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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이라는 사람과 강아지 똥
『뿌리깊은나무』 1978년 12월호
하나님은 과연 사람들에게 아버지라 불릴 수 있는 자격을 갖춘 분입니까? 당신이 지은 사람들이 이토록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도 침묵만 지킬 셈입니까?
사람이 살아감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은 자기가 사는 삶의 터전에 뿌리를 내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글줄이나 읽고 학문깨나 했다는 지식인의 경우에 이 문제는 자못 심각하다. 나아가서 목사라든지 작가라는 사람들이 그 시대의 토양에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했을 경우에, 나라의 위험을 보고도 꿀먹은 벙어리가 되고 백성이 굶주림과 갈증으로 죽어 가는 현장에서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 오너라" 하고 딴청을 부리게 된다.
나는 기독교 목사이면서도 "예수의 십자가 보혈이 나의 죄를 대신 속죄했다"는 교리에는 여전히 서먹서먹하다. 이런 말을 하면 어떤 이들은, 목사가 저 모양이니 이 나라의 기독교 장래가 암담하다고 한탄을 하겠지만, 그들의 한탄을 예방하려고 속에 없는 말을 할 수는 없다. 그러면서도 나는 예수를 널리 알릴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를 좋아하고 있는 만큼 아마 앞으로도 좋아할 것이다. 그것은, 그가 완전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세계라는 토양에 뿌리를 건강하게 내린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어떤 말로도 이 역설을 설명할 수는 없다.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에 다음과 같은 대화가 나온다. "우선 상놈이 되어야 하지, 유생의 버릇이 추호라도 남아 있으면 안 되여. 자네 같은 이는 상인 동무를 많이 사귀어야 하네. 백성들의 순박한 뜻을 배우지 않으면, 농사 잡록이든 의술이든 활인이든 아무 쓸모가 없네." 운부라는 중이, 벼슬을 마다고 농촌에 살며 「농사 잡록」이라는 책을 쓰고 있는 설유징이라는 선비에게 하는 말이다. 백성이라는 토양에 뿌리를 내리지 않으면 그 모든 지적인 소산물이 헛것이라는 말이다.
"유생의 버릇이 추호라두 남아 있으면 안 되여"라는 말에서 나는 예수의 출생을 말한 바울의 유명한 한 귀절을 떠올렸다. "그리스도 예수는 하나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에서 무슨 말을 더 하랴? 이 한마디로써 내가 평생토록 그를 따르고 널리 알릴 이유는 차고 넘친다.
이쯤해 두고, 내가 지금부터 동화 작가 권정생의 이야기를 횡설수설 지껄이려 함은, 여전히 뿌리를 못 내려 불안하기만 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해 보려는 소인배의 치기어린 짓거리일 뿐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그는 얼마나 화가 날까? 그러나 나는 한쪽 구석에 믿는 점이 있다. 그것은 태어나면서부터 당하기만 한 그가 이번에도 한번 더 당했다 셈치고 하루나 이틀쯤 언덕배기에 올라 잔디 씨앗이나 쥐어뜯다가 그만둘 것이라는 음흉한 계산이다.
경상북도 안동군 일직면 송리에 가면 동화 작가 권정생은 없고 '권 집사'만 있다. 그는 오늘 새벽에도 따르릉거리는 자명종 소리에 일어나 예배당 마당에 높이 솟아 있는 종을 울렸을 것이다. 그리고 차가운 마루바닥에 무릎을 꿇고 뭐라고 하나님께 빌었을까? 아무튼 빌었을 것이다. 지금도 억울한 일을 당해 눈물 흘리는 이 땅의 가난한 백성이 이웃에 있느니만큼 그의 기도는 중단될 수 없을 것이다. 때때로 그의 기도는 머리털이 곤두서는 반항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과연 사람들에게 아버지라 불릴 수 있는 자격을 갖춘 분입니까? 당신이 지은 이 세상에서 사람과 뭇 짐승들이 이토록 고통을 겪고 있어도 끝내 침묵만 지키고 있을 셈입니까? 천년이 하루 같은 당신께서는 한 사람의 평생이 잠시 잠깐 지나가 버릴지 모르지만, 이토록 약하디 약한 갈대 같은 인생은 고통에 고통으로 나날을 살고 있는데, 과연 무소부재하시고 전지전능하십니까?..."
