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후(2)
농사 일로
눈코뜰 새 없이 바쁘신
부모님을 대신해서
늘 말없이
인자한 미소로 동생들을
보살피시던
큰 누님이
기거하시던 사랑방
문설주에
십자수 자화상만
덩그렀게 걸어 놓고
작년 가을
신작로 흙먼지 날리며
도라꾸 타고
시집가신 지
일 년 만에 친정에 다니려
온다는
우편엽서를 받고
마중 나간다.
대문을 열고 나와
미루나무 길게 늘어선
신작로 십리 오솔길을
고무신 신고 타박타박
걸어가노라면
장마당을 지나고
우체국을 지나고
면사무소를 지나
한 참을
따가운 가을 햇살 속을
걸어
다리도 아프고
몸도 지쳐갈
즈음
저 멀리
코스모스 가을바람에 나부끼는
자그만 함석지붕
간이역이 보인다.
이윽고 서늘한 역사에 도착
빈 의자에 앉아
기다리노라면
금테 모자 눌러쓴
역무원이 플랫폼에 나가
적. 청색 깃발을
멋지게 흔들면
기적 소리와 함께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며
기차가 달려온다.
개찰구에 나가 목을 길게 빼고
한 사람
두 사람
내리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았음에도
설레며 기다리던 누님 모습
보이질 않아
못내 실망스러운 마음으로
막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려는데
등 뒤에서
"야야! 야야! 니 우예 잘 있었노?"
그립고 다정스러운 목소리에
뒤 돌아보면
한 손으론 머리에 보따리이고
한 손으론 기다란 옷고름으로
눈망울을 훔치며
정든 누님이
서 있다.
나도 모르게
핑그르르
눈앞이 흐려진다.
글/벽창호
첫댓글 아름다운 정경 입니다..ㅎ
지금은 찾을 수 없는
풍경이지요 ^^
제 눈앞도 흐려집니다 ...
기억조차 희미해진
옛 풍경이랍니다.
세상에......
한 폭의 수채화입니다
우!
온유님 ^^
옛날 생각 나네요 ^^*
꿈속에 일만 같아요 ^^
정다운 단어 도라꾸 ㅎㅎㅎㅎㅎㅎ
역사 가는 길의 풍경이 떠오르고
보따리 이신 분의 모습이 절로 그려집니다.
짧은 글속에 담긴 삶의 지난날을 그리며
감사한 마음으로 읽고 갑니다^^
감사해요 박희정님 ^^
누님 시집가는날
기둥 뒤에서 훌쩍이는 소년의 모습 보여요
한동안 참 허전하더라구요 ^^
단편의 소설속에
애틋한 장면을 보는듯 합니다
지금 그 누님은 많이 연로하셨겠지요~
좋은 글 고맙습니다^^*
자주 예서 뵙기를요ㅎ
그 누님은
2년 전에 별세하셨습니다.
감사해요
리릭님
꼭 보타리를 이고 다니셨던 분들이었죠 ~
역 앞에 저도 서 있는듯 합니다
당시에는 짐을 머리에 이고
다니는 게
일상인 시절이었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