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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인문연구원 동고송
“한 권의 책은 하나의 사건이다.
한 권의 책에 담긴 지은이의 고뇌와 정성을 기억한다.”
최용현 작가의 ≪한 권으로 읽는 삼국지 인물열전≫ 요약
- 삼국지 인물 125인의 벌거벗은 이력서 -
작성자 : 김동민(작성일 : 2024.3.1)
책 머리에 : 삼국지 인물 125인의 활약상을 한눈에…
○ ‘어리석은 사람은 명마(名馬) 감정법을 배우고 현명한 사람은 노마(老馬) 감정법을 배운다.’는 말이 있다. 그 반대가 아닌가 하고 생각되기 쉬우나, 명마는 아주 드물어서 배워봤자 써먹을 기회가 거의 없다. 그러나 노마 즉 걸음이 느리고 둔한 말은 도처에 많이 있으므로 배운 것을 써먹을 기회가 아주 많다. 그러므로 명마 감정법을 배우는 것보다는 노마 감정법을 배우는 것이 실용가치가 훨씬 크다. 현실 사회에서도 조조나 제갈양 같은 걸출한 인물보다는 그저 그렇고 그런 평범한 인물들이 훨씬 많지 않은가.
○ 그런 측면에서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 125인을 뽑아서 이들이 구사하는 이들이 구사하는 지략과 무용담, 그리고 이들의 부침 과정을 똑같은 비중으로 다루어 보았다. 걸출한 인물 몇 명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보다는 여러 전형의 인물 여럿을 골고루 똑같은 비중으로 다루는 것이 여러모로 유익하리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종착점은 자연스럽게 성공 혹은 실패로 귀결되지 않겠는가.
○ 삼국지가 낳은 불세출의 영웅 조조가 만년에 쓴 ‘귀수수(龜雖壽)’라는 시를 소개하는 것으로 삼국지와 씨름하면서 느낀 소회를 대신할까 한다.
<龜雖壽 귀수수> 거북이 비록 오래 산들
神龜雖壽(신귀수수) 신령스런 거북이 아무리 오래 산다 해도
猶有竟時(유유경시) 반드시 죽는 날이 있고
螣蛇乘霧(등사승무) 하늘을 나는 이무기 구름 위에 올라도
終爲土灰(종위토회) 끝내는 흙먼지로 돌아간다
老驥伏櫪(노기복력) 늙은 준마가 마구간에 엎드려 있어도
志在千里(지재천리) 뜻은 천리 밖에 있고
烈士暮年(열사모년) 열사는 비록 몸은 늙어도
壯心不已(장심불이) 그 웅장한 포부는 사라지지 않는다
盈縮之期(영축지기) 이루고 못 이루고 하는 것이
不但在天(부단재천) 하늘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닐지니
養怡之福(양이지복) 기뻐하는 마음을 쌓아서 얻은 복으로
可得永年(가득영년) 긴 수명을 얻을 수 있다네
幸心至哉(행심지재) 아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歌以咏志(가이영지) 시가(詩歌)로 그 뜻을 노래할 수 있으니
제1장 난세에 일어난 군웅들
01. 삼국지를 연 황건적의 총수 ‘장각’
○ 태평도의 교주 장각(張角). 어릴 때부터 신동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청년이 된 장각은 어느 날 산에 약초를 캐러 갔다가 남화노선(南華老仙)이라는 도인을 만났는데, 그 도인은 장각을 데리고 어떤 동굴로 들어가 천서(天書) 세 권을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태평요술’이라는 책인데, 이 책의 내용을 잘 익혀서 세상에 나가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도록 하라. 만일 딴 뜻을 품을 때는 화를 면치 못하리라.”
그때부터 장각은 ‘태평요술’을 보며 혼자서 수행(遂行)을 시작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사람들은 장각을 무슨 도사처럼 떠받들었고, 그의 집에는 소문을 듣고 제자가 되겠다고 찾아온 사람들로 성시(成市)를 이루었다.
○ 장각이 항상 머리를 누런 수건으로 싸고 있어서 그의 군사들도 이를 본뜨게 되었고, 군기(軍旗)도 황색기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황건적(黃巾賊)이라 불리게 되었다. 황건적의 총수 장각은 천하를 뒤엎을 계획을 세우고 거사(擧事)를 일으킨다. 드디어 황건적의 난이 일어난 것이다.