언젠가 불쑥 찾아 갔더니, 그는 새끼 염소 두마리에 질질 끌려 마당으로 들어서면서 나를 보고, 시골 사람들이 불쌍하다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날밤, 그는 별식을 만들어 나를 대접하였다. 밀가루를 질게 반죽하고 거기에 고추장을 풀어 프라이팬에 부치니 그럴듯한 고추장떡이 되었다. 찬물을 마셔가며 그 싱겁고 매운 별미를 뜯어 씹으며 그는 다시 시골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푸념을 놓았다. 그러나 그가 거처하는 방의 방바닥은 울퉁불퉁한데다가 시렁 위에는 꾀죄죄한 이불 한장이 얹혀 있고 한쪽 벽에는 낡은 책들이 가득 쌓여 있다. 한마디로 궁기가 뚝뚝 떨어지는 꼴이다. 일본에 사는 질녀가 보내 줬다는 고갱, 피카소, 샤갈 들의 호화판 화집과 한쪽 벽에 삐뚜름이 걸린 "국화를 동편 울 밑에서 꺾다가 물끄러미 남산을 보네"라는 도연명의 한시를 전서체로 쓴 액자 한쪽이 고작이다. 그 아래에는 십년도 더 전에 샀다는 후지카 석유 곤로와 라면 상자가 궁상스럽게 놓여 있다. 그만해 두자.
그는 혼자 산다. 1936년에 태어났으니까 마흔셋인데 아직 총각이다. 그는 가정을 꿈 속의 낙원이면서 또한 두려움 자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내게 여러번 편지를 보내면서도, 오직 한번도 우리집 아이들이나 그 아이들의 어미의 안부를 묻지 않았다.
역사란 것이 한 개인을 얼마나 짓밟아 뭉개 버릴 수 있나를 알아 보려면, 히로시마 원자 폭탄 투여, 해방 후 좌우익의 충돌, 육이오, 사일구, 그리고 오일륙의 소용들이 속에서 그 많던 식구들을 다 잃어 버리고 야금야금 폐를 갉아 먹는 균과 싸우면서 그것들이 얹어 주는 외로움의 보따리를 홀로 지고 있는 체중이 사십 킬로그램도 못되는 그의 모습을 보는 게 좋을 것이다.
평론가 이오덕 선생이 그를 나에게 소개하면서 처음으로 한 말은 "일년에 총 수입이 이천칠백원이라 합디다"였다. 그때가 아마도, 1974년이었을 것이다.
"...염소를 끌고 언덕을 오르자니 숨이 찬다. 나의 몸 속의 결핵균은 아직도 내 두쪽 폐에 붙어서 갉아 먹고 있다. 소변을 보면 고름이 흘러나온다. 언덕을 무리하여 올라가면 발동기처럼 내 가슴은 요란하게 뛴다. 목을 비끌어매인 염소는 길 가 저만큼에 보이는 스무나무 잎사귀가 먹고 싶어 버둥버둥 그 쪽으로 가고 싶어 하지만 내가 놓아 주지 않는다. 주인이란 건 이렇게 무자비한 것이다. 두어발쯤 되는 나일론 밧줄에 말뚝을 매어 꽝꽝 두들겨 박아 놓으면 가엾은 염소는 삼 미터의 둘레를 뱅뱅 돌면서 배를 채우기 위하여 그야말로 묵은 마른 풀까지 갉아 먹는다. 온 산천이 맛난 풀밭인데도 새끼 염소에게 허락된 먹이는 그토록 빈약한 먹이뿐이란다. 그런데도 주인은 귀여운 자기 소유의 염소라고 쓸어 주고 보호하는 체한다. 염소는 주인을 따른다. 그 주인이 어떤 폭군인지, 약탈자인지, 사기꾼인지, 아무 것도 모르고..."
이것은 지난해 봄에 그가 나에게 보낸 펀지 속의 한 부분이다. 조그만 언덕을 오르는 데도 발동기처럼 요란하게 뛰는 그 빈약한 가슴의 고통은 산천의 맛난 풀을 뜯고 싶으나 나일론 밧줄에 매여 삼 미터의 둘레를 맴돌아야 하는 새끼 염소의 고통이 되고 그것은 또 뙤약볕 아래 김을 매고 풀을 뽑으면서 땀을 흘리고 흘리고 자꾸만 흘려도 빚만 늘어나는 그의 동화 속의 금복 엄마의 고통이 된다.
"형은 지가 젤 불쌍하면서 남들 불쌍하다는 말만 해!"
