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박주가리
2022년 9월 8일(목), 세곡 근린공원 주변
작년에 그 열매만 보았던 새박을 금년에는 꽃과 잎도 보자 하고 봄부터 들여다보았다. 하도 안 보이기에 해거
리를 하나 보다 하고 포기했는데, 무덥던 여름날이 지나고 어느 날 갑자기 무성한 잎과 덩굴이 주변을 덮더니
꽃이 피었다. 아주 조그만 박이 열리고 그 끝에 하얀 꽃이 피었다. 새박의 비밀(?)을 알아버렸다.
꽃에 대한 하이쿠 몇 수를 함께 올린다.
(류시화의 하이쿠 읽기,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에서 해설과 함께 골랐다.)
2. 박주가리
이 무렵의
나팔꽃 남색으로
정해졌구나
(この頃の蕣藍に定まりぬ)
―― 시키(子規)
* 산문 『작은 뜰의 기록』에서 시키는 “나에게 스무 평 남짓한 뜰이 있다. 그 뜰은 나의 세상의 전부이다.”라고
쓰고 있다. 뜰에는 나팔꽃, 싸리꽃, 맨드라미 등이 있었다.
4. 이질풀
나팔꽃이여
햇빛 가장자리에
남은 꽃 하나
(朝顔や日うらに殘る一つ)
―― 시키(子規)
* 방에 누워 장지문 유리로 내다보는 조그마한 뜰, 그곳에 나팔꽃 한 송이가 가을 햇살 속에 색이 바랜 채 피어
있다. 저물어 가는 생에 대한 고독한 응시와 초연한 거리감이 담겨 있다.
나팔꽃이여
너마저 나의 벗이
될 수 없구나
(蕣や是も又我が友ならず)
―― 바쇼(芭蕉)
* 하루 만에 지는 나팔꽃은 친구가 될 수 없다. 이 무렵 바쇼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쇠약해져 있었다.
그래서 한 달 남짓 오두막 문을 안으로 잠그고 세상과 격리된 생활을 했다. “누가 오면 불필요한 말을 해야 한
다. 내가 다른 사람을 찾아가면 그를 방해했다는 미안한 느낌이 든다. 벗 없음을 벗으로 삼고, 가난함을 부로
삼아야 한다. 쉰 살 먹은 노인이 이 글을 써서 자신의 계율로 삼는다.” 이러한 글과 다음의 하이쿠를 지었다.
나팔꽃 피어
낮에는 자물쇠 채우는
문의 울타리
(朝顔や晝は錠おろす門の垣)
그대 돌아오지도 못할
어느 곳으로
꽃을 보러 갔는가
(君歸らず何處の花を見にいたか)
―― 소세키(漱石)
* 자살한 동료 문인을 애도하며 쓴 이 하이쿠는 그 후 동일본 대지진을 비롯해 수많은 추도식에서 낭송되고 인용되어 왔다.
무슨 일인가
고인에게 바친 꽃에
미친 나비
(何事ぞ手向けし花に狂ふ蝶)
―― 소세키(漱石)
* 몸부림치는 자신의 모습을 죽은 꽃에 미친 나비에 빗댈 만큼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끝내 현실이 아니다.
죽은 사람에게 바친 꽃도 나비에게는 똑같은 꽃일 뿐이다.
17. 들깨풀
19. 꼬리조팝나무
툇마루 위에
어디선지 모르게
떨어진 꽃잎
(濡緣にいづくともなき落花かな)
―― 교시(虛子)
* 문학평론가로부터 높이 평가받은 교시의 대표작이다.
20. 새박
달개비꽃
기도하는 것 같은
꽃봉오리
(露草のをがめる如き蕾かな)
―― 다카시(たかし)
* 랭보는 “시의 혁신은 사상이나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과 현상이 지닌 숨겨진 의미를 보편적 영혼들이 감지
할 수 있도록 잡아내는 능력에 있다.”고 했다. 달개비꽃은 닭의장풀의 다른 이름으로 일본에서는 이슬풀, 반딧불이
풀이라고도 부른다. 그 꽃이 지금 봉오리로 기도하고 있다.
22. 쥐손이풀
엉겅퀴 선명하다 아침에 비 개인 뒤
(あざみあざやかなあさのあのあがり)
―― 산토카(山頭火)
* 한 사물의 아름다움을 인식하면 모든 존재가 공유하고 있는 본성의 아름다움에 눈뜨게 된다. 투명한 공기 속에
홀로 서 있는 보라색 엉겅퀴에 감탄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아(あ)’ 음을 연속적으로 썼다.
계속 걷는다 피안화 피고 또 피어 있다
(步きつづける彼岸花咲きつづける)
―― 산토카(山頭火)
* 꽃무릇(석산, 石山)을 일본에서는 피안화(彼岸花)라 하며, 텐메이 대기근(1782~ 1788, 일본 에도시대 텐메이
연간에 일어난 기근 사태) 당시 워낙 먹을 것이 없자 유독식물인 석산을 데쳐다 먹었는데 그마저도 모두 바닥
난 뒤로는 식인 밖에 방법이 남지 않게 되었다 하여 죽음의 상징으로서 불길하게 여겼다.(위키백과)
봉숭아 씨앗을 터뜨려 봐도 외롭다
(鳳仙花の實をはねさせて見ても淋しい)
―― 호사이(放哉)
29. 돌콩
첫댓글 青萩に
まぎれて咲ける
桔梗かな
♣久保田万太郎
あおはぎに
まぎれてさける
ききょうかな
♣くぼたまんたろう
청싸리꽃에
섞여서 피어나는
도라지인가
♥쿠보타만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