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역 건너편의 언덕 초량 산복도로로 이어지는 골목길을 가꾸어 놓은 길이라는 초량 이바구길에 왔다. 지인을 찾아 뵈려고 내려온 부산에서 이틀을 머무르며 몇군데 다녔던곳 중의 첫번째 방문지이다. 가볍게 한두시간 걷기에 좋다고 하여서 찾아왔는데.... 파출소에도 들러서 물어보고... 지나는 사람들 여러명에게 묻고 물어서 왔다.
걷다보니 한국을 이끌어갈 리더를 고르는 선거벽보판이 곳곳에 보인다. 너도 나도... 모두15명이나 된다.
힘들게 찾아온 초량 이바구길 입구. 부산과 초량동의 역사를 홍보하려고 벽에 붙여진 여러개의 안내판중에서 몇개만 소개해 본다.
그동안 여러번 이야기를 들었던 분이시다. 이북에서 월남하여서 두고온 처를 생각하며 끝까지 초량동에서 혼자 살았던 장기려 박사. 오직 어려운 환자를 위하여 여생을 보낸분이다.
1876년 부산항 개항을 시작으로 일제 강점기, 해방후 1950-60년대, 산업 부흥기 1970-80년대의 부산의 모습을 담고 있다.
1905년. 경부선 개통.
어. 초량초등학교를 졸업한 인기 연에인들까지 !!!! 나훈아, 이경규, 박칼린.
아. 이거 찾아오기도 힘들었지만 오르기도 쉽지 않은 길이다.
가파른 층계마다 피란민의 설움이 가득 배어있는 168 계단. 부산의 경제를 지탱했던 신발공장 여공들의 누나의 길 등 옛 추억이 스며있는 곳이다.
망원렌즈로 잡아당겨서 보니 저위에 보이는 모노레일을 타고 더 가면 부산항이 내려다 보이는 김민부 전망대가 있는 모양인데... 아이구... 저기까지 더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중인데..... 동네 아저씨왈 고장이 나서 운행중지란다.
카메라의 망워렌즈를 마구 당겨서 잡아본 모노레일. 어지럽게 전선줄이 늘어진 옛 달동네 위에 설치해 놓은 모노레일이 보인다. 고장으로 운행중지인지 이용객이 없어서 운행이 중지되었는지.....
자갈치시장에 왔다. 1945년 광복후에 형성된 남포동 남항의 바닷가에 있는 자갈치시장. 7층의 새로 지어진 자갈치시장 건물옆에 있는 옛날의 추억이 그대로 남겨진 재래식 시장을 둘러본다. 냄새에 지극히 둔감한 나같은 사람도 바다냄새와 비린내가 풀풀 느껴지는 곳이다.
어우적멸치, 도다리, 꼼장어, 장어, 개불, 가리비, 멍게 낙지, 해삼, 조개. 군침이 도는 해산물이 가득하고 곳곳에 비린냄새도 가득하기만 하다.
고래고기도 있다. 자갈치시장의 식당에서 거나하게 매운탕, 생선회등으로 대낮부터 폭식을 하다. 아직도 시장 인심이 풍성해서 점심 한끼상이 푸짐하다.
부산시 사하구 감천동에 위치한 감천문화마을. 1950년대에 태극도 신도들과 한국전쟁 당시에 남으로 내려온 피란민들이 모여서 삶의 터전을 이루었던 달동네 감천마을. 부산항구가 내려다 보이는 꼭대기까지 좁은 골목길로 연결된 낙후된 동네를 부산지역의 예술가와 주민들이 합심해서 담장이나 건물벽에 벽화등으로 치장도 하고 꾸며진 동네이다.
중국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드라마 대장금의 장금이 스타일로....
달동네 골목길을 따라서 힘겹게 오르는 장금이들. 푹푹찌고 후덥지근한 바닷바람이 불고 끈끈한 더운 날씨이지만 그래도 예쁜 한복으로 차려입고 신나게 관광중이다.
달동네의 조그마한 판자집들이 이제는 깜찍하고 예쁜 기념품가게로 둔갑해서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너무 거창하고 과장된 안내판이구나 싶다. 한국의 마추피추 (Peru). 산토리니 (Greece) 라니.... 여기보다 훨씬 더 경치가 좋은 곳이 한국에도 여러군데 있는데.....
장금이들과 함께 사진찍고 같이온 그룹인데, 이 젊은 사또영감은 팔자걸음으로 느릿느릿 천천히 걸어서 이제야 올라온다. 사또가 젊은아이들처럼 촐랑거릴수는 없었는가 보다.
다시 자갈치시장에서 약 300 m 떨어진 곳에 있는 국제시장으로 왔다. 한국전쟁후에 생긴 국제시장. 1950년대의 국제시장 골목의 풍경이다.
그리고 2017년 봄 나의 카메라에 잡힌 바로 그 국제시장 골목길. 크게 변하지 않았다.
