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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가 뜨다-직지강설 출판기념회 스케치-
#1
2011년 10월 28일 금요일 오후 2시 범어사 설법전. 큰스님의 직지강설 출판기념 법회가 있는 날이다. 날씨가 화창하다. 올라가는 길에도 차들이 꼬리를 물고, 단풍처럼 많은 사람들, 운동회날처럼 설레이는 분위기다. 수많은 현수막들, 그 중에 <무비스님 직지강설 출판기념법회>현수막이 제일 눈에 띈다.
#2
오후 1시, 휴휴선원앞 주차장도 만원이다. 아는 스님들이 많다. 모두가 화엄전으로 향하신다. 화엄전 입구 나무문에 포스터가 붙었다. 마당에도 수많은 사람들, 다탁을 펼쳐 놓았지만, 다 앉지를 못하고 서서 차를 드시는 분들이 많다. 화엄전에 그렇게나 많은 분들이 계신 것을 처음 보았다.
스님들과 여러 보살님들과 거사님들 수 많은 얼굴 중에서 반짝반짝 손을 흔들어 주시는 분들이 계신다. 다정한 얼굴들이 모두 그곳에서 활짝 웃고 계신다. 리본을 단 꽃화분속 꽃들도 오늘 더 화사하다.
#3
큰스님은 도반스님들과 손님을 접대하는 방에서 차를 들고 계셨다. 마루에도 큰스님께 삼배올리려고 대기하는 분들이 많다. 조금 기다려서 오랜만에 뵙는 염화실 법우님과 같이 삼배를 올렸는데 “둘이 같이 왔느냐?”고 물으셨다. 방금 화엄전 마당에서 만났다고 말씀드렸다.
#4
가사를 입으시고 큰스님이 화엄전 마당으로 내려오셨다. “자 이제 철수하고 법회하러 내려가자.” 하신다. 오랜만에 보시는 얼굴들에 일일이 눈 마주치며 인사하신다. 떨어졌던 시간을 뛰어넘는 웃음들, 환한 빛보다 빠르게 서로를 이어준다.
#5
큰스님께서 위의를 갖추시고 높은 지팡이를 짚고, 여러 스님들과 함께 길을 걸으신다. 그 뒤를 우리가 따른다. 길은 오래고 아름답다. 하늘빛이 푸르고, 오후 햇빛에 가을 잎새들이 반짝인다. 지나가던 신도님들이 스님들께 정성껏 합장을 하신다.
#6
설법전 초입에는 차일이 펼쳐졌다. 다과와 꽃이 준비되어 있다. 큰스님께서도 다시 차 한잔을 드신다. 봉사하시는 분들이 직지 상·하 권이 담긴 종이 봉투를 나눠주신다. 큰스님께서 자비로 2천부를 준비하신 책이다. 이날 모두 다 나갔다고 하셨다.
#7
설법전 앞에 놓인 의자에는 이미 청중들이 빼곡하다. 법당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는 화환들이 에둘렀다. 모두 큰스님의 직지출판 기념법회를 축하하는 화한들이다. 잠깐 옆에만 가도 꽃향기가 신선하게 스몄다.
#8
설법전, 부처님 양 옆으로 커다란 천막이 걸려있다. ‘직지강설’이라고 찍힌 캘리그라피 사진과, 『직지강설』책 사진이다. 불단 아래 한 줄이 전부 꽃다발과 꽃화분으로 채워졌다. 법상옆에도 난꽃이 피었다. 좌복들이 깔리고 한 분 두 분 스님들이 올라오신다.
#9
서울에서 내려오신 염화실 보살님들은 큰스님의 얼굴이 보일만한 자리는 진작에 포기를 하고 난간에 자리를 잡고 앉으셨다. 길가에도 많은 분들이 서성이며 법회를 기다렸다. 다시 만난 법우님들이 손을 잡고 안부를 묻는다.
