죽을 각오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죽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다고 해서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열정(passion)’이 없기 때문입니다. ‘열정(passion)’이란 삶의 의욕과 활기를 말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수난(passion)’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즉 ‘열정’이 있는 사람은 자기를 ‘소진’시키며 그 열정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까지 합니다. 열정은 그 마음 안에서 불처럼 타올라 자신을 태웁니다.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때는 이렇게 무언가를 위해 자신의 에너지를 소진시킬 때입니다.
오늘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분이 왜 그렇게 어린 나이에 출세도 다 포기하고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나들며 배를 타기도 하고 모진 수난을 받기를 원하셨을까요? 그분에겐 자신의 목숨을 버릴만한 열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열정이 수난이 되어 자신을 소진시킨 사람입니다. 우리는 진정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대로 흘러가는 그런 삶이 아니라 세상과 맞서고 자신의 열정을 불태워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삶을 찾아야합니다.
김대건 신부님도 이런 의미에서 ‘열정’을 가지신 분이셨고, 물론 그래서 박해받고 죽으셨지만, 그래서 가장 행복한 삶을 사신 분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이런 의미에서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세상을 이겼다는 열정의 상징이요, 살아있음의 상징일 것입니다. 십자가는 진정 이 세상에서 죽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참 행복의 진리를 보여주는 영원한 상징입니다.
“너희는 롯의 아내를 생각하여라.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루카 17,32-33)
롯의 아내는 세상에 미련은 둔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을 거스르지 못했기에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세상을 거스르는 열정이 있어야합니다. 물론 그 열정이 세상에서 우리가 멸망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그 열정이 없는 세상이 멸망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연어가 물살을 거스르며 자신의 고향으로 갈 때 얼마나 많은 위험을 만나게 됩니까? 세상은 그저 편하게 자신의 물살에 몸을 맡기라고 하고 우리가 굳이 고생할 필요가 없다고 유혹합니다.
유지성씨와 함께 오지레이스를 하는 김경수씨는, 인도에서 210km 서바이벌 레이스를 할 때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이 오토바이처럼 생긴 인도 택시 ‘오토릭샤’라고 말합니다. 지쳐있는 자신에게 자꾸 옆으로 와서 타라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보는 사람이 없어서 잠깐 타고 어느 정도 가서 내려서 걸으면 되지만 결코 그것을 탈 수 없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다 완주했을 때의 행복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이렇게 우리의 열정을 꺾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유혹합니다.
김대건 신부님에게도 서양 학문과 언어, 지도를 그리는 등의 여러 재능 때문에 호강시켜준다는 회유도 있었지만 신부님은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실제로는 죽는 것임을 잘 아시고 계셨기에 그 회유에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살아있는 물고기는 물살을 거스르지만 죽은 물고기는 그 물살에 떠다닐 뿐입니다. 무기력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면야 그럴 수 있겠지만, 열정과 활력이 행복이라고 한다면 이 세상에 그저 떠다니는 것이 결코 행복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열정은 불과 같습니다. 나를 불사르고 소진시키고 결국 나를 죽입니다. 이렇게 사는 방법이 있고, 또 열정을 버리고 그냥 세상 조류에 휩쓸려 살 수도 있습니다. 열정이 없음이 곧 무기력입니다. 남들 하는 대로 세상에 휩쓸려 무기력하게 살든가, 아니면 세상을 거슬러 내 자신을 소진시키든가 둘 중의 하나입니다. 김대건 신부님과 모든 순교자분들은 참다운 열정, 참다운 행복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여주신 분들입니다.
