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읽기는 가닥이 없다.
예기를 읽다보니 곡례 앞부분은 예의 기본이나 원칙 등을 말하더니
뒤로 갈수록 너무 세세하여 오늘날의 예절생활과는 거리가 먼 듯해 관심이 떨어진다.
서경의 글들도 그렇다.
요와 순의 시대에서 내려올수록 우나 주 문왕의 시대에는
하늘의 원리보다 인간의 권력과 세력다툼의 내음이 난다.
반야심경을 다시 써 보다가 연기해 놓은 벌교도서관의 책을 반납하러 일어난다.
난 초등 4학년 떄이던가 기성임 선생님한테 고전읽기부를 하면서 도서관을 드나들긴 했지만
도서관과는 그리 친하지 않다.
오히려 동주나 병화집의 아버지가 사 놓은 책들을 많이 빌려봤다.
내가 돈을 벌게 되면서 헌책을 사기 시작했고 틈나는대로 사고 싶은 책을 써 두었다.
도서관의 책은 돌려주어야 하는 날짜가 부담스럽고, 밑줄이나 메모를 할 수 없어
부담스럽다.
내가 책과 나누는 대화가 날짜부터 나의 이름이나 밑줄 하나까지 다 남겨져 있기에
난 책을 사는 편이다.
그래서 읽지 않고 꽂힌 책만 많아 '책만 사는 바보'라고 하기도 한다.
'자유인 임제'와 '헤세와 융'을 빌려 나와 부지런히 천자암으로 간다.
절 앞까지 올라 주차하고 등산로로 접어드니 12시다.
천자암봉을 부지런히 오르다가 보리밥집으로 내려간다.
40여분 걸려 보리밥집에 다가가니 조용해 혹 쉬는 날 아닐까 걱정하는데
다행이 사람들이 평상에서 밥을 먹고 있다.
보리밥 하나에 막걸리 한되를 주문하니 젊은 여성이 술이 많지 않느냐고 한다.
15,000원을 계산하고 햇볕이 닿는 와상에 앉아 기다린다.
안쪽 테이블에서는 중년의 남녀들이 길게 앉아 밥을 먹는데 듣다보니
교회 목사 부부들인 듯하다.
빨간 다알리아를 보면서 술을 먼저 마신다.
물병에 막걸리를 채워놓고 밥을 비빈다.
막걸리와 함께 먹는 비빔밥은 금방 떨어진다.
이제 점심을 먹었으니 길게 걸어보자고 작은굴목재를 넘어 선암사로 내려간다.
가파르게 내려가다가 다리를 건너니 곧 편백나무 숲이다.
처음 올 떄보다 가깝게 느껴진다.
삼인당 나무 세그루를 보고 강선루 쪽으로 내려간다.
아랫쪽 홍교 밑으로 내려가 윗쪽 승선교를 사진찍는다.
모델이 없으니 재미가 없다.
석촌 윤용구와 성당 김돈희의 강선루 글씨는 맛이 다르다.
선암사로 오르는 길엔 관광객이 많다.
대웅전 앞의 석탑들이 서 있는 안뜰은 꽉 차 있어 어늑하다.
작은 전각들을 죽 둘러보고 현판과 함꼐 세로로 사진을 찍고 나온다.
대각암은 들르지 않고 밖에서 대선루만 본다.
2시 40분을 지난다. 4시까지만 장군봉에 이르기로 하고 쉬지않고 걷는다.
점심을 든든하게 먹은 탓인지 쉬지 않고 걷는다.
향로암터에서 사진 찍고 가파른 400m를 걷는데 힘이 빠진다.
건방떨 일이 아니다. 3시 45분이 안되었다.
한시간 남짓에 장군봉에 올라왔다.
지리주능과 광양 백운산이 긴 줄기를 흐릿하게 보여준다.
서쪽으로 뾰족한 모후산 뒤로 무등산이 덩치를 보여준다.
장박골 골짜기를 내려와 천자암으로 들른다.
나한전이 석양을 받아 황금빛이다. 쌍향수도 빛난다.
물을 두병받아 차로 오니 5시 40분이다.
바보가 저녁에 먹을 거 없으니 먹고 싶은 거 사오란다.
남초 앞에 오행족발집에 들러 35,000원을 주고 대자를 사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