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는 특별히 홈런을 많이 허용하는 투수는 아니지만, 유독 역사에 남을 홈런만은 거의 독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첫 시작은 고교 시절이던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봉황대기 16강에서 명문 휘문고를 상대로 등판한 공주고의 박찬호는 당시 고교 스타이던 박정혁(조성민의 국내 에이전트 사업을 추진하다가 교통 사고로 작고)에게 3회와 6회, 그리고 8회에 걸쳐 3연타석 홈런을 얻어맞는 수모를 당했다.
박찬호에게 빼앗은 봉황대기 사상 최초의 3연타석 홈런을 시작으로 박정혁은 다음날 진흥고와의 경기 첫 타석에서 홈런을 때려내며 한국 고교야구 사상 최초로 4연타석 홈런을 기록했으며 4경기 연속 홈런과 대회 최다 홈런(6개) 기록을 세웠다.
세상을 등진 미래의 홈런왕, 박정혁.
1989년 봉황대기에서 홈런 7개로 그당시 고교야구 역대 1위 홈런킹을 차지했던 선수가 바로 박정혁이다.
그 중 3개를 3연타석 홈런으로 당시 무명이었던 박찬호 선수에게 뽑아내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고교야구 최고의 유망주라는 찬사를 받으며 휘문고에서 고려대로 진학한 박정혁은 어이없게도 학교 선배의 기합을 받는 중 허리를 잘못 맞아
선수생명이 끝이 난다. 그는 선수 생활을 접은 후에 스포츠 매니지먼트 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중 아쉽게도 2000년 겨울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말았다
박정혁선수 정말 안타깝죠...제가 고등학교때 매스컴에서 크게 앞다투어기사를 썼던 선수들..투수의 위재영,안희봉,문동환...타자의 박정혁,강혁...그후로 세월이 흘러 박정혁선수는 저의 기억속에서도 점차 잊혀져가는 선수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저또한 박정혁선수가 프로에와서 크게 활약할거라 의심치 않았지만 고대진학후 박정혁선수의 얘기가 쏙 들어가더군요...다른 몇몇의 선수처럼 고등학교때 반짝하고 점점 잊혀져가는 선수구나하고 생각하다 우연히 박정혁선수가 생각이나서 인터넷을 뒤져 보니 바로 이렇게 됐더군요...참 안타깝죠? 제실력도 제대로 펴보지못하고 세상을 등진 박정혁선수...고인을 명복을 빌며서 우리에게 조금씩 잊혀져간 선수지만 이렇게나마 제나름대로 재조명 해보았습니다. 비록 젊은 선수시절이었지만 고등학교때 보여준 그의 가공할 파괴력은 야구를 사랑하는 우리들기억속에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박정혁선수처럼 저에게서 잊혀져간 선수 몇명....신일고의 설종진..배명고의 노상진(정확한가는...)암튼 이영민타격상도 받으며 고교야구를 주름잡던....신일고의 강타자 강혁.대전고의 안희봉등등...여러선수들이 떠오르네요
휘문고 박정혁.......
90년도였구나.
팬이라며 찾아간 여고생 둘에게 강남 버스 터미널 근처 빵집에서 커피 안된다며, 쥬스 두 잔을 시켜주고,
백문 백답 대답을 해주던 선수.
집안끼리 잘 알아 이미연과도 잠시 사귀었다는 얘기도 해줬었다.
그때는 왜 사진 찍어 남길 생각도 못했었을까.
90년대... 중고등학교 다닐때, 한창 야구를 좋아한 적이 있었다.
주말이면 야구 중계도 빠짐없이 보고,
고교야구도 잘 보곤 했는데, 생각해 보면, 당시 농구를 좋아하던 다른 애들하고는 조금 달랐던 거 같다.
그때, 프로로는 삼성의 김성래 선수를 좋아했고,
봉황대기에서 눈부신 활약을 했던 박정혁 선수를 무쟈게 좋아했다.
또 생김도 당시 여학생지에 실릴 만큼, 뽀사시 멋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 진짜 사진 한장 남질 않았네.)
그해 봄, 고려대에 입학했단는 단서 하나 잡고,
고려대 야구선수 합숙소에 전화해서 집 전번을 알아냈나? 암튼, 박정혁 선수와 통화를 하고,
한번 보고 싶은 생각에 만나자는 약속까지 했었다.
시골 십대 치고 한 번 생각하면 해야 하는 성격에 무작정 상경에 성공을 했다.
그날 아침, 중고등학교 동창인 영주(? 이름도 가물)와 함께 서울을 올라갔던 기억이 아직도 또렸하다.
