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산에서
눈에 눈물 눈이 묻어 눈물
땀까지 범벅되어 허우적이며 고꾸라지며
가도 가도 제자리 정신없구나.
부지런히 부지런히 / 발을 빼어 옮길 때마다 찰각찰각 / 돌아가는 환등기의 화면 속에 / 내가 있다가 / 없다가…….
꿈인가 생신가, 눈발에 가려 / 여기서는 이제 / 나무에서 나무가 보이지 않는다.
하늬바람에 새떼가 떨어지듯
황량한 하늘가에 나무 한 그루
벗을 것 다 벗고도 거기
눈 감고 의지할 산이 잇듯이
내게는
산이 있다.
여우 눈물 짜내는 황홀한 추위 속
가지 끝에 아려오는 겨울맛도
지금이 한창이다.
눈이 가닿는 데까지
허옇게 눈 덮혀 시퍼런 雪溪
어둡기 전에 이 골을 빠져나야 할텐데
눈에 눈물 눈이 묻어 눈물
땀까지 범벅되어 허우적이며 고꾸라지며
가도 가도 제자리 정신없구나. -章湖-
눈산에서
- 김 장 호-
눈이 내리고 있다
무주공산, 어둑한 하늘 아래.
시나브로 시나브로 내려 쌓이는 눈에
나무들도 무릎까지 빠져
움죽을 못한다.
이따금 가지 꺾어지는 소리뿐,
숲속은 적막,지난날 아쉬움도
다가올 두려움도 없다.
발소리가 나는데 하고
돌아봐도 나는 없고, 거기
저승 같은 풍경 한 장.
이대로 멈추어 서기만 하면
나도 거기 한 그루 나무로 잦아들어
차분한
그림 한 점 완성될 것 같은데,
부지런히 부지런히
발을 빼어 옮길 때마다 찰각찰각
돌아가는 환등기의 화면 속에
내가 있다가
없다가…….
꿈인가 생신가, 눈발에 가려
여기서는 이제
나무에서 나무가 보이지 않는다.
눈산에서
▲ 엎어지고 자빠지고 미끄러지며 자전거를 들고 메고 끌며 .... ⓒ 2014 한국의산천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강물이 생사(生死)가 명멸(明滅)하는 시간 속을 흐르면서 낡은 시간의
흔적을 물 위에 남기지 않듯이, 자전거를 저어갈 때 25,000분의 1 지도 위에 머리카락처럼 표기된 지방도·우마차로·소로·임도·등산로들은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오고 몸 밖으로 흘러 나간다.
흘러 오고 흘러 가는 길 위에서 몸은 한없이 열리고, 열린 몸이 다시 몸을 이끌고 나아간다.
구르는 바퀴 위에서, 몸은 낡은 시간의 몸이 아니고 생사가 명멸하는 현재의 몸이다.
이끄는 몸과 이끌리는 몸이 현재의 몸 속에서 합쳐지면서
자전거는 앞으로 나아가고, 가려는 몸과 가지 못하는 몸이 화해하는 저녁 무렵의 산 속 오르막길 위에서 자전거는 멈춘다.
그 나아감과 멈춤이 오직
한 몸의 일이어서, 자전거는 땅 위의 일엽편주(一葉片舟)처럼 외롭고 새롭다.
▲ 유명산 정상에서 (본래 이름은 마유산이다) ⓒ 2014 한국의산천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과 양평군 옥천면의 경계에 위치한 유명산(有明山·861m)의 본래 이름은 말이
노닌다는 뜻을 가진 마유산(馬遊山)이다.
<동국여지승람>이나 <대동여지도>에는 분명하게 '마유산'이라 적고 있으며, <산경표>에서도 '마유산'이란
이름과 함께 '楊根 北 二十里'라는 설명이 있다.
정상 부근의 드넓은 초원에서 말을 길렀다 하여 마유산이라 불렸다는 이 산이 '유명산'이란 새 이름을 걸친것은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널리 알려진 대로 1973년 엠포르산악회의 국토 중앙 자오선종주로부터 비롯된 것이니 고작 40여 년이 흘렀을 뿐이다.
1973년 12월 <산악인> 창간호에 "자오선 따라 428km, 국토 중앙 자오선 종주운행"이란 제목으로 실린 엠포르산악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72년 세천(細川)에서 순천까지 1차 종주에 이어, 2차 73년 가평을 출발하여 세천까지 종주한 기록이 있다. 당시 이들은
동경 127도 30분을 따라 국토를 종주하고 통일 후에는 3차 함흥에서 가평까지, 4차 후주고읍에서 함흥까지 등 북한지역까지 총연장 764km의
자오선 종주를 이어갈 계획도 함께 발표했다.
박동준 대장을 비롯하여 김지련 부대장, 정춘길, 이건일, 최정국, 유용주, 이길원, 최동국 대원으로 종주대가 구성되었고, 한국일보
김운영 기자가 취재를 담당했다.
진유명씨(晉有明·당시 27세)는 73년 2차 종주에 참가했던 대원이었다. 당시 이들의 종주기는 일간스포츠에
매주 연재되었는데 이때 이름을 알 수 없었던 이 산을 홍일점 대원이던 진유명씨의 이름을 따 '유명산'이라 칭한 것이 지금까지 이 산의 이름으로
굳어져 이어졌다.
자오선종주 당시 마을 주민들은 이 산을 그저 앞산이나 뒷산 정도로 불렀다고 한다.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토록 울창한
숲과 깊은 계곡, 수려한 조망을 지닌 산이 아무 이름도 없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안타까웠던 종주대가 산의 이름을 지어 발표한 것이다.
당시 종주대의 운행대장을 맡았던 김지련씨(작고)는 74년 1월호 <산악인>지에 ‘유명산과 마유산’이란 제목의 글을 기고했는데
이 글에서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름 모를 866봉은 우리 여성대원 진유명의 이름을 따서 종주대장의 직권으로 유명산이라
명명하기로 했다. -73. 3. 11 국토중앙자오선종주대 일지에서"
첫댓글 한국의 산천님!!
정말 멋지십니다.
그리고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_()_
바람은 불어서 손은 시렵고
배는 고파서 양갱과 초코릿을 먹으며 오르던 시간이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감사합니다
멋지십니다~~
대단들하십니다~~~^^
기억해님 안녕하세요
알찬 마무리의 12월달 되시고 늘 건강하시고 행복 가득하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