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아침 눈을 뜨면 늘 그랬었습니다.
거의 반사적,무의식적으로 라디오를 켜고 새벽 5시반 아침 뉴스를 들으며
주방에 달려가 라오산 녹차로 모닝 차를 마시고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서 공원으로 ,그것이 일상의 첫번째 임무 였습니다.
한국 돌아온 첫 날부터 지금까지 제일 적응 안되는 일이 있다면 ,,, 아쉽게도 시도때도없이 켜던 일상의 단짝 친구
라디오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입니다.
때론 무의식적으로 엠피 포에 라디오 채널을 마추다 생소한? 한국말이 들리면 나도 모르게 그만 약이 바짝 오르고
게다가 더욱 화가나는 일은 450위엔짜리 구닥다리 정든 샤오링통을 더 이상 쓸 수 없다는것입니다.
방과 후 또는 주말 ,중국 친구들이 생각나면 무조건 158..... 눌러놓고 "라아 오오 쓰으~~~~"
마음 내키면 몇 초 만에 부를 수 있었던 것을,
이제... 생각날때마다 수첩을 뒤져 아무리 눌러도 외워지지않는국제전화카드
수첩에 적혀진 번호 하나하나 확인에 확인 눌러도 꼭 한 둘은 잘못 눌러
다시 몇 번을 누른 다음에야 겨우 이어질까말까하는 숙명?처럼 받아들여야만 되는 현실
한국 돌아온 다음 네번 째 날 , 피로에 지쳐 습관처럼 저녁 아홉시도 안되어 잠자리 들어
새벽 세 시에 자동으로 눈이 떠졌습니다. 볼 일을 보고 다시 잠자리에 누웠는데
오라는 잠은 안오고갑자기 울컥합니다. 아니다 싶어 이부자리박차고 일어나 주방으로
가슴에서 올라오는 무언가를 진정시키려 찻 물을 올리는 순간... 막혔던 봇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원없이 살다 왔는데도 ...청도에 두고 온 많은것들이 슬라이드처럼 이어지고 ,
돌아오던 날 부두에까지 나와 작별해 준 라오스를 떠올리는 순간 눈물이 줄줄
세상풍파에 무딜대로 무뎌져버린 감성임에도 아직도 누군가의 이유로 아플수 있다는것에 새삼 놀랐습니다.
불을 끄고 눈을 감고 어둠속에서 한창이나 울먹이다 불위에 올려놓은 냄비의 물이 다 쫄아
파닥파닥 타 들어가는 소리가 날 즈음에야 정신을 차리고 다시 찻물을 올렸습니다.
우아한 찻잔이 아닌 여름겨울 가릴것 없이 4년간 휴대용으로 들고 다녔던 정든 물병에
라오산 녹차에 말린 대추, 볶은 구기자등으로 독자 제조한 차를 한 병 가득 찻물을 붓고는
후루룩후루룩 원없이 마시며 함께 추억도 마셔댔더랬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오던 1월 21일은 날씨가 너무나 포근했습니다.
전날 살을 도려내는듯한 바람은 어디로 가고, 작별을 위해 함께 차를 타고 온 라오스가 말합니다.
"잉메이 잘 가라고 하늘이 날씨까지 도와 준다"고 ...
중국 4년살이 살림 줄이기에 짜기를 몇 번 최종 엑기스 200여 남짓 키로
꺼집어 내 놓으니 얼마나 무겁고 덩치가 큰지, 장 라오스가 가져온 차로도 모자라
오래전부터 알던 짜오스푸까지 불러 이삿?짐을 싣고 부두로 향했습니다.
왕라오스 장라오스와 함께 차안에서 서로 덕담을 주고 받는사이 어느새 부두에 도착
청도살이 4년이었어도 배는 한 번도 이용해 본적이 없어 배표사러 우왕좌왕
게다가 둘이 들고 탈 수 있는 짐 초과에 더욱 안절부절 정신없이 쫓아다니는 동안
선생님 세 분 그리고 짜오스푸 카 끌고 와 짐 다 실어놓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발 길 닿는곳마다 동행해 주는 하늘의 도움이 그날도 확인된 날,
매표소에서 줄 서 기다리다 만난 반가운 아들들 지나간 한 때 한 솥밥을 먹었던 우리 아들들만나
초과된 짐 두 개 해 결하고, 게다가 전문가 초록거울 아우까지만나
날림공사로 엉성히 싸놓았던 짐들 요리조리 테이프붙여 야무지게 묶어놓고
세 아들 거울 아우 앞세워 짐까지 먼저 보내놓고보니 세 분의 라오스 안스런 마음으로 지켜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부두 직원들 눈치에 더 이상 머뭇거릴수 없어 작별하려는 순간 울컥 목에서 뭔가 올라오고
한 분 한 분 라오스 따순 손 꼭 잡으며 마지막 인사, 장라오스 쳐다본 순간 더욱 눈물이 복받쳐
둘이서 안고 정신없이 울다가 직원들 재촉에 " 우린 언젠가 또 만날 수 있쟎아 , 잘 가 ... ..."