고추장떡을 뜯으면서 퉁명스럽게 던졌던 한마디, 나는 지금 그럴 수만 있으면 그 말을 거두어 들이고 싶다. 그가 뻗은 삶의 뿌리가 염소의 고통, 금복 엄마의 고통, 그리고 배운 것 없고 배경없이 억울하기만 한 송리 사람들의 고통 속에 얽혀 있음을 이제야 알 만하다.
기타모리라는 일본의 신학자가 이차대전이 끝난 뒤에 「고통의 신학」이라는 책을 써서, 인간의 고통 속에 참여하는 하나님의 고통을 길게 설명한 적이 있다. 인간과 하나님이 만나는 현장은 '고통'이라는 것이다.
"십자가를 진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하나님의 고통에 시중을 든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다는 말은 자기 고통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고통을 시중든다는 말이다. ...자신이 고통을 당함으로써 하나님의 고통을 시중들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고통과 아무 상관이 없는 무용지물이다..."
전쟁이 안겨 준 황량한 폐허에서 나옴직하고 또 마땅히 나와야 할 신학이었다.
오늘, 안동 땅 송리의 권 집사는 기타모리의 주장을 서재에서 끌어내어 고통의 현장에서 그 아린 상처를 확인시켜 주고 있다. 다시 그가 내게 보낸 편지를 보자.
"십여일간 열에 시달리다가 겨우 일어났다. 이젠 남의 눈에 띄일까 봐 누워 있는 것도 부담이 되어 될 수 있으면 앉아서 견디지만, 눕지 않고는 못 배겨 어쩔 수 없이 누워 있었다. 죽 한 남비를 끓여 이틀씩 먹었다. ...며칠 전 이곳 시내 고등학교 학생 교련 시범식이 있었다. 비를 맞으면서 그들이 받아 온 훈련을 관계 기관장들 앞에서 해 보이는 것인데 다음 날, 여고생 하나가 숨을 거두었단다. 뒤늦게 알았는데 그 여고생은 선천성 심장판막증이라는 지병을 앓고 있었단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과연 용서받을 수 있는 인간인지 두렵다. ...난 정말 어찌 했으면 좋을까?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괴로와 하기만 하다가 죽는가 싶다. 억울하게 죽어가는 가엾은 목숨들이 바로 눈 앞에 있는데도, 제 혼자 살려고 오늘 아침에도 꾸역꾸역 숟가락을 입에 쑤셔 넣었다. 용서받지 못할 이 위선자!"
십년이 넘게 동화를 쓴답시고 원고지를 없애며 천금 같은 지면을 더럽혀 온 나는, 여전히 이 땅의 아이들이 맨가슴으로 앓고 있는 고통과 '양팔 간격'으로 나란히 서 있는 순 똥이다. 나뿐이 아니라 어떤 방법으로든 이 나라 백성의 억울함과 고통에 제 몸을 담그지 않고 글을 쓰거나 설교를 하는 자들은 모두 똥이다.
권정생, 어떻게 된 심판인지 그를 볼 때마다 나는 한없이 부끄럽다. 처음 만나던 날, 그 디즈니 다방의 담배 연기와 시끌시끌한 잡담들 속에서 뼈다귀뿐인 두손으로 포동포동 살찐 나의 손을 그냥 꼬옥 잡아 줬을 때부터 그는 알이요 나는 껍질이었다. 제일회 아동문학가상을 받으러 상경했을 때였다.
틀림없이 장터 행상에게서 샀을 허름한 코트를 목이 긴 털 샤쓰 위에 걸치고, 무릎이 벌쭉하니 나와 종아리가 다 드러난 검정 바지에 검은 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그것은 빳빳한 와이셔츠 깃 아래 어지러운 무늬의 넥타이를 매고 윤이 나도륵 손질한 가죽 구두를 신은 서울 놈들에게 통쾌한 일격이었다.
수상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그는 자기가 사찰 노릇을 하고 있는 교회의 가난뱅이 아이들 얘기를 몇 마디 더듬거렸을 뿐이다. 며칠 더 묵으며 서울 구경이라도 하고 가라는 나의 청을 거절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칠복이라는 정신박약아가 있어. 나이는 열다섯인데 국민학교 일학년 수준도 못 돼, 이 녀석을 얼마 전부터 가르쳤는데 제법 일에서 십까지 쓸 줄 알게 됐어. 8 자만 못 쓰고 다 쓰지. 서울 오기 전날 이름자를 가르쳐 줬더니 무척 기뻐하더라. 잘 하면 제 이름자 정도는 곧 쓰겠어. 그 애가 날 기다리고 있을게야, 무척..."
