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세보다 비싼 분양가 얼마나 팔릴까요.
비즈니스워치, 나원식 기자, 2022. 12. 6.
대구 등 지방에서 시작된 미분양 공포가 서울과 수도권까지 덮치기 시작하면서 국내 주택시장에 10여 년 전 악몽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금리 인상과 수요 위축, 분양 밀어내기 등 분양 시장에 악재만 쌓여 있어 이런 흐름을 당분간 되돌리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기존 주택들의 시세가 급격하게 떨어지는 탓에 분양가가 높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시장에는 그간 일정을 미뤄왔던 단지들이 줄줄이 밀어내기 분야에 나서고 있어 급격하게 미분양 규모가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미분양 주택은 시장 수요가 위축하면 단기간에 급증할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1. 시세 급락하는데 분양가 요지부동 비싸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국내 미분양 주택 수는 올해 하반기 들어서 급격하게 증가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전국 기준 미분양 주택은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1만8000가구 정도에 그쳤는데 올해 들어 2만가구를 넘어선 뒤 하반기 증가세가 가팔라지면서 5만 가구에 육박하는 수준에 달했다.
이런 흐름은 당분간 더욱 가팔라질 가능성이 크다. 건설사들이 올해 내내 미뤄왔던 분양을 연말에 쏟아내는 '밀어내기 분양'이 이뤄지고 있는 탓이다. 부동산 정보업체 리얼투데이에 따르면 이달 전국 55개 단지에서 3만 8449가구 가구가 일반분양할 예정이다. 특히 서울의 일반분양 물량은 7166가구로 연내 최대 규모다.
이처럼 분양 물량은 쏟아지는데 금리 인상 등으로 수요가 크게 위축해 미분양 주택이 빠르게 쌓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최근 집값이 뚝뚝 떨어지는 탓에 분양가가 예상보다 비싸다는 인식도 확산하는 분위기다.
서울 성북구 장위자이레디언트 전용 84㎡의 분양가가 9억원대 초반에서 10억원 초반 수준인데, 인근에서 지난해 입주한 '래미안장위포레카운티'의 같은 크기 매물(8억5000만~9억5000만)보다 비싸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욱이 급락하는 집값에 비교해 분양가는 인건비와 자재비 인상 등으로 요지부동이라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청약홈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서울에서 분양한 아파트 3.3㎡ 평균 분양가는 3000만원 전후로 책정된 바 있다. 둔촌주공의 경우 평당 3829만원으로 이보다 높은 편이었고, 최근 분양가가 확정된 마포더클래시는 평당 4013만원으로 둔촌주공을 넘어서며 눈길을 끌기도 했다.
2. 5만 가구 넘을 듯 서울-지방은 온도 차가 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미분양 주택 증가세는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고 있다. 통상 부동산 침체기 진입의 기준으로 여겨지는 5만~6만 가구 진입은 시간 문제라는 지적이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MD비즈니스학과 교수)는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고 분양가와 시장 가격의 간극이 좁혀지면서 미분양이 쌓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됐다"며 "고금리 등으로 집값이 더 떨어질 거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는 탓에 미분양은 더욱 증가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시장의 관심은 과연 미분양 주택 규모가 어느 정도 수준까지 늘어나느냐에 쏠리고 있다. 과거 금융위기 당시에는 5만~6만 가구 수준이던 미분양 주택이 2007년을 넘어서면서 10만 가구 이상으로 급증하며 국내 주택 경기에 큰 타격을 준 바 있다. 서울 역시 2007년까지만 해도 미분양 가구가 500가구에도 미치지 않았지만 2008년 들어서면서 2000가구 이상으로 순식간에 늘었다.
전문가들은 시장을 조금 더 관망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가파른 상승세를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10만 가구 이상으로 급증할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우선 시장에 '공포감'이 확산할 경우 미분양 주택이 급증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서 공동대표는 "부동산 시장에서는 '심리'가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공포를 느끼게 되면 미분양 주택 역시 급격하게 증가할 수 있다"며 "금융위기 당시처럼 미분양이 16만 가구에 달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미분양은 거시경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정부가 시장 연착륙을 위해서 선제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당시의 위기가 그대로 재현하지는 않을 거라는 분석도 있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당시에는 금융위기 직전 노무현 정부가 민간택지에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한다고 발표하자 건설사들이 고분양가에 물량을 쏟아낸 탓에 수요자들이 외면했던 것"이라며 "지금은 분양가상한제 지역의 경우 절대적으로 분양가가 높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방의 경우 미분양이 지속해 쌓이면서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서울과 수도권의 경우 둔촌주공 등 핵심지에서는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고 수요가 여전한 만큼 지방과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으니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전망했다.
나원식 (setisoul@bizwatch.co.kr) 기사 내용을 정리하여 게재합니다.