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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비밀 결사
안젤로 주교는 자신이 성직자의 길을 택한 이후 가장 어려운
시기에 봉착했다고 생각했다 가톨릭 교리와 교황의 언행 사이
의 불일치를 찾아내서 교황에게 진언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그
에게 최근 몇 년 간은 매우 힘들었다
교리청 장관을 필두로 하는 보수적 성향의 추기경들은 교황의
언행에 대해 사사건건 안젤로 주교에게 책임을 물어왔다. 물론
그는될 수 있으면 기계적으로 일에 임하려 했으나 그게 마음대
로 되지 않았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취임 이후 교황과 추기경단 사이에는 언제
나 보이지 않는 대립이 있어 왔는데 최근에는 그 대립이 격화될
대로 격화되어 일반 신부들도 그 둘 사이의 이상한 분위기를 느
낄 수 있을 정도였다.
교황은 어떤 일에 대해서도 예전의 교황들처럼 아는 듯 모르
는 듯 넘어가려 하지 않았다. 교황청의 자금으로 법적 금융 거
래를 해오던 이탈리아 추기경들의 부정이 누군가에 의해 언론으
로 흘러 들어갔고 급기야는 사법적 수사가 시작됐다 또한 2차
대전 당시 교황청으로 흘러 들어왔던 나치와 파시스트의 자금
에 대해서도 교황은 조사를 명령했다.
무엇보다도 근본적인 문제는 교황이 새로운 가톨릭상을 만들어내려
한다는 사실이었다. 교황이 추구하는 이 새로운 가톨릭
상은 적당한 변화나 개혁이 아니었다. 2차대전 당시 엄청난 살
륙에 대해 침묵했던 교황청의 과오를 인정한다는 정도가 아니었
다 교황은 가톨릭이 지난 5천 년 간이나 유지해 온 유일신의 개
념을 모호하게 만들 수 있는 언행을 계속했다.
교황은 사상 최초로 타종교들에게도 가톨릭과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기 시작했고, 그 지도자들과 다정히 어깨를 맞대었다. 또
한 수백 년을 이어온 과학과의 대립에서 창조를 부정하지만 않
는다면 과학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천명했다. 사실 과학을 받아
들이면 결국 창조는 부정당할 수밖에 없기에 교리청 장관을 필
두로 한 추기경단은 가톨릭의 운명에 대해 심각한 위기 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안젤로 주교는 기도를 시작했다.
짧은 기도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벨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두 사람의 신부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오, 스테파노 신부 여행은 힘들지 않았나요?~
네, 속히 갔다 왔습니다.
한국의 추기경은 잘 계시던가요??
네, 건강하시더군요.
그래. 갔던 일은 어떻게 되었나요??
주교는 잔뜩 기대가 실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마귀입니다. 도저히 하느님의 은총을 기대할 수 없는 사
람입니다.
스테파노 신부의 단호한 답변을 듣는 안젤로 주교의 얼굴에
먹구름이 끼었다.
만나서 우리의 입장에 대한 이해를 구했나요??
네, 하지만 그는 파티마의 예언을 공표하는 것만이 최선의 방
법이라 했습니다.
그 사람은 왜 그렇게 그 예언의 공표를 고집하던가요??
자신들의 문화와 고유 신앙이 파괴된 책임의 일단이 기독교
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매우 괴상한 논리군요.
미친 사람입니다. 실제로 한국에 가서 알아본 결과 그는 정신
병원에서 중증의 과대망상증 환자라는 진단을 받았고, 지금도
정신병원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정확한 문장을 구사해서 편지를 보냈단
말인가요??
아시다시피 정신병이란 게 겉으로 보아서는
음,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한국에는 어떤 신앙이 있던
가요??
조상신과 자연신 숭배의 오랜 전통이 있는데 거의 전멸되었
다는 겁니다. 사실 제가 안 바로도 좀 너무하기 는 하더군요. :)
그렇게 되기까지는 여러 원인이 있었겠지만 일본의 식민 지
배를 받은 것이 주요 원인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그 나라에서 기독교는 어떤 상황에 놓여 있던가요?~
기독교는 모두 기복 신앙으로 둔갑해 있었습니다. 목회자들
은 아무리 성실하고 선량하게 살아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아니
교회에 나오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식으로 설교하
고 있었습니다. 특히 개신교의 각 교파들이 그런 논리로 신도를
끌어들이고 있었습니다 이웃 국가인 중국이나 일본과는 아주
다르더군요.