#10
스님들 중에는 신도님들과 함께 오신 분들도 많았고 혹은 법당에 오르시기 전에 아시는 신도분들을 돌아보고 활짝 웃으며 안부 물어주시는 스님들도 계셨다. 노보살님들은 아는 스님들을 만나면 아이처럼 기뻐하셨다. 법당 안에 스님들이 다 들어오셨다. 비어있는 좌복이 없다. 사진기를 든 기자들, 노트북을 펼친 기자들, 촬영기사들이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서 서성인다.
#11
법회 진행은 부산 불교방송 지은아 아나운서가 했다.
첫 순서로 범어사 합창단이 ‘연꽃향기’라고 하는 축가를 불렀다.
삼귀의, 반야심경 봉독으로 설레이던 주위가 법회분위기로 차분해졌다.
#12
범어사 주지 정여스님의 인사말씀이 있었다.
정여스님은 “늘 경전 연구하시고, 소박하게 사시고,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살아가라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라고 큰스님을 소개하시고 40여권의 저서를 저술하는 동안 한 번도 출판 기념회를 갖지 않았는데 범어사 강당에서 스님께 경학을 공부한 강원9회, 10회 제자분들이 주축이 되어서 여러 번 권유를 드린 끝에 힘들게 허락을 얻으셨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13
이어서 정여스님께서 내빈소개를 하셨다. 월탄스님, 지안스님, 수불스님, 동화사, 통도사, 마곡사 주지스님, 가야산회 도반스님, 선운사 통도사 전 강주스님, 이어서 더 많은 스님들의 이름을 오랫동안 소개하셨다. 큰스님은 법당의 가운데 뒤쪽 기둥 앞에 의자를 놓고 앉으셨다. 법회 전에 미리 정여스님을 불러달라고 하셔서 내빈소개를 맨 먼저 할 것을 부탁하셨다. 법문에서도 항상 강조하시듯이 내빈을 먼저 소개하면 나중에 번거롭지 않으며, 청중들도 내빈소개만을 듣고 미리 법회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고 하셨었다.
한 달 전부터 법회소식을 들었지만, 이렇게 규모가 큰 법회일 줄은 몰랐다. 말씀으로만 듣던 원로 스님들께서 법당의 어간문 앞, 맨 뒷줄에 앉아계셨다. 이름 앞에 직함을 다 불러주셨는데, 한국불교 체계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으로서, 책의 첫 목차를 한 번 훑어본 듯 일목요연했다.
#14
전 동화사 주시스님이신 허운스님이 큰스님의 약력소개와 저서소개를 해주셨다. “저는 범어사 강원 9회 졸업생입니다.”라고 먼저 말씀하셨다.
나눠주신 안내 프린트물에도 큰스님의 약력이 나와있다. 집에 돌아와 큰스님의 약력을 읽어나가다가 문득 ‘2003년 7월 21일 발병(發病)하여 지금에 이름’이라고 쓰신 대목에서 멈췄다. 약력은 아마도 큰스님께서 직접 쓰셔서 출판사에 전해주셨을 것이다. 언제나 병이 나신 전과 후가 크게 달라졌다고 말씀하시곤 했지만 이렇게 이력에도 써넣으실 줄은 몰랐다.
오랫동안 들여다보다가 다음 줄을 보니 2004년 11월 22일에 까페 염화실을 만드셨다. 그 때부터 ‘염화실 법우’라는 이름으로 큰스님을 알게 되고, 큰스님의 사상을 알게 되고, 까페의 온, 오프 모임에서 그렇게나 많은 인연을 또 만났다.
큰스님께서 발병하시기 전에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으실 때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염화실 법우님들은 중앙승가대학교에서 명예박사를 받으실 때나, 역경원장을 역임하실 때 늘 함께 있었다. 그런데 동화사 한문불전승가대학원에서 강의하시는 줄은 알았지만, 학장이신 줄은 오늘 처음 알았다. 연보를 읽는 일이 책을 읽는 일처럼, 앨범을 들여다보는 일처럼 새삼스러웠다.