" .... 엉 ~~~` 어 엉 ~~" 떨어지지 않는 발길 돌려야했습니다.
처음으로 타 본 배에 철부지 아이 마냥 금방 있었던 일은 까맣게 잊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아들들과 오랜만에 저녁을 먹고 눈 떠보니 찬란한 한국의 아침입니다.
수속중의 양념 갈비 해프닝으로 밥솥까지 압수 당할뻔했던 일 외에 세 명의 해결사 덕분에 무사히 입국성공 !
마중 나온 아빠 그리고 아들 가져온 차에 그 많은 짐 가뿐히 실어 수원 월드컵 경기장으로 직행, 취업 원서내고
40분을 달려 마침내 그리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곤 숙제처럼 미루어 두었던 일들 , 순대 떡볶이사서 배부르게 먹고, 불가마 사우나 한증막 가서
묵은 때 벗겨내고 ,동네 미용실가서 파마하고 그러구나서 설맞이
시골서 올라오신 어머니 시누이 동서 한 집에 모여 간재미무침에 막걸리 소주 주거니 받거니
밤깊은 줄 모르고 그동안 묵혀두었던 이야기 주고 받다보니 그제서야 귀국이 실감이 났습니다.
올해는 정말 새해 복덩이가 덩굴째로 굴러온건지 , 세상에 나고 처음으로 제일 두둑한 세뱃돈도 받았습니다.
어머니 시골에서 품팔고 밭 팔아 가져오셨을것같은 피땀같은 돈,
안 받으려 이래저래 내빼봤지만 받으라합니다. 이게 마지막 세뱃돈이라고 , 큰 놈 대학보내는데 보태쓰라고...
"그럼 ,감사히... 삼 월부터 열심히 일해서 빚 갚을게요 어머니..."
4년내내 큰며느리 큰동서 이름값도 못하고 죄만 짓고 살았는데 이번 설날도 여전히 염치없이
작은동서에게 신세를 졌습니다. 앞으로 갚아야 할 빚들이 많아 올해는 더욱 열심히 살아야합니다.
4년 한국 공백기간의 수업료는 귀국 다음 날 몽땅 다 갚았습니다.
여느 날처럼 아침 운동 나서려 짐 보따리 뒤져 운동옷을 찾는데...보따리 여덟개를 다 뒤져도 그림자가 안보입니다.
갑자기 불안해 지기 시작 곰곰히 생각해보니 짐 보따리 하나 어디선가 분실
급히 인천항 위동훼리 연결 , 무조건 보따리 찾아 달라 신고,몇 분 지나지 않아 걸려온 전화
" 보관되어 있습니다 찾아 가십시요."
후우 ~~~ 놀랜가슴 내려놓고 곰곰히 생각하니 워낙 경황이 없어 보따리 갯수를 세지않고
세관 심사,그 사이 갈비 해프닝에 정신이 더욱 혼비백산 , 출구를 빠져 나오고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세상에 바이올린에 클라리넷에 색스폰 제일 중요한 물건들을 하마터면 실종했을뻔했지 뭡니까?
아들 앞세우고 네비게이션 믿고 열심히 인천고속도로 달려 톨게이트 도착
길맹, 길치 오로지 아들말만 믿고더 빠를것 같은 '하이패스'길을 들어간 것이 ...눈 앞에 게이트가 가로막아 꼼짝 못해
뒤에 차 줄줄이 경적을 울려대고 정신차려 비상 벨 눌러 가까스로 통과
우리끼리는 800원 벌었다 신나서 위동훼리가서 짐찾아 다시 돌아와 저녁상머리,
"아빠 하이패스가 뭐예요? ... 우리 하이패스로 가서 발 묵였어요 몇 분..."
" 왜 ? 그리로 가는데 ... 거기는 하이패스카드 있는 사람들만 통행하는곳인데...벌금 십만원은 나오게 생겼다 ..."
도착날 그 많은 짐 다 싣고 우리 식구 다 탈수 있다고 신났던것도 잠시, 공백의 수업료를 톡톡히 내야하게 생겼으니...
하지만... 그래도 신이 납니다.
길을 걸어도 교양미 철철 ,때깔나는 한국사람들 숲에서 살 수 있어서도 좋고
롯데월드 석촌호수공원을 우리집 정원처럼 산보할 수도 있고
차를 몰고 나가도 무법천지? 중국과는 다르게 마음놓고 운전을 할 수도 있고
한국상품점 들어가 먹고싶은 물건 집었다 놓았다
결국은 큰 맘먹고 겨우 한 두개 가벼운 장바구니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것도,
이제 집만 나서면 한국? 상품 무더기로 살 수도 있고
중국 가 있는 동안 묵혀 놓았던 바이얼린도 배울수 있고 스포츠 댄스도 배울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우리 종환씨 노래도 언제 어디서든 들을 수 있고
꿀꿀한 날이면 신촌 친구 불러 연극도 볼수 있고 , 엄마 보고싶을 때면 무턱대고 엄마보러 갈 수도 있고 ...
