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연휴를 끝내고
들녘은 여기저기 모내기가 끝나간다. 거리 가로수는 그늘을 드리운다. 시야에 드는 산자락은 녹음이 짙다. 현충일에 이어 징검다리 주말로 틈새 금요일은 재량휴업이었다. 나흘 간 연휴다 보니 초여름 방학을 맞은 듯했다. 교내 체육대회가 열린 수요일 오후 고현에서 창원으로 복귀했다. 가끔 교류가 있는 친구와 늦은 밤까지 차수를 변경해 안부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였다.
현충일 이른 아침 시내 초등학교 관리자로 재직하는 대학 동기와 모처럼 산행을 나섰다. 우리는 마산 내서에서 화개지맥을 넘어 여항의 길고 긴 임도를 걸었다. 아파트단지 인근 소나무 숲이 좋은 산기슭엔 맨발로 산행하는 사람들을 더러 있었다. 석간수가 흐르는 바위에서 곡차와 도시락을 비우고 내곡과 두곡을 거쳐 청암에서 봉성으로 나가 함안역에서 무궁화호를 탔다.
이튿날은 금요일이지만 재량휴업일로 잡혀 있어 평일이지만 근무 부담이 없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를 비롯해 다수 학교가 학년 초 학사일정을 편성할 때 그렇게 해둔 모양이었다. 간밤 더위를 식혀주는 비가 제법 내린 아침이었다. 산행은 무리인 듯해 산책을 나서 북면 지인 농장을 찾았다. 그간 자주 들리지 못해 밀린 안부가 궁금했는데 날씨 덕분 시간을 낼 수 있었다.
유월 둘째 토요일은 서너 달 전부터 잡힌 일정이 있었다. 손위 형님 둘째 조카가 울산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진주에 사는 여동생 내외가 창원을 지나면서 오라비와 올케를 태워 걸음을 나섰다. 울산 시내로 들어 태화강 대숲 공원을 둘러보고 칠남매 형제자매가 한 자리 다 모이고 고향 선후배 하객들을 더러 만났다. 창원으로 복귀하니 만나야할 지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흘 연휴 마지막은 유월 둘째 일요일이었다. 거제로 되돌아가야 하는 날이라 산행이나 산책은 나서질 않았다. 새벽녘 첨삭을 의뢰 받은 글을 살펴 손질했다. 멀리 동유럽에서 열리는 세계 청소년축구대회에서 우리 젊은이들이 녹색 잔디에서 펼친 멋진 경기에 박수를 보냈다. 텔레비전을 잘 보질 않는 내가 장방형 화면에 시선을 떼지 못하니 우리 선수들 투혼이 빛났다.
아침나절 아파트단지 마트와 재래시장에서 과일을 비롯해 몇 가지 생필품 시장을 봐 왔다. 아내는 내가 거제에서 해결할 끼니의 찬을 준비했다. 표고버섯과 호박을 볶았다. 지난 주 가덕도 형님 댁을 방문해 가져온 부추는 김치로 담가졌다. 내가 강변에서 따 온 죽순을 삶아 잘랐다. 이 정도면 일주일은 넉넉할 듯했다. 남방셔츠는 세탁해 말려져 종이가방에 챙겨 담았다.
오후 세 시가 지날 무렵 나는 이른 저녁을 들었다. 일요일은 내가 저녁을 먹을 때면 아내는 점심이었다. 저녁을 이르게 해결하고 남방셔츠와 반찬이 담긴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다. 집 앞에서 101번 시내버스로 팔룡동 종합버스터미널로 나가 고현행 시외버스를 탔다. 일요일 오후 거제로 가는 이들이 제법 되었다. 이들은 나처럼 주중이면 거제에 머무는 사람들이지 싶었다.
현행 시외버스에 올라 몇 지기이게 안부 문자를 넣었다. “유월 들어 나흘 간 초여름 방학을 끝내고 다시 생업 현장으로 돌아갑니다. 주중 면벽 수도하다 복귀하리다.”였다. 차창 밖은 익숙한 풍광이었다. 창원대로에서 창원터널을 지나 장유를 거쳐 다시 터널을 지나니 녹산이었다. 크레인과 컨테이너 더미의 신항만에서 거가대교를 지나니 거제 장목에서 고현으로 갔다.
고현터미널에 닿아 같은 버스를 타고 왔던 교무실이 달라 이름은 모르고 얼굴만 아는 동료를 만났다. 연초로 나가는 시내버스를 함께 탔다. 나도 거제가 생소하지만 그쪽도 신규교사로 올봄 첫 발령이라 했다. 학교가 가까운 연사삼거리에서 내려 원룸 골목으로 향했다. 동료교사 처자는 교회와 가까운 골목으로 들고 나는 학교가 더 가까이 보이는 골목 원룸으로 들었다. 19.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