저는 강론을 쓰는 것이 가장 힘이 듭니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강론을 쓰려고 인터넷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강론을 쓰지 않으면 몸은 편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불편합니다. 강론을 준비하면서 머리를 쥐어뜯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기를 낳는 고통 뒤에 아기를 보는 행복이 오는 것처럼, 강론을 쓰는 것이 훨씬 행복합니다. 강론이 제일 힘들지만, 강론을 빼면 사제생활의 보람을 거의 찾지 못할 것 같습니다. 내 행복을 위해서라도 목숨을 내놓을 열정, 우리에겐 이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처럼 우리도 열정으로 우리 자신을 소진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행복이고 영생의 길인 것입니다.
그러나... 개인 사정으로 다음 한 주는 강론이 없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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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1784년 최초의 영세자를 탄생시킨 한국천주교회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1794년 12월23일 비로소 한국 땅에 처음으로 주문모 신부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801년 신유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그후 1835년 조선에 입국한 모방 신부님은 방인 성직자를 양성할 목적으로 1836년 최양업, 최방제, 김대건 세 소년을 선발하여 마카오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최방제는 그곳에서 병사하였고 김대건과 최양업은 사제로 서품되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과 최양업 신부님은 서양학문을 정식으로 익힌 첫 조선인으로서 최고의 지성인답게 당시 조선 왕국의 국가 정세와 교회 사정 및 민생상태에 관하여 예리하게 관찰하였습니다. 두 분은 보고 듣고 체험한 내용을 유창한 라틴어로 써서 스승 신부님들께 보고하였습니다.
신부님께서 1845년 8월17일에 상해근교의 김가항에서 사제 서품을 받으셨습니다. 이때는 서품식이 요즘처럼 성대하지 않았습니다. 쪽배를 타고 그곳까지 간 11명만이 참석한 조촐한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그 날은 한국천주교 사상 가장 뜻깊은 날입니다. 한국인으로서 처음으로 사제품에 오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날이 진정 빛나는 이유는 우리 모두의 귀감이 될 만큼 명실 공히 그리스도를 닮은 거룩한 사제였기 때문입니다.
신부님께서는 서품을 받으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15세에 영세 입교하시고 신학생으로 뽑혀 멀리 산 설고 물 설은 마카오로 떠난 그날부터 겪은 고초를 생각하며 감개무량했을 것입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겼겠습니까? 우리는 상상할 뿐이지 말로써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서품을 받으면서 그날 모든 감사를 하느님께 드리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신부님이 사제가 되어 고향에 돌아가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었습니까? 금의 환양이요. 개선장군같은 환영입니까? 아닙니다. 박해의 칼, 체포와 죽음뿐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사제가 된다는 것은 어려움도 있지만 교회 내에서는 영광스럽고, 소중한 품위에 오르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도 존경받는 신분에 오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김대건 신부님께서 사제가 되었을 때는 사회적으로는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목숨을 바치는 순교정신, 곧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없이는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시련과 고통을 안겨다 주는 일이었습니다. 명실 공히 십자가를 따르는 일이었습니다. 신부님은 그것을 잘 아시면서도 바로 그 믿음과 순교정신으로 사제품을 받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목숨이 소중한 것이 아니라 한국 신자공동체가 더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한국당의 복음화와 구원이 더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라면 당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쳐도 좋다고 생각하신 분입니다.
신부님은 자신을 위해 사제가 되신 분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해서 사제가 되신 분이 아닙니다. 동포를 위해, 조국을 위해 세상에 대해서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잘 살기 위해서 사제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해 1845년 10월에 배를 타고 조선의 충청도 해안에 상륙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846년 5월12일 순위도에서 잡혀 9월16일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그리스도처럼 양들을 위하여 당신의 목숨을 아낌없이 바치셨습니다. 정말 어렵고 힘든 가운데 수품을 받고 조선에 입국하였지만 아깝게도 겨우 13개월 동안만 사제로 살았습니다. 그나마 2개월은 조선에 입국하기위해 황해 바다 위에서 보냈고 또 4개월은 감옥에서 지내다가 순교하셨으니 사목활동은 거의 하지 못하였습니다.
