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8주간 금요일
제1독서
<우리가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두었고 여러분도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1,11-14
형제 여러분, 11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
12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13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위한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게 되었을 때,
약속된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14 우리가 하느님의 소유로서 속량될 때까지,
이 성령께서 우리가 받을 상속의 보증이 되어 주시어,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1-7
그때에 1 수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서로 밟힐 지경이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바리사이들의 누룩 곧 위선을 조심하여라.
2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3 그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에서 한 말을
사람들이 모두 밝은 데에서 들을 것이다.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속삭인 말은 지붕 위에서 선포될 것이다.
4 나의 벗인 너희에게 말한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5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지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바로 그분을 두려워하여라.
6 참새 다섯 마리가 두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하느님께서 잊지 않으신다.
7 더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의 강론말씀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오늘 주님의 가르침은 바사이들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시고
숨겨진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축소 또는 은폐하려는 종교적 압력을
겨냥해서 하시는 말씀으로 우리는 해석합니다.
당시 예수님과 제자들은 소수이고 힘이 없었고
유다인들은 다수이고 그 세력이 막강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주님의 가르침을 당당하게 사람들에게 전하라고 당부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에서 한 말을 사람들이 모두 밝은 데에서 들을 것이다.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속삭인 말은 지붕 위에서 선포될 것이다.
나의 벗인 너희에게 말한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루카 12,3-4)
그래서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세력을 두려워하지 말고
바로 하느님의 뜻을 존중하고 따르라고 독려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해 주시는 말씀의 주제는 이
세상에 힘 있는 세력, 그것이 사람이 쥐고 있든, 아니면
돈이 쥐고 있든 그 앞에서 기죽고 살지 말라는 말씀이시지요.
예수님 당시에는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의 위세는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 말씀을 해석할 권한을 잡고 있었지요.
심지어는 사두가이와 합세해서 성전을 배경으로 최고
종교회의 산헤드린(סנהדרין)은 재판기구의 배경은 종교지도자들이 백성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기반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그들의 눈치를 볼 뿐만 아니라
그 앞에서 허리고 굽혀야 할 정도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의 어떤 권력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르십니다.
비록 세력이 세상에서 나를 좌지우지하며 생명까지 위협하고
육신을 죽이는 힘이 있어서 두려울 수는 있지만
그러나 그 앞에 굴복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실 하느님을 바라보며 의지할 수 있는 사람만이
세상의 세력 앞에 주님처럼 당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만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을 거두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태어난 인간은 하느님 안에서 사랑 받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참새까지도 먹이시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아끼시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그래서 주님께서 하느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근심 걱정으로 사는 우리에게 위로의 말씀을 해 주십니다.
“참새 다섯 마리가 두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하느님께서 잊지 않으신다.” (루카 12, 6)
우리가 살면서 우리를 괴롭히는 것 중에 하나가 심리적인 ‘걱정과 두려움’일 것입니다.
그런데 퍼센트 비율이 다 맞는 것은 아니지만
심리학자 어니 젤린스키의 걱정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대략 40%는 절대로 현실로 되지 않는 것이라고 하지요.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걱정, 22% 사소한 걱정거리이고요.
또 4%만이 어쩔 수 없는 것이고
4%는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걱정거리라고 하네요.
그러고 보면 우리는 많은 경우에 안 해도 되는
걱정과 근심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두려워 할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가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겠지요.
흑인으로서 미국의 최초 합참의장과 국무장관을 지냈던
자마이카 출신 콜린 파월(Colin Powell)의 좌우명 중에 다음과 같은 말들이 생각납니다.
“좋지 않는 일이 생기더라도 생각만큼은 나쁘지 않다.
아침이 되면 더 좋아질 것이다.”
그리고 “무슨 일을 만나거든 항상 낙천주의로 임하라.
낙천주의가 당신의 내적인 힘을 키워준다.”라는 말을 했지요.
신앙인은 희망을 가꾸는 사람이지요.
그는 반대를 받고 슬픈 일이 있더라도 긍정적인 사고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에게 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돌아가신 주님의 손길이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캄캄한 어두움을 지날 때가 있는데 작은 빛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그 빛은 기도답지 않은 짧은 기도도 될 수 있고다고요.
우리는 매일 나름대로 허둥대며 살 때가 많습니다. 해야 하는 일,
만나야 하는 사람들, 이것 갚고 저것 쓰려면 빠듯한 예금통장의 잔액이 있습니다.
그리고 해야 할 업무들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때로는 의미도 없는 일상생활에서 익숙하다 못해 길들여지는 우리의 모습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지하철에 몸담은 승객처럼 ‘어느 역에 내리세요’라는 말에 따라하다 보면
아무 생각 없이 집에 도착합니다. 아침에는 그 반대이고요.
그런데 다행인 것은 우리가 하느님을 알고
또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신앙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하느님 모상’으로
하느님 사랑으로 창조되었다는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됩니다.
선물은 어떤 댓가가 아니라 거저 주어지는 것이기에
사실 우리는 하느님 앞에 할 말은 없지요.
우리에게 수십 억 년 그것도 숫자로도 헤아릴 수조차 없는
그런 세월 속에서 이 땅에 이 시대,
그리고 우리가 오늘을 살고 있다는 것도 생각해보면 신비 중의 신비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베풀어 주시는 은혜들에 감사드리는
신앙인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출처: 구름 흘러가는 원문보기 글쓴이: 말씀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