蒼天已死(창천이사) 푸른 하늘은 이미 죽었으니
黃天當立(황천당립) 마땅히 누런 하늘이 서리라
歲在甲子(세재갑자) 때는 바야흐로 갑자년이니
天下大吉(천하대길) 중원 천하가 크게 길하리라.
○ 황건적이 만들어 퍼트린 노래이다. 그들의 군가인 셈이다. 세 살 먹은 아이들까지도 따라 부를 만큼 이들의 위세는 중원을 휩쓴다.
06. 삼국지의 무예지존(無藝至尊) ‘여포’
○ 불을 뿜는 눈동자, 맹호 같은 기상, 양날을 창으로 쓰는 방천화극(方天畵戟)을 꼬나 쥔 빈틈없고 늠름한 위용, 삼국지에 처음 얼굴을 드러낸 여포의 모습이다. 여포의 자는 봉선(奉先).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할 정도로 활쏘기와 창검의 명인이다.
○ 여포를 삼국지의 무예지존(無藝至尊)으로 꼽는 근거는 두 번의 전투 결과에서 나온다.
첫 번째는 호로관 전투에서 유비 관우 장비와 여포의 3대 1 결투가 벌어졌다. 이때 82근(斤)의 청룡언월도를 쓰는 관우와 장팔사모(丈八蛇矛)를 휘두르는 장비, 그리고 쌍고검(雙股劍)을 쓰는 유비까지 한꺼번에 덤벼들자, 여포가 도망쳤을 뿐 결코 이기지는 못했다.
두 번째는 복양 전투에서 조조 진영의 여섯 장수와 여포의 6대 1 결투가 벌어졌다. 이때 한 고조 유방의 맹장인 번쾌의 화신으로 불렸던 허저, 은나라의 전설적인 영웅 악래(惡來)라 불렸던 전위, 조조 진영의 최고참 장수 하우돈과 하우연, 그리고 이전과 악진이 한꺼번에 덤벼들었어도 여포를 죽이지 못한 것이다.
* 근(斤) : 무게의 단위. 1근은 당시 한(漢)나라 때에는 약 233g. 그러므로 82근은 약 19.106kg.
** 악래(惡來) : 상(商)나라 주왕(紂王)의 신하로 용기와 힘이 남보다 뛰어나 그 명성이 높았다. 후에 용사(勇士)의 대명사로 일컬어진다.
○ 여포는 신기(神奇)에 가까운 무예로 당대에는 대적할 사람이 없을 정도여서 가히 무신(武神)으로 불릴 만했다.
12. 서량의 맹호(猛虎) 부자 ‘마등과 마초’
아버지와 아들 모두 꽃답고 맵구나
충성과 정절로 뚜렷한 집안일세
삶을 바쳐 나라의 어려움을 풀려 했고
죽음으로 황제의 은혜에 보답했네
피를 머금고 맹세를 했구려
역적을 죽이라는 혈조 아직도 남아 있네
대대로 서량에서 녹을 받은 집안
북파장군 후예로 부끄럽지 않아라
○ 후세의 문사(文士)가 쓴, 마등(馬騰)과 마초(馬超) 부자(父子)의 빛나는 무용과 충절을 기린 시이다.
제2장 난세를 살아온 사람들
01. 독재자를 처단한 중국 4대 미인 ‘초선’
○ 생각에 잠겨있던 왕윤은 초선의 결의에 찬 모습을 보고 한 가지 생각이 번쩍 떠올랐다. 미인계를 통한 연환계(連環計)였다. 자고로 미인계는 실패한 적이 거의 없지 않은가. 왕윤이 입을 열었다.
“고맙구나. 동탁과 여포는 금수(禽獸) 같은 놈들이다. 너를 보면 틀림없이 욕심이 동할 것이다. 너를 먼저 여포에게 준다고 하고 일부러 동탁에게 보낸다. 두 사람을 이간시켜 여포로 하여금 동탁을 죽이도록 해야 한다. 할 수 있겠느냐?”
초선의 눈물방울이 바닥에 떨어졌다. 이윽고 고개를 든 초선이 ‘하겠어요!’ 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 동탁의 수레가 궁문에 당도하자, 성난 여포의 창은 여지없이 동탁의 목을 꿰뚫었다. 여포는 곧바로 말을 달려 미오성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초선은 이미 자결하여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다. 하얀 천에 정갈하게 쓴 시(詩) 한 수를 남겨놓은 채.
