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8월 16일(현지시간) 42세를 일기로 세상을 뜬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의 마지막 2년 남짓을 곁에서 지켜본 간호사 출신 메리언 J 콕이 98세를 일기로 저하늘로 떠났다고 피플 닷컴이 7일 전했다. 엘비스의 전처 프리실라 프레슬리(79)는 전날 인스타그램에 1975년부터 2년 넘게 병원과 그레이스랜드에서 전 남편을 보살폈던 고인을 "항상 그가 의지했던" 사람이라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프리실라는 1967년 엘비스와 결혼해 1973년 이혼했기 때문에 그의 마지막 곁을 지키지 못했다.
여배우이기도 한 그녀는 장미 이모티콘과 함께 “메리언 당신이 무척 그리울 것이다. 당신의 영혼은 많은 사람들에게 닿았고, 특히 엘비스에게 그랬다. 당신은 그가 항상 의지했던 사람이었다. 항상 그를 돌봐준 데 대해 감사드린다”고 적었다. 아울러 2023년 1월 세상을 등진 딸 리사 마리 프레슬리, 고인과 함께 찍은 위 사진(촬영 일시 알 수 없음)을 공유했다.
콕은 1979년 펴낸 회고록 '난 그를 베이브(babe)라고 불렀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간호사가 기억한다'에 엘비스의 말년을 상세히 기록했다. 엘비스가 1975년 1월 멤피스의 뱁티스트 메모리얼 병원에 처음 입원했을 때 자신은 수간호사였다고 책에 썼다.
2000년대 중반 인터뷰를 통해 콕은 그를 만나기 전에는 “절대 엘비스 팬이 아니었다"면서 주치의 조지 니코풀로스가 자신을 전속 간호사로 배정하자 “병원에 온 장삼이사처럼" 대했다고 했다. 처음 만났을 때 엘비스는 “침대 곁에 앉아 (당시 여자친구인) 린다 톰프슨의 면도를 받고 있었다. (로드 매니저) 조 에스포지토와 (신부인) 버논과 (경호 책임자인) 딕 그롭과 다른 한 친구가 거기 앉아 있었다”고 소개했다.
엘비스는 콕의 돌봄을 받으며 3주 입원했다. 그 해 8월 두 번째로 입원했다. "그는 나보고 밤새 있어 달라고 했다. 난 홀 건너편 방에 있었다. 그는 뭔가 필요한 게 있으면 내게로 와어깨를 흔들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 이런 식이었다. 그가 ‘잠이 안 와요, 일어나 나랑 얘기할래요?’라고 말하면 난 일어나 가운을 걸치고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눴다."
두 번째로 뱁티스트 메모리얼 병원을 퇴원한 뒤 니코풀로스는 그레이스랜드에 와 엘비스를 간호하면 안되겠느냐고 사정했다. 그녀의 임무는 그의 혈압과 약 처방을 지켜보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엘비스의 저택에서 2년 반을 묵었다. 그곳을 떠나게 된 계기는 어머니의 운명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었다. 그녀는 엘비스로부터 사례금을 받는 것을 거절했지만, 로큰롤의 제왕은 "예쁘장한 흰색 폰티악"을 선사했다.
“그는 손이 컸다. 그게 커다란 결함이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주는 것보다 사람들에게 주고 돕는 일을 훨씬 신경 썼다.”
회고록에 생전의 'Jailhouse Rock' 가수를 마지막으로 본 순간을 썼다. 일간 뉴욕 포스트에 따르면 둘은 다정한 포옹을 나눴는데 그는 "미스 콕, 난 이 집이 항상 당신에게 열려 있을 것이란 점을 알려드리고 싶네요"라고 말했다.
다만 피플의 이 기사는 엘비스의 말년과 프리실라의 언급만 소개하고, 콕이 간호사 생활을 마친 뒤 어떤 삶을 살았는지, 사망 원인과 장소, 유족 등을 밝히지 않아 아쉽다.
한편 엘비스의 많은 여성 편력에도 불구하고 그레이스랜드에서 함께 한 여성들은 많지 않은 가운데 그 중 한 명인 톰프슨(74)이 인스타그램에 엘비스와 함께 찍은 희귀한 사진을 올렸다고 영국 데일리 익스프레스가 최근 보도했다. 미스 테네시 출신 모델이었으며 엘비스보다 열다섯 살 연하였다. 프리실라와 이혼한 직후 엘비스와 교제를 시작해 1976년 성탄절 전에 그레이스랜드를 떠났다. 톰프슨은 "칼릴 지브란과 엘비스가 공유했듯, 슬픔이 가슴에 깊이 새겨질수록 기쁨은 더 많이 담을 수 있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