일본과 어떻게 다르다는 얘기죠?~
기독교가 전해진 것은 일본이 백 년이나 먼저 입니다만 일본
의 기독교 인구는 전인구의 0.5퍼센트도 안 됩니다. 그나마 여호
와를 유일신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 10분의 1도 안 된다고
자신들의 고유 문화를 잘 지켜냈다고 생각하는 반면, 한국의 목
회자들은 일본인들은 아무도 천국에 못 간다. 그토록 예수를 안
믿는데 어떻게 천국에 가겠는가라고 하더군요.
안젤로 주교는 당혹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 었다
반발이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은 아니지만 그의 기독교관은 너
무나 부정적입니다.
어떤데요??
중세에 기독교는 인간성을 탄압하고 신권 세계를 만드는 데
에 열정을 바쳐왔고, 근세에 와서는 제국주의와 손을 잡고 타민
족을 짓누르고 그 문화를 초토화시켜 왔다는 겁니다.
보통 문제가 아니군요.
안젤로 주교는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까짓 인간을 뭘 그렇게 대수롭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볼
때에는 정신병원에 있는 환자에 불과하던데요.
그러나 안젤로 주교는 고개를 가로저 었다
수고했어요. 푹 쉬도록 해요.그럼
스테파노 신부를 내보내고 난 안젤로 주교는 간단한 기도를
마친 뒤 성호를 그었다. 그러고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교리청
장관의 방으로 갔다.
교리청 장관은 외무장관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가 안젤로 주
교를 맞았다 그 방에는 낯익은 얼굴이 몇 사람 더 자리하고 있
었다.
그는 한국의 기독교 신자들에게 교회의 모순을 보여주고 싶
어합니다 그것이 파티마의 예언을 통해서 가능하다고생각하고
있습니다.
안젤로 주교로부터 스테파노 신부가 한국에서 사도광탄을 만
났던 얘기를 듣고 나자 교리청 장관은 깊은 분노가 서린 목소리
를 뱉어냈다.
파티마의 예언을 공표하는 것밖에는 아무 얘기도 듣지 않겠군요??
그는 자신의 동포들을 설득하는 대신 파티마의 예언의 공표
를 택한 듯합니다.
음, 세계 인구는 늘어도 가톨릭의 신도 수는 급격히 줄고 있
는 판인데 그자가 다시 한 번 이상한 짓을 하면서 예언의 공개를
요구하면 보통 일이 아니지 않소.
그러게 말입니다.
외무장관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맞장구를 쳤다 그는 신도 수
의 격감이란 문제에 몹시 화가 나 있는 듯했다.
과거 레이건 대통령 때는 미국과의 관계가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미국 중앙정보국의 정보가 필요할 때면 아무
때나 보여주곤 했지요. 그러나 지금의 클린턴과는 너무 문제가
많아요. 그 건방진 친구는 며칠 전 성하와의 통화에서 고함까지
지르더군요. 성하께서도 화가 머리 끝까지 나셨어요.
외무장관, 문제는 우리에게도 있어요. 성하처럼 심하게 낙태
를 반대하면 어떤 젊은이가 가톨릭에 남아 있으려 하겠어요?~
외무장관은 고개를 끄덕 였다
그나저나 그 예언이 걱정이오. 그자가 극단적으로 일을 저지
르고 언론이 가세해 흥미 위주로 가톨릭을 매도하면. 파격적 개
혁을 갈구하는 성하가 전격적으로 예언을 공개해 버릴 수도 있
는 일 아니오??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최근에 성하는 예언과 관련하여 흔들
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자는 우리 가톨릭에 공전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인
물이오. 하지만 모든 문제의 근본은 바로 성하에게 있어요. 잘못
하면 기도가 바뀔 판이니
기도가 바뀐다구요??
'세상의 주인이신 단 한 분의 하느님'으로 시작하는 기도가
이제 '세상의 여러 주인 중 하나이신 하느님'으로 될 판이란 말
이오.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성하가 보이시는 행동이나 그자의 태도는 별로 차이가
없소. 그리스도가 아닌 그들의 신을 인정한다는 것 아닌가. 조상
신을 믿는다면 그들에게도 하느님이 있겠지.
환웅인지 단군인지 하는 존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기도는 '하느님 아버지'가아니라 '단군 아
버지' 가 되지 않겠소?~
그렇습니다.
안 돼요. 이래선 안 돼 .