#15
다시 범어사로 돌아가 저서 봉정순서. 오늘 기념하는 저서『직지강설』을 큰스님과 도반스님들과 제자스님들이 부처님 전에 올리는 예식이었다. 잔잔한 피아노소리와 함께 노란 보자기에 정성껏 싼 책을 우리들의 본사 부처님 앞에 올리시는 스님들을 따라서 마음도 숙연해졌다.
#16
수법제자이신 동화사 주지 성문스님의 헌사가 있었다.
다음 순서로 진행자가 월탄스님의 축사가 있겠다고 소개를 했다.
조용조용 물결처럼 아름답게 진행되던 법회가 잠시 멈췄다. 정적.
의자에 앉아서 명상하듯 모든 행사를 지켜보시던 큰스님께서 고개를 뒤로 돌리며 “월탄스님 나와아”하셨다. 그러자 바로 뒷줄, 문 앞에 앉아계시던 월탄스님이 “어디로 가냐” 하고 물으셨다.“일루해서 가아.” 하고 큰스님이 지팡이로 가운데 텅 빈 공간을 짚으셨다.
옛 경전속에 잠기듯 아득했던 마음이 툭 하고 현재로 돌아왔다. 그 엄숙한 예식에 두 분의 천진한 대화, 아- 압도되었던 마음이 콘서트장에 온 것처럼 즐거워졌다.
#17
월탄스님은 마이크 앞에 서시자 정색을 하시고, 우렁우렁 울리는 목소리로 “무비 큰스님 정말로 장하십니다.”라고 시작하는 축사를 하셨다.
백운스님은 고려때 태고스님, 나옹스님과 동시대 어른이셨는데 항상 몸을 낮추셨다고 하시면서, ‘오직 정진에만 힘쓰셨던 거룩한 백운화상’이 이 책을 쓰셔서 우리의 심체를 밝혀주셨다고 하셨다. 청주 지방에 사시면서, 스님은 행정가들을 만날 때마다 문화적인 위상도 중요하시만 직지가 가지고 있는 내용을 충청북도나 청주시가 앞장서서 국민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하였다고 하셨다. 그 일을 이루지 못해서 늘 안타까왔는데 무비스님이 오늘 그 일을 해주셔서 고맙고 또 고맙다고 하셨다.
“여러분 어떻게 보답해야 될까요. 우선 박수라도 드립시다. 고맙습니다. 너무 고생하셨습니다.”큰스님께서 빙그레 웃으셨다. 청중의 박수를 받으시며 합장하셨다.
여러 스님들의 축사가 있으시고 이윽고 큰스님의 인사말씀이 있으셨다.
#18
큰스님의 말씀은 귀에 익숙하다. 마음을 따라 몸도 편안해진다.
“진심으로 반갑습니다. 많은 사부대중께서 원근각지에서 많이 모이셔서 출판기념법회를 성황리에 할 수 있도록 오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앞에서도 이야기가 있었습니다만은 저는 그동안 책을 출판하는 것이 저서라든지 번역서라든지 이런 등등을 합쳐서 40여 권이 넘습니다.
그렇지만 출판 기념회는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이번이 처음입니다.
어느 날 직지를 제자스님들에게 돌렸더니 아까 동화사 주지 성문스님이 발기인이 되어서 문득 출판기념 법회를 하자고 하기에 극구 사양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이기지 못하고 오늘 이와 같은 행사를 열게 되었고 여러 사부대중들을 번거롭게 하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을 제자 스님들 덕분에 이렇게 성대하게 출판기념법회를 가지게 되어서 너무나도 고맙고 진심으로 감격할 따름입니다.” 이렇게 시작하셨다.
그리고 이 법회를 발기하신 스님들을 일일이 호명하셨다.
앞으로 나와서 인사를 하라고 하시고 “저는 이걸로 인사 때웠습니다.”라고 하셔서 청중이 모두 함께 웃으셨다.