여자의 살결은 연약하지만
거울 대신 칼을 지니고 있으면
다시금 마음이 가다듬어진다
이 몸은 자진해서 형극으로 돌아가노니
어버이의 은혜를 갚기 위하여
또,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고 들었으므로
악기 잡고 춤추던 손에 비수를 감추고
수왕(獸王)에게 다가가 독배를 주었노라
최후의 한 잔은 나를 넘어뜨리노라
아아, 죽어가는 내 귀에 들려오누나
백성들의 환희의 노래 소리가
하늘에서 이 몸을 부르는 소리가
06. 건안칠자의 선두인 공자의 후손 ‘공융’
○ 당시의 문사들 가운데 특출한 7인을 가리켜 건안칠자(建安七子)라고 불렸는데 이들 중 선두로 꼽히는 공융의 우뚝 솟은 문명(文名)은 정통성 확보에 고심하고 있던 조조에게 큰 보탬이 되었다. 그러나 공융은 종종 입바른 소리를 하여 조조의 미움을 사곤 했다.
조조가 술의 폐해를 지적하며 금주령을 내렸을 때, 그것이 조조가 군량을 확보하기 위해 내린 조치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공융은 이런 글을 올려 조조의 처사를 비꼬았다.
“술은 옛날부터 조상을 제사 지내고 귀신을 위로하며 사람의 괴로움을 가라앉혀 줍니다. 술이 나라를 망치기 때문에 금주령을 내린다면 여자 때문에 천하를 잃는 자가 있는데도 왜 혼인을 금하지 않습니까?”
○ 조조는 마침내 공융에게 대역죄를 덮어씌워 죽일 결심을 하고 공융의 가솔들을 모두 체포하라고 명을 내렸다. 포졸들이 집으로 들이닥쳤을 때, 공융은 두 아들과 함께 바둑을 두고 있었다. 가신 한 사람이 헐레벌떡 뛰어와서 두 아들을 피신하게 하여 가문을 보존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자 공융에 앞서 두 아들이 먼저 당당하게 말했다.
“둥지가 부서지는데 어찌 성한 알이 있을 수 있겠소?”
그 아비에 그 아들인가. 곧이어 들이닥친 포졸들에 의해 공융의 일가붙이는 남김없이 끌려가 죽임을 당했고, 공융의 목은 저잣거리에 내걸리고 말았다.
제3장 위나라의 인물들
01. 하늘이 내린 삼국지의 영웅 ‘조조’
○ 조조가 젊었을 때, 관상가로 유명한 허자장이 ‘너는 처세에는 능신(能臣)이 될 것이고 난세에는 간웅(奸雄)이 될 것이다.’고 했는데, 조조가 아주 흡족해했다고 한다.
○ 혹자는 그가 남긴 시문(時文)만으로도 조조를 위인의 반열에 올리는 데 손색이 없을 것이라 한다. 조조의 유명한 시 중 하나인 단가행(短歌行 : 짧은 노래를 하노라)의 앞부분만 소개해 본다.
譬如朝露(비여조로) 비유컨대 인생은 아침이슬 같고
去日苦多(거일고다) 지난날 돌아보니 고생이 많았도다
慨當以慷(개당이강) 하염없이 슬퍼하고 탄식하여도
憂事難忘(우사난망) 마음속 근심은 떨쳐내기 어렵네
何以解憂(하이해우) 무엇으로 이 시름 풀 수 있을까
唯有杜康(유유두강) 오로지 술이 있을 뿐이다
○ 의외로 그의 유언은 소박했다.
“천하는 아직 평정되지 못했다. 이런 시기에 예를 차린다고 거창하게 장례를 치르지 마라. 장례가 끝나거든 바로 탈상하고 일상 업무에 임하라. 입관할 때 금옥진보(金玉珍寶)는 넣지 말고 철 따라 갈아입을 옷이나 몇 벌 넣어다오.”
09. 조조의 시샘을 받은 불우한 천재 ‘양수’
○ 양수(陽修)의 자는 덕조. 동탁과 그의 잔당 이각과 곽사가 전횡하던 시절 조정 중신을 지낸 태위 양표의 아들로서, 일찍부터 천재로 명성을 떨친 재사(才士)이다.