그런데......
그가 죽었구나.
그것도 7년이나 전에......
가끔 프로 야구 소식이 나면,
왜 박정혁이라는 이름이 나오질 않을까..
그때, 질문 중에, 10년 뒤에 무엇이 되어 있을까.. 라는 비슷한 질문에,
미국에 40이 넘었는데도 혼자 계시는 이모가 계시다고,
그쪽으로 가서 공부해서 지도자의 길을 가고 싶다는 얘기를 했던 것도 같아서,
아, 운동 계속 안하고 공부를 하고 있나? 하는 생각도 잠시 했었다.
결국은 세상에 없던 거다.
아직도 여학생 잡지에서 상반신 컷을 실었던 그의 사진이 눈앞에 가물가물 떠오른다.
동창인 상희가 그 사진을 보고, 빠졌던 기억이 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첫댓글 설종진 선수 기억나네요. 박찬호가 가장친한 선수로 꼽았고, 예전 ITV에서 박찬호에 대해 다룬 다큐멘터리에 출연했었죠.
고교야구는 잘 몰랐지만..제가 보았던 몇안되는 고교야구 경기중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이 저 때 휘문고의 4번타자였는데..이름도 기억안나고,엄청난 공격력과 안경을 쓴 미남형얼굴만 기억에 남아있었는데..박정혁이란 이름을 들으니 기억들이 조금씩 떠오릅니다..정말선수생활이 어처구니없이 끝났네요..
현대가 태평양돌핀스를 인수하며 현대유니콘스로 프로야구에 뛰어들기 이전..원래는 90년대 중반에 실업야구팀 현대피닉스를 창단했었죠..그때 현대피닉스로 간 대학의 기라성같은 스타들이 많았는데..이후 프로에 와서도 그리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거나,연고구단의 선택을 버리고 돈을 보고 현대행을 택한 '괴씸죄'와 여자저차 선수생활이 꼬이면서 사라진 선수들이 많습니다..안희봉이 대표적인 케이스죠..문동환과 조경환은 여차저차 연고구단인 롯데에 자리를 잡았지만,대학시절의 명성에 비하면 아쉬웠죠..강혁도 현대피닉스와 OB사이의 이중계약 파문에 휘말리면서,프로에서 아예 못 뛸뻔 했었죠..겨우 프로에 와서도 기대엔 못 미쳤고.
김재걸도 확실친 않지만 삼성과 현대 피닉스 사이의 이중계약으로 인해,루키시즌 말미에서야 뛸수 있었던 걸로 기억하고..그 즈음엔 이중계약으로 인해 시끄러운 선수들이 좀 있는 편이었죠..임선동(LG와 주니치 드래곤즈)과 손지환(LG와 연세대)이 떠오릅니다..이후 소리없이 현대피닉스 사라지고 실업야구라는 판 자체가 유명무실해진 것을 감안하면,당시 현대가 왜 실업야구 팀을 창단하려 했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현대그룹은 정주영 회장의 숙원으로 야구계 진입을 계속 희망해왔습니다 그래서 MBC청룡 인수설도 있었고 쌍방울을 인수하겠다는 말도 나왔었죠 하지만 기존 구단들이 현대의 무지막지한 자금력 투입을 두려워해 진입 장벽을 치자 현대쪽에서 열이 받아 만든게 현대 피닉스입니다 차후 다른 기업들을 규합해 또 다른 프로리그를 만들겠다는 구상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잘나가던 아마 유망주들을 엄청난 계약금으로 영입했고 후에 제2프로리그 창단에 참여하는 기업들끼리 드래프트로 나눠갖기로 계획을 짰습니다만 태평양의 인수의사 타진이 있었고 구태여 힘들여 제2리그를 만드느니 와서 받아달라고 하는 태평양을 인수하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고 그래서 현대 피닉스는 거기서 끝납니다 현대그룹에서 현대 피닉스로 실업야구의 부활을 꾀한건 아니죠
김재걸도 이중계약 맞습니다. 현대는 자기네가 나중에 프로팀을 만들기 전에 미리 현대피닉스로 싹쓸이 해놓은뒤 프로팀 만들면 그선수들 고스란이 데려갈 심산으로 그랬겠죠.
빠따때린 선배 깜방이나 가버렸으면..저런 천재타자가..참 아쉽네요..
언뜻 강동원 필도 나네요. 안타깝군요..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이승엽을 능가하는 대타자가 되었을수도 있겠죠.
참... 아까운 선수들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