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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K9 3발만 맞았다? 연평도 포격전 ‘80발의 진실’
2023-10-02
중앙일보 이철재 기자
1998년 개발을 마친 뒤 지금까지 1442문이 해외에서 팔린 K9 자주포.
물량도 많고 배치도 오래됐다 보니 실전 경험이 풍부한 게 당연하다.
7월 22일 호주 퀸즐랜드 쇼얼워터 베이 훈련장에서 열린 '탈리스만 세이버' 다국적 연합훈련에서
한국 해병대의 K9 자주포가 시범 사격을 하고 있다. 사진 호주 정부 홈페이지
K9이 전쟁터에서 맹활약하면서 이젠 예상하지 못했던 국제적 이슈가 등장할 정도다.
지금도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엔 어김없이 K9이 배치된다.
한국에선 2010년 연평도 포격전만 떠올리는데,
K9은 이미 한반도를 벗어나 지구촌 곳곳의 전장에서 전투를 치르고 있다.
각국에 수출된 K9의 형제들이다. 어디에서 였을까.
글 싣는 순서
◦ 무인기와 함께 적 기계화 부대를 섬멸
◦ 대전차 지뢰에도 끄떡없는 튼튼함
◦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 실전 전투력, 연평도서 보여줬다
◦ 베스트셀러 K9이 안긴 이슈
무인기와 함께 적 기계화 부대를 섬멸
2020년 2월 27일(이하 현지시간).
내전이 한창인 시리아의 이들리브에서 시리아 정부군과 튀르키예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당시 시리아 정부군이 100대가 넘는 전차·장갑차 등을 이끌고 이들리브의 튀르키예군 점령 지역을 공격했다.
튀르키예군은 이에 맞섰다.
2020년 2월 12일 시리아 북부 이들리브에서 튀르키예 장병이 T-155 프르트나 옆에 대기하고 있다.
프르트나는 K9의 기술과 구성품으로 튀르키예가 생산한 자주포다. AFP=연합뉴스
2011년부터 이어진 시리아 내전은 국가·세력들이 복잡하게 얽혀 좀처럼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시리아와 맞닿은 튀르키예는 2019년 10월 9일 시리아 북부의 쿠르드족 자치정부인 로자바를 상대로
군사 작전을 시작했다. ‘쿠르드족 테러단체의 근거지를 뿌리 뽑겠다’는 명목의 ‘평화의 샘’ 작전이었다.
쿠르드족 자치정부(로자바)는 시리아 정부에 SOS를 쳤다.
이들리브 전투에서 튀르키예군은 공군 전투기를 투입하진 않았다.
시리아 정부의 배후인 러시아와 갈등이 확대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대신 바이락타르 TB2와 앙카-S 등 무인 항공기를 보내 시리아 정부군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했다.
또 무인기로 시리아 정부군을 공격해 대형을 끊어놨다.
K9의 튀르키예 동생인 T-155 프르트나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프르트나의 일제 사격이 시리아 정부군 기계화 부대 위로 쏟아졌다.
100대 가까운 기갑 차량이 파괴됐고, 2200명이 전사했다고 튀르키예는 주장했다.
이들리브 전투의 피해 상황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적은 없다.
다만 T-55·T-62·T-72 등 전차, BMP-1 보병전투장갑차, 판치르-S1·ZSU-23 단거리 방공 체계,
2S1·2S3 자주포 등 시리아 정부군의 수십 대 차량 잔해가 담긴 영상이 공개됐다.
이 전투의 수훈갑은 무인기와 함께 프르트나가 꼽힌다.
미국의 포브스는 “무인 감시 자산이 21세기 군사 작전에서 다양한 형태의 장거리 포병 전력을 새롭게 부각하고
있다”며 “튀르키예가 직접 사격 없이도 이처럼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프르트나는 수니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IS)를 소탕하는 ‘유프라테스의 방패’ 작전(2016~2017년)에도 참전했다.
그러나 ‘태양’ 작전(2008년), ‘올리브 가지’ 작전(2018년), ‘발톱’ 작전’(2020~2021년) 등
대부분 이라크·시리아의 쿠르드족을 공격하는 데도 프르트나가 앞장섰다.