○ 양수는 금도(襟度)를 지키지 않고 계속 조조의 속을 뒤집어놓는 행동을 서슴치 않았다. 그것이 천재들의 자기방기(自己放棄) 속성 때문이라 하더라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지혜를 뽐낸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할 것이다. 안다고 어찌 다 말할 수 있으랴.
○ ‘계륵(鷄肋),’ 군호를 들은 양수는 바로 그 뜻을 알아차리고 자신의 부하들에게 철수 준비를 시켰다. 이를 전해 들은 하우돈이 양수를 군막으로 불러 ‘왜 부하들이 짐을 싸느냐?’고 물었다. 양수가 대답했다.
“계륵, 즉 닭의 갈비란 먹자니 먹을 것이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것인데, 지금의 이 싸움이 그렇습니다. 이길 가능성도 없고 물러서기도 그렇고…. 더 있어봤자 이로울 것이 없으니 아마 곧 철수 명령이 내릴 것입니다.”
조조의 심정을 꿰뚫는 해석이었다. 하후돈은 양수의 혜안에 감복하여 휘하 장병들에게 철수 준비를 시켰다.
막사를 시찰하던 조조는 군사들이 짐을 싸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것이 양수 때문임을 알게 되자, 그간의 양수에 대한 울분(?)을 한꺼번에 토해내듯 격노했다.
“건방진 놈. 내가 그런 뜻으로 계륵이라고 한 것이 아니다. 군율을 문란케 한 양수의 목을 베어 효시(梟示)하라!”
14. 조조(曹操)의 출중한 두 아들 ‘조비와 조식’
○ 조조에게는 다섯 아들이 있었다. 유씨 부인이 낳은 맏아들 조앙(曺昻)은 장수와의 싸움에서 죽었고, 변씨 부인 소생으로는 큰아들 조비를 비롯하여 조창, 조식, 조응의 네 아들이 있었다.
큰아들 조비(曹丕)는 통이 크고 글재주가 뛰어났을 뿐 아니라 무예에도 소질이 있어 문무에 두루 능했다. 성격도 원만하고 믿음직스러웠다.
둘째인 조창(曹彰)은 궁술과 마술(馬術)이 뛰어났고, 맹수와 싸울 정도로 힘도 장사였다.
셋째인 조식(曹植)은 총기가 있고 시문에 뛰어나 조조의 총애를 받았다. 공융 진림 등 건안칠자들과 사귀었으며, 오언시(五言詩)를 완성시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백과 두보가 나오기 이전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꼽힌다.
넷째인 조웅(曹熊)은 몸이 약해 병치레가 잦아서 눈에 띄는 활약을 하지 못했다.
○ 조식이 입조하자, 조비는 죽음을 담보로 난제(難題)를 내렸다.
“네가 문재(文才)를 타고났다고 하니 확인해 보겠다. 일곱 걸음 걷는 동안에 시 한 수를 지어라. 형제를 주어로 하되 형제란 말을 넣으면 안 된다. 만일 짓지 못하면 여덟 걸음째에 네 목이 떨어지리라. 자 발걸음을 떼어라.”
조식은 타고난 문재였다. 조식이 발걸음을 떼면서 시를 읊었고, 정확히 일곱 걸음 만에 끝이 났다.
煮豆燃豆萁(자두연두기) 콩을 볶으려 콩깍지로 불을 지폈네
豆在釜中泣(두재부중읍) 콩은 가마솥 안에서 뜨거워 우네
本是同根生(본시목근생) 본래 한 뿌리에서 나온 몸이건만
相煎何太急(상전하태급) 왜 이다지도 급하게 볶아대는가
○ 이 시가 일곱 걸음 만에 지었다는 저 유명한 칠보시(七步詩)이다.
제4장 오나라의 인물들
04. 손책과 맞장을 뜬 강동의 맹장 ‘태사자’
○ 태사자가 유요의 부장으로 있을 때, 강동의 소패왕으로 불리던 손책이 광무제의 사당에 제를 올리고 휘하 12 장수와 함께 사당 아래에 있는 유요의 진채로 접근해 왔다. 정탐을 하러 온 것이었다. 태사자는 부장 한 명만 데리고 손책을 추격했다. 바야흐로 태사자와 손책의 불을 뿜는 신기(神技)의 창술이 펼쳐졌다. 수십 합을 싸워도 승부가 나지 않았다.
