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 산창 3
유월 셋째 토요일은 가끔 들리는 경주 걸음을 하게 되었다. 본격적인 장맛비가 내리기 전 산내 산방으로 들어가 할 일이 있어서였다. 그 일은 매실 털기다. 턴 매실은 검불을 가려 씻어 채반에 말리는 일까지다. 남녘에서는 매실 수확이 거의 끝났으나 친구 농장은 깊은 산골이라 꽃도 늦게 피고 매실도 늦게 영글었다. 친구로부터 일손 지원을 요청 받고 창원에서 경주터미널로 갔다.
싱그럽던 신록은 녹음을 짙게 드리우는 계절이 왔다. 지난 주말은 조카 결혼식 걸음으로 울산을 가면서 양산 통도사 앞을 거쳤는데 일 주 만에 다시 그 길을 지났다. 친구와는 한 달 만에 다시 만났다. 경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친구를 만나 건천양조장을 들렸다. 친구는 앞으로 학교 동료들을 산방으로 모실 구상이라 곡차를 세 박스 받아갔다. 그 가운데 한 박스는 이번 먹을 양이다.
경주에서 청도로 가는 20번국도 당고개 너머 감산마을로 들었다. 산방에 드니 보리수 열매는 농익어 있었다. 지난 번 들렸을 때 약초이랑 당귀 잎을 따다가 진딧물이 붙었음을 발견하고 은근히 걱정 되었다. 그날 친구가 천연효소 이엠이 첨가된 액비를 뿌렸더니 말끔하게 사라져 신통했다. 친구는 거름 외에 화학비료나 농약이라고는 한 방울도 뿌리지 않는 친환경농사를 고수한다.
미리 연락이 닿은 울산 아우가 합류했다. 한동안 실직 상태였다가 재취업을 한 노총각이다. 친구와 지난겨울 매실나무 전정을 했더랬다. 거실에 여장을 풀고 친구와 탁자에서 곡차 잔을 들었다. 친구는 이른 아침 농수산물 경매시장에 나가 참가자미 회를 뜨고 소라고둥과 군소와 멍게를 준비했다. 지원 인력은 고급 수준이 못 되었는데 새참 안주는 고급으로 사치를 하는 셈이었다.
나는 쌀을 씻어 밥솥에 안쳐두고 친구는 소라고둥과 문어를 삶고 찌개를 끓이는 역을 맡았다. 나는 울산 아우와 밭둑으로 나가 매실을 땄다. 햇볕 가림으로 쓰는 검정 그물을 매실 그루터기 아래 펼쳐 놓고 막대로 매실을 털었다. 농약을 치지 않았으니 벌레가 파먹거나 쪼그라진 열매가 많이 섞여 있었다. 예닐곱 그루에서 수확한 매실은 과일 컨테이너박스에 담아 수돗가로 옮겼다.
비가 슬쩍 내렸다만 작업에 지장을 줄 정도는 못 되었다. 약초밭 밭둑 매실을 따 놓고 거실로 들어 새참을 들었다. 친구가 삶은 문어와 고둥을 맛보았다. 아직 산방 거실 뒤편 매실나무에서도 따야할 매실이 남아 있었다. 점심은 건너뛰고 곡차와 해물 안주로 대신한 셈이었다. 새참을 들고 산방 뒷밭으로 가 남은 매실을 마저 땄다. 친구는 매실 수확량이 예상보다 적은 듯 하다고 했다.
가지 끝에 달린 매실까지 모두 따고 봄날에 심은 삼채이랑 김을 맸다. 친구는 여남은 개 채반에다 매실을 씻어 야외 탁자에 펼쳐 바람을 쐬어 말렸다. 지나가던 비는 그쳐 밤을 새우면 물기가 다 마를 듯했다. 나는 산방 주변 잡초를 정리하고 거실로 들어 땀을 씻고 본격적인 곡차대전을 준비했다. 낮에 매실 따기는 피로도가 적은 편이라 소진되지 않은 체력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사실 내가 이번 지음 산방을 방문한 목적은 매실 수확 일손도 거들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우선순위가 있었다. 친구가 근래 혼자 겪는 영적 방황이 심해 내가 말벗이 되어주고 안정과 치유가 속히 오길 바라서다. 삶의 무게중심을 자녀에게로 넘길 법도 한데 일시적이나마 자신이 흔들렸다. 잔을 거듭 채우고 비우며 방황의 근원이 어디인지 알게 되고 안개 같은 터널을 빠져나왔다.
친구와 아우는 거실에 곤히 잠들었을 때 나는 밖으로 나와 밭둑의 풀을 자르고 나서 곰취를 좀 땄다. 곰취는 산방 방문 기념으로 배낭에 채웠다. 거실로 들어 설거지를 하고 찌개를 데워 속을 풀었다. 친구는 간밤 과음에 밥을 한 술도 들지 못해 안쓰러웠다. 아우는 예배시각에 맞추어 먼저 나가고 매실을 여러 봉지 나누어 담았다. 친구가 울산 집으로 가져가 효소를 내는 재료가 된다. 19.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