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본 외 1편
지현아
머리카락이 움큼 빠졌다 쓰다 만
글자처럼 보인다 글자가 되지 못한
선들이 바닥을 누른다
현재를 고정한다
다음 바닥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바닥 내가 사는 피부*
파도가 치지 않는 바다
받침이 없는 말 파도 소리
낙엽 쓰는 소리가 들린다
물을 빼앗긴 잎은 소리를 가진다
창문을 열면
무언가 타고 남은 재가 날린다
열차가 지나가자 쇠맛이 난다
누군가 피를 흘리고 있을 것이다
편지 멀리 떠난 사람이 두고 간 피부
만질 수 있는
눈이
얼마 전 떠나간 사람들의 뼈가
내린다
*영화 제목 인용
가위
천사와 악마가 한 몸이었을 때 사람들은 죽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이 둘로 갈라졌을 때부터
매일 사람이 죽었다
그러나 잘라내고 이어 붙여 끝없이 다시 사는 사람들
아이는 스스로 머리카락을 자른다
사는 일은 질리게도 그것뿐이다
천사는 눈이 없다
다만 깃털로 본다
떨어뜨린 깃털은 꿈으로 돌아온다
보았다 기어코
미래를 본다
본다는 것은 안다는 것
미래를 아는 공포
잠들 수 없게 한다 기억은
녹아 붙은 입술이 푸르다
악마는 날개로 말한다
날갯짓에 나동그라지는 사람들
힘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걸어서는 도달할 수 없는 곳에 가야 한다고
설명할 수 없다
힘은 이런 것이고 기억 또한 그런 것이다
기억이 난다
―《포지션》 (2023 / 봄호)
지현아
2011년부터 시를 쓰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