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이 막 시작된 산모처럼 바다가 복부를 움켜쥐고 심하게 몸을 비튼다 그리고 핏덩이의 알을 낳는다 바다 위를 굴러다니는 저 알이 위태위태해 보인다
(중략)
발가락이 힘차게 뻗어나간다 몇 평의 영토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오토바이를 배달시킨 짜장면이 두 채의 아파트를 맛있게 비벼 먹는다
(중략)
바다는 날마다 알을 하나씩 낳는다 산적 같은 태풍이 불어오고 나는 알을 잡으려 바다에 몸을 던진다 성적 비관으로 아파트 베란다에서 몸을 던진 어린 꽃잎처럼
그 순간에도 깨진 알에서 나온 것들이 온 하늘을 뒤덮고 있음을 분명히 보았다
-『부산일보/오늘을 여는 詩』2022.12.27. -
26년 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필명으로 당선되었다가 사라진 시인의 신작 시를 마주했다.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시인의 시 제목처럼 ‘결국 알은 깨지는 것’. 긴 생애의 한 자락에서 문득 시인은 다시 알이 깨지는 듯한 자신의 시심을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시인은 아마 아침 바다에서 알(해)을 낳는 바다를 목도했을 듯싶다. 아침 해가 떠오른 바닷가 동네에 ‘오토바이를 배달시킨 짜장면이 두 채의 아파트를 맛있게 비벼 먹는’ 풍경의 한 컷을 펼쳐놓고 투신의 슬픔 속에서도 무심히 깨진 알(해)에서 나온 것들이 ‘온 하늘을 뒤덮고 있는’ 것을 본다.
분명하게 보려는 것이 시다.
〈성윤석 시인〉
The Weaving · Denean
결국 알은 깨지는 것 (全文)
조 수 환 (1965~)
진통이 막 시작된 산모처럼 바다가 복부를 움켜쥐고 심하게 몸을 비튼다 그리고 핏덩이의 알을 낳는다 바다 위를 굴러다니는 저 알이 위태위태해 보인다
결국 알은 깨어졌다 깨어진 알에서 피가 흐른다 마치 바다가 프라이팬이 되어 계란프라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피는 바다를 흐르고 흘러 마침내 내 몸 안으로 들어 왔다 모세혈관을 타고 송충이처럼 기어 다니다가 배꼽 근처에서 자리를 잡는다 나도 알 하나 낳고 싶다
사람들 모두 어찌할 수 없는 토박이다 시골이거나 서울이거나 태어나면서부터 거주지는 이미 정해진다 나는 뻗은 뿌리의 길이로 거만을 떤다 폭풍이 몰아쳐도 이리저리 몸을 적당히 쓸어 눕히면 일이 해결된다 나는 내 그늘만큼의 영토를 사랑한다
발가락이 힘차게 뻗어나간다 몇 평의 영토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오토바이를 배달시킨 짜장면이 두 채의 아파트를 맛있게 비벼 먹는다 사람들은 제 그늘의 크기로 삶을 평가하고 가지를 뻗어 손가락질한다 이사하고 싶은데 이사 갈 수가 없다
움직이지 않으면 모두 죽은 것이던가
나는 자주 알을 낳는 꿈을 꾼다 꿈속에서 열심히 삼십 이 인치의 척추 속으로 수액을 펌프질한다 밀물이 봄을 목마 태우고 돌아오면 친구들과 위험한 불장난이 시작된다 내 꿈을 공중으로 높이 높이 날린다 그러나 나는 결국 새가 되지 못한다
바다는 날마다 알을 하나씩 낳는다 산적 같은 태풍이 불어오고 나는 알을 잡으려 바다에 몸을 던진다 성적 비관으로 아파트 베란다에서 몸을 던진 어린 꽃잎처럼
그 순간에도 깨진 알에서 나온 것들이 온 하늘을 뒤덮고 있음을 분명히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