○ 그의 활 솜씨는 참으로 귀신같았다. 동오의 덕왕이라 자칭하는 엄백호를 공략할 때, 태사자는 적장 하나가 멀리 성 위에서 한 손을 나무 기둥에 대고 서 있는 것을 보더니 가만히 활을 꺼내면서 말한다. ‘내 저놈의 손등을 뚫어놓으리라!’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화살이 쉿 하고 날아가 적장의 손을 꿰뚫고 나무 기둥에 박혔다.
06.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끈 명장 ‘주유’
○ 주유는 젊었을 때부터 귀공자 같은 풍모를 지녀 주랑(周郞)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는데, 음악에 특히 조예가 깊어 행차 때마다 악단을 대동했다. 병사들은 음악 소리가 들리면 주유가 온 것을 알았다고 한다. 또 아무리 술에 취해도 연주가 틀리면 바로 알아채고 악사 쪽을 돌아보았는데, 그 때문에 악사들 사이에 ‘정신 차려라. 주랑이 돌아본다.’는 말이 회자되었다고 한다.
○ 적벽대전에서 주유는 먼저 반간계(反間計)로 조조군의 수군 도독 채모와 장윤을 의심하여 죽이게 하고, 방통을 보내 조조의 선단을 묶는 연환계(連環計)로 배멀미 고통을 해결해 주고, 노장 황개의 거짓 항복[사항계(詐降計)]과 함께 화공(火攻)으로 조조의 선단에 불을 붙여 잿더미로 만든 다음, 손권과 유비 연합군이 돌진하여 조조군을 괴멸시킨 것이다.
10. 관우를 잡고 형주를 빼앗은 명장 ‘여몽’
○ 여몽(呂蒙)의 자는 자명(子明).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공부는 죽어라고 하지 않고 불량배와 어울려 다니면서 싸움질만 했다. 소년 시절에 손권의 군문에 들어가 뛰어난 무공으로 승승장구하여 마침내 장군에 오르지만, 학문과는 담을 쌓은 탓에 지모를 갖추지 못한 반쪽짜리 장군이었다.
오주(吳主) 손권은 무예가 출중한 여몽이 학식이 부족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어느 날 조용히 불러 학문을 익히도록 권했다.
“장군이 바쁘다면 나보다 더 바쁘겠는가. 장군더러 학자가 되라는 것은 아니네. 학문을 닦아서 문무를 겸비한 지휘관이 되라는 것일세. 우선 ‘손자’ ‘육도’ ‘좌전’ ‘국어’를 읽어보게. 그런 연후에 ‘사기’ ‘한서’를 읽도록 하게.”
여몽은 드디어 공부를 시작했다. 출발은 많이 늦었지만 학문에 무섭게 몰두하여 손권이 일러준 책들을 독파함은 물론 사서오경에다 역사서, 병법서까지 두루 섭렵했다.
어느 날 선배 장군 노숙이 일선으로 가는 길에 여몽의 막사에 들렀다. 여몽을 무식한 장군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막상 이야기를 해보니 자신이 학식에서 밀리는 기분이 들 정도로 박식했다. 그뿐 아니라 관우를 물리칠 비책까지 노숙에게 일러줄 정도로 책략도 뛰어났다. 노숙은 후배에게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다.
“장군의 지모가 여기까지 이르렀을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좋은 걸 배웠습니다. 이제 오하의 아몽이 아니군요.”
‘오하아몽(吳下阿蒙)’이란 고사성어는 여기서 비롯되었다. 이 말은 옛날 오에서 무식하게 날뛰던 시절의 여몽을 지칭하는 것으로, 어느새 지략을 갖춘 훌륭한 무장으로 성장한 것을 보고 감탄하면서 쓰는 말이다. 전혀 진보하지 않고 옛날 그대로 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도 쓰이고 있다. 노숙의 칭찬에 여몽은 이렇게 대답했다. “이제 겨우 부끄러움을 면했을 뿐입니다. 선비는 사흘을 헤어져 있다가 만나면 눈을 비비고 상대방을 다시 봐야 한다고 합니다. 저는 그 정도가 되려면 아직….”
