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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공위성과 컴퓨터를 이용한 '위 게임; 형식으로 진해된 한ㆍ미 연합군의 컴퓨터 가상 훈련. '엠팻' 회의는 컴퓨터 가상 훈련을 기본으로 삼고있다. |
‘엠팻’훈련은 태평양 연안국가들의 대규모 자연재해, 내란 등 긴급사태 발생시 다국적의 효과적인 지원 방안을 수립하기 위한 것. 미 태평양사령부가 주도해 지난해부터 실시되고 있다. 이번 훈련은 태국, 필리핀에 이어 3번째로, 미 태평양사령부와 한국 합동참모본부가 공동 주관하며 합참 소장이 최고책임자(사령관)가 된다.
참가국 중 한미 양국군이 약 100명으로 가장 많이 참가하며 중국군 장교도 처음으로 참석한다. 한미 양국군의 경우 정보,작전,군수,공병 등 각 분야 장교들이 망라돼 참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와 합참은 이번 훈련이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고 의도적으로 평가절하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두 가지 점에 주목하고 있다. 우선 한반도 재난사태에 대해 다국적군이 투입돼 지원하는 상황을 처음으로 상정한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한반도 재난상황과 다국적군을 연계한 훈련은 없었다.
또 하나는 대량 난민의 남한 상륙 등 대량 탈북(脫北)난민을 연상할 수 있는 대목이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훈련 시나리오에 따르면 제주도 남서쪽 200㎞ 해상에 있는 ‘파랑도 공화국’이라는 가상국가(인구 180만)가 초대형 태풍과 지진으로 통제불능 상태에 빠져 10만명의 난민이 우리나라 서남해안으로 상륙하는 것으로 돼있다. 남한 정부는 이에 따라 군산,목포, 제주 등에 난민캠프를 설치, 이들을 수용하는 것으로 돼있다.
●중국군 장교도 처음으로 참석
이 때문에 이번 훈련이 궁극적으로는 대량 탈북난민 발생 등 북한 급변(急變)사태에 대한 다국적군 지원방안을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해 국방부와 합참은 “북한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펄쩍 뛰고 있다. 이번 훈련이 조선일보에 처음 보도된 뒤 “특별한 훈련이 아니다”라고 평가절하하고 나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가 소강상태인 남북대화의 불씨를 어떻게든 되살려보려고 애쓰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이번 훈련이 혹시 북한을 자극,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 2001년 2월 방콕에서 열린 '엠팻' 회의. 가상 국가에서 긴급사태 발생시 다국적군 지원방안을 논의했다. |
또 당초 미 태평양사령부가 만든 시나리오엔 파랑도 공화국의 인적 구성이 한국계 60%, 중국계 30%로 설정돼 있었으나 우리 합참이 이를 빼버린 것도 북한과 연결지을 수 있는 소지를 줄이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군 당국은 이번 훈련이 북한은 물론 한반도 전체 상황과도 무관하다고까지 주장하고 있으나 시나리오를 보면 그 주장이 얼마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식의 해명인지 알 수 있다. 시나리오는 이런 줄거리다. 이 시나리오는 미 태평양사령부 관련 웹사이트에 떠있는 것으로, 우리 군 당국은 그동안 시나리오를 대외비(對外秘)로 간주, 보안을 유지해왔다.
<8월4일 초대형 태풍 ‘돈(dawn)’이 파랑도 공화국을 강타, 수천명의 이재민이 발생한다. 8월25일엔 강진(强震)이 파랑도 공화국에서 발생, 주택 대부분이 파괴되고 국가 치안시스템이 붕괴된다. 이에 따라 상당수 주민들이 보트로 탈출, 한국 서해안에 상륙한다.
9월10일 현재 약 10만명의 난민이 한국 해안에 상륙하며 한국 정부는 유엔과 협력해 군산,목포,제주에 난민 캠프를 설치한다. 목포에 7개 캠프(3만명), 군산에 5개 캠프(2만5000명), 제주에 8개 캠프(4만5000명) 등이다. 유엔이 파랑도 공화국과 한국에 대한 국제적 지원을 호소하는 가운데 9월22일 초대형 태풍 ‘나리’가 파랑도와 한국 남서쪽을 강타할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나온다.