무엇보다도 그자가 매우 위험합니다. 파티마의 예언에 대한
성하의 생각이 차츰 공표 쪽으로 방향을 트는 경향이 있는데,
그 자가 무슨 일이라도 일으키면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것
입니다.
그 예언은 절대로 공표되어서는 안 돼요.
장관의 어조는 단호했다
장관님은 그 예언의 내용을 아십니까??
모르오. 하지만 하나는 분명히 알고 있소. 그 예언은 공표되
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오.
스테파노 신부에 의하면 그 사도광탄이라는 자는 교황 성하
의 급격한 변화는 바로 그 파티마의 예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
기 때문이라고 했다더군요.
장관의 눈썹이 꿈틀했다
누군가가 그런 얘기를 했다구요??
그렇습니다.
그럼 그자는 예언의 내용을 알고 있다는 얘긴가요??
어느 정도 추측하고 있답니다.
도저히 그냥 있을 수 없는 일이오. 그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
도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소.
장관의 표정이 무섭게 굳어지는 것을 보며 안젤로 주교는 혹
시 장관도 그 예언의 내용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티칸 내부의 깊숙한 곳에서는 몇몇 추기경이 그 예언의 내
용을 알고 있으며 , 언젠가 그 예언이 공표될 수도 있다는 신념을
밝힌 교황과 충돌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하지만 안젤로 주
교는 그 예언은 자신이 뭐라고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 이상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사실 성하께서 너무 급격히 달라지시고 있는 것을 보면 의아
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과학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창조론만 부정하지 않는다면' 이란 전제를 달았소.
그런 전제는 도피용이 아닌가요??
그렇소, 사실은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지 정말 문제야. 교회
가 과학을 받아들이고 나면 무엇이 남는다는 건가.
이대로 가면 교회는 붕괴하고 말아. 도대체 성하는 왜 스스로
교회를 깨려 한단 말인가.
사람들이 나가자 교리청 장관은 기도실로 들어가서 오랫동안
혼자 기도를 했다. 수심에 찼던 그의 얼굴이 기도를 마치고 나오
자편안한분위기로 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의 얼굴
에는 거칠고 격정적인 기도를 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는 전화기를 들어 숨을 미처 고르지 못한 채 단호한 목소리
로 외쳤다.
귄터 백작을 바꿔주시오!
기디온 교수는 프랑크푸르트공항의 출국 카운터 옆에 있는 카
페에서 조용히 맥주잔을 기울였다. 카페에는 비행기의 출발을
기다리는 승객들이 다소 들뜬 분위기로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기디온은 가방에서 지도를 꺼냈다
한국
손가락으로 지도상에 금을 그어보니 시베리아 상공을 날아 만
주를 거쳐서 들어가게 되어 있는 작은 나라였다 이 나라에서는
아무도 총을 쓰지 않는다고.
기디온은 잠시 눈을 감고 회상에 잠겼다.
처음 임무를 수행한 나라가 콩고였던가. 그 검은 나라에서는
내란중에 한 달 동안 무려 스물일곱 명의 신부와 수녀들이 암살
을 당했다. 서방 세계를 적으로 몰아야 집권을 할 수 있다고 판
단한 반군 지도자의 그릇된 전술 때문이었다.
그곳에는 기디온이 가야 할 정당하고도 확실한 이유가 있었
다. 기디온은 기꺼이 갔고, 성직자들은 암살의 공포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 물론 반군 지도자의 가톨릭에 대한 그릇된 편견도
말끔히 없어졌다. 잠자는 사이 침실에서 깨끗이 없어져버린 목
과 함께.
다음은 어디였던가. 엘살바도르, 아니면 니카라과. 어디였는
지 확실치는 않지만 해방신학에 미쳐 날뛰던 신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랫동안 신부와 토론을 벌였던 기억이 났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당시 그가 전개했던 논리는 옳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신부는 가톨릭의 신성성을 너무 무시하지 않았던
가. 독재자와 맞서 싸우지 않는 사제는 이미 정통성을 상실했다
는 주장은 그런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가 체제에 불
만을 가진 혁명가였다는 주장은 너무 심했다
그 신부는 독재와 싸워 이기고 나면 가톨릭을 정치에 이용할
사람으로 생각되었다. 비행기 출발30분 전까지도 그의 숨가쁜
주장은 그치지 않았었다. 하지만 기디온이 비행기를 타고 난 후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주장에 귀기울여줄 사람을 찾지 못했을 것
이다. 그의 주장도 구멍난 그의 머리통에서 다 새어버렸을 테니까.
