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왕국 MBC?
오랜만에 만나는 B피디 가족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호주에서는 별 생각 없이 낄낄거리며 교제했었는데 MBC에서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최고참 피디라 그런지 자연스럽게 ‘말년병장’의 권위 같은 것이 느껴졌다. 방송국에서도 주로 인사 받는 위치에 있는 듯 했다. 어쨌든 B피디의 출입증을 앞세우고 MBC에 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주몽의 고향> MBC에 들어온 아이들은 순례자처럼 주몽의 흔적을 찾아다녔다. 오래 전에 끝났는데 아이들은 현실과 드라마를 구별하지 못했다. ‘주몽 어디 있어요?’라는 천진한 질문에 애꿎은 B피디만 곤혹스러워 했다. 보다 못해 내가 나섰다.
“주몽 보려면 MBC가 아니라 SBS로 가야 한단다.”
MBC에서 SBS 타령을 한 것은 <주몽>에서 타이틀롤을 맡았던 송일국이 SBS에서 방영하는 <로비스트>라는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총 들고 다니는 주몽>은 아이들이 감당할 수 있는 그림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주몽을 향한 열정을 벽에 붙은 대형 주몽포스터를 보며 달래야 했다.
방송국은 아이들에게만 꿈의 장소는 아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만나고 싶은 스타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정길, 노주현, 오지명, 임동진, 최수종, 홍학표, 김혜수, 최진실,…’
추억의 한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얼굴들이다. <방송국>은 이런 스타들을 코 앞에서 만날 수도 있는 <마법의 대지>다. 악수라도 한번 한다면? 생각만 해도 짜릿했다. 아이들 앞이라 겉으로는 침작을 유지했지만 내심 은근한 기대감이 느껴졌다.
MBC 방송국 1층에는 TV 스튜디오가 있는데 그 날은 <환상의 짝꿍> 녹화가 진행 중이었다. 나는 평소에 보는 프로가 아니라 심드렁했지만 아이들은 난리가 났다. 비슷한 나이의 어린이가 출연한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듯 했다. 휴식시간에는 김제동, 채린 같은 연예인들이 내 어깨와 불과 30cm 간격을 두고 지나가기도 했다^^ 녹화 후 기념촬영도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준영이가 우는 바람에 모두 녹화장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보영과 채영은 불만을 터뜨렸지만 <가족은 함께 움직이는 것>이라는 원칙을 어길 수는 없다.
<무한도전> 스튜디오도 있었는데 녹화가 없어 그냥 무대만 구경했다. 생각보다 탤런트가 눈에 띄지 않았다. B피디에 따르면 대부분의 드라마를 외주제작하기 때문에 정작 방송국에서 촬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 <드라마 왕국>이라는 MBC에서 정작 탤런트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셈이다.
싱거운 1층 구경을 마치고 B피디 인솔 아래 2층 라디오국으로 발길을 돌렸다. 라디오 연출을 오래 한 B피디 앞이라 내색은 안 했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구경> 온 사람에서 <소리방송>은 그다지 흥미로운 아이템이 아니었다. 한데 예상과 달리 2층에서 드라마 촬영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B피디조차 전혀 모르고 있던 일인데.. 알고 보니 주말드라마인데 주인공이 라디오 방송국 피디라는 것.
숨죽인 채로 촬영장을 살펴 보니 <유호정>과 <대소왕자>가 보였다. 대소왕자? 아니 정확하게는 <주몽>에서 <대소>역을 맡은 남자 탤런트다. 주몽이 없다고 실망했던 아이들은 <꿩 대신 닭>이라고 <대소왕자>에 열광했다. 촬영이 끝나고 다들 <대소왕자> 옆에 가서 기념촬영을 했다. 아이들은 그에게도 ‘주몽은 어디 있냐?’는 곤혹스러운 질문을 빠뜨리지 않았다.
바빠서 가야 한다는 <대소왕자>를 잡기 위해 ‘왕자님! 왕자님!’ 하며 붙잡았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사진을 찍는 데 성공했다. 생각보다 친절했지만 포즈를 잡을 때 아내의 어깨를 꽉 감싸는 것이 약간 엉큼한 데도 있는 듯 했다. 유호정은 너무 키도 작고 호리호리해서 마치 가녀린 젓가락을 보는 듯 했다. 확실히 TV 화면에서는 사람이 더 넓고 두껍게 보이나 보다 했다.
MBC 라디오에서 경험한 흥미로운 사건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