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첫눈 내리던 날의 체육대회
2023년 10월 22일 일요일
음력 癸卯年 구월 초여드렛날
이틀 연달아 날씨가 꽤나 춥다.
첫추위라서 추위가 그렇게 느껴지긴 하겠지만
정말이지 이제는 내년 봄날이 오기까지는 좋은
시절이 다갔구나 싶다. 성큼 다가와버린 겨울이
그다지 반갑지도 않을 뿐더러 오히려 많이 싫다.
오늘 아침도 어제와 비슷한 기온, 영하 4도이다.
얼음도 얼었고 서리도 세게 내려 된서리일 듯...
아직 밭에 남아있는 배추와 무우가 걱정스럽다.
아무래도 다음 주엔 김장해야겠지 싶다. 아내가
잠에서 깨기전 난롯불부터 지폈다. 참 따시다!
어제 아침에는 첫눈이 내렸다.
면민체육대회가 있어 이른 아침부터 서둘렀다.
갈 준비를 먼저하고 카페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서방이 전화를 하여 부랴부랴 집을 나서는데
제법 굵은 눈이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참말로
날씨가 짖궂다는 생각보다 첫눈이 내리는 것을
모르고 집안에 있을 아내에게 먼저 전화를 했다.
"밖에 내다봐라! 첫눈 온다! 날씨가 참 얄궂다."
라고 하고는 마을로 향했다.
마을 경로당에 도착할 무렵에 눈은 그쳤다.
이미 많은 주민들이 새벽부터 나와서 갈 준비를
마쳤고 두 대의 세렉스에 짐을 가득 싣고 읍내에
있는 공설운동장으로 출발했다. 전날 미리 가서
준비를 해놓은 우리 마을의 부스에 짐을 풀었다.
이미 이장과 부녀회장이 도착해 있었고 너 나 할
것 없이 다 도왔고 손발이 척척 맞아 행사준비는
순조롭게 진행이 잘 되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하늘에서 눈이 또 쏟아지는 것
아닌가? 행사를 진행하는 관계자들의 당황하는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던가 말든가 우리는
새로 제작한 바베큐 그릴에 불을 붙이고 준비한
돼지기름으로 그릴을 깨끗히 닦아냈다. 그 일은
이서방과 마을 아우와 촌부가 맡아서 해치웠다.
아침을 먹는둥 마는둥하여 부녀회에서 준비해
준 컵라면에 아침부터 소주까지 한잔씩을 하며
추위에 얼은 몸을 녹였다. 그때까지도 꽤 굵은
눈발이 흩날렸다. 괜찮은 분위기였다.
올해는 첫눈이 빨리 내린 것으로 보아 올겨울은
꽤 추울 것 같다고 이 고장 봉평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경험에서
비롯된 예측들이다. 일기를 쓰기전에 지난 날의
일기를 살펴보니, 2021년 재작년은 11월 9일,
2022년 작년에는 12월 4일에 첫눈이 내렸다.
그러니까 올해는 엄청 빨리 첫눈이 내린 것이다.
자연현상이니까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다시 체육대회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렇게 체육대회 시작전 한 시간쯤 눈이 내렸다.
다행히 흙바닥이 아니고 인조잔디와 트랙이 깔린
공설운동은 눈이 녹아도 질퍽거리지 않아 좋았다.
봉평면 19개 마을의 부스마다 아침부터 떠들썩,
시끌벅적했다. 말이 체육대회이지 실제로는 모두
먹자판이 벌어진다. 우리 마을은 다른 마을보다도
일찌감치 고기를 구웠다. 이런 날 술판 벌어지는
것은 당연지사, 날씨가 춥고 눈이 내려 어쩔 수가
없다. 입장식부터 시작되는 공식행사는 생략하고
명랑운동회로 체육대회가 시작된다. 눈이 그치고
파란 하늘에 햇살이 고개를 내밀었다.
운동장의 여기저기에서는 명랑운동회 종목들이
펼쳐져 진행되고 각 마을의 부스에는 마을별로
장만한 음식들과 바베큐 그릴에서 굽는 고기로
잔치를 벌였다. 져도 그만 이겨도 그만인 종목의
운동시합에는 출전하는 선수만 나가면 되는 것,
젊은이가 별로 없는 우리 마을은 참가하는 것에
의미를 두었기에 시합보다는 먹고 마시는 것에
더 치중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고 늦은 오후
노래자랑 겸 경품추첨이 이어졌다. 해가 지면서
다시 찾아온 추위에도 아랑곳하지도 않고 다들
경품 추첨에 더 관심을 갖는 눈치가 역력했다.
아침에 집을 나설때 아내가 했던 말이 생각나서
추위에도 불구하고 노래자랑과 경품 추첨하는걸
지켜봤다. "좋은 냉동고 하나 타와!"라고 했는데
꽝이었다. 그렇게 하루를 잘 즐기고 집으로 왔다.
그랬는데 이장과 이장 부인이 먹을 것은 챙겨서
올라온다고 둘째네로 연락이 왔다고 하여 다시
옷을 주섬주섬 차려입고 아내와 함께 카페에서
기다리며 벽난로를 지폈다. 조금후 이장 부부가
잔뜩 싸온 행사음식을 풀어놓고 뒤풀이를 했다.
메밀 막걸리를 한잔하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시간이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마무리를 했다.
긴 하루, 첫눈 내리던 날의 체육대회였다.
♧카페지기 박종선 님의 빠른 쾌유를 빕니다.♧
첫댓글
벌써 첫눈이 내렸군요
밭의 푸성귀들은 괜찮을까요?
오늘도 즐겁고 행복만 하세요
첫눈이 조금 빨리 내렸습니다.
배추, 무우는 아직은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