프르트나가 중동의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을 ‘탄압’하는 도구라는 비판이 높아진 배경이다.
2020년 2월 27일 시리아 북부 이들리브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튀르키예 T-155 프트르나가 쏜 포탄이 목표를 타격하고 있다. 사진 튀르키예 국방부
2020년 2월 27일 시리아 북부 이들리브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튀르키예 T-155 프트르나가 쏜 포탄이 목표를 타격하고 있다. 사진 튀르키예 국방부
프르트나는 300대 넘게 생산될 계획이었지만, 280대에 그쳤다. 독일이 뒤에서 움직인 것이었다.
독일은 프르트나, 그리고 K9의 심장인 파워팩을 공급하는 국가다.
국제 여론의 눈치를 봐 프르트나 파워팩의 공급량을 줄였다는 후문이다.
대전차 지뢰에도 끄떡없는 튼튼함
K9의 폴란드 사촌동생인 AHS 크라프는 우크라이나에서 지금도 전투를 치르고 있다.
AHS 크라프는 K9 차체에 영국제 AS-90 자주포 포탑을 얹은 자주포다.
폴란드가 지난해 5월부터 AHS 크라프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고 있다.
최소 72문이 우크라이나에 보내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10월 20일 우크라이나 병사가 도네츠크에서 폴란드제 AHS 크라프를 몰고 있다.
이 자주포 차체는 K9의 것이다.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군의 AHS 크라프 평가는 좋다. 사거리·정확성·기동성이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아, 영국제 포탑만 칭찬한 게 아니었다. 극한 조건에서 주행 장치의 신뢰성과 내구성이 높다고도 치켜세웠다.
K9 차체 얘기다.
우크라이나 공개정보(OSINT)에 따르면 AHS 크라프가 2022년 7월에 대전차 지뢰를 밟아 파괴됐는데,
사상자는 없었다. K9 차체가 튼튼하다는 소리다.
일각에선 발사 후 남은 추진장약에 불이 붙어 일어난 폭발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승무원이 무사한데 궤도와 보기륜(바퀴)이 심하게 부서진 것으로 봐
대전차 지뢰가 원인이라는 설명이 설득력을 더 얻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AHS 크라프의 성능에 만족해 폴란드에 54문을 더 주문했다.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앞으로 K9이 실전 기록을 추가할 가능성이 큰 나라가 인도다.
인도는 2017년 100대의 K9을 현지에서 생산하기로 계약했다.
바지라(인도어로 벼락)라는 별명까지 붙였다.
2020년 1월 6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공화국의 날'(제헌ㆍ건국절) 71주년
시가행진에서 육군의 K9 바지라가 이동하고 있다. 사진 인도 국방부
2019년 카슈미르에서 인도·파키스탄 국경 분쟁이 일어났다.
이 분쟁에서 인도의 K9 바지라와 파키스탄의 SH-15가 포격전을 벌였다는 소문이 있다.
SH-15는 중국의 차륜형 자주포인 PCL-181의 수출형이다.
인도 무관을 지낸 김철환 방위사업교육원 전문교수는
“당시 K9은 인도 육군 포병학교에서 전력화 과정을 진행 중이었다.
카슈미르로 이동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인도는 K9 바지라의 추가 주문을 적극적으로 검토 중이다.
인도는 또 2021년 라다크로 K9 바지라를 보냈다.
인도는 라다크 국경지대에서 한 해 전인 2020년 중국과 충돌했다.
동태가 심상찮은 지역엔 어김없이 인도의 K9 바지라가 나타난다는 뜻이다.
K9 바지라가 카슈미르나 라다크와 같은 고산 지대에서도 기동성이 좋은 데다,
강한 화력으로 목표를 정확히 타격할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실전 전투력, 연평도서 보여줬다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34분쯤 서해 연평도 하늘에서 갑자기 무엇인가 날아가는 소리가 들린 뒤
여기저기서 폭음과 함께 연기가 치솟았다. 북한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포격전이었다.
해병대 연평부대는 13분 후 반격을 시작했다.
전투에선 선제공격이 승패를 좌우한다.
대체로 기습을 당한 쪽이 큰 상처를 입고 패배한다.