사실 한국 땅에 천주교가 들어온 것은 1784년, 지금부터 약 229년 전입니다. 당시 사회는 유교 사회였고 양반과 상놈이 구별되는 철저한 계급사회였습니다. 그리고 조상 제사에 대한 관습과 예절이 철저했던 시절입니다. 이때 천주교회의 기본 교리는 신분 계급과 조상제사라는 두 부분에 큰 충돌을 가져왔습니다. 남녀평등을 주장하고 양반 상놈 구분을 거부하며 우상 숭배의 제사를 거부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큰 죄악이었습니다. 그리하여 103년 동안(신유1801, 기해1839, 병오1846, 병인1866) 산발적인 박해 속에 살아야 했고 그 와중에 한국인 첫 사제가 나왔지만 13개월 만에 목자를 잃고 만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과 인간의 생각은 분명 다릅니다. 지나고 보니 신부님의 죽음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신앙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출생하신 솔뫼, 순교하신 새남터, 묻히신 미리내는 오늘도 우리에게 신앙의 표징이 되고 있습니다. 당시의 죽음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신부님께서는 더 많은 사람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몫을 여전히 하고 계십니다. 신부님께서는 죽음을 앞두고 “하느님을 위하여 죽으니 내 앞에는 영원한 생명이 시작할 것입니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천상에 대한 희망이 신부님을 지켜주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1842년부터 1846년까지 21통의 편지를 썼습니다. 그중 한문과 한글로 쓴 편지가 각각 한 통씩이고 그 외에는 모두 라틴어로 썼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은 1842년부터 1860년까지 19통의 편지를 전부 라틴어로 썼습니다. 그런데 김대건 신부님의 편지는 대부분 사제 서품 전에 쓴 것입니다. 반면 최양업 신부님의 편지는 사제 서품 후에 쓴 것입니다.
오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편지를 한 통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이 편지를 통해 그분의 믿음과 하느님과 그 백성을 위한 사랑이 얼마나 간절하였는지 묵상하고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스물한 번째 편지는 옥중에서 쓴 것입니다.
옥중에서 쓰신 마지막 회유문(1846년 8월말)을 읽어드리겠습니다.
“교우들 보아라. 우리 벗아 생각하고 생각할지어다… 온갖 세상일을 가만히 생각하면 가련하고 슬픈 일이 많다. 이 같은 험하고 가련한 세상에 한번 나서 우리를 내신 임자(하느님)을 알지 못하면 난 보람이 없고, 있어 쓸데없고, 비록 주님의 은총으로 세상에 나고 주님의 은총으로 영세 입교하여 주님의 제자 되니 이름이 또한 귀하거니와 실이 없으면 이름을 무엇에 쓰며, 세상에 나 입교한 효험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주님을 배반하고 주님의 은혜를 배반하니 주님의 은혜만 입고 주님께 죄를 더하면 아니 남만 못하리.
이러한 어려운 시절을 당하여 마음을 늦추지 말고 도리어 힘을 다하고 역량을 더하여 마치 용맹한 군사가 병기를 갖추고 전장에 있음 같이 하여 싸워 이길지어다. 부디 서로 우애를 잊지 말고 돕고 아울러 주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환난을 걷기까지 기다리라. 혹 무슨 일이 있을지라도 부디 삼가고 극진히 조심하여 주님의 영광을 위하고 조심을 배로 더하고 더하여라…..이런 군난 때는 주의 시험을 받아 세속과 마귀를 쳐 공덕을 크게 세울 때니 부디 환난에 눌려 항복하는 마음으로 물러나지 말고 오히려 지나간 성인성녀의 자취를 가르쳐 성교회의 영광을 더하고 천주의 착실한 군사와 의자(의로운 아들)됨을 증거하고 비록 너희 몸은 여럿이나 마음으로는 한 사람이 되어 사랑을 잊지 말고 서로 참아 돌보고 불쌍히 여기며 주의 긍련(불쌍하고 가엾게 여기다) 하실 때를 기다리라.” 하시며 주님께 대한 믿음을 더하기를 촉구하십니다.
