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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3일 밤, 반헌법적인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윤석열은 대통령실에서 긴급 발표를 하겠다고 했고, 기습적으로 특별 담화 생중계가 진행되었다. 이는 TV, 신문 기사 등의 매체를 통해 급속히 퍼졌으나 수어통역은 제공되지 않았고 문자통역 또한 제한적이었다.
소식을 먼저 접한 농인의 자녀인 코다 (CODA, Children of Deaf Adults의 줄임말)는 급박히 농인 부모에게 연락해야 했다. 혼란스럽게 전개되는 상황을 농인 부모가 손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과격진압으로 사망한 농인 김경철 씨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딸의 백일잔치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공수부대원을 마주쳤다. 다른 비장애인들은 소리를 지르며 달아났지만 그는 소리를 들을 수 없어 상황 파악이 어려웠다. 장애인증을 내밀자 공수부대는 “꾀를 쓴다”며 그를 무차별적으로 구타하고 연행했다. 다음 날, 김경철 씨는 뇌출혈로 사망했고 광주·전남 지역에서 계엄군의 과격진압으로 사망한 최초의 희생자가 되었다.
우리 코다는 ‘계엄’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다급하게 도망치는 이들 사이에서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는 이유로 얻어 맞는 농인과 각자의 농인 부모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6시간 만에 비상계엄은 종료되었지만 농인을 포함한 장애인, 사회적 소수자에게 닥친 공포는 여전히 남아있다. 계엄과 같은 비상 상황에서 소수자의 인권은 가장 먼저 위협받는다. 반헌법적 계엄이라는 엄중한 사태를 둘러싸고 수어·문자통역 등의 장애인 정보접근성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은 장애인의 시민권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을 고스란히 비춘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정부는 장애인뿐 아니라 시민 모두의 정당한 알 권리를 침해했다. 재난 상황에 국민 모두에게 전달되는 재난문자가 비상계엄 선포 당시에는 발송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재난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밝혔지만 이는 국민의 생명, 인명과 자산 피해가 우려되는 명백한 긴급 상황이었다. 농인 등의 장애인에게 이러한 권리의 배제로 인한 소외와 혼란은 일상이다.
현재 농사회에서는 비상계엄 당시 수어·문자통역이 왜 제공되지 않았는지에 대해 비판하기보다는 비상계엄이 무슨 뜻인지 설명하는 영상만이 주로 공유되고 있다. 이는 음성언어 중심 사회,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농인과 같은 언어적 소수자가 정보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있으며 그들의 알 권리가 보장되고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청인들이 비상계엄 이후 무엇을 해야 할지 논의하고 행동에 옮길 때, 농인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여전히 설명을 필요로 하고 있는 실정이다.
재난과 참사가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은 것처럼 계엄이라는 무게와 강도 역시 모두에게 같지 않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민주적 소통 공론장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사유할 때다. 절차를 무시한 반헌법적인 비상계엄이라는 문제와 함께 농인을 포함한 장애인, 사회적 소수자, 그의 가족이 처한 막막하고 참담한 현실을 함께 보완할 것을 요구한다.
1. 정부는 장애인을 포함한 전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라. 모든 정부 브리핑에 수어통역사를 대동하여 농인의 정보접근권을 보장하라. 방송사는 현장의 수어통역을 화자와 함께 그대로 송출하라. 농인을 포함한 장애인, 언어적 소수자, 사회적 소수자를 위해 문자통역 역시 필수로 송출하라.
1. 정부와 언론사는 재난, 참사, 계엄과 같은 긴급 상황 시 다양한 사회구성원이 정보를 신속하고 원활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기존의 매뉴얼과 가이드라인을 점검하고 수립하라.
한국 코다들의 모임이자 네트워크인 코다코리아의 구성원들은 계엄과 같은 비상 상황에서 개별적으로 농인 부모를 돌보는데 그치고 싶지 않다. 모두의 알 권리와 인권을 보장하고 서로를 돌보는 일은 성숙한 민주주의 정부와 사회의 몫이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요구가 실현될 수 있도록 뜻을 같이 하는 단체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행동을 조직하고 계획할 것이다.
2024년 12월 6일
코다코리아 CODA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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