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우리는 옹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집을 옹기집이라 했습니다.
오랜만에 고향에 가서 어른들에게 인사를 드릴때에 못 알아보시면 옹기집 아들이라고 하면 다 아십니다.
선조들이 옹기를 하다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럼 우리의 가업이냐구요? 아닙니다. 다산 정약용 집안과 사돈을 맺으며 살 정도의 가문이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천주교를 믿던 우리 선조님들이, 천주교인들을 박해하자 산골로 난을 피해가시여
목숨을 잇기 위해 어쩔수 없이 하게 된 것이 이 옹기였습니다.
그러나 프라스틱 용기에 밀려서 옹기도 이젠 전통문화의 한 부류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께서 호주(옹기 사장)를 하실때에 뒷일을 하던 한 젊은이는 지금 80이 넘었지만, 이십여년전에
들리는 얘기로는 남쪽의 어떤 대학에서 유명한 토기 교수로 학생들을 이끌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옹기도 질그릇과 오지그릇 두가지가 있지만, 거의가 오지 그릇만 옹기로 알고 있고 질그릇은 자취를
감춰버렸네요. 질그릇은 예전에 주로 외관이 시커먼 화로나 물동이 뚝배기 등이었고, 오지 그릇은 항아리나
자박지 등 큰 그릇으로 유약을 발라 좀 빛이 나게 만든 그릇을 말하는 것이지요.
흙으로 빚어 모양을 내고, 그것을 구워 용기(容器)로 만드는 토기는 가장 원시적인 일이었지만 수 없이
긴 세월동안 우리 인간에게 많은 편의를 제공해준 이기품 이였습니다.
![울산볼거리,외고산옹기마을](https://search3.kakaocdn.net/argon/0x200_85_hr/2MuFxLY2XXe)
첫댓글 프라스틱 용기에 비해 살아 숨쉬는 우리의 토기,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이지 우리네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용기입니다.~~
화학공장에서 찍어 내는 프라스틱이 훨씬 싸고 빠르게 공급되는 바람에 많은 손이 가는 옹기는 우리에게 좋긴 하지만 늦고 비싼면이 있지요.
이제 옹기공장도 이젠 쉽게 볼 일이 아니라고 보며 아쉬워 합니다. 감사합니다.
조상님들이 한국 천주교 박해사의 한 가운데 계셨던...서학의 ㅎ명문 가문이시군요.
조상 제사를 하지 않는 것이 사악하다 하여 결정적인 배척.박해의 원인 아니었던가요?...
올곧은 지조~ 들샘님의 핏속을 흐르고 있습니다.
천주교와 인연을 가진 것은 1800년대 후반부터 나까지 6대째 이어오고 있습니다.
모태신앙으로 아직도 신앙을 꿋꿋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조들의 전통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또 그 가업을 이어가셨다면 더욱 자랑스러웠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옹기를 이어 가기를 바라셨지만 당시 학교 다니느냐고 앉아서 그걸 배울 여력이 없었습니다.
저도 좀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지요. ㅎㅎ 감사합니다.
옹기그릇 가정에 하나식은 간직되고있는 애정어린 식구입니다
지금도 많은 가정에선 옹기가 아직도 좀 많이 남아 있지요. ㅎㅎ 감사합니다.
옹기집이라면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터널같은 움박을 황토로 지어서 연기가 나오는 곳으로 기억 되네요.
천주교 박해를 받으시면서도 믿음을 지켰던 훌륭하신 선조의 자손이시군요
질그릇처럼 아무곳에서도 쓰이는 필요한 인물이 되시라 믿습니다.
단아함님이 말씀 하신 터널 같은 긴 움막이라는 것은 옹기를 굽는 가마로 여겨지내요.
집집마다 많이 쓰였던 질그릇은 잘 깨져서 서민들에겐 경제적 부담이 되었을 겁니다. 질그릇을 이야기 하시다니....ㅎ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