광안리 해수욕장. 여기는 1960년대와 비교하면 완전히 천지개벽한 곳이 된다.
광안대교.
광안리에서의 저녁식사. 첫번째 접시. 조개, 전복, 멍게, 문어, 싱싱하고 맛도 좋고... 계속 나오는 접시를 비우다가 결국 마지막 몇 접시는 손도 못대고 그대로 싸달라고 해야했다. 광안리 인심이 무지막지 후하다.
다리밑에 장어식당 몇개가 겨우 있던 50년전의 광안리가 지금 여기라고 하면 누가 믿겠는가 !!!
해안 부두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마산의 해안 시장가에서 보이는 항구.
마산의 부둣가 시장통에서 맛보는 별미. 멍게 비빔밥 그리고 도다리 쑥국.
마산역에 이곳이 고향인 시인 천상병의 대표작이 보인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그의 대표작 1979년 발표된 귀천. 소풍나온 속세를 떠나 하늘로 돌아간다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일본 규슈여행에서 돌아온후에는 숙소를 인사동에서 동대문역사문화공원 근처로 옮겨서 귀국때까지 10일간을 지낸다. 방산시장, 평화시장, 광장시장, 신평화시장, 제일평화시장, 그리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을 둘러싼 고층의 상가빌딩들로 쇼핑의 천국이다. 3년전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주위에 있었던 고층의 상가빌딩들이 을지로 쪽으로 엄청 더 늘어났다.
방산시장 건어물 골목.
청계천을 경계로 광장시장. 평화시장. 아래는 청계천물이 유유히 흐르지만 지상에서는 생존을 위한 치열한 경쟁의 시장바닥 열기와 혼탁한 공기가 어우러져 정신을 쏙 빼내가도록 어지럽고 바쁜 곳이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은 독특한 건축스타일로 돌아보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는 좋은 건축물이다. 누군가는 언덕 같다. 누군가는 파도 같다고 얘기하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 (DDP). 2008년에 시작해서 6년만인 2014년 3월에 완성되었다. Iraq 태생의 영국인으로 세계적인 유명한 여성건축가 Zaha Hadid 의 건축작품이다. 반짝거리는 건물의 외부는 4만 5,133장의 알루미늄 패널로 덮였다. 단 한 장도 똑같지 않고 모두가 하나 하나 다른 형태이다. 건물들의 유선형 곡선은 자연의 흐름과 닮았다 한다. 건물의 꼭대기에도 공원이 있다. 아직도 일부가 남아있는 조선 성곽 바로 옆에 자리한 DDP 는 동대문의 과거, 현대, 문화와 역사를 한 자리에 모았다. DDP 는 초고층의 현대시대에 층수가 아닌 디자인으로 서울의 또 하나의 Landmark 가 되었다.
이간수문. 남산에서 흘러내려온 물을 성곽 바깥쪽 청계천으로 내보내는 수문이었다. 그리고 시체는 성문을 통하지 못하고 이곳을 통해서 성곽 밖으로 보내졌다. 부여는 1,800년, 경주 1,500년, 서울은 600년된 도시이다. 조선시대 서울은 약 18Km 의 성곽으로 둘러싸인 성곽 도시였다. 홍인지문 (동대문) 은 서울도심에 남은 마지막 4대문이다. 1925년 이곳에 동대문운동장을 지으면서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한양도성 2구간의 일부 성곽 (265m) 과 두 칸짜리 이간수문이 2008년 이곳에 옛 운동장을 허물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을 건축할 때에 발견되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을지로쪽에 있던 롯데건물이었던가. 맨 윗층에 있는 Buffet 식당인 계절장터밥상. 1만5천원 정도의 비싸지 않은 가격이고 젊은이들이 주고객이다. 눈요기 하도록 종류만 엄청 늘어놓고 필요없이 비싸기만 한 집이 아니라 맛갈스럽고 건강에 좋은 음식만을 차려놓아서 몇번이나 찾았던 집이다. 드디어 5월 18일에 47일간의 여행을 마무리 한다. 관광도 쇼핑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맛있는 음식들을 뒤로 하는것이 매우 아쉽기만 하다.
첫댓글 마음따라 길따라를 따라서 여행을 한바퀴 부산에서 서울까지~~~~~
그 옛날 사또시절부터 .....
덕분에 아침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멋진 포스트예요
다음에 가면 한복 입고 싶어요.
정성 가득한 포스팅 감사드립니다
한국가면 이 일정따라 광안리가서 배불리 먹고 싶네요
다리밑에 장어집 몇개가 뛰엄뛰엄 있었는데 천지개벽했습니다.
한국에 간것 같이 생생하게 느낄스 있군요
참 한국이 많이 변화였어요
감사합니다.
나르는 담요를 타고 3천리 방방곳곳을 잘 섭렵하였습니다.
느긋하게 여유롭게 발품을 팔며 마음 따라 길 따라 걷는 님의 모습! 보기에 아주 좋습니다.
아라비안 나이트처럼 날아다닐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