눈을 비비고 상대방을 다시 본다는 뜻의 고사성어 ‘괄목상대(刮目相對)’는 여기서 생겨났다. 여몽은 문무를 겸비한 무장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제5장 촉나라의 인물들
02. 신이 된 삼국지 최고의 무장 ‘관우’
○ 관우(關羽), 자는 운장(雲長). 사례주 하동 출신으로, 9척(尺) 신장에 수염 길이는 2척이고 잘 익은 대춧빛 눈썹과 봉황의 눈을 가진 무장이다. 청룡언월도를 손에 쥐고 적토마를 타고 무수한 전장을 누비며 무명(武名)을 떨쳤고, 전장에서도 ‘춘추(春秋)’를 손에서 놓지 않은 삼국지 최고의 명장이다.
* 척(尺) : 관우가 활동했던 시기인 후한의 척은 약 23cm이니 9척은 207cm 정도이다.
○ 光談 過五關斬六將(광담 과오관참육장) 不談 走麥城(부담 주맥성)
관우의 공과를 압축한 글이다. ‘광담’은 신나게 얘기하라는 뜻이다. ‘과오관참육장’은 관우가 유비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조조의 다섯 관문을 지나가면서 저지하는 여섯 장수를 베어 천하에 명성을 떨치는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부담’은 얘기하지 말라는 뜻이고, ‘주맥성’은 관우가 여몽에게 형주성을 빼앗기고 5백여 명의 군사와 함께 맥성으로 도망치는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관우의 굴욕’이라고나 할까.
10. 삼국지 최고의 기재(奇才) ‘제갈량’
○ 제갈량이 삼국지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의 삼고초려(三顧草廬)를 필두로, 그의 행보를 따라 수어지교(水魚之交), 만두(饅頭), 칠종칠금(七縱七擒), 출사표(出師表), 읍참마속(泣斬馬謖) 등 수많은 고사성어가 만들어졌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되었으니, 요즘 말로 하면 뉴스메이커였던 셈이다. 그가 죽은 후에 보니 그의 재산은 ‘뽕나무 8백 그루와 전답 15경(頃)’이 전부였다고 한다.
* 경(頃) : 중국의 논밭 넓이를 재는 단위. 1경은 100묘(畝). 10,000m²에 상당함.
○ 정사 삼국지의 진수가 쓴 제갈량에 대한 인물평을 보자.
“승상으로서 시대에 맞는 정책을 내었고, 형벌이 엄격했으며, 공정한 정치를 행하였다.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고 백성을 따뜻하게 어루만질 줄 알았으니 실로 다스림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해마다 군사를 이끌고 나갔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했으니 군략은 그의 장기가 아니었다.”
13. 제갈량의 유훈을 계승한 명장 ‘강유’
○ “나는 초려(草廬)를 나온 이래 널리 어진 이를 얻어 내가 평생 배운 바를 물려주려 했는데 이제야 그 원을 풀게 되었다.”
제갈량은 강유를 사로잡고 그 기쁨을 이렇게 표현했다. 강유는 땅에 엎드려 절하며 감격해했다.
○ 강유를 얻을 때 제갈량은 이미 잡았던 위군의 대도독 하후무를 미끼로 쓰기 위해 놓아주었는데, 강유를 얻은 다음에도 그를 쫓지 않았다. 이를 의아하게 생각한 장수들이 ‘왜 하후무를 다시 잡지 않느냐?’고 물었다. 제갈량은 빙긋이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하후무를 놓아준 것은 오리 새끼 한 마리를 놓아준 것이고, 강유를 얻은 것은 봉황 한 마리를 얻은 것이다. 봉황을 얻었는데 굳이 오리 새끼를 뒤쫓을 필요가 있겠는가?”
강유(姜維)의 자는 백약(佰約). 병법에도 밝고 무예에도 뛰어나 가히 문무와 지용(智勇)을 함께 갖춘 당대의 명장이라 할 만했다.
제6장 삼국시대를 살아온 사람들
03. 한중에 오두미도를 전파한 교주 ‘장로’
○ 도교의 뿌리를 찾아가 보면 후한 말의 태평도(太平道)와 오두미도(五斗米道)의 양 갈래로 나눠준다. 도인 우길이 창시한 태평도는 황건적의 난이 진압되면서 거의 소멸되었거나, 오두미도에 흡수되었다. 오두미도는 많은 왕조를 거치면서 계승 발전되어 현대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초창기의 도교인 오두미도의 발달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이가 바로 장로이다.
◯ 후한 말, 장릉이란 도인이 서촉에 나타나 여러 사람의 병을 고쳐주거나 민생고를 해결해주었다. 그러다가 쌀 5말[五斗米]을 내면 신도로 받아주는 오두미도의 시조가 되었다. 장릉이 죽자 아들 장형이 뒤를 이었고, 장형이 죽자 다시 그의 아들 장로가 뒤를 이었다. 익주목 유언은 장로에게 한중(漢中)을 공략하게 하였다.