9월24일 한국 정부는 유엔을 통해 가용(可用)한 다국적군을 포함,국제적 지원을 요청한다. 9월27일 태풍 ‘나리’가 파랑도 공화국과 한국 서해안을 강타, 영산강과 만경강이 범람하고 난민 캠프를 파괴한다. 한국에선 17만5000명, 파랑도 공화국에선 2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한다. 10월1일 한국이 주도하는 다국적군 ‘태스크 포스 희망’ 사령부가 대구 2군사령부 지역에 설치된다. 주한미군은 다국적군에 직접 포함되지는 않지만 다국적군 사령부에 소속 참모들을 파견, 지원한다. 주한미군 공항과 항만 시설도 다국적군에 지원된다.>
지금까지 대량 탈북난민 등 북한 급변사태에 대해선 한국군 단독 또는 한·미 양국군이 함께 주도적으로 사태를 수습하는 것으로 계획이 짜여져 있기 때문에 다국적군이 등장하는 이번 훈련은 매우 흥미로운 것이다. 군의 한 전문가는 이와 관련, “북한 붕괴 등으로 인한 한반도 통일과정에서 중국,일본,러시아 등 미국을 제외한 주변 강국의 입장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을 모두 포함하는 다국적군 형태로 사태를 수습하는 것도 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부는 국가정보원(구 안기부) 주관으로 80년대부터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계획을 부처별로 마련했으며, 한미 양국군은 이와 별개로 군사적인 차원에서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비밀계획을 지난 99년 수립했다. 한미 양국군이 2년여 동안의 비밀작업 끝에 마련한 이 계획은 ‘개념계획 OOOO’으로 불린다. ‘작전계획 5027’이 전면전을 상정한 본격적인 전쟁계획인 데 비해 이 계획은 대량 탈북난민, 내전(內戰), 대량살상무기 대응 대책 등 전쟁이외의 군사작전(OOTW;Operations Other Than War)에 대한 계획이다.
●미군 장성 “통일과정 관련 주목할 필요”
군 당국은 이 계획의 존재 자체도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자세한 내용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러나 관련 전문가들에 따르면 ▲10만~200만명의 난민이 발생해 휴전선 등 육상과 해상, 공중을 통해 한국과 중국, 러시아로 탈출하는 상황 ▲핵·생화학무기와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의 해외 밀반출 및 사용 억제 ▲북한내 대규모 자연재해에 대한 의료,복구지원 등 인도주의적 지원작전 ▲쿠데타 등으로 인한 내전 상황에 대한 대응 등이 이 계획에 포함돼 있다고 한다.
지난 98년 발간된 국방백서는 이 계획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한미 양국군이 북한 급변대책을 발전시키고 있음을 공개적으로 밝혀 눈길을 끌었다. 종전에 2급 비밀로 분류돼 있었던 이 내용은 고위 당국자의 과감한 ‘결심’으로 처음으로 공개됐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뒤 발간된 국방백서에선 사라져 찾아볼 수 없다.
‘북한 불안정(급변) 사태는 남북한뿐 아니라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 지역의 안정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며, 특히 우리에겐 북한으로부터의 대규모 난민 발생도 국가안보에 결정적인 위협으로 나타날 수 있다. 군은 이러한 북한 불안정 사태시 북한 내부사태가 한반도 전체로 확산되지 않도록 전쟁억제 및 접경지대 봉쇄, 질서유지 등을 포함한 대응조치 계획을 발전시키고 있다.
특히 한미 양국은 97년12월 제29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합의된 ‘한반도 내 불안정사태시 한미 대응지침’에 따라 예상되는 북한 상황에 대해 능동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여기엔 대량 탈북주민에 대한 대책과 북한내 인도주의적 지원작전, 대량살상무기 사용통제를 위한 계획 등이 포함돼 있다.’
군 당국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번 훈련은 북한 급변사태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주한미군의 한 장성은 “이번 훈련은 북한 붕괴 등을 통한 한반도 통일과정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매우 많으며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