더욱 행복한 일은... 24시간 가정 도우미?를 둘이나 두고 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윤기 자르르르 흐르는 밥에 녹색 웰빙 라면, 그리고 먹고 나서 깨끗한 뒷처리,
세탁기 돌리고 마른 빨래개가까지 해결해주는 가정 전문가?를
이 불황의 시기에 둘 이나 고용 할 수 있음 ... 로또당첨보다 더 행복한 일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ㅎ
이제 2월 달의 숙제는 열심히 손 .발 품팔아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는 일입니다.
"우리 나이에 이제는 식당 설겆이 일도 못 한다,근데 너는 우아한? 일을 시작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
친구의 말이 사실인지 아직 피부로 느낌이 없지만 ,
어쨌든 이젠 두 번 째 꿈을 향하여 열심히 살 일만 남았습니다.
22일 귀국 ,설 보내고 정신차리고 나니 이제서야 소식 드립니다.
이제는 서울의 재미난 소식으로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모두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누구의 잘 난 아들이라고 절대 말하면 안됩니다 ㅎ
석촌 백제고분의 하얀 아침
중국의 운동기구와는 절대 차별된 튼튼하고 정교한 석촌호수의 운동기구들
세월의 변천과 함께 우리의 떡국도 칼라시대를 맞았습니다.
석촌 호수 롯데월드 아침 풍경
첫댓글 한국에 무사히 도착하셨군요. 앞으로 장미빛삶을 사시리라 여겨집니다. 부럽군요. 그런데요, 맨마지막 사진요~ 원래 자녀분이 6명이나 되세요? 제가 알기로는 딱 둘인걸로... 출산감소시대에 대단한 일을 하셨군요. 후달달달달달달달달달닭=3=3=3=3=3=3=3=3=3=3=3=3=3=3!!!
잘 들어가셔서 벌써 편안한 보금자리를 보여 주시는 군요. 인터넷이 좋습니다. 언제든 소식이 닿을수 있으니까요. 또 다른 생활로 열심히 사는 모습 지켜 보렵니다..
늘 열심히 살아가는 언니가 부럽기도 존경스럽기도 합니다. 나도 이 다음에 그럴 수 있을까?????
전반부와 후반부의 극적인 전환이 역시 글쓴이의 강점을 잘 표현해 줍니다. 저도 아들핑계로 지난 10월말 들어와 아직까지 한국에 머물다보니 중국에 가서 어떻게 살까가 염려가 됩니다. 특히 인터넷. 오늘 조간신문에 보니 12년도 부터는 기가바이트(1000메가)로 10배로 빨라진다고 합니다. 역시 한국은 인터넷강국으로 가려나 봅니다. 중국은 언제 그렇게 될련지. 한국에서 조국의 탁월한 인터넷 세계에 빠져보시기 바랍니다.
만남은 헤어짐을 낳고 헤어짐은 그리움을 낳고 그리움은 기약을 낳고 기약은 만남을 낳으니 인생사로다.. 험험^*
뭐니뭐니해도 가족이 함께 있는 고향산천이 최고지요? 잘 적응하시니 반갑고도 고맙습니다.
얼마 안가서 "그래, 역시 한국이야~" 할걸요...? 화이팅 !!!
아~벌써 5년, 우리카페 서울모임에 처음 나오셔서 중국에 가야 된다며 포부를 조용히 말씀하셨던 것이 어제 같은데......다시 한국생활 새로운 소식 기대 하겠습니다. 필승님께 안부도...
참 희한한 일이죠..중학생부터때 다녔던 잠실역의 음반가게에 정말 몇십년만에 들어가 주인장언니랑 커피한잔하고 이얘기 저얘기 하던중 친구의 친구가 청도에 사신다고 하며 사진을 보여주는데 ..이..럴..수..가..!!바로 언니더군요. 세상은 넓고도 좁다더니,,착하게 잘 살아야 겠다고 다짐하고 왔어요..ㅎㅎㅎ
^*^ 천만다행이네요. 그 가게서 음반 외상사고 도망갔더라면 끝장나는 일인데 ㅎㅎ, 음악을 좋아해서 자주 들렀지요. 청도 들어가기전 종환씨, 희은언니 익종 오라버니 노래 한 보따리 사왔던 기억이 저 너머로 아스라히 ^*^ 감사합니다^*^
참..편안하겠어. 부럽고 샘나고... 잘 도착했다는 보고서를 읽으며 코 끝이 찡하네요. 엄마 품에서 맘껏 어리광도 피우고, 밀린 잠도 좀 많이 자고.. 그래서 이제 다른 아줌마들처럼 허리둘레도 늘리시길..^^
참 오래도록 님의 글과 사는 모습을 봤습니다. 귀국하신 뒤의 일도 칭다오에서처럼 만사여의로 일로평안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아지트로 돌아와 오랜만에 평온한 일상들입니다. 따스한 사랑으로 ,따스한 눈길로 격려해 주신 가족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제 얼마지나지 않아 또 그곳을 많이 동경할거 같습니다. 그때마다 고마운 님들을 기억하겠습니다. ^*^
하오님 오셨군요,.,영구 귀국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