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청 앞이 여니 때와 달라 보인다. 귀청을 아프게 했던 스피커 소리와 붉은 띠를 머리에 동여맨 시위꾼들, 경계하는 전경들이 보이지 않아 평온한 분위기다. 연전에 성악가로 유명해진 폴 포츠(Paul Potts)가 와서 직접 부른다는 노래를 들으려고 사방에서 모여들고 있어 나도 끼어들었다. 오늘따라 광장을 달구던 햇볕이 덕수궁 너머로 사라지고 있는 게 더 정겨운 풍광이다. 이런 게 음악의 효과인지! 파란 잔디 위로 잔잔하게 흐르는 클래식 선율이 마음을 시원하게 적셔준다.
그늘이 드리워진 광장에 조명등이 켜지면서 오프닝 타임의 서막이 오른다. 경쾌한 스타일의 남성 4인조의 앙상블인 ‘비바보체’가 활기찬 매력으로 귀에 익은 세계명곡들을 부른다. 이어서 여성첼리스트인 20명의 ‘이화첼리’가 우리가곡과 영화음악을 연주하는 바람에 감미로운 흥분이 물결치는 듯하다. 서막이 끝나고 무대의 한쪽을 향하여 관중들의 시선이 달려가며 환호성이 터진다. 런던의 안개처럼 인 효과연막이 무대 위로 피어오르고 장내아나운서의 소개를 받으면서 오늘의 주인공인 폴 포츠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알려진 바로는 영국 웨일즈에서 휴대전화기 외판원으로 생활하다가 일약 세계적인 테너로 변신한 인생역전의 모델이다.
그는 관중들의 열광적인 박수와 환호에 수수한 반응이다. 평범한 의상에 작은 플라스틱 물병을 들고 뒤뚱거리는 걸음걸이로 마이크 앞에 다가선다. 초청해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말을 짤막하게 하고나서 곧장 첫 곡을 내 뽑는다. 조국 폴란드를 떠나있던 쇼팽이 19세에 시작하여 23세 때 완성하여 1832년 ‘리스트’에게 헌정했다는 <작품10-3 이별의 곡>이다. 1961년 제작된 방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라스트 신을 애잔하게 장식했고,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의 장례식에서도 연주되었다. 나도 가끔은 부르는 애창곡지만 해외 공연에서 하필이면 이별의 노래를 첫 곡으로 택했는지 가창력은 대단했지만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열등했었던 삶과 슬펐던 시절이 열정과 환희로 바뀌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대변하려는 나름대로의 의도였지 않나 싶어 이어지는 노래에 기대를 걸었다.
무명했던 자신을 성악가의 대열에 설수 있게 해주었던 곡을 부른다는 순서다.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의 아리아를 열창하는 것을 눈앞에서 보고 들으면서 파파로티의 열창을 연상케 되었다. 폴 포츠에게도 이탈리아인의 피가 흐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창력이 세계적이고 전설적인 이탈리아의 테너 ‘카루소와 스테파노, 마리오 란자와 파파로티’로 이어진 벨칸토 창법이다. 하지만 성악공부를 제대로 못한 영국인이라, 돌출 현상이나 이변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초청을 받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세련 되 보이지 않은 것이 매력인지 폴 포츠를 많이들 좋아하는 것 같다. 그는 2007년 7월 영국의 스타 발굴 프로그램인 ‘브리튼즈 갓 탤런트(Britain's God Talent)'에 나가 결승에서 푸치니의 오페라를 불러 우승을 했다. 그가 무대에 섰을 때 허름한 양복에 부러진 앞니와 펑퍼짐한 몸매의 비호감형이어서 관심 밖이었다고 한다. 당시의 프로그램 진행자들은 그를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여기며 일단 신청만을 받아준 상태였다.
특히 심사위원인 ‘사이먼’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희한한 사람이 왔구먼. 이라는 식의 표정으로 폴 포츠에게 곁눈질을 해댔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 심사위원인 ‘아만다 홀덴’ 역시 그를 아예 무시하는 어조로 “무슨 노래를 준비해 왔나요”라고 물었다. 폴 포츠가 태연하게 “오페라를 부르려고요”라고 하자 사이먼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그냥 불러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드디어 폴 포츠스가 스타발굴의 결승무대에 오르게 되는 순간이었다. 시청자들과 진행자 그리고 심사위원들은 무슨 노래가 어떻게 불러질건 가를 기다려야 했다. 폴 포츠는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의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를 상상을 초월한 고음의 가창력으로 열창했다. 심시위원과 진행자들은 물론 시청자들의 반응이 급반전 되고 열정과 영감에 어린 폴 포츠의 노래가 끝나자 관객들 모두가 한참동안 기립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꿈인 듯싶은 착각에서 깨어나야 했다. 정신을 차린 심사위원장 사이먼은 폴 포츠에게 정중하게 사과를 하며 “당신은 우리가 찾아낸 값진 보석”이라고 극찬 했다. 아만다 홀덴 역시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고 그의 가창력을 높이 평가했었다는 것이다.
폴 포츠는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성악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평소에 믿음으로 성가를 열심히 부르던 것같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불렀던 결과였다는 것을 고백했다. 2009년 여름밤 서울광장을 가득매운 시청자들과 함께 한 나도 그의 노래에 감동되어 뜨거운 박수를 보내느라 광장을 쉬 떠날 수가 없었다.
2009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