무슨 구실로 그를 더 서울에 머물게 하랴? 이처럼 그가 바쁘게 돌아가야 하는 곳, 송리 사람들은 서울 나들이에서 돌아오는 그를 논두렁에서 만나 한다는 소리가 고작 "권 집사, 텔레비에 나왔더구마?"였다.
"...바로 그 점이야. 일년 농사 뼈빠지게 지어 가을걷이 끝나면 텔레비부터 사놓는 마음들, 하춘화 쇼단이 안동에 왔다 하면 오십리 길을 멀다 않고 달려가야 하는 처녀 아이들... 무슨 재간으로 그들을 업신여기구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희생자들인데, 현대 문명이라는 못된 악마의 희생자들인데, 우리에게는 그들을 감싸 주고 위로해 줄 일밖에는 아무 것도 없어. 아이들은... 더 하지.
"...그저 불쌍해, 불쌍해 죽겠어. 저기 저 움집에는 정신이상된 노파가 혼자 살고 있어. 지난 겨울 추위에 얼어 죽나 했더니, 안 죽고 여태 살아 있어... 죽는 게 사는 걸 텐데.
"...우리 교회에 영감 잡아먹구, 아들 잡아먹구, 며느리까지 잡아먹구 손자 하나 데리고 사는 할머니가 있어, 작년 가을인가? 할머니네 집 뒤란에 감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감이 탐스럽게 열렸나 봐. 그래, 작년에는 감 풍년이었지. 할머니가 손자 시켜 그 중 실한 놈으로 한 가지 꺾어다가 영감 묻힌 무덤에 갖다 두게 했대. 귀신이라도 나와서 맛이나 보라는 속셈이겠지. 영감이 생시에 감을 퍽두 좋아했는가 봐. 그런데 그게 전도사님하고 장로님한테 들켰어. 문제가 됐지. '알겠어요? 할머니. 할머니는 우상을 섬겼어요.' '예, 죽을 죄를 졌구먼요.' '회개하고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말아요. 귀신을 섬기다니!' '예, 전도사님.' '교인들이 듣는 데서 잘못했다구 그래요.' '예...' 그 할머니한테 난 아직도 한 마디 위로를 못하구 있어, ...게을러서인지."
울퉁불퉁한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그는 키들키들 웃고 있었다.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더니, 그의 눈에는 온통 불쌍하고 못난 인간들 뿐이다.
"...거지들이 네 눈에는 어떻게 보이니? 어쨌든, 서먹서먹하지? 석달 동안, 깡통 들고 다리 밑에서 잠을 잘 때 길에서 거지를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어. 몸에 병이 악화되지만 않았으면 난 지금도 거지 노릇을 할지 몰라. 길에서 주운 종이조각에 몽당 연필로 동요를 지었지. 아름다운 동요였어. 거지 생활, 몸만 튼튼하면 할 만해... 옛날 얘기지만."
그가 어쩌다가 깡통을 차야만 했던지, 또 어지어찌하여 안동 땅 송리의 장로 교회 사찰 방에 눌러 앉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묻지도 않았고 또 얘기해 주지도 않았다. 한번은 수기를 쓰라고 권했더니, "솔직하게 쓸 수가 없어. 솔직하게 쓸 수 있을 때에 쓰지" 했다.
어쩌면 그는 죽기 전에 수기를 쓰지 못하고 말지도 모른다. 쓴다 한들 누가 참으로 그를 알 수 있으랴? 하고 싶은 이야기들로 가득 찬 조그만 몸뚱이. 그러나 하루에 원고지 열장을 넘어 쓸 수 없는 쇠잔한 육신. 챙이 넓은 맥고모자를 머리에 얹고 가을 햇볕이 눈부시게 부서지는 안동 군청 앞길을 그림자처럼 걸어 가는 권정생의 뒷모습에서 이 죄없는 백성이 겪고 또 겪은 고통의 파편을 읽을 수 있었고, 그것이 나로서는 고작이었다.
"...이 세상이, 그리고 나의 종말이 일각에 닥친 것 같아진다. 이젠 이 땅 위엔 슬퍼할 가치조차 없게 된 적막이 뒤덮여 오고 있다. 내가 어떻게 그것을 견뎌나간단 말이냐. 나는 선한 인간보다 아름다운 인간으로 살고 싶었다. 그런데 이 땅은 그렇게 도와 주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맨발로 걷고 싶다. 뜨거운 사막이면 더욱 좋겠다. 시들어진 풀 한 포기, 그걸 사랑하고 싶다. 이건 절대 감상이 아니다. 현주야, 이 세상의 수많은 성자보다 한 인간을 사랑하고 구하여라. 인간은 죄가 많기 때문에 아직은 착할 수가 있는 것이다. 정말이지, 나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그리고 사랑하고 싶다. 어머니가 불쌍하시고 그리고 아버지가 그립다..."
