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덮밥의 역사
아무리 사소한 것에도 나름의 역사와 존재 의미는 있다. 그렇다면 밥에다 반찬을 얹어 먹는 덮밥에도 역사가 있으며, 그렇게 먹어야 했던 이유가 있을까?
맛의 세계는 오묘해서 같은 음식이라도 먹는 방법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예컨대 밥 따로 제육볶음 따로 먹는 것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밥에 제육볶음을 얹어 먹는 제육덮밥은 맛이 다르다. 그래서 갖가지 종류의 덮밥을 먹는 것일 텐데, 누가 처음 덮밥을 먹었으며 왜 밥에다 반찬을 얹어 먹기 시작한 것일까? 더 맛있게 먹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더 빨리 간편하게 먹기 위해서였을까?
덮밥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즐겨 먹는다. 우리는 제육덮밥, 버섯덮밥, 오징어덮밥 등 다양한 덮밥이 있지만 중국에도 마파두부덮밥을 비롯해 쇠고기덮밥 등 갖가지 덮밥이 있다. 중국에서는 이런 덮밥을 총칭해 반찬으로 밥을 덮었다는 뜻에서 까이판(盖飯)이라고 부른다. 일본 역시 덮밥의 종류가 다양하다. 우리도 좋아하는 장어덮밥을 비롯해 달걀덮밥과 쇠고기덮밥인 규동 등등, 일본 덮밥인 돈부리(どんぶり)는 종류가 많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한중일 삼국의 덮밥을 가만히 살펴보면 한국과 중국 덮밥은 서로 닮은 점이 많은 반면 일본 돈부리는 비슷한 점보다 다른 점이 더 많다. 한중일 삼국 덮밥의 뿌리는 무엇일까?
우리 덮밥은 밥에다 반찬을 얹거나 밥 옆에 반찬을 놓고 섞어 먹는다. 걸쭉한 소스를 끼얹은 중국식 덮밥과는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소 차이가 있다. 밥 따로 반찬 따로 먹는 우리의 전통 식사 문화에서 덮밥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규경은 토지의 신께 제사를 지내는 날, 밥에다 갖가지 고기와 채소로 조화를 이루어 밥을 덮어 먹는데 이를 사반(社飯)이라고 한다고 했다. 지금은 완전히 잊힌 날이지만 옛날에는 사일(社日)이라는 날이 있었다. 사(社)는 토지의 신이다. 예전에는 농사를 짓기 전인 입춘, 그리고 얼추 곡식이 익어갈 무렵인 입추 후 닷새째 되는 날, 풍년을 기원하고 수확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토지 신께 제사를 지냈다. 이날 먹던 고기를 덮은 밥이 바로 사반으로, 우리 덮밥의 뿌리일 수도 있다. 비빔밥의 기원을 제사 음식에서 찾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사반이 비빔밥의 원조일 수도 있다.
사반이 우리만 먹었던 음식은 아니다. 자세한 내용이 12세기 중국 송나라 때의 《동경몽화록》에 보인다. 돼지고기나 양고기의 염통, 가슴살, 창자, 폐, 또는 오이와 생강 등을 바둑알 모양으로 자르고 맛있게 양념을 해서 밥에 덮은 후 손님을 초청해 나누어 먹는다고 했다. 음식의 기본 얼개가 지금의 제육덮밥을 비롯한 갖가지 덮밥류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덮밥은 이렇게 토지신께 풍년과 수확을 기원하고 감사하는 음식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중국 사람들은 자기들이 먹는 덮밥의 기원을 또 다른 곳에서 찾기도 한다. 기원전 8세기 이전의 주나라 때 왕이 먹던 산해진미 중에 순오(淳熬)라는 음식이 있다. 《예기》에 요리법에 관한 설명이 보이는데, 고기로 담근 장을 볶아서 기장이나 좁쌀과 같은 곡식을 덮은 후 기름진 국물을 부은 음식이라고 했다. 걸쭉한 소스를 끼얹는 지금의 중국 덮밥과 비슷하다. 바꿔 말하자면 중국 덮밥의 뿌리를 무려 3천 년 전에 먹었다는 산해진미에서 찾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도 덮밥을 먹지만 일본의 대표 덮밥 돈부리는 한국이나 중국의 덮밥과는 차이가 있다. 일본에서는 돈부리의 기원을 14~16세기인 무로마치 시대에 궁중이나 무사들이 먹던 호항(芳飯)에서 찾는다. 밥에 일곱 가지 야채를 얹고 국물이나 물을 부어 먹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도 흔하게 먹는 돈부리는 대부분 역사가 짧다. 예컨대 쇠고기덮밥인 규동, 돈가스를 얹은 가스동, 닭과 달걀이 함께 들어간 오야코동 등은 주로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등장했다. 일본의 덮밥, 돈부리는 주로 바쁠 때 빠르고 편리하게 먹으려고 발달한 음식으로 일본의 산업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별생각 없이 먹는 덮밥이다. 하지만 기원을 찾아 올라가면 하늘에 풍년을 기원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먹던 음식이고, 고대 황제가 권력을 과시하며 즐긴 산해진미였다. 혹은 근대 일본의 근로자들이 더 많은 일을 하려고 재빨리 먹던 패스트푸드이기도 하다. 사소한 덮밥 속에도 나름의 역사와 의미가 있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