한중을 평정한 장로는 그곳에 눌러앉아 오두미도를 전파하면서 교주가 되었다. 한중을 오두미도를 기반으로 하는 제정일치의 종교 왕국으로 만들었다.
◯ 조조의 대군이 한중으로 쳐들어오자, 장로는 부고와 창고는 국가의 재산이니 보존해야 한다며 불태우지 않고 봉인만 해놓고 파중으로 후퇴한다. 장로는 파중에서 다시 저항해보지만 역부족을 느끼고 조조에게 항복한다. 조조는 장로가 부고를 태우지 않고 봉인한 조치를 높이 평가하여 예를 갖추어 우대한다. 장로에게 진남장군의 지위를 내리고 낭중후로 봉한 후 용호산 일대에 식읍 일만 호를 준 것이다. 그 덕분에 용호산은 장로의 거점이 됨과 동시에 오두미도의 본산이 된다.
○ 이후 오두미도는 사마염에 의한 삼국 통일과 그 후의 남북조시대를 거치면서 천사도(天師道)로 발전한다. 천사도에서는 장로를 장천사(張天師)라 칭하며 신격화하기 시작한다. 천사도는 여러 왕조를 거치면서 정일교(正一敎)로 이름을 바뀌어 주로 양자강 이남을 중심으로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08. 마취술을 행한 전설적인 명의 ‘화타’
○ 화타(華陀)의 자는 원화(元化). 조조와 같은 예주 패국 초현 출신으로, 지금부터 1,800년 전인 서기 200년경에 마취를 이용한 외과적 수술을 행한 전설적인 명의로 신의(神醫)로 추앙을 받는다.
그의 신술(神術)이 삼국지 곳곳에 나오는 걸 보면 그는 외과수술 외에도 내과, 피부과, 뇌신경과 등 의술 전반에 두루 정통한 듯하다. 오의 주태를 낫게 하여 명성을 얻은 그는 촉의 관우와 위왕 조조까지 진찰하고 치료하게 되어 삼국의 영웅들을 두루 접하게 된다.
12. 필생의 호적수 ‘제갈량과 사마의’
○ 지쳐서 몸져누워 피를 토하던 제갈량은 드디어 오장원에서 숨을 거둔다. 질질 끌던 전쟁은 제갈량이 과로사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는 것이다. 사마의는 천문(天文)을 보고 제갈량이 죽은 것을 알고 퇴각하는 촉군을 맹추격한다. 그러나 제갈량이 남긴 계책대로 촉군이 사륜거에 실은 제갈량의 목상(木像)을 앞세우고 반격을 하자, 사마의의 위군은 제갈량이 아직 살아 있는 줄 알고 기겁을 하며 도망친다.
사마의는 한참 정신없이 말을 타고 달아나다가 뒤따라온 장수에게 ‘아직도 내 머리가 붙어 있느냐?’ 하고 물었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았다[死孔明走生仲達(사공명주생중달)]’는 속담과 우스갯소리로 남아 있는 일화이다.
어쨌거나 사마의는 제갈량에 맞서 나라를 지켜낸 공로로 위의 원훈(元勳)이 되어 조정의 실권자가 된다. 그리고 그의 명석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두 아들과 손자가 그가 품은 원대한 포부를 착착 이루어 가는 것이다.
제7장 삼국지가 남긴 얘기들
03. 전설적인 명마 ‘적로마와 적토마’
○ 삼국지에 나오는 천리마(千里馬)로는 여포와 관우가 타던 적토마(赤兎馬), 유비가 타던 적로마(馰盧馬) 그리고 조조가 타던 절영마(絶影(馬)와 조황비전(爪黃飛電)의 4대 명마를 들 수 있다. 명마는 주인이 있고 주인을 만난 명마는 이름값을 한다.
○ 적로마, 이마에 뚜렷한 흰 점, 기름지고 준수한 자태, 날렵한 몸매, 누가 봐도 명마이다. 적로마는 명마라는 칭송과 함께 주인에게 화를 준다는 흉마라는 오명(汚名)도 지니고 있다.