#19
그리고 나서도 큰스님께서는 도반스님들에서부터 여러 인연 있는 분들의 이름을 다 불러 서 감사하다고 하셨다. ‘염화실 법우님들’에서 벌써 이름을 불렸지만 '범어사 종무소 직원분들'하고 부르실 때, 어쩐지 ‘아 우리큰스님!’하고 더욱 콧날이 시큰해졌다.
이 번 봄과 여름 동화사 한문불전 승가대학원을 또 맡으시면서 몸을 만드시기 위해 새벽마다 큰 절 박물관까지 나와 몇 바퀴씩을 도셨다고 하셨다. 어쩐지 그런 아침 큰스님께 인사올리는 종무소직원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두 손 모으신 관세음보살님은 여러분이 그 앞에서 합장할 때 바로 여러분을 향해 합장하십니다’전에 해주셨던 법문이 다 그렇게 신선한 아침에 나왔을 것이다.
#20
큰스님께서는 “이 책은 앞에서도 여러 번 이야기가 있었습니다만은 정말 백운화상께서 당대의 최고 선지식으로 당신의 공부를 모두 이 직지 상하 양 권에다가 집약을 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과 조사스님들의 가르침이 집약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그 내용에는 무관심하고, 앞서 월탄스님께서 아주 정곡을 찔러 주었습니다만 사실 전세계가 그릇만을 가지고 그동안 무수한 찬탄을 늘어놓았습니다.” 라고 하시면서
“인쇄문화로서의 가치만을 언급하는 것이 안타깝고 유감스럽고 한편 부처님 제자로서 부끄럽게 여겨서 아 이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구나. 내 소임이구나 이것을 자세하게 번역하고 자세하게 강설을 해서 누구든지 그 뜻을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 불교계 소임이고 또 그나마 공부를 해왔다고 하는 후배들의 소임이 아닌가 이 생각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5년전에 마음을 먹고 하나하나 번역하고 강설을 해왔습니다.
그러면서 불교 신문에도 3년 이상을 연재해 오다가 이렇게 출판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제가 직지라는 책을 2권이지만은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강의를 다 하려고 지금 생각합니다. 여러분들 이거 들고가서 읽으시겠습니까?”하고 물으셨다.
“네”라는 말씀이 청중속에서 큰소리로 나왔다. 함께 “네” 라고 대답해 놓고, ‘아차, 아니요라고 할걸’ 법문을 다 들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싱거운 생각을 했다.
#21
큰스님께서는 “고맙습니다. 읽겠다고 하는 것은 고마운데 잠깐 내가 진정 하고 싶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바쁜 시절에 이 멀리에 와서 으레적인 알맹이 없는 찬사만 늘어놓는 것 듣고자 오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옛 어록에도 이런 말이 있어요.
시인을 만나거든 시를 논하라.
그렇습니다. 명색이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강백이라고 여러 곳에서 이야기 합니다. 저는 한 번도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데 모두들 그래싸니까 그런 알맹이 없는 내용 보다는 뭔가 한마디 전하고 싶습니다.
직지는 한마디로 최상승의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향상일로의 가르침입니다.
직지는 번뇌와 죄업으로부터 인간을 완전하게 해방시킨 가르침입니다.
만인류를 지금 그대로 부처님으로 승격시킨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이 시간 이후 모두가 부처님입니다.
사람의 삶은 매일 매순간이 사실은 지상최대의 축제임을 가르친 내용이 바로 직지입니다.
매일 매순간에 수 천억 복권이 터지는 가르침이 바로 직지입니다.
직지인심이 아니라
직지인신의 가르침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부처다 하는 것은 옛날 지나간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몸이 부처님입니다.”
#22
직지인신이라는 말씀은 처음 들어서 바짝 긴장을 했다. 그리고 익숙한 여러 말씀 뒤에,
“우리가 설정해놓은 그 부처의 경지에 누가 이르렀단 말입니까. 그런 경지는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삼아승지겁을 닦아야 한다는 그 방편만을 이야기 하다 말겠습니까.