그리고 “이런 큰 어려움도 역시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니 너희가 감수 인내하여 주님을 위하고 오직 주님께 슬피 빌어 빨리 평안함을 주시기를 기다리라. 내 죽는 것이 너희 육정과 영혼대사에 어찌 거리낌이 없으랴. 그러나 하느님께서 오래지 아니하여 너희에게, 내게 비겨 더 착실한 목자를 상주실 것이니 부디 설워 말고 큰 사랑을 이뤄 한 몸같이 주를 섬기다가 한가지로 영원히 천주대전에 만나 길이 누리기를 천만천만 바란다”. 고 기록하였습니다.
이렇게 큰 사랑과 믿음을 지키라는 간곡한 호소를 담았습니다. 혹 우리에게도 힘에 겨운 일이 생긴다면 더 큰 믿음으로 주님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농부가 수확을 기다리며 온갖 수고와 땀을 아끼지 않듯이 우리도 참고 견디며 천상 것에서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믿음의 소유자 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10,17-22)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도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그뿐만 아니라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로마5,1-4) 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삶의 여정을 보면, 열심히 산다고 하는데 어려운 일이 생기기도 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실망과 좌절이 올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계획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고 그 안에서 좋은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따라서 다가오는 예기치 않은 어려움과 시련 속에서 주님의 안배와 섭리를 찾기 위해 기도하고 간구할 때 새 희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김 대건 신부님의 삶은 하느님의 뜻과 세상의 일이 서로를 거스를 때 우리가 택해야 할 길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련 속에서, 억울함 안에서, 생각하지 못한 난관 앞에서 끝까지 견디며 하느님을 먼저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더 좋은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만하면 됐지’ ‘나도 사람인데’ ‘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 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바라보고 사는 이에게는 이것이 유혹입니다. 사실 천상을 바라보고 사는 이에게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견디는” 인내가 행복입니다. 언젠가 천국에서 누릴 영광스러운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 흘리는 수고의 땀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주님께서도 눈물과 피로써 십자가를 짊어지고 세 번씩이나 넘어지면서 걸어가셨는데 우리가 아무런 수고 없이 공짜로 천국을 얻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인내에 인내를 더할 수 있는 은총을 간구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기뻐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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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열여섯 살 때 위험을 무릅쓰고 중국으로 건너가셔서 모진 이국 생활 끝에 사제가 되시어 돌아오셨습니다. 그러나 그 이듬해에 체포되시어 여러 차례 문초를 받으시고 한강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사제 생활 1년에 불과합니다. 어떻게 신부님께서는 배교하라는 회유와 온갖 고난을 이겨 내시고 죽음마저 기꺼이 받아들이실 수 있었을까요?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오로지 사랑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어떠한 고난도 이겨 내게 합니다.
‘사막의 교부’라고 불리는 안토니오 성인의 제자들이 성인에게 어찌 그렇게 단식을 자주 하고, 밤새워 기도하며, 온갖 극기 행위를 잘 이겨 내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성인의 대답은 이러하였습니다. “토끼를 쫓는 개들이 여러 마리여도, 대부분은 쫓아가다가 장애물 따위를 만나면 도중에 포기해 버린다. 마지막에 그 토끼를 붙잡아 입에 무는 놈은 꼭 한 마리뿐이다. 토끼 맛을 본 놈만이 마지막까지 토끼를 쫓아간다. 수도승도 바로 이러하다.”
수도승의 여러 극기 행위는 억지 행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맛보았고, 그 안에서 하느님을 깊이 사랑하게 되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기억하며 무엇을 새겨 보아야 하겠습니까? ‘얼마나 영웅적으로 예수님을 증언할 수 있는가?’라기보다 ‘우리는 과연 하느님의 사랑을 맛보았고,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가?’라는 점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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