기디온은 이틀 전 귄터 백작으로부터 받은 전화를 떠올렸다
기디온 교수, 한국에 한 정신병자가 있소.실제 병원에 있는
환자요. 지난 80년 발생했던 다우니의 하이재킹을 承사했을 거
라는 혐의가 있소.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문제는 지금 그자가 파
티마의 제3의 예언을 공표하라고 교황청에 요구하고 있다는사
실이오. 아직은 잠재적이지만 언제 어떤 돌발 행동으로 이어질
지 모르오. 우리의 추기경은 그의 이런 요구가 성하를 자극하여
예언의 공표로 이어질까 봐 지극히 염려하고 있소. 물론 이제까
지와 마찬가지로 현지에서의 결론은 교수에게 맡기는 바요 바
로 떠나주었으면 하오.
기디온은 비행기의 출발을 알리는 마지막 안내 방송이 나오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훤칠한키에 또렷한 이목구비,그리고 하얀
살결은 누가 봐도 학자 타입의 인물임을 말해 주었다.
기디온은 스튜어디스의 안내를 받아 퍼스트클래스의 좌석에
앉았다. 루프트한자의 여객기가 이륙하여 끝없는 구름 속을 비
행하는 동안 그는 눈은 감았지만 정신병원에 있다는 미지의 인
물에 대한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중세의 십자군전쟁에 참전한 유서 깊은 전통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난 기디온은 가톨릭을 보호해야 한다는 신성한 사명감 아래
에서 자라났다. 그러던 어느 날 기디온은 극비리에 한 사람의 방
문을 받았다. 그는 기디온에게 로마의 카타콤베 시절부터 지금
까지 밀전되어 오고 있는 한 조직에 가입할 것을 권유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인 그리스도의
말씀은 보전되어야 하고, 그 가장 순수하고 성스런 사명을 비밀
리에 수행하는 인간으로 자신이 선택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기디온은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울려오는 감격에 휩싸였다
귄터는 감격에 젖어 있는 기디온에게 장미로 장식된 작은 십자
가를 내밀었다.
장미십자회.
무릎을 꿇고 십자가를 받는 기디온의 두 뺨에는 눈물이 흘러
내렸다
가톨릭 명문들의 묵시적 동의에 의한 최고의 비밀 결사인 이
조직은 누구도 조직원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평상시에는 귄
터라는 이름의 전권을 가진 대리인이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가
를 결정하되 판단은 조직원에게 맡겼다
다만 이 조직은 108년 만에 한 번씩 전 조직원들의 의사를 물
어 새로이 해석해야 할 교리와 조직이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결
정했다. 그러나 전 조직원이라고 해야 얼마 되지도 않는데다가
모든 것이 비밀리에 행해졌기 때문에 이 조직은 오랜 세월이 흐
르는 동안에도 결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이 없었다.
상황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판단을 위해, 그리고 두 번 다시
중세의 암흑 시대와 같은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비밀 결사는
그 시대 최고의 명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자제들에게만 가입
이 허용되었다 물론 유럽 대륙의 가문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
였다. 가입자는 어떤 분야에서든 최소한 몇 개의 수석을 차지한
기록이 있어야 했다 특히 철학과 종교에서의 두각은 필수조건
이었다.
그들은 결코 요란스럽게 성당에 나가지는 않았다 가입 제의
를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누가 조직원인지 전혀 알지 못했으며 ,
조직원 서로간에도 만날 기회는 극히 드물었다.
특이한 것은 희생되어야 할 사람을 직접 만나 어떤 형태로든
사상을 검증한 후 그를 제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확신이 서면
오로지 자신의 판단에 의해 일을 결행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중세의 종교 재판장과 같은 역할을 수
행한다고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대체로 자신의 손에 직
접 피를 묻히는 것을 싫어했다. 일단 판단과 결심이 서면 그 다
음은 아무런 문제가 있을 수 없었다 세상에는 돈을 위해서라면
어떤 불가능한 일도 해내는 인간들이 많아 다음 문제를 모두 처
리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디온은 예외였다. 십자군전쟁에서 최고의 무훈을
떨친 그의 조상에게서 전해진 핏속에는 정의와 어긋나는 것에
대해서는 자신의 손으로 처리하는 가문의 전통이 용솟음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