우리는 언제까지 깨쳐야만 한다는 방편만 이야기 하다 말겠습니까.
닦지않아도 부처요 깨닫지 않고도 본래 부처입니다.
팔만사천 번뇌로부터의 해방이며 죄업으로부터의 해방의 가르침이 직지인 것입니다.
참으로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최고의 가르침입니다.
그로 인해서 일일시호일 세세연연 매달매달 매일매일 매순간 매순간이 호시절인 것입니다.
태양만을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인생의 먹구름은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인간의 수억만 가지의 요소 중에서 불성인간의 내용을 보기 때문입니다.”
#23
“세세연연 매일 매순간 그대로 부처로 살아가고 있다는 이 사실,
이미 우리는 부처로 살아가고 있다는 이 사실을 깨우쳐주는 내용입니다.
부디 이 사실을 알고 매일매일 억만금을 들여서 즐기는 축제의 나날이 되시길 바랍니다.
인간의 생명, 우리 모두의 생명 그대로 부처님의 무량공덕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직지는 바로 이러한 책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리려고 이 직지 강설을 썼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원근 각지에서 이렇게 와주셔서 너무나도 고맙고 감사하고 또 죄송하다고까지 하셨다.
#24
금요법회의 지원보살님이 ‘부처님 성전에’라는 곡을 축가로 부르시면서 법회가 마무리 되었다. 기념촬영이 있었다. 모두모두 이 날을 기념하고 싶어하셨다. 촬영시간이 오래걸렸다.
짧은 가을 햇빛이 조금씩 석양으로 기울고 기온도 쌀쌀해졌다. 큰스님께서 나오셔서 아직도 떠나지 못하고 기다리는 법우님들에게 인사를 하시고 천천히 언덕길을 오르셨다.
요청하는 대로 다 기념촬영에 응해주셨다.
#25
화엄 전 오르는 길에 특별히 아늑한 전각안에서도 다시 다회자리가 차려졌다.
9회, 10회 범어사 강원 제자 스님들과 차한 잔을 더 하시고, 기념 사진도 찍으셨다.
“10회 스님이 9회 스님을 누른다”고 스님 중에 한 분이 말씀드리자 “10회스님들 좀 더 분발해. 그런데 원래 숫자가 9회가 더 많아.” 하셨다. 모두 흐뭇하게 웃으시며 사진을 찍으셨다.
#26
다시 화엄전으로 오르시는데 보살님이 기다리고 있다가 “월탄스님이 가시려는 걸 억지로 모셔놓았다”고 하셨다. 큰스님께서 껄껄 웃으셨다.
모두들 무지개 이야기를 하셨다. 큰스님께서 설법을 하는 동안 설법전 위로 무지개가 떴다는 것이다.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신 분들도 계셨다.
상좌스님인 진명스님께서 “사람이 많이 모이면 무지개가 뜬다고요.” 하셨다.
큰스님께서 좀 생각해 보시다가 “사람들 입김 때문인가?”하고 물으셨다.
#27
화엄전 마당에서도 여러 보살님들이 기다리고 계셨는데 무지개 이야기를 또 하셨다.
설법전 말고도 화엄전에도 무지개가 떴다는 것이다. “같은 무지개겠지”라고 큰스님께서 말씀하셨지만 두 번을 다 다른 시간, 다른 하늘에서 보신 보살님들이 많았다.
“무지개 보느라고 법문은 안들었겠네?” 큰스님이 물으셨다.
“아니예요.” 황급하게 보살님들이 합창을 하셨다. 모두가 웃으셨다.
#28
큰방에서 도반스님들이 기다리고 계셨다.
문득 월탄스님이 “그렇게 갑자기 시키면 어떡하냐?”고 물으시자 “아, 준비 없이 아무데서나 한 마디 할 수 있어야 원로지이.”하고 큰스님이 대답하시고 옆에 스님들이 웃으셨다.
