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택한 자의 구원은 상실될 수 없고 취소될 수 없다"
B.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
A와 B는 동일한 의미를 지닌 것일까요?
말하는 뉘앙스나 신학적인 정확한 의미는 논쟁의 여지가 남습니다.
1. 택한 자의 기준
거듭남(중생)은 택함 받은 자의 가장 기본 조건입니다.
거듭남이 시작이라면 택한 받음의 끝은 '순종'입니다.
칭의는 시작이고 성화는 끝이 됩니다.
여러 신조들은 택한 자 곧 거듭난 자는 구원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신학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택한 자를 다룬 영역은 무형교회입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들이 모인 유형교회에서는 모두가 구원받는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유형교회는 비록 신앙을 고백하는 자들이 모였지만 구원에서 탈락한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유형교회는 청함을 받은 자들과 택함을 입은 자들이 공존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청함을 받은 자들은 거듭나지 못했느냐는 관점입니다.
2. 청함을 받은 자는 복이 있다.
*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계22:9)
청함이 없는 택함은 있을 수 없습니다.
청함은 택함보다 앞선 과정입니다.
3. 청함을 받고 택함을 입은 자들은 복이 있다.
*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계17:14).
계시록 나오는 십사만 사천 역시 '택하심을 입은 진실한 자들'입니다(계14:4-5).
4. 청함받은 자들은 많고 택함을 입은 자들은 적다.
*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22:14)
복음을 듣고 반응한 자들을 청함 받은 자들로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에 나와 신앙고백을 하고(안하거나 확신이 없는 자들도 있음) 함께 공동체에
참여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다수가 시련을 만났을 때(길가, 돌밭, 가시덤불의 씨앗처럼)
성령의 열매들을 맺지 못했습니다(마13:18-23).
결국 택함을 받은 자들은 적습니다.
예수님은 메시지를 통해 구원받을 자들이 매우 적다고 알려줍니다(눅13:23-24).
5. 택함을 받은 자는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이다.
요한계시록의 시작과 끝은 청함을 받은 자들과 택함을 받은 자로 나눕니다.
말씀을 듣는 자, 읽는 자 그리고 그것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다는 것과(계1:3),
마지막에는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으로(계22:7) 명쾌하게
구분합니다.
계시록 1:3절은 청함을 받은 자들에게 복이 있음과 마지막 22:7절은 택함을 받은 자들의
말씀을 지키는 언약행위로 복을 한정합니다.
6. 예수님이 강조한 말은 '택함을 받은 자'가 됨이다.
이스라엘은 모두 복음 초청을 받은 자 곧 청함을 받은 자입니다.
그러나 다수가 택함을 입지 못해서 구원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택함을 받은 자를 다른 의미로 이렇게 표현합니다(마12:50).
*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7. 청함을 받은 자도 거듭난 자들이다.
아주 어려운 문제처럼 보이지만 성경 전체를 보면 쉽게 풀립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모두 청함을 받은 자들로 거듭난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그들 가운데 '잃어 버린 양'들을 찾습니다(마15:24).
잃은 양들은 청함을 받았지만 현재의 상태로는 택함을 입지 못할 자들입니다.
삭개오나 부자와 나사로 비유에 나오는 부자 역시 잃은 양입니다.
부자는 계속해서 말씀을 떠나 살다가 택함을 받지 못한 채로 지옥 불에 던져지고,
삭개오는 회개를 통해 돌아와 회복된 구원이 삭개오와 그 집에 있습니다(눅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