불쌍한 어머니 얘기는 1973년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한 동화 「무명저고리와 엄마」에 아프도록 슬프게 그려져 있다. 엄마가 손수 만든 무명저고리에 복돌이, 차돌이, 삼돌이, 큰분이, 또분이, 막돌이, 무돌이 일곱 남매가 코를 묻히며 자라났다. 이제 그 저고리는 너무 낡아 입을 수가 없건만 엄마는 장롱 깊숙이 넣어두고 사라져 간 자식들의 추억 보자기로 삼았다.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남편은 독립군이 되려고 집을 나갔고 그 뒤를 따라 복돌이도 북간도로 건너가 독립군이 되었다. 차돌이는 일본 도꾜로 공부하러 갔지만 신사가 되었다는 소문만 전해 오고 끝내 나타나지 않고 삼돌이도 일장기를 머리에 두르고 징용으로 끌려 갔다가 전사 통지서만 한장 보내고 돌아올 줄 모른다. 아쉬움 속에 큰분이는 시집을 가고 만삭이 되었다는 소문이 들리는 참에 육이오가 터졌다. 막돌이는 피난길에 다리 하나를 잃고, 그를 살리기 위해 양공주가 된 또분이는 새까만 검둥이 아이를 낳고 어디론지 몸을 감추었다. 전쟁이 끝나 두 아들만 데리고 마을로 돌아왔을 때 큰분이는 북녘 땅으로 끌려갔다는 소문만 남겨 놓고 보이지 않았다. 막내 무돌이가 위태로운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 입대하였을 때 엄마 곁에 남은 것은 한 쪽 다리를 잃은 막돌이 뿐이었다. 월남에서 주일마다 오던 무돌이의 편지 대신에 "누렇고 길쭉한 전사 통지가 오던 날은 아침부터 까마귀가 유별나게" 짖어 대었다.
이토록 온몸으로, 찢어지는 고통을 견뎌야 하는 엄마는 그대로 이 백성의 엄마요 흙이다. 그러나 읽어 본 사람은 알겠거니와 그 문장의 아름다움과 따스함은 뭔가 섬찟한 두려움까지 느끼게 한다. 그의 동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못나고 병신스럽고 거칠고 쓸쓸하다. 그러나 그들은 아름답다. 그런 걸 어찌 아름다움이라고 말하랴만, 사립 학교의 유별난 제복과 외제 승용차 덕분에 돋보이는 그런 아름다움이 아니라, 경건하고 거룩한 아름다움이다.
방문을 열면 바로 마당이 보인다. 그 문을 열어 놓고 둘이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 그런데 마당에서 놀고 있던 못생긴 암탉 한 마리가 슬슬 다가오더니 성큼 방 안으로 들어섰다. 무심코 한 손을 뻗어 밖으로 내몰았지만, 암탉은 시큰둥하니 나갈 생각을 안 했다. 나는 본격적으로 닭을 내쫓기 위하여 자세를 고쳤다. 그때였다. 그는 두팔로, 마치 깨어지는 유리그릇을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그 못생긴 암탉을 감싸 안더니 앉은걸음으로 주춤거리고 걸어가 문 밖에다 살그머니 내려 놓았다. "전도사님네 닭이야. 세 마리가 있었는데 다 죽고 이놈 혼자 남았어." 그는 이런 식으로 곧잘 나의 뒷통수를 쳤다.
영주역 대합실, 무척 많은 사람이 붐비고 있었다. 머리를 쑥대강이처럼 흐트러뜨린 키 큰 거지가 이야기하고 앉아 있는 우리 앞으로 어슬렁거리며 걸어왔다. 그는 바로 내 발 밑에 떨어져 있는, 누군가가 다 먹고 버린 사과속을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시커먼 흙이 묻어 있는 그대로 입 속에 넣고 씹어 삼켰다. 나로서는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흙묻은 사과속을 초컬릿이나 되는 듯이 입맛을 다시며 남김없이 먹어 치운 그는, 이번엔 맞은 편에 서 있는 어느 농부차림의 중년 사내 뒷주머니에 시선을 박았다. 그 주머니에는 돈지갑일 듯 싶은 두둑한 지갑이 꽂혀 있었다.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그는 농부의 뒤로 슬금슬금 접근했다. 예상했던 대로 그는 농부의 뒷주머니를 뚫어지게 노려보며 그리로 손을 뻗었다. 순간, 그야말로 제비가 물을 차듯, 거지는 농부의 엉덩이에 붙어 있는 지푸라기를 잽싸게 떼어 버리고는, 내가 멍청하게 앉아 있는 동안, 인파 속으로 사라져 갔다. 한참 만에 나는 곁에 앉아 있던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나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 다 보고 있었나? 그 천사 같은 거지를 고작 소매치기로 밖에 보지 못한 나의 한심한 꼬락서니를.