지난 번 제자스님들과 여행 다녀오신 이야기며, 여러 도반스님들의 소식 이야기를 주고 받으셨다.
“이렇게나 얼굴보지 못본다이”
“각자 자기 울타리에서 자기 인연이 있으니까.”
“우리 갈게에.”
스님들이 일어설 차비를 하셨다. 큰스님도 따라 일어나셨다.
“건강하시오.”
지금껏 편하게 하시던 말투와 다르게 공식적인 말투로 도반스님이 말씀하셨다.
“그래.”
큰스님이 짧게 대답하셨다.
월탄스님이 큰스님의 손을 잡으시며 “건강! 건강! 아유 아직도 짱짱하다.”
손에 이렇게 힘이 많으니 오래오래 더 많은 책을 집필해 달라고 말씀하셨다.
#29
밖에서 함성이 들려왔다. 무지개가 다시 떴다는 것이다.
“모두 기이한 걸 좋아한다니까.”
큰스님께서 마루로 나가시다가 문득 얼굴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그거 그냥 자연현상이야.”
얼떨결에 웃으며 네- 하였다. 하지만 이번엔 놓치지 않고 하늘에 뜬 어여쁜 무지개를 실컷 올려다 보았다. 설레였다.
#30
무지개는 3번이나, 설법전에, 화엄전에 떴다. 그것도 큰스님과 관련이 깊은 순간에만.
자연현상이어도, 사람이 많이 모여 그 입김들이 호호 올라가서 하늘에 새겨진 것이어도, 무지개를 보는 일이 신기하고 설레였다.
더구나 출판기념 법회에 뜬 무지개는 아마도 처음일 것이다.
마당에 계신 분들이 모두 웃는 얼굴로 하늘에 뜬 무지개를 올려다 보셨다.
#31
부산에서 돌아오자 곧이어 11월이 되었다. 겨울이 빨라질 것 같다.
겨울동안 깊고, 고요하게 들어앉아 직지를 읽을 것이다.
큰스님께서 '직지인신' 몸이 곧 부처님이다, 라고 까지 말씀하셨으니 소홀히 할 수 있는 것, 이제 아무 것도 없다.
#32
큰스님께서 40여 권, 전생애를 들여서 출판하신 모든 책을 부처님전에 봉정하던 아름다운 날, 우리들 잠깐 큰스님과 제자 스님들께서 베풀어 주신 아름다운 화성의 하루, 황금 만냥을 넉넉히 쓰고 돌아오는 가을 하루를 살았다.
이제 모두 함께 새 길을 걷기로 약속 하는 시간.
직지를 펼치고, 그날의 무지개를 기억한다. 꽃처럼 아름다운 얼굴들을 기억한다. 함께 걷는 이 길이 영원하기를 여기 기록해놓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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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저도 속으로 # 32 이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금강경 32분 생각하고... 다시 올린 부분... 아름다운 마무리... 그리구.. 우덜에게 저녁공양에... 또 거기다 커피까지... 아이 유 됐시유 충분하구먼유
&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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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함께하신 이들은..아니 오늘 이글로도 환희심나는 이들은 복이 무진장입니다.무량대복입니다.아니.. 이날을 까마득히 모르는 이들도..감사합니다.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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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마음으로 잔잔하게...고마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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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속 주인공의 모습이 평안해 보일때 나만 찌그러진 인생행로인듯 심신 불편 어제와 똑같은 오늘 새벽비 추적추적 내리는 운동길에서도 나만 동떨어졌다고 한숨섞인 바보인지 새파에 얼만큼 찌들었다고 건방을 떠는지 인간사 말없이 살다가야하는게 우리인걸 진정 벗어나고 싶은 ............바닷가 빗깔좋은 모래밭이 나의 수련의 장소로만 잠시 생각해봅니다. 불자님 분 내 마음의 사심을 떨치려애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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