그럼에도 한국 해병대는 연평도에서 기습에 맞받아치는 대단한 무훈을 보여줬다.
연평 포격전 당시 무도 탄착점. 군사시설 건물과 막사(생활관) 근처에 모여 있다. 자료 합동참모본부
연평도에 배치된 K9 6문 가운데 3문이 포문을 열었다.
1문은 이미 불발탄 문제로 고장이 난 상태였고, 2문은 포격에 손상을 입었다.
원점(공격을 시작한 곳)을 몰라 일단 무도(연평도서 14㎞ 거리)의 방사포 진지로 50발을 쐈다.
긴급 수리한 1문이 추가됐다.
3시11분쯤 북한의 2차 포격이 이어졌고, 해병대는 맞받아쳤다.
이땐 대포병 레이더가 작동해 북한의 공격 지점이 웅진 반도의 개머리(연평도서 17㎞ 거리)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원점을 향해 K9이 30발을 쐈다.
이후 인공위성 사진으로 확인한 결과 무도에선 15발, 개머리에선 30발의 탄착점이 나타났다.
무도에선 2발이 군사 지원시설로 보이는 건물과 10m 지점에 떨어졌고,
또 1발은 생활관 25m 지점을 타격한 것으로 보였다.
당시 야당은 80발 중 실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지점에 떨어진 포탄은 2~3발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정치적 공세에 불과하다. 군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탄공(포탄이 떨어져 생긴 구멍)이 45개로 보인다고 45발만 탄착한 것은 아니다.
사격 훈련 후 탄착 지점에 가보면 2~3발이 1개의 탄공에 모여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K9처럼 정밀한 사격을 하는 자주포라면 특히 더 그렇다.
그는 이어 이렇게 얘기했다.
무도는 크게 당했을 가능성이 컸을 것이다.
무도는 유사시 주요 목표로 선정한 곳이라 사격 제원을 이미 갖고 있다.
반면에 대포병 레이더가 알아낸 개머리 원점의 좌표는 원래 북한군 기지에서 좀 떨어진 임시 진지였다.
그래서 논밭으로 보이는 지점에 포탄들이 탄착했다.
당시 풍속 등 기상 정보를 입력하지 못해 약간의 오차는 있을 수 있다.
이후 탈북자의 진술에 따르면 북한군의 인명 피해는 10여 명 사망에 30여 명 부상이었다. K9은 잘 싸웠다.
연평도 해병들은 피격을 무릅쓰고 목숨을 걸고 받아쳤다. 정치권 일각에서 이를 폄하했을 뿐이다.
베스트셀러 K9이 안긴 이슈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영화 ‘스파이더맨’에 나오는 대사다.
힘이 세다고 제멋대로 쓰면 언젠가는 그 대가를 치를 수가 있으니 적절한 선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다.
영어 원문은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핀란드 육군 장교들이 K9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핀란드 육군
K9이 전 세계 베스트셀러 자주포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 때문에 당초 생각지도 못 했던 이슈가 조금씩 등장하고 있다.
2019년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아덱스ㆍADEX) 때
진보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꾸려진 아덱스 저항행동은 “전쟁장사 멈춰라”는 구호를 외치며
피 묻은 가짜 지폐를 공중에 뿌리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들은 특히 튀르키예가 T-155 프르트나로 쿠르드족을 상대로 한 군사 작전과
시리아 내전에 동원하면서 민간인까지 피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전쟁에서 윤리는 사치다.
그럼에도 K9이 지구촌 전장의 주력 무기가 되면서
국제사회의 선도국이 되려는 한국에 새로운 이슈가 만들어졌다.
한국의 방위산업은 요즘 ‘민주주의 무기고(Arsenal of Democracy)’라는 브랜드 인지도를 쌓고 있다.
잘 나가는 K9이 한국에 묵직한 고민거리를 안겼다.
관심
중앙일보 국방선임기자 겸 군사안보연구소장
중앙일보 국방선임기자와 군사안보연구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한반도와 주변의 안보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빠르고 정화하게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격주로 '이철재의 밀담'으로 여러분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또 매달 '전쟁과 평화'로 찾아뵙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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