○ 적토마, 머리에서 꼬리까지의 길이가 1장(약 3m)이고, 굽에서 목까지의 높이가 약 8척(약 1.8m)이고, 몸에 잡털이 없으며, 활활 타오르는 붉은 빛을 띠고 있어 바람을 뚫고 달릴 때는 그 용자(勇姿)가 마치 화염이 흐른 것 같다고 한다.
09. 그 기원과 유전(流轉) 과정(過程) ‘옥새’
○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기 전, 어떤 사람이 형산의 한 비위에 봉황이 살고 있는 것을 기이하게 생각하여 바위를 깨뜨려 보았더니 그 안에서 옥 덩어리가 나왔다. 그 사람은 옥을 초의 문왕에게 바쳤고, 초를 멸망시킨 진시황이 그 옥을 가지게 되었다. 진시황은 옥공(玉工)으로 하여금 인장을 만들게 하고 이사(李斯)에게 여덟 글자를 새기게 했다.
受命於天(수명어천) 명을 하늘로부터 받았으니
旣壽永昌(기수영창) 영원토록 크게 번창하리라
○ 그로부터 2년 뒤, 진시황이 동정호를 순행하는 중에 갑자기 큰 풍랑이 일어 배가 뒤집히려 했는데, 옥새를 물에 던졌더니 바로 풍랑이 가라앉았다고 한다. 그 후 10년 동안이나 동정호 물속에 잠겨있던 옥새는 한 어부에 의해 발견되어 다시 진시황제에게로 돌아왔다.
진시황이 죽은 후, 항우를 물리치고 다시 천하를 통일한 한고조 유방은 진시황의 아들로부터 옥새를 물려받았다. 대를 이어 내려온 옥새는 전한 2백 년이 끝날 무렵, 외척인 왕망의 손에 잠시 들어간 적이 있었으나, 후한의 창시자 광무제 유수가 다시 탈환하여 후한말까지 이어졌다.
삼국지 서시(序詩)
滾滾長江東逝水(곤곤장강동서수) 장강은 도도하게 동쪽으로 흘러가고
浪花淘盡英雄(낭화도진영웅) 물거품처럼 사라진 꽃 같은 영웅들
是非成敗轉頭空(시비성패전두공) 옳고 그름 이기고 짐 부질없구나
靑山依舊在(청산의구재) 청산은 변함없이 옛날 그대로인데
几度夕陽紅(기도석양홍) 붉은 석양은 몇 번이나 저물었던고
白發漁樵江渚上(백발어초강저상) 강가에 서 있는 백발의 어부와 나무꾼
慣看秋月春風(관간추월춘풍) 가을 달과 봄바람 익히도 보았었지
一壺濁酒喜相逢(일호탁주희상봉) 막걸리 한 병 들고 반갑게 서로 만나
古今多少事(고금다소사) 옛날과 지금의 크고 작은 일들을
都付笑談中(도부소담중) 웃으면서 나누는 얘기에 담아보네
◎ 최용현 ≪한 권으로 읽는 삼국지 인물열전≫, ohk, 2023
☞ 최용현
수필가, 칼럼니스트.
경남 밀양출생으로 건국대 행정학과 졸업하였다. 황무지나 다름없는 우리 수필문단에 재미있고 센스 넘치는 에세이를 쓰고 있는 독특한 감각의 수필가이다. 월간 ‘국세’ ‘한국통신’ ‘전기기술인’ 등에 고정칼럼을 연재하였고, 주간 ‘전기신문’, ‘밀양신문’, ‘한미일요뉴스’에 삼국지인물론, 영화에세이 등을 연재하였다. 2015년에 구로문학상(상금 100만원)을 받았으며, 2019년부터 한국문인협회 전자문학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집은 다음과 같다.
- 에세이집 : 아내가 끓여주는 커피는 싱겁다(1994), 꿈꾸는 개똥벌레(2008)
- 콩 트 집 : 강남역엔 부나비가 많다(2003), 햄릿과 돈키호테(2018)
- 인물평전 : 삼국지 인물 소프트(1993), 삼국지 인물 108인전(2013), 한 권으로 읽는 삼국지 인물열전(2023)
- 영화에세이집 : 영화, 에세이를 만나다(2013), 명작영화 다이제스트(2021), 에세이 명화극장(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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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랜만에 글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요즘은 더워서 pc 앞에 앉아있는 것도 힘들어요.
좀 쉬면서 장편소설을 구상하고 있어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