실로 온 세상은, 눈이 있는 자에게는 놀라움이요 부끄러움이며 가르침이다. 어느 봄날 그는 나에게 미야자와 겐지의 시 「바람에 지지 않고」를 번역해 보냈다.
비에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보라와 여름의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을 가지고
욕심도 없고
절대 화내지 않고
언제나 조용히 미소지으며
하루 현미 네홉과
된장과 나물을 조금 먹으며
모든 일에
제 이익을 생각지 말고
잘 보고 들어 깨달아
그래서 잊지 않고
들판 소나무 숲 속 그늘에
조그만 초가지붕 오두막에 살며
동에 병든 어린이가 있으면
찾아가서 간호해 주고
서에 고달픈 어머니가 있으면
가서 그의 볏단을 대신 져 주고
남에 죽어가는 사람 있으면
가서 무서워 말라고 위로하고
북에 싸움과 소송이 있으면
쓸데없는 짓이니 그만두라 하고
가뭄이 들면 눈물을 흘리고
추운 겨울엔 허둥대며 걷고
누구한테나 바보라 불려지고
칭찬도 듣지 말고
괴롬도 끼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그는 또 서른일곱 젊은 나이에 죽은 이 일본 동화 작가의 대표작인 「은하철도의 밤」이 품고 있는 심오한 종교 철학과 그 처절한 고독에 대한 간단한 해설도 동봉했었다.
작가는 한번쯤 제 모습을 그리기 마련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못 그리면 되고 싶은 대로의 모습을 그린다. 1969년 월간잡지 「기독교 교육」이 뽑은 제일회 기독교 아동 문학 작품 모집에 입선된 동화 「강아지 똥」이 권정생의 그런 작품이다. "돌이네 흰둥이가 누고 간 똥입니다"로 시작되는 이 짧은 동화는 한국 아동 문학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선을 그어 놓았다.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새끼」보다 더 그윽하고 구수한 향기를 맛볼 수 있는 이 작품이야말로 우리 한국이 세계에 내놓을 만한 격조높은 동화 문학이라고 할 만하다.
태어나면서부터 천대를 받게 된 강아지 똥이 슬픔과 외로움을 삭이면서 겨울을 나고 마침내 오랜 기다림 끝에 민들레 꽃으로 피어난다는 이야기다.
"강아지 똥은 온 몸이 비에 맞아 자디잘게 부서졌습니다. 땅 속으로 모두 스며 들어 가 민들레의 뿌리로 모여들었습니다. 줄기를 타고 올라와 꽃봉오리를 맺었습니다.
"봄이 한창인 어느 날, 민들레는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을 피웠습니다. 샛노랗게 햇빛을 받고 별처럼 반짝이었습니다. 향긋한 내음이 바람을 타고 퍼져 나갔습니다.
"방긋방긋 웃는 꽃송이엔 귀여운 강아지 똥의 눈물겨운 사랑이 가득 어려 있었습니다."
동화 작가 권정생은 이 나라의 황량한 들판에 한 송이 민들레를 꽃피우려는 강아지 똥이다.
그는 지금도 주문처럼 중얼거리고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쓸데없는 물건은 하나도 만들지 않으셨어. 너도 꼭 무엇엔가 귀하게 쓰일 거야."
잠시 친했던 흙덩이가 강아지 똥에게 남겨 주고 간 말이다. 한 송이 민들레를 꽃피우기 위하여 권정생은 지금도 당신 모르게 부서지고 있다. 썩어가고 있다.
"...이제부터 난 자신을 인간 이하의 동물로 여기고 살 테야. 짐승들의 세상에도 아름다운 건 얼마든지 있어. 먹을 수 있으면 체면없이 먹을 테고, 허락하지 않으면 몇끼라도 굶을 테다. 해질녘이 되면 아주 행복해진다."
이현주 / 목사, 동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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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오래된 글 한 편 발견하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